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86화 (68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86)

89. 선물 (5)

열네 번째 학생에 관해선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우리 반의 두 관종, 구슬비와 옹길동이 등교를 시키겠다고 삼세판 승부를 걸고 열심히 쫓아다녔으니까.

이름은 아직 모르지만, 그놈은 자칭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라고 한다.

자의식과 미성숙한 낭만과 낯뜨거움이 물씬 묻어나는 별칭이었다.

‘현재 관종과 검객은 각각 1승 1패 무승부 상태야. 세 번째 승부를 은광고에서 하기로 했나 보구나.’

내내 해외를 떠돌던 저 셋이 갑자기 귀국한 이유는 짐작이 갔다.

비록 관심에 목이 마른 관종들이지만 구슬비와 옹길동은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불의와 타인의 위기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급하게 귀국하여 은광고의 위기를 구하려고 했겠지. 검객도 둘을 따라온 건가? 나쁜 놈은 아닌가 보네.’

어쨌든 우리 반의 출석률이 걸린 문제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순순히 황지호가 안내하는 대로 승부가 예정된 장소로 가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그 덕에 아는 사람들과도 많이 마주치고, 온갖 인사를 듣게 되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들, 교사들은 이 인파 속에서도 나를 귀신같이 발견해 인사했다.

은근히 검은 눈에 관해 언급하는 이가 많았으나 아무도 구체적으로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고생이 많았으니 오늘은 푹 쉬고 놀라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해 올 뿐이었다.

“하하하하! 다들 네 덕이라는 걸 잘 아나 보군. 만족스럽다.”

한 게 없다고 둘러대려 해도 황지호가 검은 눈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검은 눈이 증거라고 은광고 전체에서 들이대며 내 변명을 막는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내리는 검은 눈송이를 보니 계속 민망한 기분이 들어 할 말이 없어졌다.

말수가 부쩍 줄어든 나를 보고 황지호가 신나게 처웃었다.

“부반장!”

그때, 맹효돈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웃는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맹효돈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맹효돈도 인파를 헤치고 날쌔게 내 쪽으로 달려왔다.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멀리서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온 듯했다.

맹효돈은 민그린이 선물한 순록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서둘러 온 탓에 머리띠가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너 괜찮냐? 언제 왔냐?”

“오늘 왔어. 다친 데도 없고 괜찮아.”

맹효돈은 내 말을 의심하는지 찡그린 얼굴로 나를 살폈다.

눈앞에서 내가 땅 밑으로 떨어진 바람에 많이 놀랐나 보다.

좀 타이밍 조절을 잘했어야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능파 상태가 별론데.”

“이능을 많이 써서 그럴걸? 몸은 멀쩡해.”

“정말이냐?”

맹효돈은 머릿속의 짱돌을 굴리면서 열심히 내 몸의 이상을 발견하려 했다.

하지만 나한테 이상이 있었으면 유난스러운 황지호나 은호가 얌전히 나를 보내 주진 않았을 거다.

맹효돈은 결국 이상을 찾지 못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주수혁이 엄청 걱정했다. 그 돌아이 새끼는 네가 거기 떨어지고 완전…….”

그 돌아이 새끼라면 황지호를 말하는 건가?

“하하하, 이 몸은 여기에 있다.”

“어?”

맹효돈이 웃고 있는 황지호를 보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도 황지호한테 대놓고 돌아이라고 부르니 딱히 저렇게 불러도 뒷담은 아니었는데, 노친네가 갑자기 등장해 놀란 듯하다.

맹효돈은 어물어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는 괜찮냐?”

“당연히 이 몸은 괜찮다. 조의신은 무사히 돌아왔고, 오늘은 크리스마스와 은광고의 무사를 축하하는 좋은 날이니까.”

선량한 맹효돈은 황지호를 돌아이 새끼라 부르긴 해도 제법 걱정했나 보다.

황지호가 천연덕스럽게 웃는 얼굴을 보던 맹효돈이 뭐라 말을 걸려 했으나,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효돈아, 곧 승부가 시작될 거야. 얼른 자리로…….”

말을 건 것은 김유리였다.

갑자기 뛰쳐나간 맹효돈을 찾으러 왔나 보다.

김유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순간 말을 잃었다.

김유리는 붉은 케이프 코트 차림에 머리에는 순록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산타 옷이다.’

플마고의 퍼스트 크리스마스 시나리오 업데이트 전.

모두가 은근히 크리스마스에서 김유리의 복귀와 산타 의상 공개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퍼스트 크리스마스는 김유리의 마지막 시나리오가 되었다.

김유리는 나비령의 목소리에 이끌려 은광고에 발생한 이상을 알게 되었고, 안다인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유도하는 대로 학교 안으로 난입한다.

그리고 나비령의 계략대로 김유리는 폭주하고 만다.

김유리는 청랑호의 물을 폭주시키며 피아를 가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능파와 기력이 모두 다해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말이다.

‘아마 그 덕에 중앙 구역 쪽에 우산을 쓰고 숨어든 마족들, 그 주변의 에너미가 일소되었겠지. 그래서 학생회관에서 농성하던 학생들이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거고…….’

플마고 속 나비령은 거친 방법으로 흑막의 수를 일부 꺾어 버렸다.

그러나 그 결과 김유리는 죽고 마침 주변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학생들도 휘말려 죽었다.

언젠가 김유리가 다시 등교할 날 만을 기다리던 팬들의 멘탈은 크리스마스에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지금 김유리는 무사히 내 앞에 있다.

팬들이 고대하던 산타 옷 차림으로 말이다.

“의신아, 지호야, 잘 왔어. 메리 크리스마스!”

“학생회 임원들과 같은 복장을 했군. 크리스마스까지 쉴 예정 아니었나?”

“학생회 업무량이 늘어나서 좀 도우려고.”

오늘 학생회, 선도부 임원들은 전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의상을 입었다.

붉은색 퍼 코트, 케이프 코트 혹은 순록 의상이 그러했다.

사전에 그걸 알고 있었고, 이브에 다른 임원들이 산타 의상을 입은 걸 봤는데도 김유리를 보니 남다른 감상이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절로 칭찬이 나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 의상 잘 어울린다.”

“아하하, 고마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반 애들이랑 단체로 산타 옷을 맞출 걸 그랬다.”

“나쁘지 않군. 내년 크리스마스에 시도해 보는 게 어떤가.”

황지호가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내년에 또 크리스마스 특별 학급 예산이 추가될 것 같다.

김유리도 황지호의 말에 의욕적으로 반응하는 걸 보니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아. 의신아, 전달해 달라고 부탁받은 게 있는데…… 혹시 중앙 구역 쪽에 들를 일 있으면 잠깐 학생회관에 올 수 있어?”

“신문부에서 추가로 대관한 전시실이 학생회관과 가까우니 그때 들르면 되겠군.”

김유리는 나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황지호가 했다.

물론, 신문부에서 여는 전시전에 참가할 생각이긴 했다.

준비 과정을 돕지는 못했어도 얼굴을 비쳐야 하지 않겠는가.

김유리와 약속 시간을 정하며 함께 이동했다.

“의신이가 제때 와서 다행이다. 그렇지?”

“어, 어…….”

이동 중, 김유리가 맹효돈한테 말을 붙이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내가 없는 걸 많이 걱정했나 보다.

좀 더 안심을 시켜 주고 갔어야 했는데 미안할 따름이었다.

“와, 의신이가 왔어요!”

“이쪽입니다. 제일 좋은 자리를 잡아 뒀습니다.”

1학년 건물 앞 운동장.

야외 관중석을 메운 사람들 사이로 우리 반 아이들이 보였다.

순록 머리띠를 착용한 반 아이들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반가움과 동시에 의문이 일었다.

반 아이들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속으로 사고를 거듭했다.

‘설마 이 운동장 전체를 빌린 건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걸 보러 왔나?’

이곳은 1학년 1반과 용제건이 대결했던 장소 아닌가.

기껏해야 1학년 건물 주변의 체육관을 빌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동장 전체를 전세 낼 줄은 몰랐다.

관중석이 전부 채워질 정도로 사람이 몰린 건 더 의외였다.

“계속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어. 의신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검은 눈의 규모가 너무 커서…….”

“그린이가 준 순록 머리띠는?”

“대석아……!”

따악!

권레나가 말하고 있을 때, 송대석이 불쑥 끼어들었다.

송대석은 머리에 당연한 듯이 순록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었다.

민그린이 뒤통수를 때리는 바람에 그 머리띠가 벗겨질 뻔했지만.

‘순록 머리띠는 교실 사물함에 있을 텐데, 다녀와야 하나?’

지금부터 달리면 승부의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민그린이 순록 머리띠를 내밀었다.

어제 등교하지 않은 황지호와 내 것까지 전부 두 개였다.

“반 아이들이랑 선생님들 것 전부 만들어 왔으니까 괜찮아. 슬비랑 루이스 말 들어 보니까 남은 두 명은 오늘 안 올 것 같더라. 수가 남을 거야.”

그럼 지금 내민 두 개의 머리띠는 아직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반 아이의 몫이었나.

어쩐지 이 머리띠를 받는 게 망설여졌다.

“일단 받아 둬라. 뭣하면 내가 진짜 이 머리띠의 주인에게 전해 주마.”

“아, 지호는 이사장 친척이라 알겠구나.”

“하하하하! 남은 학생 둘 중 하나와는 연락이 잘 돼서 말이다. 다른 하나는 모르겠지만.”

등교 거부자 중 한 명과 아는 사인가?

그러면 빨리 나오게 설득해야지 뭐 하는 건가.

냉큼 순록 머리띠를 쓴 황지호가 당장이라도 처웃을 기세로 말했다.

“그게 누군지 궁금하나?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도…….”

“됐어.”

황지호의 제안을 별로 정중하지 않게 거절했다.

독고미로 역시 황지호의 말을 흘려들은 후 말했다.

“1학년 0반이 주목을 받는다고 해도 이만한 사람을 한 번에 모으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이상하네.”

독고미로도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은 듯했다.

이 의문에 답한 건 김유리였다.

“아, 그건 어둠의 다…… 검객의 사부님 덕분일지도 몰라.”

김유리가 ‘다크니스’라는 단어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넘기며 말했다.

듣자 하니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어제 잠깐 학교에 얼굴을 내비쳤는데, 김유리는 그사이에 말을 텄다고 한다.

김유리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설명한 후, 그 이후의 일도 말했다.

“슬비랑 루이스를 통해서 디바이스 코드를 받았어. 그리고 이 자리에 초대할 사람은 없냐고 물었지.”

김유리는 바쁜 와중에도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을 응원할 사람들을 초청했나 보다.

1학년 0반 반장의 유능함과 배려심에 다시금 감탄했다.

“관종 애들은 우리 반이랑 소풍도 같이 간 사이인데, 걔만 응원해 줄 사람이 없으면 좀 그렇긴 하네.”

독고미로는 공개 오디션을 경험한 덕에 응원의 힘에 관해 절절히 느끼는 모양이다.

말없이 입술의 모양을 읽던 한이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래서 누구를 초대하셨습니까? 결계에 등록되지 않은 분이라면 초대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다행히 신원이 확실한 분이라 금방 해결됐어. 아, 지금 오시나 봐!”

웅성거리는 소리와 작은 환호성이 들렸다.

누가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굉장한 유명 인사인 듯했다.

곧 그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직 설명을 듣지 않았는데 누가 검객을 응원하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 저분들이군요.”

“말로만 듣던 그…….”

“……아.”

우리 반 아이들은 한 집단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새까만 옷을 입은 무림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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