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08화 (604/925)

83. 학교 밖 (2)

며칠 전, 황명호 대저택.

작전 회의 도중, 나는 고민에 빠졌다.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웅족이 올 거야. 웅족이 노리는 건 김신록이고. 그걸 알고 있으니 아무도 다치지 않게 수를 둘 수 있어.’

백호군과 용제건, 적호 이렇게 셋이 있으니 웅족이 몇이 오더라도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머릿속에 두 가지 수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전원 무사히 웅족의 습격을 넘어갈 안전한 수.

두 번째는 누군가는 다치게 될 위험한 수.

‘내가 다치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있기 어려워. 그래도…….’

만약 흑막의 계획이 퍼스트 크리스마스로 끝이 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안전한 수를 택했을 거다.

하지만 흑막과 두는 대국은 이번 크리스마스가 마지막인 게 아니므로, 이 사건 이후의 일도 시야에 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중요한 정보를 빠르게 입수할 수를 두고 싶었다.

그 정보란 바로 운사의 생사 여부였다.

‘적호는 리플레이를 할 때, 삿된 눈에서 풍백과 우사의 기운을 읽어 냈다고 했어. 그렇다면 운사는 어떻게 된 걸까?’

리플레이를 마친 적호는 운사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피부로 직접 느껴 봤을 때 운사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늘이 새하얬습니다.

―운사의 특기는 먹구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흰 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죠.

즉, 리플레이 속에서 삿된 눈이 뿌려질 때 운사의 먹구름이 보이지 않았고, 기운도 느껴지지 않은 셈이다.

황지호의 말대로 운사는 먼 옛날에 전사하여 그 삿된 눈에 개입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황지호가 전사했다고 여긴 풍백과 우사의 기운이 삿된 눈에서 느껴졌어. 그렇다면 운사도 호족이 모르는 것뿐,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게 아닐까?’

호랑이들의 말에 의하면 풍백과 우사, 운사는 셋이 모여야 눈을 뿌릴 수 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운사의 역할을 용왕신의 무녀가 대신하여 맡고 있지만, 어쨌든 그 셋이 모여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명확했다.

내가 흑막이라면 그 셋을 동시에 손에 넣기 위해 수를 뒀을 거다.

실제로 풍백과 우사의 힘을 얻는 데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운사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건, 운사는 이번 일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그 사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운사가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운사는 흑막에게 협력을 종용당하고 있으나 이를 거부하고 있다.

둘째, 운사는 퍼스트 크리스마스 사건에 직접 나서지 않았을 뿐, 흑막 측에 붙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정답일지는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정답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게 웅족이라고 생각했다.

‘김신록을 잡기 위해 수련회 때보다 전력을 보강해서 올 테니, 그때처럼 진웅팔선이 오겠지. 그 정도 급이면 운사의 행방을 알 가능성이 커. 붙잡아서 고문을 하면 언젠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래선 늦을 수도 있어.’

김신록의 고문 솜씨가 괜찮아졌다고 하나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특히 진웅팔선급 웅족이라면 고문에 쉽게 입을 열지 않거나, 입을 열더라도 거짓 정보를 뿌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고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빼내야 했다.

‘곰들의 입은 먹이 앞에서 한없이 가벼워진다고 했지…….’

웅족에게 있어 아주 그럴싸한, 먹음직한 먹이를 앞에 두면 입을 열지 않을까.

나는 처음 생각한 그 위험한 수를 더 구체적으로 떠올렸다.

마침 눈앞에서 적호가 김신록에게 곶감 전병을 밀어 주는 게 보였다.

김신록이 쑥스러워하면서도 전병을 잘 집어 먹는 걸 적호가 흐뭇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용제건이 황홀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차마 내가 생각한 수를 입에 담기 어려웠다.

‘진웅팔선은 적호가 김신록 주변에서 적연으로 모습을 숨겼다가 나타난 걸 본 적이 있어. 함정을 파 두겠지. 그러면 적호가 다칠 거고, 상당히 소모한 상태로 강적을 맞이할 용제건도 다칠 가능성이 있고, 어쩌면 김신록도…….’

저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저것 외에 운사의 행방을 정확하고 빠르게 알아낼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수를 찾으려고 할 때, 은호가 말을 걸었다.

―의신이 형이 수를 떠올리신 것 같은데, 말하기 어렵나 봐요. 누군가가 다칠 가능성이 있는 계획인가요?

―조의신은 제 목숨이 아닌 남의 목숨이 위험한 수는 두지 않는다. 다친다고 해 봤자 팔다리가 조금 잘리는 수준이겠지.

은호에 이어 황지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저 두 호랑이들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들어는 보죠. 정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제가 말릴게요.

과감한 수를 잘 두는 은호가 과연 그럴까……?

의심은 갔지만 은호가 호랑이들을 아낀다는 건 사실이었다.

결국 내가 생각한 수를 말했다.

용제건이 여의보주의 기적을 발현해 눈을 막을 때, 김신록이 같이 있을 것.

후예인 김신록과 힘을 소모한 용제건을 노리러 오도록 웅족을 유도할 것.

그리고 적연으로 몸을 숨겼던 적호를 위험에 노출시켜 적을 방심시킬 것.

그때, 적호가 삿된 눈과 엮어서 운사의 존재에 관해 물을 것.

―마지막으로 운사의 정보를 캐낸 후에 백호와 유상희를 투입하여 상황을 종료시킨다……라.

황지호가 내 제안을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을 때, 적호가 가장 먼저 찬성하고 나섰다.

―하겠습니다. 유상희 학생에게는 일전에 치료받은 적이 있었죠. 그 학생의 광림은 저강렵의 갈래로 입은 부상도 낫게 했습니다. 운사의 행방을 알 때까지 제 아들도 지킬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호에 이어 찬성을 한 건 갑자기 더더욱 황홀한 표정을 지은 용제건이었다.

―나도 할래.

용제건은 뭔가 꾸미는 게 있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나와 호랑이들의 눈을 피해 무슨 짓을 벌일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김신록은 저 둘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민한 것 같지만 적호가 괜찮다고 말하고, 용제건이 놀리듯 ‘내가 그렇게 걱정돼?’라고 한마디 하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황지호는 셋의 대화를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저 셋이 괜찮다고 말을 하니 말릴 수가 없군. 안 그렇나, 백호? 뭐, 네가 그 자리에 있을 텐데 별문제는 없겠지.

―…….

백호군은 당연한 소리를 하는 황지호를 흘끗 보고 눈앞에 놓인 곶감 전병 그릇을 김신록 쪽으로 밀어 줬다.

적호가 그릇을 다시 백호군 쪽으로 되돌려 놓기 전에 김신록이 전병을 하나 집어 먹었다.

평화로운 광경을 보니 다시 미안해졌다.

더 안전한 수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의신이 형, 다음 수에 관해서 이야기하죠. 운사 님의 정보를 캐낸 뒤, 쓸모가 없어진 웅족들을 제압한 후에 둬야 할 수 말인데요.

은호가 내 생각을 중단시키듯 말을 걸었다.

은호는 사전에 내가 만들어서 배부했던 자료를 읽으며 물었다.

―의신이 형은 학교 전체를 살필 눈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게임 중에서 낮은 확률로 조우한 진족의 존재가 있다고 하셨죠?

―……어, 맵 전체를 확인하려고 학교 각 지점을 돌아다녔는데, 낮은 확률로 우산을 쓴 진족을 만났어.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에 출격 가능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모두 동원하면, 다양한 시각, 장소에서 은광고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우산을 쓴 진족들과 마주치는데, 들키게 되면 바로 살해당한다.

게임 중에는 그저 즉사 이벤트라고 판단해 인적이 드문 지역을 조사할 때 조심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게 현실이 되니, 생각이 달라졌지만.’

은광고에서 일을 꾸미는 진족들이 있는 걸 알았으니, 찾아내 처리해야 했다.

―습격을 가하는 웅족 외에도, 학교 각지에 진족들이 있을 거야. 기억하고 있는 대로 시간과 장소를 표시했지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눈을 맞으며 이동하면 체력과 이능파가 금방 떨어져서 은광고 내에서 한 번도 못 가 본 장소도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가 전부일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은광고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했다.

―동하 형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이 적격이라고 하셨죠. 의신이 형도 쓸 수 있는 능력이지만, 이능파를 아끼기 위해 가능하면 동하 형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셨고요.

―응, 그래서 천동하 선배님이 그날 은광고에 남도록 수를 쓰고 싶어.

―하지만 동하 형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에 엮여 있죠. 무시하고 은광고에 가는 건 가능하겠지만, 거절하면 좀 곤란해지겠죠.

천동하는 지방 출장이 예정되어 있다.

천씨 가문 사생아의 핏줄을 확인하는 과정이니, 소홀히 하기 어렵다.

내가 수를 생각해 내기 전에 은호가 먼저 말했다.

―동하 형의 입지가 흔들리면 앞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질 거예요. 여기에서는 제가 나설게요.

*    *    *

학교 밖, 제주도.

TC 그룹의 에어 호텔 ‘스노우 앤 에어’의 제주도 지점, 최상층.

제주도에는 눈이 잘 오지 않지만, 스노우 앤 에어의 최상층에서는 겨울 시즌에 인공 눈을 뿌렸다.

그래서 스노우 앤 에어는 층수가 올라갈수록 호텔에서 묵는 비용도 크게 치솟았다.

하지만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에 최상층 전체를 천씨 가문에서 빌렸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상대가 도망가지 못할 만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이쯤이면 되겠지.’

스노우 앤 에어 이사진 중 한 명이 눈 오는 창밖을 보며 되뇌었다.

그는 윗선으로부터 크리스마스이브에 천동하를 제주도에 붙잡아 두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붙잡을 구실도 윗선에서 마련해 주었다.

그의 옆에 앉은, 중학생이 그 구실이었다.

불안한 얼굴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생김새는 어딘가 천동하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어디에서 저렇게 닮은 애를 구해 온 건지.’

이능의 흔적이 전혀 없는 걸 보아 스킬을 쓴 건 아니다.

어쩌면 솜씨 좋은 의사를 찾아 성형수술을 시켰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아이가 숨겨진 사생아라고 우기면서 천동하와 이 아이에게 여러 차례 검사를 시키고, 이 장소에 붙잡아 두면 그만이었다.

마침 천은하 같은 사례가 있었기에 그의 억지가 아주 잘 통했다.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현재 시각은 은광고의 크리스마스 자선 이벤트가 시작한 지 20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은광고의 일반인 입장 시각 때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도록 시간을 조정했는데, 그의 계획대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이윽고 중앙 홀의 문이 열리고, 그가 기다리던 이가 등장했다.

위이잉.

자동문이 옆으로 크게 열리고, 단정한 차림의 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학생의 얼굴을 본 순간 사내가 경악했다.

“그쪽은 작고한 천 사장님의 친아들이 직접 올 것을 요청했죠.”

분명 저기에 있는 상대는 그 천 사장의 친아들이었다.

하지만 천동하는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 왔어요. 동하 형의 동생, 천은하입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0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