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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14화 (610/925)

83. 학교 밖 (8)

“…….”

까마귀 인형 탈 밑에서 등장한 나를 보고 ‘계’새끼가 멍청한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숨을 들이켠 후 굳은 꼴에서 실망과 당황, 수치심 등등이 느껴졌다.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하는 걸 보니 실망감이 더욱 커졌다.

눈에 띄는 에너미는 내가 처리했으나 지금은 이계 공략 중인데, 수비대 지휘를 맡고 있는 놈이 저렇게 방심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저놈보다 방금 위기에 처했던 김현구와 박승현 쪽이 침착해 보였다.

“어, 무명의 초신성이다.”

“의신이가 저격한 거였구나. 덕분에 살았어!”

박승현이 안심하여 말하는 걸 보니 기분이 매우 나아졌다.

연신 감사 인사를 하던 박승현은 뒤늦게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궁금해진 것 같았다.

“거주 구역에 1학년 0반 애들이 한 명도 없어서 의신이도 다른 구역에 있는 줄 알았는데!”

박승현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까마귀 인형 탈 아이템 카드에 머물렀다.

내가 굳이 모습을 감추고 온 게 신경 쓰이나 보다.

이 상황에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에서 성시완을 보고 갈 생각이었기에 밝힐 수 있는 건 말하기로 했다.

“1학년 구역에서 출발해서 중앙 구역을 거쳐 여기로 왔어. 이동 루트에 에너미가 있어서 모습을 감추고 와야 해서 이 방어구를 입은 거야.”

“아, 그랬구나…… 중앙 구역에 합류하는 건 어렵겠지?”

“여럿이서 이동하면 은밀 행동이 어려워지니까 교전해야 할 수도 있어.”

내 말에 박승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가 등장한 걸 보고 나 이외에도 지원군이 있을 가능성, 중앙 구역으로 이동해 합류할 가능성 등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앙 구역에서 여기로 온 건 나 혼자였고, 중앙 구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박승현은 착잡한 표정으로 에너미에 의해 구겨진 진지 구축용 이계 금속을 바라보다가 나를 봤다.

“위험한 상황인데 의신이가 안 다치고 무사히 와서 다행이다. 그런데…….”

박승현은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박승현은 만우절에 내가 아주 수상한 시점에 나타나서 구해 준 걸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인물이다.

나는 박승현의 눈앞에서 도원우의 광림, 철쇄연쇄(鐵鎖連鎖)를 사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부(富)와 생명의 무게까지 선보였다.

박승현은 내가 쓴 이능과 아이템에 관해 깊게 캐묻지 않았고, 어떻게 내가 그가 위기에 처한 걸 알고 구해 줬는지에 관해서도 질문하지 않았다.

그날 박승현이 내게 물은 건 디바이스 코드뿐이었다.

지금도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궁금할 텐데, 박승현은 말꼬리를 흐리기만 할 뿐 질문하지 않았다.

“구해 줘서 고맙다. 그런데 어쩌다 거주 구역으로 온 거냐? 방어구까지 입고 이동한 걸 보니 에너미가 있는 줄은 안 것 같은데.”

김현구가 감사 인사 겸 질문을 던졌다.

김현구는 생각이 많은 박승현과 달리 시원시원하게 궁금해하는 걸 질문했다.

물론 질문한다고 해서 모든 걸 말할 수는 없었다.

“할 일이 있어서.”

“……수상하네. 그래도 같이 싸우니까 든든하다. 이계 공략 끝날 때까지 같이 수비대나 하자.”

김현구와는 박승현의 중재로 몇 번 말을 튼 사이다.

툭툭 내뱉는 질문과 대놓고 수상한 놈 취급 하긴 했지만, 답변을 대충 얼버무려도 굳이 캐묻지 않고 넘어갈 만큼은 친해졌다.

“중앙 구역 상황은 어떠냐? 전 학생회장이 방송하는 걸 듣긴 했는데.”

“전반적인 사항은 도원우 선배님이 말씀하신 대로야. 사건이 발생하긴 했는데, 그건 이계 공략이 끝나고 성시완 선배님이 합류하면 말할게.”

내 말이 씨가 된 것처럼 이계의 틈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계 공략 완료의 조짐이었다.

공격대가 보스 룸에 도달해 보스 에너미를 토벌하기 직전에 이르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내부 상황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아마 성시완의 지휘로 무사히 이계 공략이 종료되는 듯했다.

‘예상대로 저 이계는 지익회 전멸의 원인이 아니구나.’

그때, 줄곧 눈치껏 빠져 있던 ‘계’새끼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학교 밖은 어떻지? 외부에서 지원이 올 가능성은 없나?”

계이담이 느닷없이 학교 밖에 관해 물었다.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긴 한데, 이계 공략이 완료되는 시점에 갑자기 질문을 던지는 건 이상하긴 했다.

김현구와 박승현은 일단 선배가 말을 시작했으니 조용히 듣긴 했는데, 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중앙 구역에서 외부와 통신하는 데에 성공했을 가능성도 있나? 모르겠다.”

“도원우 선배님 방송에선 그런 말이 아직 안 나왔는데…….”

갑자기 계이담이 학교 밖에 관해 묻는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계이담도 지익회 전멸의 원인이 지금 발생한 이계 탓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외부의 지원을 기대하려는 것이다.

‘플마고를 제대로 플레이했다면 학교 밖이 어떤지 알고 있을 텐데.’

그 머릿속을 들여다봤을 때 했던 꼴을 보면 알고 있을 리가 없긴 했다.

저런 한심한 놈을 적합체 후보로 데리고 와야 했던 초상우주의 고충이 다시금 느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짧게 되물었다.

“……학교 밖?”

내 짧은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진짜로 모르고 있나 보다.

그것도 모르냐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는 박승현과 김현구가 있었다.

내가 ‘계’새끼한테 대련을 신청해 양호실에 입원시킬 정도로 줘팼다는 건 전교생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괜히 흉한 꼴을 대대적으로 알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저놈이 알아도 할 수 있는 건 없지.’

저놈이 어찌할 수 없는 건 신경 끄고 잘 싸우기나 했으면 좋겠다.

나는 ‘계’새끼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기로 했다.

*    *    *

중앙 구역, 은휘관.

현재 은광고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인 이곳은 폐쇄된 상태였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황명호 이사장이 학교를 비울 거라는 예고가 있었고 그에 맞춰 은휘관은 문을 닫았다.

학생회 측에서는 대피 장소 후보로 은휘관을 꼽았고 폐쇄된 은휘관에는 에너미가 들어갈 수 없었지만 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휘관 출입을 위해선 이사장의 허락이 필요했으나 지금은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학생회는 은휘관을 포기했다.

그러나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은휘관 안에는 현재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천동하였다.

‘……여기도, 저기도 전부 교전 중이야! 에너미가 이렇게나!’

천리안으로 학생회관과 지익회관 주변을 보던 천동하가 속으로 탄식했다.

에너미와 싸우는 이들 중, 중상을 입은 자는 없었다.

하지만 점차 자잘한 부상을 입은 학생들이 늘어났다.

천동하는 몇 번이나 은휘관을 뛰쳐나가 함께 싸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천동하의 이성이 매번 그를 이 자리에 붙잡아 뒀다.

‘은하와 의신이를 믿자. 내가 여기에서 할 일을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

강력한 전력인 천동하를 굳이 이 안전한 은휘관에 둔 건 그의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 때문이었다.

그 광림은 은광고 내에서 현재 가장 넓은 시야로 적의 동태와 적이 숨기고자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드문 능력이었다.

‘천리안 스킬로는 꿰뚫어 볼 수 없다고 했지.’

적의 동태는 사전에 예측하고, 움직임에 따라 대응한다고 쳐도 적이 숨기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은광고에 침입한 적들은 신화 속의 호족도 속이고 움직일 심산인 듯했다.

은호는 천동하에게 은휘관에 남아 줄 것을 청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하 형은 광림으로 적호 님께서 사용하셨던 적연의 존재를 알아차렸다고 하셨죠.

천동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족들에 의해 천은하의 몸이 은휘관으로 옮겨졌을 때, 천동하는 광림으로 붉은 안개 덩어리를 보았다.

그 안개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지가 어렵다는 그 적연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데에 성공했다.

천동하는 그 붉은 안개 덩어리가 황명 연구소를 나가는 모습부터 은광고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전부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겠네요. 적은 높은 수준의 은신 능력을 사용할 테지만, 그래 봐야 적호 님의 적연에 미치지 못할 테니까요. 적연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동하 형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적은 없을 거예요.

기뻐하며 말하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차마 천동하는 거절의 말을 뱉을 수 없었다.

천동하를 이 자리에 보내는 대신 은호가 그 자리에 대리 출석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위험이 닥칠 학교에서 싸우지 못할 거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천동하는 동생과 은광고를 위해서 은휘관에 남는 걸 선택했다.

천동하가 초조해하고 있을 때,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진웅팔선을 붙잡았습니다. 이제 광림을 발동하여 학교 전역을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천동하에게 말을 건 상대는 호족 중 하나, 황명호의 직속 비서였다.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의 황명호 직속 비서는 천동하의 호위 겸 연락을 담당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남았다.

파스스…….

진웅팔선을 잡았다는 연락은 전서구 아이템으로 온 건지, 메시지 전달을 마친 전서구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현재 호족은 높은 희귀도의 전서구 아이템을 아낌없이 사용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아이템 카드의 숫자와 그 가격을 생각하면 재벌가의 도련님인 천동하도 놀랄 정도였다.

물론 그 아이템 카드가 아무리 비싸 봐야 학생들의 안전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했지만.

‘드디어 광림으로 학교를 볼 수 있어.’

천동하는 지금까지 체력과 이능파를 아끼기 위해 광림 발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의 광림은 지나치게 범위가 넓어 소모되는 이능파와 체력이 만만치 않았다.

또 한 번에 입수되는 정보가 많아 정보 처리 과정에서 피로도도 컸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의신이 천동하의 광림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허세를 부릴 수도 없었다.

“시작해 주십시오.”

천동하는 비서의 말에 이능파를 개방했다.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으로 학교 전체를 바라보자 머릿속에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천동하는 뇌에 쏟아지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유효한 사항을 파악하며 좌표를 입에 담았다.

우산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2학년 건물의 옥상.

아무것도 없는데 물길이 일어나는 청랑호.

마치 망을 보듯이 같은 자리를 배회하는 중인 에너미.

은신술을 쓴 이능파의 흔적을 쫓아 천동하는 자신의 눈을 사용했다.

단순히 이능파만 찾은 게 아니라, 평소 천동하가 봐 왔던 학교 풍경과 다른 위화감을 찾아 하나하나 지적했다.

천동하가 지정한 좌표로 호족을 보내고, 그 정체를 파악하던 중 천동하의 눈에 매우 이상한 게 들어왔다.

“이건, 대체…….”

담담하게 좌표와 상황을 읊던 천동하의 목소리가 떨렸다.

천동하는 황명호의 직속 비서가 앞에 있다는 것도 잠시 잊고 혼잣말하듯 탄식했다.

“학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천동하는 방금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의심했다.

하지만 천리안 스킬로도, 광림 ‘건곤(乾坤)을 품은 눈’으로도 같은 것이 보였다.

천동하가 본 것은 은광고의 결계였다.

은광고의 결계는 밖에서 밀려오는 성에로 뒤덮여 있었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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