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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01화 (597/925)

82. 퍼스트 크리스마스 (12)

마진승은 멀리서부터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저 풀의 벽은 마진승의 광림, ‘초원을 부르는 함성’의 결과물인 듯했다.

마진승의 목소리가 광림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은광고 학생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있든 없든 염준열에게 시비를 걸고 대련을 신청해 대는 마진승이 큰 목소리에 비해 말싸움도 못하고, 광림도 제대로 발동시키지 못하는 것도.

대련 중에 마진승은 광림을 쓴다고 열심히 소리를 질러 댔지만, 겨우 불러낸 잡초 몇 줌은 순식간에 염준열의 불꽃에 불타 버리곤 했다.

‘쟤 힘으로는 이 진족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염준열은 지금 상대가 진족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진승이 불러낸 풀의 벽은 그람을 묶어 두고 있었다.

불꽃을 뿜을 준비를 하던 홍룡이 어리둥절해하며 나무줄기와 풀잎을 바라봤다.

풀의 벽 사이엔 나무줄기에 얽힌 그람이 꽂혀 있었다.

습격해 온 진족이 그람을 빼내려고 힘을 주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고 그런 건 아니겠지?’

신화, 전설, 민담 속에 등장하는 진족과 무기는 오래도록 회자되어 강력한 힘을 얻지만, 동시에 약점도 쉽게 노출된다.

용족이 용살의 전승 앞에서 힘을 못 쓰듯이, 신화 속 무기 그람도 마찬가지였다.

오딘은 현세에 그람을 남겨 둘 때, 주인을 정해 주지 않았다.

그 대신 그람을 나무에 꽂아 두며 이 검을 뽑은 자가 검을 가지게 되리라 천명해 당대 최고의 전사들이 검을 뽑기 위해 도전했다.

그리고 이에 성공한 건 단 한 명, 북유럽 신화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시구르드의 아버지인 시그문드였다.

즉, 나무에 꽂힌 검을 뽑을 수 있는 건 시그문드에 준하는 영웅뿐이다.

마진승이 사용한 목(木) 속성의 힘이 그람을 봉인해 버린 셈이다.

“…….”

습격자가 그람을 쥔 손을 놓고 우산 아래에서 마진승을 노려보았다.

살기 어린 시선에 마진승이 움찔하고 떨었다.

습격자는 그람을 봉인한 힘의 원천, 마진승을 먼저 처치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습격자가 몸을 날리려 할 때, 우산 주위로 수십 발의 이능파 폭죽이 던져졌다.

펑! 퍼퍼펑!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형광색의 폭죽이 시야를 뒤덮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색 배합인 걸 보니 오늘 2학년 0반이 축제 도중 사용하려던 폭죽 같았다.

습격자가 우산으로 가려 폭죽을 막은 사이, 왕찬솔과 금찬솔이 외쳤다.

“야, 뭐 하냐! 안 튀고!”

“미궁 공략도 해야 하고, 나가서도 싸워야 되는데 쟤한테 힘 낭비하면 안 된다!”

2학년 0반은 이미 미궁 저편으로 도망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동안 사고를 치고 도망칠 때마다 방해 공작을 벌이는 데에 도가 튼 건지, 0반 학생들 손에는 온갖 종류의 덫, 폭죽 아이템 카드가 들려 있었다.

0반 학생들은 도망을 제안했지만, 염준열은 망설였다.

‘이 진족은 나를 노리고 있어. 이대로 0반 아이들과 같이 움직이면 쟤들도 공격당할 거야.’

저 습격자가 없다 쳐도 은광고 전체가 위기 상황인데, 염준열 때문에 더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는 건 꺼려졌다.

염준열은 이대로 저 습격자를 상대하는 것도 고려했다.

습격자는 그람이 봉인된 직후, 다른 무기나 이능으로 염준열을 공격하는 대신 그람을 되찾는 걸 우선시했다.

이대로 염준열이 싸워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염준열이 전의를 불태운 순간, 마진승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네가 남으면, 나도 싸울 거야!”

선도부 이벤트 때문인지, 순록 의상을 입고 숨을 몰아쉬는 마진승의 모습은 다소 볼품없었다.

마진승은 광림을 제대로 발동시킨 게 처음이라서 그런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마진승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지금 염준열이 이 자리에 남으면 같이 남겠다고 할 것 같았다.

마진승은 무례하고 성가신 동급생이었지만, 염준열 때문에 다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염준열은 같이 도주하기로 했다.

“가자.”

“어, 어……!”

염준열의 말에 마진승이 크게 대답을 하려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다.

마진승은 목이 쉬어서 소리를 내기 힘들 정도로 힘을 소모한 것 같았다.

2학년 0반 학생들이 소모 아이템을 아낌없이 던진 덕에 도주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미궁형 이계에 있으니 이대로 멀어지면 거리를 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주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용족의 후예를 이대로 가게 둘 수 없다.”

습격자가 처음으로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미궁의 벽이 일그러지고 에너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롯드를 든 플로어 마스터급 에너미와 그 부하 에너미들이었다.

플로어 마스터가 롯드를 휘두를 때마다 그 휘하에 있는 에너미들에게 버프 효과가 부여되어 공격력, 내구력이 강화되었다.

그 모습을 목격하고 2학년 0반 학생들이 경악했다.

“뭐야, 이거! 플로어 마스터 같은데! 저 진족이 부른 거지? 설마 이 미궁 쟤 거야?”

“시뮬레이터 켤 때 저 진족의 가든이라는 설정으로 했나?”

“시뮬레이터로 구현했으면 중간에 끌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비겁하다아악!”

이계 시뮬레이터에 의해 실체화된 이 정체불명의 미궁형 이계는 저 진족의 가든이라는 설정 같았다.

도주로를 뚫던 2학년 0반 학생들이 에너미를 상대하느라 묶이자, 금방 뒤를 따라잡히고 말았다.

습격자의 손에 그람이 들려 있지 않았지만, 꽤 높은 희귀도로 추정되는 검이 들려 있었다.

“성가신 능력을 쓰는 놈부터 죽여 주마.”

휙!

습격자의 검 끝이 마진승을 향했다.

마진승은 검에서 느껴지는 예기와 이능파에 압도되어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누가 봐도 마진승은 저 습격자의 검을 당해 낼 수 없었다.

‘남은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상태인데도 빈틈이 없어!’

로브를 뒤집어쓴 습격자가 마진승을 비웃듯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마진승은 그 비웃음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다음 순간, 습격자의 검이 바람을 찢고 마진승의 심장을 향해 쏘아졌다.

쉬이익!

염준열은 급히 홍룡을 움직여 마진승의 앞을 가로막았다.

홍룡의 불꽃 비늘에 힘을 실어 방어력을 올린 후, 충격에 대비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처럼 나타난 누군가가 홍룡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우산……?’

막 나타난 누군가도, 습격자처럼 우산을 들고 있었다.

염준열은 혼란스러웠으나 우산을 쓴 이의 정체를 금세 알아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외할머니…… 아니, 스승님!”

우산 밑에 있는 건 낡은 여행복 차림을 한 여성, 촉룡이었다.

촉룡은 한 손으로 습격자의 검을 흘려 넘기고 검을 쥔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파앗!

습격자는 촉룡의 팔을 떨쳐 내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촉룡은 우산이 거추장스러운지 휙 허공에 던져 버리며 염준열의 말에 답했다.

“준열아, 지금은 급한 상황이니 편한 대로 부르렴. 난 외할머니 쪽이 좋단다.”

염준열은 촉룡의 다정한 말에 금방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촉룡은 어떻게 우산을 쓰고 이 자리에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염준열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 우산은 왜…….”

“오늘 눈이 온다기에 우리 손주 우산 챙겨 주려고 왔지.”

“눈이요?”

“응, 제건이가 눈 온다고 하더라. 준열이 만날 때까진 꼭 우산을 써야 한다기에 들고 다녔어.”

촉룡은 로브를 쓴 습격자를 보며 말했다.

“저자들은 은광고에서 흉사를 꾸미고 있었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해서 피아 식별을 우산으로 할 생각이었을까?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니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더구나.”

“…….”

습격자는 촉룡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이템 카드를 꺼내 그람이 박힌 풀의 벽을 향해 던졌다.

화르륵!

아이템 카드에는 화염 이능이 봉인되었는지, 습격자가 이능파를 쏘자 곧바로 발화했다.

마진승이 부른 풀의 벽에서 그람을 빼낼 수 없으니, 벽째로 불태울 생각인 듯했다.

“안 돼!”

염준열이 홍룡을 부려 그람을 먼저 낚아채려 했으나, 습격자가 더 빨랐다.

습격자는 그대로 불 속에 손을 집어넣어 그람을 움켜쥐었다.

타닥, 지지직…….

그람을 쥔 습격자의 손이 타들어 갔다.

습격자는 이능파로 손을 감싼 것 같았으나 상당히 강력한 화염 이능이 담긴 아이템 카드가 사용된 건지, 이능파를 뚫고 손이 익는 듯했다.

불타오르는 그람을 쥔 습격자를 본 염준열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외할머니, 조심하세요! 저건 그람이에요!”

촉룡은 용살의 신화가 담긴 무기를 목격하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습격자는 그람을 쥐긴 했으나 불꽃이 꺼질 때까지는 제대로 된 검술을 발휘할 수 없는지,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용살의 신화가 담긴 비보가 경매에 올라온 적이 있다 들었다. 그람을 낙찰받은 건 마족이라 했지.”

촉룡은 마치 저자가 그람을 들고 올 걸 예상한 것처럼 말했다.

염준열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그렇다면 그 로브에 그려진 건 마신의 인장일까? 마족들은 워낙 벌레처럼 숨어 다니니 자주 볼 일이 없어. 오랜만에 봐서 헷갈리는데…… 질투의 인비디우스는 아니고, 탐욕의 아바리티아도 아닌 것 같아.”

촉룡은 고개를 움직이며 우산 밑에 가려진 로브의 인장을 확인하려 했다.

마치 도발하는 것 같은 모습에 염준열은 불안해졌다.

지금은 저 검이 불타오르는 중이기에 대치 상태라고 하나 용의 힘을 무효화하는 그람이 저 손에 있는 한 용족인 촉룡과 염준열은 한없이 불리했다.

촉룡은 마침내 마신의 인장을 알아보고는 꾸짖듯이 크게 외쳤다.

“분노의 이라노우스. 인내를 모르는 어리석음의 상징이지. 그 우매함이 감히 우리 후예를 노리는 데에까지 이르렀구나!”

7대 마신 중 하나, 분노의 이라노우스를 섬기는 사제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촉룡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 그람에 남은 불꽃은 꺼지지 않았는데, 자신이 섬기는 마신을 낮추는 발언을 견딜 수 없는 듯했다.

도발에 걸려든 마족이 그람으로 촉룡의 목을 긋기 위해 달려들었을 때였다.

파아아앗!

촉룡이 서 있는 주변이 남청색으로 빛났다.

붉은 용인 촉룡의 이능파 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모든 2학년 학생들이 그 이능파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진실만을 말하는 올곧은 그 교사의 말은 전부 남옥처럼 빛나 모든 학생의 존경을 받았으니까.

“네놈은 어린 후예를 노릴 때에 신화 속 용살의 힘을 들고 덤볐지. 그런 주제에 인간의 언어를 무서워하는구나.”

촉룡의 낡은 옷자락에 남옥시인 제갈재걸이 언령 스킬로 새긴 글자가 남아 있었다.

촉룡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한 걸음씩 습격자를 향해 걸을 때마다 이라노우스의 사제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마침 그 용살의 무기는 ‘분노’의 이름을 타고났구나. 네가 섬기는 마신과 같은 이름의 신화 병기가 손에 있거늘, 언령이 두려워 내게 덤비지 못하다니.”

한편, 저 멀리서 플로어 마스터를 상대하던 2학년 0반 학생들이 촉룡이 뿌리는 이능파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플로어 마스터와 에너미 상대에 고전하던 0반 학생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곧바로 에너미 두 마리를 쓰러뜨린 금찬솔과 왕찬솔이 제갈재걸을 불렀다.

“제갈 쌤! 어디 계세요!”

“선생님! 에너미랑 진족이 저희를 괴롭혀욧!”

아이들이 부르는 목소리에 미궁의 벽 쪽에서 ‘은신’이라는 글을 새기고 한 발자국 물러나 있던 인물이 나타났다.

제갈재걸 본인이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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