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15화 (611/925)

83. 학교 밖 (9)

플레이어 협회 위성 관리팀 산하 연구소.

첫 경보가 울린 후 약 10분이 지난 시점.

위성 연구실에는 붉은 조명이 켜져 있는 것처럼 온통 경고 메시지가 포함된 홀로그램이 떠올라 있었다.

삐이이! 삐잇! 삐이이이!

끊이지 않고 울리는 알람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

이계가 새로 발생하거나, 기존에 발생한 이계가 공략되지 않아 그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급히 호출받아 사무실에서 연구실로 내려온 이계 공략 지원실, 위성 관리팀장 임지화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임지화가 기억하고 있는 수치상의 변화로 보았을 때, 지금 발생하고 있는 이계의 숫자는 평소의 열 배 이상.

열 배에 달하는 이계가 한반도 전체에서 들끓고 있었다.

임지화가 연구원에게 물었다.

“프로 플레이어 팀에 다 전달했어?”

“대, 대기 중인 팀에게는…….”

“한반도에 체재하는 팀 중에 이계 공략 실적이 좋은 상위 30팀에게는 다 연락을 돌려.”

“네? 오, 오늘 대기 팀이 아닌 곳에도…… 아, 네, 아까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팀 말이죠? 전서구를 보냈는데, 하지만…….”

“답변이 오지 않고, 이계가 아직 줄지 않은 걸 보니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는 거지.”

연구원이 더듬더듬 말을 하자 임지화가 대신 말을 마무리 지었다.

원래 저 연구원은 외부와 연락을 담당하는 직원이 아니었으나 임시로 지시를 받아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상용 전서구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연구원은 경험이 없었다.

‘그래도 비상 상황에서 패닉 상태를 일으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본래 이계가 발생하면 위성에서 자동으로 대기 중인 프로 플레이어 팀을 호출한다.

처음에는 대기 중인 프로 플레이어 팀에 출격 요청을 보내고 대피령을 내리려 했으나 협회 내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다.

비상용 전서구 아이템을 사용해 외부에 소식을 알리긴 했으나, 여전히 협회 내에서는 통신 장애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나마 독자적인 회선으로 위성 정보를 수신하고 있어서 더 심각한 사태에 이르지 않았다.

‘위성 통신 시스템을 월궁계도의 정보 수신이 가능하도록 재구축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협회의 위성 연구실에서는 월궁계도로 읽어 내는 정보와 기존의 위성 정보를 동시에 읽어 내기 위해 이능파를 통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위성 정보 수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정보의 내용 그 자체였다.

“이거 그냥 단순 고장 난 건 아니지?”

“숫자가 이상해, 아까부터! 또 이계가 생겼대!”

“설마 또 이계가 발생한 거야……? 어디에?”

“현재 대기 팀은 전원 출격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협회에서는 통상 발생하는 이계의 두세 배 규모를 공략 가능하도록 프로 플레이어 팀을 대기시킨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대기 전력 자체는 넉넉한 편이었다.

사실상 대기만 하고 노는 팀도 자주 나와 대기 팀 규모를 축소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턱도 없이 모자랐다.

“하필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 수가 적어요. 위성팀은 그나마 많이 출근하긴 했는데, 협회 내에 사람이 없어요!”

“오늘 대기하는 부서가 어디죠? 위성팀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은데요.”

“홍보팀이라고 들었어요…….”

홍보팀이라는 말에 위성 연구실에 긴장감이 서렸다.

연구원들의 머릿속에 홍보 1팀과 홍보 2팀, 두 곳이 떠올랐다.

일 잘하고 유능한 워커홀릭 홍규빈이 이끄는 홍보 1팀.

홍보 1팀보다 실적이 떨어지는 데에 열등감을 느끼는 꼰대 박 팀장이 자리 잡은 홍보 2팀.

이 위기 상황에서 누구와 일하고 싶냐고 물으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후자의 경우 이 위기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게 뻔했다.

잘 해결되면 공은 자기 덕으로, 잘못되면 남 탓을 할 게 뻔했다.

그리고 잘못될 가능성이 더 컸다.

연구원 중 하나가 다급히 물었다.

“1팀이죠?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임지화 팀장님!”

“홍보 2팀이야. 출근할 때 박 팀장이랑 마주쳤거든.”

“아…….”

몇몇 연구원들이 사기를 상실했다.

임지화도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골이 딱딱 아팠다.

괜히 이번 사태를 수습한답시고 위성 시스템을 재점검한다며 박 팀장이 연구실에 비집고 들어올 가능성도 컸다.

툭하면 홍보 1팀과 규정집행부의 일을 캐려던 박 팀장은 최근 위성 연구실에도 얼쩡거리며 임지화에게 말을 붙이기도 했다.

‘여차하면 그 자식은 내가 막아야 해. 위기고 뭐고, 믿을 수 없어.’

임지화는 환몽 경매 때 배후와 협력한 협회 직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숙청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협회 정보를 빼돌리고 위성에 장난질을 쳤는지도.

그 사건을 계기로 임지화의 경계심은 더욱 두터워졌다.

지금 협회 내에서 믿을 만한 건 임지화가 직접 골라낸 연구원들뿐이었다.

그중에선 지금 화면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는 송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송대석은 지금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은광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석하고 있었다.

말을 걸어도 답변이 없고, 알 수 없는 수치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임지화는 송대석을 말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방치했다.

‘은광고의 주변에서 제일 먼저 이상이 발생했다고 했어. 대석이에게는 은광고 쪽 분석을 맡기자.’

송대석은 부자연스럽게 끊긴 민그린과의 통화와 은광고에서 관측되는 이상 현상에 넋을 놓았다.

플레이어SAT-K가 찍은 위성 사진에 나온 은광고를 뒤덮은 구름.

구름 사이로 조금 보이는 은광고.

그 주변에서 관측되는 대류 현상과 공기 지표.

정상 수치에서 허용 오차 범위를 벗어난 각종 관측값.

그리고 동결형 이계의 활성화를 알리는 신호.

월궁계도와 연동해 대기 중의 이능독 농도를 지표화한 프로그램의 출력 값.

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송대석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송대석이 고개를 들었을 땐, 첫 경보가 발생한 지 15분가량이 지나 있었다.

“…….”

“대석아, 뭔가 알아냈나 보구나.”

“……동결형 이계에서는 기화된 이능독이 발생한다고 했죠.”

“그래.”

“월궁계도로 감지하는 이능독의 농도 변화가 관찰된 시간을 기준으로 지표면의 공기질과 기온의 변화를 살펴봤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인데…….”

송대석은 마치 자신이 고찰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줄줄 늘어놨다.

속사포로 중얼거린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송대석의 청자를 배려하지 않는 특유의 말투에 익숙해진 연구원들은 모두 알아들었다.

송대석은 길었지만, 짧은 시간 내로 쏴 댄 설명을 마치고 결론을 말했다.

“동결형 이계를 얼리던 이능독이, 은광고의 결계를 얼리고 있어요.”

송대석이 내린 결론에 임지화가 급히 구름 사이로 찍힌 은광고의 일부를 확대했다.

구름 사이로 조금 보인 은광고의 결계가 불투명해 잘못 찍힌 게 아닌가 싶었는데, 어쩌면 임지화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구름 사이로 보이는 건 새하얀 성에.

얼어붙어 가고 있는 은광고였다.

“이능독이 은광고의 결계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은광고는 기상 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요.”

송대석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입으로는 자신이 고찰한 것을 말해도, 머릿속엔 온통 저 학교에 있을 민그린 생각뿐인 것 같았다.

송대석의 말대로 은광고의 결계는 허락받지 않은 자의 출입은 막지만, 기상 현상은 그렇지 않다.

은광고 안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온다.

결계는 외부의 기상 변화와 온도에 영향을 받는 셈이다.

그렇다면 결계를 뒤덮은 성에가 은광고에 미칠 영향은 뻔했다.

성에가 머금은 냉기는 은광고로 향할 것이다.

“저 짓을 한 자는 은광고를 얼어붙게 할 셈인가……!”

은광고 전체를 감싼 결계가 모두 얼어붙으면, 거대한 얼음 돔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 안에 있는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내부에 있는 이들이 추위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결계가 얼어붙어 외부에서의 출입이 곤란해지는 것도 눈에 보였다.

송대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은광고로 간 프로 플레이어 팀은 몇 팀이죠?”

“…….”

임지화는 송대석의 질문에 차마 솔직히 답변하기 어려웠다.

대기하는 프로 플레이어 팀은 민간인들이 많은 지역에 우선 배정되었다.

그 민간인에는 플레이어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구성원 대부분이 우수한 플레이어인 은광고의 경우, 보통 이계가 발생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대응해 왔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각지에서 이계가 발생한다면 은광고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린다.

송대석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그걸 물어보았다.

임지화는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한 팀도 없어.”

“……!”

송대석은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임지화가 송대석보다 빠르게 움직여 그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 가려고 그래!”

“그야 당연히 학교죠!”

송대석이 임지화를 떨쳐 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임지화는 빈틈이 없었다.

틈을 노려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도, 힘으로 밀치고 나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임지화가 송대석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긴 했으나 협회에서 요직을 맡는 베테랑 플레이어였으니, 아직 경험이 적고 역량도 부족한 송대석이 어찌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선 송대석을 막긴 했지만, 임지화는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석이를 보내 봤자 희생자가 하나 더 늘 뿐이야! 하지만 대석이를 보내지 않았는데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특히 그린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치 상태가 몇 초간 이어졌을 때였다.

“티, 팀장님! 확인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임시로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던 어리바리한 연구원이 말을 걸었다.

임지화는 지금은 뭔가를 확인할 상황이 아니라고 쏘아붙일 뻔했으나, 그 연구원 손에 들린 전서구 아이템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임지화는 전서구의 날개에 새겨진 인장을 보곤 저도 모르게 송대석과 대치 중이라는 걸 잊고 손을 뻗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그 틈을 노려 송대석이 임지화를 제치고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프로 플레이어 팀, 셋이 은광고 주변에 있어!”

임지화의 목소리에 송대석이 우뚝 멈춰 섰다.

‘셋? 이 상황에선 많은 건가. 아니, 고작 셋으로 은광고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 리가!’

송대석은 역시 자기가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린 임지화의 말에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현재 은광고 주변에서 교전을 시작한 팀은 붉은 사자, 영원의 호수 그리고…….”

임지화는 세계 유수의 프로 플레이어 팀 이름을 두 개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대석이 아주 잘 알고 있는 프로 플레이어 팀 이름을 댔다.

“대영웅 무쇠팔 송만석 선배님이 있는 한강 싸이클링 팀까지 셋이야.”

임연화가 보여 준 메시지에는 세 개의 프로 플레이어 팀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송대석을 안심시킨 건 현시대 최강으로 꼽히는 붉은 사자와 영원의 호수를 상징하는 붉고 푸른 팀 로고가 아니었다.

송대석은 자전거 핸들을 굳게 쥔 주먹이 그려진 팀 로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성을 잠식했던 불안이 조금씩 옅어졌다.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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