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검은 눈 (7)
중앙 구역 학생회관, 주수혁과 유상훈이 조의신의 부재를 알아차린 직후.
“의신이가 학생회관에 없어. 혹시나 해서 1, 2, 3번 출구를 다 살펴봤는데도 안 보여.”
“아, 수상하게 굴더니 결국 가 버렸네.”
주수혁의 천리안으로 꼼꼼하게 주변을 둘러봐도 조의신은 보이지 않았다.
조의신이 학생회관에서 나간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0반 애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니까 물어보자.”
주수혁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1학년 0반 아이들에게 조의신의 행방을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맹효돈이 학생회관 로비 한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먹을 것을 가지러 간 사이 자리를 맡고 있는 맹효돈은 멍하니 지금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수상해…….’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학교, 폭주하는 방윤섭 그리고 수상한 부반장…….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기에 맹효돈의 머리로 상황을 정리하고 파악하기에는 몹시 벅차 과부하가 일어난 상태였다.
빙빙 돌아가는 맹효돈의 머릿속에선 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능을 쓰고 나면 사월세음은 전투에 참가하기 어려울 테니, 이후의 전투는 둘한테 맡길게.
―······너는?
―물론 나도 같이 싸울 거야. 중앙 구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 이후에 나는 거주 구역 쪽으로 가야 해.
처음 1학년 0반 교실에서 이상 사태를 접했을 때.
조의신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하고 생각한 것처럼 대응했다.
조의신은 언제나 준비된 것처럼 보였고 생각이 많았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몇 배는 수상해 보였다.
조의신이 중앙 구역에 도착한 이후에는 따로 움직이겠다고 선언했을 때, 맹효돈은 불쑥 제안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냐?
맹효돈의 말에 조의신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조의신은 왜 거절하는지 자세한 설명은 안 했지만, 맹효돈은 감으로 알아챘다.
조의신의 수상한 계획에 맹효돈은 방해가 될 것이다.
조의신이 강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의신은 입학 전부터 이명을 받은 플레이어이자 은광고 1학년 학생 중 주수혁, 안다인의 뒤를 잇는 수재라는 걸 플레이어계 사람들은 거의 다 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는 걸 맹효돈은 잘 알고 있었다.
파이트 클럽에서 까마귀 가면을 쓰고 맹효돈을 구한 게 조의신이었으니까.
맹효돈이 그때보다 성장하긴 했으나 지금 당장 그 지옥으로 가서 사람 하나를 구해 오라고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다.
“효돈아, 혹시 의신이 못 봤어?”
“……!”
무력감에 멍하니 있던 맹효돈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주수혁과 유상훈이 보였다.
“부반장 그 새끼 학생회관에 없냐?”
“응. 어디에 간 거 같아.”
“……그래.”
조의신은 어수선한 틈을 타 거주 구역으로 향한 듯했다.
맹효돈이 뭐라고 답하기 전에 유상훈이 말했다.
“안 놀라는 거 보니 조의신이 자리 비울 거 알고 있었나 보네.”
“그런 것 같다. 효돈아, 의신이가 어디 간지 알아? 혹시 의신이 혼자 간 거야?”
유상훈에 이어 주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은 맹효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주수혁과 유상훈 둘 다 워낙 눈치가 빠른 탓도 있었으나 맹효돈의 얼굴에는 감정이 훤히 드러나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맹효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말을 돌렸다.
“……우리 반 애들하고 그 새끼는 따로 움직인다.”
“얘기를 듣긴 했나 보네. 너네 반 애들한테 말도 없이 갈 놈이 아니지.”
“그래, 갑자기 의신이가 없어지면 0반 애들이 찾으러 돌아다닐 거야. 의신이는 사전에 말하고 혼자 밖으로 나간 거구나.”
맹효돈이 별말을 안 해도 저 둘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주수혁과 유상훈은 조의신을 잘 알았고, 맹효돈에 관해서도 잘 알았기에 빈틈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주수혁과 유상훈이 조의신을 찾으러 갈지도 모른다.
맹효돈도 걱정되긴 했지만, 같이 가도 되겠냐는 말에 고개를 젓는 조의신이 자꾸 떠올랐다.
돌머리를 굴리는 데에 한계가 온 건지 맹효돈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달구어졌다.
맹효돈은 쥐어짜듯이 겨우 한마디 했다.
“……방해가 될 수도 있어.”
맹효돈은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조의신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못한 이유만을 댔다.
괜히 잘못 입을 열었다가는 조의신이 은광고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안 것처럼 행동했던 것, 거주 구역으로 향한 것 등등을 다 불어 버릴 것 같았다.
그것도 결국 조의신의 수상한 짓을 방해하는 꼴이니 맹효돈은 최선을 다해 말을 골랐다.
땀을 뻘뻘 흘리는 맹효돈의 모습을 보던 유상훈이 말했다.
“조의신 아까 이능 총 들고 있는 거 봤다. 수상했다.”
그건 맹효돈도 수상하다고 느꼈다.
만물 사용 스킬을 가진 조의신이니, 무슨 무기를 들더라도 상관없으나 비상사태에 평소 잘 쓰지 않던 무기를 드는 건 어색했다.
주수혁도 그 점을 수상하게 여긴 듯 바로 말을 덧붙였다.
“의신이는 평소에 약점을 노려서 빠르게 끝내기 위해 마법을 써. 하지만 이능 총을 들고 있었지. 이능파를 아끼기 위해서였을 거야. 이능파가 다 떨어지면 위험하지 않을까?”
“어…… 그건 그런데…….”
“나한테는 천리안이 있어. 방해가 되지 않게 의신이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위험해지면 합류하는 건 어떨까?”
주수혁의 제안에 맹효돈이 흔들렸다.
그렇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면 천리안을 계속 발동해야 하는 주수혁의 부담이 크지 않나?
맹효돈이 얼떨떨해하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두 사람은 갈 준비를 마쳤다.
맹효돈이 가지 않아도 저 둘은 그대로 조의신을 찾으러 갈 것 같았다.
“천리안은 멀리 볼 수 있지만, 한 번에 관찰할 수 있는 범위는 넓지 않아. 이능파 소모도 심하고. 그러니까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야 할 텐데…… 새론이한테 부탁해 보자.”
“걔 학생회실에 있잖아. 도원우가 보다가 말릴 거 같은데.”
유상훈이 두 살 연상인 도원우의 경칭을 생략하고 툭 말했다.
추하게 들이대는 도원우 탓에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기에 유상훈은 도원우를 연장자, 선배 등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유상훈이 도원우를 막 취급하는 건 둘째 치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동급생 한 명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해서 개별 행동을 하는 걸 도원우가 용납할 리가 없었다.
유상훈이 도원우를 한 방 때리고 도망치는 계획을 떠올리고 있을 때, 주수혁이 말했다.
“그 방법은 생각해 놨어.”
“뭔데?”
“지금 학생회관 쪽 전력에는 여유가 있잖아. 그러니 원우 형은 다른 곳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려 할 거야. 거기에 지원해 보자.”
학생회관 쪽에 모든 사람이 피난한 건 아니다.
거주 구역의 지익회처럼 지익회관을 거점으로 삼은 이들도 있고, 도서부처럼 도서관에 숨은 이들도 있었다.
도원우는 첫 방송에서 본인이 위치한 구역에서 하루 이상 농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전투와 은밀 행동에 자신이 없는 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행동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의 안부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익회관에서는 신문부 부장이 이능을 써서 연락을 취했지만, 메시지를 보낼 아이템이나 이능이 없어서 소식을 알 수 없는 분들이 많아. 그중에는 선도부분들이 많지.”
선도부에서는 산타 분장을 하고 각지에 선물을 배부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주수혁은 중앙 구역 가까이에 있었기에 합류가 가능했지만 아닌 이들도 있었다.
특히 중앙 구역에서 먼 연구동 구역 쪽으로 간 선도부원들은 대부분 합류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수혁은 그들이 무사할 거라고 확신했다.
이벤트를 기획한 선도부장 천동하가 선물 배부를 할 루트를 지정하며 지도를 보여 줬는데, 그 지도에는 연구동 구역에서 벌어지는 실험 실패, 폭주 등을 고려한 비상 대피 시설이 표시되어 있었다.
아마 선도부원들은 그쪽으로 대피했을 것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도원우는 선도부원, 그중에서도 천리안을 가지고 웬만한 이계는 홀로 토벌할 수 있는 플레이어 주수혁에게 교내 정찰, 연락책 역할을 맡게 할 가능성이 컸다.
그 내용을 들은 유상훈이 한마디 했다.
“밖에 나가고 싶었나 보네.”
주수혁은 살짝 찔렸다.
곽경구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조의신의 빵셔틀은 너를 보고 흥분해 힘을 폭주시켰다. 마족의 수작인지 뭔지 몰라도 일단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학생회관에 있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사실 나도 바깥 사정이 궁금했어. 의신이도 걱정되고.”
“그러냐?”
유상훈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학생회관으로 향하려 할 때, 맹효돈이 생각을 정리한 건지 말했다.
“나도 간다.”
학생회실에 간 세 사람은 먼저 문새론에게 조의신의 위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도원우가 허락하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서 우선 조의신의 위치부터 확보하기로 했다.
문새론은 추적계 스킬 중 파생 스킬 ‘집중 취재’로 조의신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집중 취재’의 조건은 두 가지.
첫째, 추적하는 대상이 일정 거리 안에 있을 것.
조의신은 은광고 안에 있으니 이 점은 문제없었다.
둘째, 추적하는 대상의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
문새론은 조의신과 같은 신문부 소속이고, 친분이 있으니 바로 해결되었다.
파아앗!
문새론 앞에 이능파로 작성된 취재 계획서가 떠올랐다.
그 문서에는 조의신의 예상 이동 경로 후보들이 적혀 있었다.
“수상한 부반장님은 워낙 신출귀몰하셔서 후보가 많네……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은 천익산이라고 생각함요!”
문새론에게 문서를 받은 후, 도원우의 설득에 들어갔다.
처음에 도원우는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고립된 이들을 살펴본다는 명목도 더해져서 설득 끝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 유상희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도원우는 유상훈이 나가는 걸 매우 꺼려 했으나 결국 주수혁을 믿고 그들을 보내 주기로 했다.
이들에게는 조의신을 찾는 것 외에도 고립된 이들과 접촉한다는 임무가 있었기에 전서구를 비롯한 소모 아이템 카드와 식량도 짊어지고 이동하게 되었다.
연구동 구역, 도서관 등을 거쳐서 아이템을 나눠 주면서 세 명은 마침내 거주 구역에 도착했다.
거주 구역에 왔을 때에는 갑작스러운 한파가 닥쳤다가 풀리기도 했었다.
“서두르자. 뭔가 일어나고 있나 봐!”
지익회관에 들렀다가 이동할 계획이었던 이들은 곧바로 천익산으로 향했다.
이들이 천익산을 오를 즈음에는 마침 호족들이 모두 물러나고, 조의신이 기청제를 올릴 때였다.
사실 천익산에 들어와 있던 이 세 명은 풍백과 우사에게 포착되었다.
풍백과 우사가 땅을 살폈을 때, 조의신으로부터 백 걸음 떨어진 곳까지는 아무도 없었으나, 천익산 전체로 봤을 때에는 그 안에 주수혁, 유상훈, 맹효돈 이 셋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진족이 아니었고 고작 세 명밖에 되지 않았기에 풍백과 우사는 경계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에너미와 싸우다가 천익산으로 도망쳐 온 학생들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때, 강렬한 힘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검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다……! 부반장 그 새끼가 눈 맞지 말라고 했는데! 어?”
“조의신 이능파잖아.”
“그렇네! 아까 힘이 느껴진 곳 중심으로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마침내, 세 사람은 검은 눈 속에서 조의신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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