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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17화 (613/925)

83. 학교 밖 (11)

며칠 전, 황명호 대저택.

축제 중 청호의 흔적이 해외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크리스마스 작전을 정비할 때.

황지호는 청호와 신인은 찾은 지 오래라며 한반도에 남겠다고 재차 선언했다.

“조의신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하셨어요. 신인 님과 청호 님이 무슨 일을 겪은 건지 궁금하지만, 남는 쪽이 그분들을 위한 선택일 거예요.”

은호의 말에 백호군과 적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호랑이들은 사실 청호의 도복 띠가 많이 신경 쓰일 텐데, 전원 망설임 없이 남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체불명의 흔적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황지호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걸 알면 다른 수를 쓰거나 호족 측에서 흑막의 계획을 꿰뚫어 봤다고 의심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 도복 띠 회수를 위해 일단 호족을 파견하기로 했다.

“전용기에 내 대리를 태워 보내겠다. 이 몸이 선물했던 도복 띠를 확인해야 하니 아무나 보낼 수는 없겠군. 청호의 제자를 보낼까.”

“황호 님이 신뢰하는 제자 분은 넷이라고 했죠. 그러면 백호 형님이 권하신 대로 두 분은 저와 함께, 남은 두 분은 청호 님의 도복 띠를 회수하러 가면 되겠군요.”

대화를 나눈 결과 황지호로 가장한 청호의 제자 둘이 전용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청호의 두 제자가 역용술을 번갈아 사용해 가며 황지호인 척할 예정이라 한다.

청호는 역용술에 능해 김신록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청호의 제자들도 태호권만 배운 게 아닌 듯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출국 시간에 맞춰서 황지호의 분신을 숨기고, 출국하는 청호의 제자에게는 황지호의 이능파가 남은 옷, 구두, 액세서리 등을 착용하게 할 계획이다.

그때, 적호가 질문했다.

“가짜 황호를 어디에 둘지 정했습니다만, 진짜 황호는 어디에 배치할 생각입니까?”

적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치러진 모든 회의에 출석했지만, 저런 질문을 던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황지호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이 점은 몇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도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흑막이 황지호를 경계하는 수준을 보았을 때, 너무 이른 시각에 황지호가 한반도에 남은 게 발각되면 그쪽에서 계획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지호를 끝까지 숨길 생각도 없었다.

황지호는 써먹지 않고 숨겨만 두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수다.

방치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은광고 내의 통신이 끊겨 각지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겠지만, 황지호는 예외야. 본신, 분신과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하겠지. 게다가 황지호는 지력을 다루고, 이번 무대는 지력이 가장 충만한 은광고야.’

게다가 흑막은 황지호가 한반도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허를 찌를 수 있다.

황지호는 퍼스트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강력한 수이자 역전의 카드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백호군의 제약이 완전히 풀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 신역의 수인 패널티를 안고 있는 백호군은 웅족만 담당시킬 예정이다.

하여튼 강력한 수인 황지호의 거취를 두고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모든 상황을 종합해 내가 제시한 의견은 이러했다.

“황지호의 분신을 동문, 서문, 남문, 북문에 각각 배치했으면 해. 다른 곳에 더 배치해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각 출입구 앞에 최소 한 명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말을 들은 호랑이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사실상 퍼스트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각 출입구는 격전지라 볼 수 있지만, 그곳에는 이미 그만한 인력을 배치한 상태다.

적호가 먼저 의문을 품고 말했다.

“하지만 각 출입구에는 용족과 붉은 사자, 영원의 호수, 무쇠팔이 배치될 예정 아닙니까?”

인지도 높은 12지 진족 중 하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프로 플레이어 팀 둘, 한국에서 전설을 남긴 대영웅이 그 자리에 올 예정인데, 굳이 황지호까지 배치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은 셈이다.

물론 나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게임 속 전개와 달리 이번 크리스마스에 은광고에는 염준열 선배님, 권제인 선배님의 제자가 된 권레나, 민그린이 있어요. 그 외에도 흑막이 끊어 내지 못한 인연과 학생들이 있죠.”

흑막이 알지 못하게 맺고, 유지시킨 인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다.

염준열이 학생회장이 되어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주도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권레나는 바다의 벽 앞에서 권제인과 합주한 영상, 독고미로 버스킹 등을 통해 그 모습이 널리 퍼졌다.

민그린이 이번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 축제 합동전에서 공개했던 작품을 재공개하는 것도 누구나 다 안다.

즉, 그들과 연관된 용족, 붉은 사자, 영원의 호수, 송만석 등이 크리스마스에 올 가능성이 있다는 걸 흑막도 아는 셈이다.

“흑막은 은광고를 고립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할 거예요. 당연히 저분들이 온다는 가정하에 작전을 짜겠죠. 저들이 힘을 합쳐도 대등하게 싸우거나, 적어도 시간을 끌 수 있을 만한 전력을 데려올 겁니다.”

적호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도 든든한 존재들의 이름 앞에, 흑막도 이를 꿰뚫어 보고 파훼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듯했다.

“학교 안에 침입해서 움직이는 건 긴 꼬리, 웅족, 마족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흑막 측에 붙은 진족으로 알려진 진족이 하나 남아요.”

“돈족……!”

적호가 낸 답에 호랑이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적호가 저강렵의 상보심금파에 꿰뚫려 중상을 입은 걸 다들 알고 있던 탓이다.

“돈족은 키모폴레이아호 사건 이후 잠잠해졌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저강렵이 돈족의 본거지로 돌아왔을 때 숨은 붙어 있었습니다만, 특수한 이능으로 부상을 입은 건지 부상이 잘 낫지 않더군요. 침상에서 헛소리를 해 대고, 몸을 일으키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상태였습니다.”

직접 돈족의 본거지로 잠입해 저강렵의 모습을 봤던 적호가 말했다.

적호는 ‘특수한 이능’, ‘헛소리’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 눈동자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저강렵의 모습을 보고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저강렵이 입었던 부상이 중요한 게 아니니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했다.

“흑막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크리스마스까지 저강렵을 낫게 해서 써먹으려 할 거예요. 지금은 병상에서 일어났겠죠.”

그 말에 적호가 끄덕였다.

적호는 현재 돈족을 담당하고 있지 않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나름 짐작은 하고 있는 듯했다.

적호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지호가 물었다.

“조의신, 너는 돈족이 각 출입구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하나?”

“응. 돈족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출입구 주변의 이계를 공략하고 은광고의 결계를 정상화하려는 플레이어들이 노려질 건 확실해. 만약을 대비해서 네가 그 주변에서 대기했으면 좋겠어.”

돈족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저강렵이 그 자리에 올 거라고 거의 확신했다.

저강렵의 이력을 생각해 보면 돈족 외에도 전력을 끌고 올 구석이 있었으니까.

‘저강렵은 천봉원수이자 정단사자였어. 잘리긴 했지만, 어쨌든 연줄과 인연은 남았을 테니까. 게다가 저강렵의 처세술 실력은 나쁘지 않아. 이 세계에서 최편득이 저강렵의 흉내까지 내면서 따랐던 걸 고려하면 그렇지. 최편득 같은 비열한 옛 부하들을 끌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흑막이 건네는 보상을 미끼로 옛 부하들을 낚아서 데려올 가능성이 있다.

학교 밖의 싸움이 내 생각보다 커질지도 모른다.

내 대답을 들은 황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구 쪽에서는 내가 대기해야겠군. 알았다. 그 밖에 대책은?”

“일단 그날 오실 분들께는 입장 시각 전까지 몸을 숨겨 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쪽에서 움직이기 전에 관객 중에 강력한 플레이어가 있나 없나 체크할 테니까.”

“나도 몸을 숨겨야겠군. 내 은신술은 적호의 적연 수준만큼은 아니지만, 이 몸이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잔챙이로부터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몸을 숨기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올 플레이어들이 몸을 숨기든 말든, 흑막은 온다는 전제하에 준비할 테니까.

그래도 몸을 숨기면 처음에는 기습을 가할 수 있을 거다.

“어차피 중간에 증원이 올 테니 난전이 되겠지만, 적어도 처음 공격할 때에는 기습을 할 수 있겠지.”

“그 말만 보면 별 대책이 없는 것 같은데, 네 얼굴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군.”

꽤 무거운 이야기를 했는데, 황지호는 가볍게 말했다.

황지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호랑이들은 오히려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수도 아닌데,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말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수를 하나 생각해 뒀어.”

“어떤 수지?”

“여태까지 만난 이들 중에 저강렵과 싸워 줄 진족이 있는 것 같아. 잘하면 황지호까지 나서지 않고 해결될 수도 있어.”

그 진족은 저강렵과 손을 잡고 호족을 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진족은 자신의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내며 호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진족은 호족과 나에게 빚이 있어 부탁 하나는 들어줄 법했다.

‘사항이 사항이다 보니 아무리 빚이 있다고 한들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그 진족의 행보를 고려하면…….’

추측의 영역이고 근거가 빈약했지만, 일단 이 수를 둬 보기로 했다.

“내 생각대로 잘 풀리면, 네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거야.”

*    *    *

은광고, 동문 주변.

동결형 이계가 발생하고, 청룡과 저강렵이 대치한 시점.

지상에는 돈족이, 하늘에는 천봉원수의 휘하에 있던 천계의 수군들이 가득했다.

천계의 수군들이라고 해도 저강렵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만큼 타락한 존재들이었기에 1대1로 맞붙는다면 청룡의 불벼락을 견딜 수 없었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가세하겠습니다, 청룡 님!”

“이제 몸을 숨길 이유가 없군요.”

“저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우리 준열이가 있는 은광고를 노린단 말입니까?”

수군의 등장에 모습을 숨겼던 용족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스물이 넘어가지 않았다.

원래 이 시대까지 이름을 남긴 용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서양의 신화를 타고난 용은 무리 짓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용족의 구성원 다수는 동양계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이었다.

용족 한 명, 한 명의 힘을 고려하면 스물이 적은 병력은 아니었으나 팔백에 이르는 천계의 수군 앞에선 한없이 작아 보였다.

황유호의 모습을 한 황호는 그 광경을 올려다보며 개입할 타이밍을 쟀다.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조의신의 수는 가능성은 있었으나, 확실한 건 아니었다.

만약 조의신이 제안하지 않았다면 황호는 그 수를 믿지 않았을 거다.

황호는 여전히 다른 진족을 믿지 못했다.

한편, 저강렵은 적은 수의 용족을 보자 기세를 붙이고 웃었다.

“크흠, 이게 누구야. 용족의 팔불출들 아니신가! 그렇게 애새끼가 걱정되면 집에서 끼고 있어야지!”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저강렵의 도발과 함께 이능파가 실린 팔백 명의 비웃음 소리가 쩌렁쩌렁 하늘을 울렸다.

유치한 내용이었으나 수백 명이 동시에 웃는 소리에 사기가 꺾일 지경이었다.

용족은 소수 정예로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용족 대다수가 비행술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폭격을 당하는 꼴을 면했다는 점이었다.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저강렵이 외쳤다.

“지금부터 용 사냥을 시작한다! 가장 많은 수급을 딴 용사에게 청룡의 비늘로 만든 갑옷을 하사하마!”

와아아아아아!

전 천봉원수, 저강렵이 날렵하게 창을 놀려 그 끝으로 청룡을 가리켰다.

수백의 군대가 용들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용족들은 불을 뿜을 준비를 하며 응전하려 했다.

그 순간.

퍼퍼퍼펑! 퍼펑!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팔백 수군의 군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곳곳에서 정체불명의 진족이 등장했다.

모두 같은 모습을 한 이가 봉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이건…….”

그 모습을 본 저강렵이 경악했다.

“……손 형!”

수군 측에 나타난 건 수많은 분신이었다.

머리에 얹은 긴고아.

긴고아와 같은 금빛의 안대를 착용한 미후왕(美猴王)이었다.

많은 분신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인간 세계에서 날뛰는 모습에 천지를 분간하는 법을 잊은 줄 알았더만, 내 얼굴은 잊지 않았구나.”

원족의 수장 제천대성이 자신을 향한 수많은 눈들을 향해 외쳤다.

“우주최강 제천대성 등장!”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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