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42화 (638/925)

85. 기청제 (6)

플레이어 협회 한국 지부.

언론 홍보실 홍보 2팀 사무실.

박 팀장의 지시로 홍보 2팀의 팀원들은 협회 건물을 순찰 중이었다.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운 사무실 안에는 인간의 기척이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자가 그 안에 있었다.

박 팀장의 여자 친구 역을 연기 중인 나비령이었다.

아무리 비상시고 팀장의 여친이라 해도 외부인을 사무실 안으로 들이는 건 말도 안 됐지만, 박 팀장은 원래 말도 안 되는 짓을 잘했다.

박 팀장은 자신의 알량한 권력을 확인하고 제 것을 뽐내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 표면상 아름답고 상냥한 여자 친구인 나비령을 이 자리에 데려와 과시하고, 나비령에게는 박 팀장의 권력을 증명했다.

‘부하 중에서는 똑똑해 보이는 인간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인간 부하 복은 있었나 봐.’

박 팀장과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나비령을 경계하는 팀원들이 있었다.

홍보 2팀의 사무실은 언뜻 보기엔 일반 회사와 별다를 바 없었으나 일반인에게는 공개가 안 된 정보와 자료를 취급했다.

그런 곳에 외부인을 막 들이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었기에 정신이 똑바로 박힌 팀원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나비령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다과와 차를 가져오라며 소리치는 박 팀장 뒤에서 나비령은 곤란한 척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비령은 박 팀장이 시선을 돌릴 때마다 제멋대로인 연인에게 휘둘리는 피해자가 지을 법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무실을 안내받고, 자리에 앉아 차를 대접받을 때에도 나비령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시늉을 냈다.

‘경계심은 옅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내게 주의를 기울였어. 그 인간의 지시로 사무실을 나설 때에도 조용히 기록기기를 세팅하고 갔지.’

나비령이 모시는 그자의 ‘이계 부르기’로 협회 내에 낮은 희귀도의 이계를 발생시켰을 때, 박 팀장의 지시로 팀원들은 공략과 협회 순찰에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박 팀장과 나비령은 사무실에 남았다.

박 팀장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일하는 것 자체를 짜증스럽게 여겼으므로 필요 이상의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 팀장은 처음엔 사무실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성실하게 일했다면 오늘 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사실 박 팀장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일하게 된 건 전부 나비령이 펼친 책략의 결과물이었다.

나비령은 박 팀장이 한 말을 통해 협회 내의 당번 순서를 파악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그가 당번을 하도록 유도했다.

평소 고분고분한 나비령이 기념일 핑계를 대고 박 팀장과 함께 있고 싶다며 애달픈 얼굴을 하면 그는 타 부서와 협의해 당번의 순서를 바꿨다.

기존의 스케줄에 맞춰 휴식을 준비하던 부하들의 원성이 잦았지만, 자기중심적인 박 팀장은 타인의 입장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이브에 박 팀장을 협회에 남겨 두자 일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나비령은 박 팀장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과 도시락을 주기 위해 협회 근처에 왔다가 난리 통에 휘말린 것처럼 가장하였다.

그러자 박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비령을 협회 안으로 데려왔다.

이계가 발생한 후, 팀원들이 자리를 비우자 나비령은 평소 박 팀장이 자주 언급하던 위성 연구소가 걱정된다고 운을 뗐다.

나비령이 ‘아 참, 당신은 그곳에 개입할 권한이 없었지? 괜한 이야기를 했네.’라는 말을 아주 다정하게 말하자, 박 팀장은 곧바로 뛰쳐나갔다.

그때, 나비령은 박 팀장에게 아주 귀한 나비를 한 마리 붙여서 보냈다.

‘홍보 1팀은 빠르게 포기하고 처음부터 2팀을 노렸으면 쉬웠을 것을.’

나비령은 협회에 파고들어 혼란을 일으키고, 정보를 캐낼 대상으로 홍보팀을 노렸다.

홍보팀에 들어오는 정보량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기왕이면 규정 집행부 소속 팀원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규정 집행부가 은폐하거나 확산시키려는 정보를 언론 홍보실에서 다뤄야 하므로, 협회의 규정 집행부 직원은 언론 홍보실에 소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중요할 때에 일을 성사시켰으니까 괜찮아.’

어쨌든 나비령은 협회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박 팀장의 과시욕과 나비령을 향한 애정을 이용해 완성한 잠입 작전이었다.

나비령은 팀원들이 설치하고 간 기록기기의 위치를 가늠하며 생각했다.

기록기기가 자신을 촬영 중이라는 걸 알았기에 한 번도 렌즈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고, 홀로 남아 겁에 질린 일반인을 가장했다.

물론, 계속 얌전히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파사삭!

촬영 범위의 사각에서 움직이던 작은 나비들이 기록기기의 배터리를 향해 달라붙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이능파로 만들어진 나비가 산산이 흩어지자, 이능파의 영향을 받은 기록기기가 일제히 꺼졌다.

협회 내에서는 현재 이계가 발생 중이고, 나비령이 꺼트린 기록기기는 이 사무실 밖에도 있으니 나중에 조사해 봤자 이계가 발산하는 이능파 영향권에 들어가 고장을 일으켰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기록기기가 촬영을 멈추자 나비령은 언제 떨었냐는 듯이 일어나서 사뿐하게 걸었다.

나비령은 박 팀장의 자리에 앉아 데이터 칩을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박 팀장이 사용하는 암호나 보안 카드는 전부 확보한 상태라 어렵지 않게 열람할 수 있었다.

‘이건 이미 알고 있고…… 이건 그 인간이 직접 말한 정보고…….’

박 팀장은 자신이 고급 정보를 다루는 높은 인간임을 알리고자 나비령에게 그 사실을 몇 번이나 말했다.

나비령이 부추길 필요도 없이, 하는 말이 어려워 잘 이해하지 못한 척만 해도 박 팀장은 술술 중요한 정보를 불곤 했다.

나비령은 허탕을 칠 가능성도 생각했는데, 의외의 정보를 접했다.

‘연구소에 관해선 알아낸 게 없다더니. 후후후, 전부 알아내면 말하려고 했었구나.’

박 팀장이 향한 위성 연구소에 관한 정보였다.

결정적인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한 것 같았으나, 단서가 넘쳤다.

예정에 없던 객원 연구원 채용.

위성과 관련하여 협력 중인 진족.

임지화의 주도로 진행 중인 비밀 프로젝트의 존재.

박 팀장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몰랐으나 집요한 관찰과 감시를 통해 그들이 연구소를 드나드는 걸 알아낸 것 같았다.

‘그러면 연구소 쪽을 볼까?’

데이터 칩을 제자리에 둔 나비령이 눈을 감고 자신의 나비 중 하나를 골랐다.

박 팀장에게 붙여 둔 나비였다.

그 나비는 아주 귀하고 특별했다.

무려 나비령이 모시는 그자가 직접 손가락으로 진을 새긴 나비였으니까.

나비령이 총애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나비 덕이었다.

그녀의 나비는 그자의 진(陣)을 새길 수 있었고, 눈에 띄지 않게 이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높은 희귀도의 이계를 부르기 위해서는 직접 이계를 부를 위치에 진을 새길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토족의 월궁계도에 의해 간파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나비령의 광림으로 자아낸 결과물, 만물의 경계를 오가는 나비를 이용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진을 새길 만한 나비를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았으나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월궁계도는 그 나비를 관측하지 못했다.

‘어머? 송만석이랑 많이 닮았네?’

그때, 박 팀장에게 붙여 둔 나비에 정신을 집중하던 나비령의 시야에 송대석이 보였다.

척 봐도 송만석과 몹시 닮은 외모의 어린 학생이 높은 보안 레벨의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나비령은 박 팀장과 임지화가 실랑이를 벌이는 틈을 타 나비를 송대석에게 붙였다.

송대석이 비밀 통로를 넘어서 옥토연에게 도달했을 때, 나비령은 화색을 띠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말을 듣고 그녀의 표정이 흐려졌다.

―너, 여기에 뭘 달고 온 거야!

―이게 뭐야? 나비······?

―나비? 저게 나비 모양으로 보여?

나비의 존재가 발각되었다.

거기에 더해 옥토연은 나비가 품은 진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월궁계도로는 진을 새긴 나비를 감지하지 못했는데, 저 달토끼가 직접 눈으로 보면 다른가 봐.’

나비령은 공을 세웠으나 실책을 남기고 말았다.

그녀는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협회가 감추고 있던 비장의 수에 흠집을 내 볼까.’

파앗! 파직, 쩌저적…….

나비령이 이능파를 흘리자 나비가 품은 진이 활성화되었다.

어린 학생과 겁에 질린 토족이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이계가 열리기 시작했다.

저 둘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해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망가뜨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그러나 이를 방해하는 자가 등장했다.

전부 가면을 쓰고, 낯선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나비령은 그중 한 명을 바로 알아보았다.

나비령의 전 남자 친구, 윤 대리였다.

세 명뿐이었으나 그들은 동요하지 않고 이계를 공략해 갔다.

‘여기에서 대기하던 중이었구나.’

나비령은 저 유능한 인간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를 이중, 삼중으로 준비했다.

나비령은 품에서 얇은 액세서리 케이스를 꺼냈다.

케이스를 열자 오늘 박 팀장이 착용한 커프스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제작한 팔찌가 나왔다.

팔찌를 착용한 나비령이 자신의 연인에게 작별 인사를 던졌다.

“그러면 안녕히.”

그 순간 나비령의 팔찌가 반짝하고 빛났다.

동시에 박 팀장의 이성과 본능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능파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콰쾅! 콰직, 콰지지직!

나비령이 공을 들여 박 팀장의 이능파를 자극하고, 불려 둔 보람이 있었는지 그는 폭주하기 무섭게 강력한 출력을 냈다.

박 팀장이 다른 협회 직원에 비해 무능하고 약하다고 하나, 높디 높은 협회 공채의 벽을 넘은 인재 중 하나다.

우수한 플레이어가 상대해도 나비령이 폭주시킨 힘을 쉽게 막긴 어려울 것이다.

그 증거로 박 팀장과 대치하고 있던 임지화가 기습에 당해 쓰러졌다.

‘내가 할 일은 모두 마쳤어.’

나비령은 그자가 그녀에게 지시한 대로 협회에 이계를 부르고, 소란을 일으키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성공했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나비령의 능력을 의심받을 일은 없으리라.

협회가 폭주한 박 팀장을 무사히 처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어디까지 예상했을까? 이건 막을 수 있을까?’

나비령은 즐거운 마음으로 까마귀 가면을 생각하며 협회를 뒤로했다.

*    *    *

“끄으으…… 네놈들에게…… 내가 질 리가…….”

박 팀장은 이능파 폭주를 일으켰는지, 중얼거리는 말에도 이능파가 서려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귀가 손상될 것 같아 홍규빈은 귀를 막아야 했다.

고작 혼잣말에 귀가 다칠 정도라면, 마음먹고 박 팀장이 이능을 사용하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홍규빈이 이능파를 둘러 귀를 보호하는 사이, 땅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홍규빈이 긴장해서 떨리는 건지, 땅이 울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두두두…….

홍규빈은 정신을 다잡았다.

‘아니, 아직 그 아이가 둔 수가 하나 더 남아 있어!’

조의신은 이상할 정도로 협회에 주의를 기울였다.

홍규빈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수상하게 웃으며 이중, 삼중으로 준비했다.

두두두두두두……!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사이 박 팀장은 홍규빈을 발견했다.

쓰러져 있는 임지화보다는, 멀쩡하게 서서 박 팀장이 그토록 원하던 규정 집행부 복장 차림을 한 홍규빈에게 더 격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박 팀장이 홍규빈을 보자 고함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아아아아아!”

두두두두두두!

그 순간, 파손된 벽 틈 사이로 협회의 건물을 진동시키고, 소리를 울리던 실체가 나타났다.

수십 마리의 회색 덩어리의 정체는 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홍규빈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의신이 말대로, 이 수마저 필요한 순간이 오다니.’

홍규빈에게 가호를 내린 진족, 서족의 수장 서돌의 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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