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학교 밖 (1)
학생회관 중앙, 학생회실.
통찰계 스킬을 보유한 학생들이 교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아직 외부로부터 지원이 도착할 낌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좌절하는 이들은 없었다.
수집되는 정보 대다수가 각 출구에서 들려온 승전보였다.
또, 학생들은 늦어도 날이 바뀌기 전에 협회나 프로 플레이어 팀 혹은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과 교사진이 결계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는 인물이 셋 있었다.
도원우, 지명수 그리고 문새론.
이 셋은 은광고 결계 안과 밖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고 파악한 상태였다.
‘시간의 흐름까지 왜곡시킨 상대다. 학교 밖에도 손을 써 뒀겠지. 협회나 프로 플레이어 팀을 방해할 수단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적들은 학교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그 안에 진족과 에너미를 밀어 넣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은광고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심오한 이능을 사용하고 이능파를 소모했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상대라면 밖에서 은광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철저히 손을 썼을 거다.
‘미리 은광고의 전력을 가늠하고, 섬멸이 가능할 만큼 시간을 벌어 뒀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의 기대와 달리 외부의 지원은 오지 못하거나, 오더라도 매우 늦게 올 것이다.
도원우가 무표정한 얼굴 뒤로 불같이 분노했다.
‘은광고에 침입한 적들은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거지? 이렇게까지 학생들을 사지에 몰 필요가 있나……!’
도원우는 대체 상대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악의가 무차별로 은광고인들을 해하려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를 방치하면 학생들의 체력과 이능파에 한계가 올 것이고, 전멸하고 말 것이다.
도원우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면 농성이 아니라 탈출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비상구로 나간다든가.”
문새론의 말을 들은 후, 계속 침묵하고 있던 지명수가 입을 열었다.
도원우도 지명수와 같은 생각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은광고 결계의 오작동을 대비해 비상구가 몇 군데 마련되어 있다.
그 비상구는 일방통행으로, 오로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도원우의 방송을 듣고 모인 학생들 덕에 학생회관에 전력이 꽤 몰려 있는 상태이므로, 지금이라면 비상구로 향하는 길을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원우도 탈출 쪽에 생각이 미쳤으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은광고를 기습한 적이 비상구의 존재를 몰랐을까?’
적은 은광고의 결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비상구의 존재도 알 것 같았다.
도원우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학생이 보고를 올렸다.
“도원우 선배님, 지익회에서 메시지가 도착했어요.”
“메시지?”
현재 은광고 내에서는 통신이 되지 않는 상태다.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곤 도원우가 일방적으로 하는 교내 방송과 이능을 통한 메시지 교환뿐이다.
이번에는 후자를 통해 온 듯했다.
“네, 그쪽에서 통신병을 맡은 신문부원이 보냈습니다.”
신문부원이라는 말에 옆에서 보고 있던 문새론이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 부장이라는 2학년 신문부원이 전이 스킬로 쪽지를 학생회관에 보낸 모양이었다.
큰 물건은 보낼 수 없고 거리가 멀어지면 이능파 소모가 극심하다고 하는데, 과연 작은 쪽지에 지익회 상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익회관에서 농성 중인 지익회는 거주 구역에 있던 학생들을 모았다고 한다.
학교 행사에 참가할 생각이 없는 학생, 오후 늦게 등교할 예정이었던 학생 등등이 기숙사에 남아 있어 숫자가 꽤 되는 모양이었다.
쪽지 내용을 담담히 확인하던 도원우가 입을 열었다.
“천익산 쪽 비상구에 이계 발생. 희귀도 SSR급 이상으로 추정. 현재 공략 중.”
“……!”
쪽지에 있는 내용을 읽자 지명수의 안색이 흐려졌다.
애초에 은광고 안에 이계가 발생하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그 넓은 천익산에서 비상구 주변에 바로 이계가 발생했다는 건 매우 꺼림칙했다.
마치 탈출하려는 학생을 방해하는 것 같은 출현 장소였다.
“비상구는 함정인 것 같군.”
확증은 없으나 비상구 이용은 재고하기로 했다.
도원우는 ‘공략 중’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성시완이 있으니 공략은 어렵지 않을 거다. 문제는 그 이계만 있는 게 아니라면…….’
지익회가 걱정되었으나 전력을 나눌 여유가 없었다.
1번 출구 쪽에 진족이 출현하고 예상보다 2학년의 합류가 늦어져 자칫하다간 학생회관 쪽 방어선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도원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오, 주 반장님 오셨네.”
문새론의 말대로 주수혁이 학생회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뚱한 얼굴의 유상훈과 맹효돈도 함께였다.
주수혁은 문새론에게 볼일이 있는지 곧장 그녀 쪽으로 갔다.
“새론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네?”
도원우가 주수혁을 불렀다.
“천리안으로 봐 줬으면 하는 게 두 군데 있다.”
천리안은 범위가 닿는 곳을 결계 등으로 방해받지 않는다면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듯 볼 수 있다.
도원우가 처음 지정한 곳은 정문에 위치한 시계탑이었다.
“가리키는 시각이 좀 이상하네요. 시침이 고장 났나?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 시계탑을 1분 정도 관찰해 봐라.”
도원우의 지시대로 관찰한 결과, 시계탑이 가리키는 시간은 열 배 느리게 움직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도원우가 두 번째로 지정한 곳은 천익산의 한 지점이었다.
주수혁은 도원우가 가리킨 지도의 좌표 쪽으로 천리안을 발동시켰다.
주수혁이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이계의 출구와 그 주변에서 수비대를 맡아 싸우는 중인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지익회 분들이 지금 이계 공략 중이에요! 입구를 보니 꽤 규모가 크네요.”
“공략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지?”
“글쎄요…… 천리안으로는 이계 내부를 볼 수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 정도 규모면 1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요?”
주수혁의 말에 도원우가 탄식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저런 규모의 이계가 비상구마다 있다면 탈출은 어려웠다.
이계 공략을 하는 사이에 적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될 텐데, 그사이에 적든 크든 피해가 발생할 게 뻔했다.
도원우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 * *
1학년 구역 쪽.
회복한 용제건과 적호가 합류하니 웅족들은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백호는 모든 권속을 섬멸시켰고, 번민의 곰이 거느렸던 모든 수하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건 번민의 곰뿐이었다.
“거래를 하자……!”
“거래 좋아하네. 네놈에게는 내 아들의 고문 재료가 되는 것 외에 아무 가치가 없다.”
파지직! 치직…….
적호가 번민의 곰이 벌린 입 틈 사이로 붉은 번개를 쏘아 냈다.
혀와 입속을 태울 생각이었으나 번민의 곰이 급히 몸을 트는 바람에 입술의 반과 뺨만을 태웠다.
‘완벽한 우위를 점한 상태인데 고작 이런 공격을 날린다고……?’
굴욕적이고 따가운 일격이었으나 번민의 곰에게 치명상을 입힐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적호가 마음만 먹으면 번민의 곰이 발을 디딘 땅을 비롯해 그의 피부 전체를 번개로 지져 버릴 수 있다.
그런데도 적호는 굳이 입만을 노려 공격한 거다.
마치 먹이를 가지고 노는 범을 보는 꼴이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용제건은 싱글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용제건이 정말로 보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용제건이 만들어 낸 공간술은 김신록을 감싸고 있어 틈을 노려 김신록을 공격하거나 납치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저 아들 쪽이 약점이지!’
번민의 곰은 욱신거리는 입을 놀렸다.
말을 거는 대상은 김신록 쪽이었다.
“……학생의 목숨을 두고, 적호의 아들 쪽에 거래를 제안한다!”
웅족은 오랫동안 김신록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김신록은 웅족의 후예로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으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정신적인 약점도 확보한 상태였다.
그 약점은 바로 학생들이었다.
김신록은 오랜 기간 이름과 얼굴을 바꾸면서 은광고에 근무하며 학교에 정을 붙였다.
길어야 3년 간 사제로 지냈을 뿐인데, 김신록은 학생들에게 몹시 약했다.
‘저 후예가 호족 사이에서 냉대받는다고 하나, 적호와 그 친우들은 다르다. 아들이나 조카처럼 대접하고 있지.’
김신록이 간청한다면 저들은 들어줄 게 뻔했다.
김신록의 친우, 여의보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생의 목숨? 나도 여기 교사인데, 한번 말해 봐.”
용제건이 저렇게 말하자 번민의 곰이 속으로 화색을 띠었다.
정보를 판 결과 계획이 좀 망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번민의 곰은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은광고 각지에 웅족과 마족이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두 자리가 넘는다. 이들이 의식에 성공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숫자의 이계가 발생하고, 에너미들이 학생들을 덮치겠지.”
번민의 곰은 선심 쓰듯 정보를 몇 개 덧붙였다.
비상구는 전부 막혀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 학교 밖에서도 지원이 오지 못할 거라는 것이 그러했다.
김신록은 고개를 숙인 상태라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얼굴도 들지 못할 만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광활한 은광고 전체를 보는 능력이 없는 한, 의식을 준비하는 곳의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을 거다.”
번민의 곰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천리안이나 백리안을 소유한 학생들이 몇 명 있겠지만, 그건 지정한 장소를 훑는 것밖에 못 하고 결계 너머는 보지 못한다.
유일하게 거슬렸던 건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시야를 소유한 천동하다.
하지만 그 천동하를 상대로는 미리 손을 써 두었다.
그러니 의식을 준비하는 자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거래가 거의 먹힐 거라는 생각에 번민의 곰은 번개로 지져진 입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할 만큼 흥분했다.
“나를 보내 다오. 그렇게 하면 여기서 놓아주는 내 수하의 숫자만큼 그 위치를 밝히겠다.”
번민의 곰은 살릴 수하들의 수를 머릿속으로 가늠했다.
몇 명은 버릴 생각이니, 의식을 준비하는 자들의 위치를 전부 팔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번민의 곰이 김신록의 답변을 기다렸으나, 들린 건 용제건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였다.
“와, 정말 은인의 예상대로 일이 돌아가네.”
격분, 거절, 허탈, 납득, 설득…… 번민의 곰이 생각했던 어떤 반응과도 달랐다.
용제건은 그저 몹시 설레 보였다.
번민의 곰이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한 순간.
서걱! 툭…….
번민의 곰의 오른팔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선장을 움켜쥔 손가락이, 옷의 일부가 무참하게 땅 위에 떨어져 있었다.
뒤늦게 이어진 격통에 사고가 어지러워졌다.
어떤 전조도, 조짐도 없이 날아와 그의 신체를 잘라 낸 일격에 이어 서늘한 음성이 들렸다.
“내 제자의 귀가 더러워진다. 그만 입을 놀려라.”
백호가 말을 마치자 용제건의 공간 너머로 김신록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김신록은 용제건과 적호가 다쳤을 때 무너진 게 언제였냐는 듯,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과 그런 거래를 하지 않아도…….”
김신록의 목소리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은광고의 학생이 그자들을 전부 찾아낼 거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