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2)
89. 선물 (11)
“아, 애들 왔다!”
“시합 고생 많으셨어요!”
대기실 밖으로 진정묵과 관종들이 나타나자 반 아이들이 밝게 맞이했다.
진정묵과 관종들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들의 옷차림을 본 아이들이 몹시 기뻐했다.
셋 다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킷만 걸치긴 했지만, 일단 교복은 교복이지.’
관종들은 하얀색 구교복 재킷을, 진정묵은 검은색 신교복 재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재킷 밑에는 무복, 오로라 산타 옷을 걸치고 있긴 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오. 진정묵이라 하오.”
진정묵은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포권지례를 취하며 말했다.
덧붙여 교복의 출처도 설명했다.
관종들은 승리 세리머니의 일환으로 진정묵에게 교복을 입힐 생각으로 재킷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관종들은 패배했으나 진정묵은 등교를 결심하여 교복을 입었다.
“잘 왔다.”
함근형 선생님이 교복 재킷을 입은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제자의 등교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지시나 보다.
비록 인상이 험악하여 오해를 살 수 있는 표정이었으나 함근형 선생님이 기뻐하고 계셨다.
진정묵은 강호에서 살아온 자답게 함근형 선생님에게 쫄지 않고 정중하게 대했다.
“사부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그래, 네 사부와 많이 닮았구나.”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야 무림인 콘셉트가 일치하니까 닮은 구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함근형 선생님이 칭찬의 의미로 한 말인 건지 모르겠지만 흑림의 검성과 닮았다는 말이 기쁜 건지 진정묵은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함근형 선생님은 환영 인사에 이어 관종들의 노력을 치하했다.
“너희가 진정묵을 등교시키기 위해 애썼다고 들었다. 고생 많았다.”
“네…….”
“고생했죠…….”
관종들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의기양양하게 모든 게 본인들 덕이라면서 큰 소리로 관심을 끌어야 하지 않나?
‘어째 두 관종들이 이상한데. 진정묵한테 관심이 쏠려서 마음이 안 좋은 건가?’
지금 당장 두 관종이 아무리 별난 짓을 해도 오늘 처음 이름이 알려진 진정묵 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진정묵도 관종들 못지않은 특이한 콘셉트를 고수하는 인간인 데다 뉴비 버프를 받는 중이니 밀리는 게 당연하다.
관종들에게 관심을 좀 줘서 마음을 풀어 주려고 했으나 뭔가 이상했다.
‘관심을 빼앗겨서 마음이 안 좋다기보다는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아.’
관심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저 두 관종한테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으나 이상했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관심의 저편에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쟤는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어떡하지?”
“말할 생각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추리력을 발휘해서 난관을 극복하는 거다!”
“그러자!”
또 무슨 작당질을 벌이는 거지?
신경 쓰이지만 굳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저 둘의 태도를 보니 찝찝한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 무림인들과의 대화, 관종들의 태도…… 이걸 종합해 볼 때 의심 가는 구석은 있어. 그래도 일단 모르는 척하자.’
나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불길하고 오글거리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졌다.
평소와 달리 관심을 구걸하지 않는 두 사람이 마음에 걸렸는지, 반 아이들이 말을 걸었다.
“그럼 이제 슬비랑 루이스도 등교하는 거야?”
“두 분은 아직 등교하지 않은 분을 찾으러 갈 것 같습니다.”
권레나가 질문을 하고 목우람이 신빙성 있는 가설을 댔다.
또 두 사람이 등교하지 않을 기색이 보이자 함근형 선생님이 아주 잠깐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남은 두 명도 등교시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어서…….”
옹길동과 구슬비는 말꼬리를 흐렸다.
둘은 아직 앞으로 어떻게 할지 행동 방침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듯했다.
그때, 두 사람이 한 말 중 뭐가 마음에 든 건지 황지호가 처웃었다.
“하하하! 둘 중 하나는 등교시키기 쉽지 않을 거다.”
툭하면 남은 등교 거부자 중 한 명과 아는 사이임을 강조하는데, 대체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황지호도 관심이 필요한 걸까?
황지호는 뭘 기대하는 건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절흑풍림 측과 이야기할 때에도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에 한마디 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뒀는데, 이번에도 별말 안 하기로 했다.
독고미로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지호를 보다가 물었다.
“한 명하고 아는 사인가 보네. 어떤 앤데?”
“흠, 내 입으로 전하기는 좀 그렇군. 하지만 정 궁금하다면 이 몸이 알려 줄 수도…….”
“저 돌아이 새끼 또 시작이네.”
관종들은 황지호를 빤히 쳐다보다가 또 조용히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그 등교 거부자와 아는 사이라는 걸 확인해서 그런 걸까?
황지호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럼 정묵아, 우리 반 공연 기획물 보러 갈래?”
“슬비랑 루이스도 같이 가요! 저번 축제 때 직접 와서 보지 못하셨잖아요.”
“큰 싸움이 끝났으니 쉬어 가는 것도 좋겠지.”
“……쟤가 가면 나도 갈래.”
뒷정리도 끝났으니 슬슬 이동하기로 했다.
관종들을 비롯한 반 아이들 대부분은 축제 때 공개한 공연의 재상연을 보러 갈 듯했다.
“사부님을 모셔 가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혹시나 해서 가족석을 몇 개 비워 뒀었어.”
절흑풍림의 팀 마스터가 보러 온다면 또 사람이 몰릴 텐데.
걱정이 됐지만, 미리 들르기로 한 곳이 있어서 맡기고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나 외에도 민그린은 전시회를 확인하러 자리를 뜰 것 같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어디 가는데.”
“1반 쪽, 약속이 있어서.”
“그러냐?”
“이 몸도 같이 가니 걱정 말도록.”
황지호와 같이 이동할 예정은 없었는데, 따라올 모양이다.
황지호와 함께 행동한다는 말에 맹효돈이 무엇을 납득한 건지 몰라도 고개를 끄덕이곤 등을 돌렸다.
저번 일로 맹효돈을 많이 걱정시킨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조의신, 어디로 갈 생각이지?”
어디인지도 모르고 따라올 생각이었나.
“1학년 1반 쪽.”
“유상훈과 약속이 있나? 어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신경이 쓰였는데 얼굴을 보이는 것도 좋겠지.”
황지호에게 있어 어제는 크리스마스이브를 가리킨다.
즉, 황지호와 유상훈이 어제 만났을 때라면 우마왕을 한창 상대하고 있을 때다.
내가 간 뒤에 황지호가 뭔 짓을 했기에 흐트러진 모습이 어쩌고 하는 건가.
좀 신경 쓰이지만 어차피 유상훈을 만나면 알게 될 일이니 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게 조용히 1학년 1반 쪽에 도착했다.
막 상영회가 끝났는지 교실에서 사람들이 여럿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 대부분 머리가 매우 짧았다.
“의신아!”
키가 큰 탓에 인파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안경잡이가 이쪽을 보며 달려왔다.
사복 차림의 장남욱이 나를 발견하고 바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마음은 급해 보이는데 실내라는 점을 고려해 뛰지 않는 게 장남욱다웠다.
“메시지 확인이 늦기에 걱정했다, 의신아. 상훈이가 검은 눈에 관해서 말해 줬어. 쉬다가 늦은 거야? 그런 큰 힘을 썼다면 연락이 안 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응, 쉬고 왔어.”
“그래…… 이브에 왔으면 너희를 도울 수도 있었을 텐데. 대기 명령이 떨어졌지만, 외출 중인 생도들은 무리해서 귀환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거든. 나도 그때 은광고 쪽에 있었다면 여기에서…….”
장남욱은 마치 한이라도 풀 듯이 긴말을 쏟아 냈다.
그 말들의 반은 듣고, 반은 대충 넘기면서 내 수대로 흘러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장남욱은 그날 은광고에 있지 않은 걸 아쉽게 여겼으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장남욱이 이브에 오지 못하도록 그와 친분이 있는 사관학교 생도들 전원을 크리스마스 당일에 초대했다.
초대하지 않는다면 장남욱이 서운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고, 교류전을 통해 친분을 쌓은 다른 이들의 초대를 받아 이브에 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대표로 그들 전원을 날짜를 지정해 초대했다.
사관학교 생도들이 괜히 일찍 은광고에 도착했다가 휘말릴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였다.
팟!
한참 말을 쏟아 내던 장남욱이 안경알 너머로 나를 봤다.
안경알에 걸린 결계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으나 그 눈에 별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장남욱은 걱정된 나머지 ‘별 처녀의 눈’으로 나를 살펴보는 듯했다.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군. 안경에 새긴 결계를 재조정하는 게 좋겠다.”
장남욱의 안경에 결계를 새긴 황지호가 말했다.
순조롭다는 게 대체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황지호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장남욱의 눈이 지닌 힘은 상당한가 보다.
눈에서 별빛을 거둔 장남욱이 말했다.
“다친 데는 없구나.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래도 이능파 소모가 심해 보이는데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 그냥 나중에 보자고 하지.”
“나는 괜찮아.”
“퍽이나.”
갑자기 튀어나온 유상훈이 툭 말을 뱉었다.
일단 저놈은 부반장이다 보니 반에서 일을 하다 나왔나 보다.
그런데 정말로 괜찮아서 괜찮다고 한 건데 뭘 또 그렇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유상훈의 말을 무시하려는데, 황지호가 끼어들었다.
“조의신이 제 입으로 안 괜찮다고 할 리가 없지. 이 몸이 감시할 테니 걱정 말도록.”
“그건 그렇지.”
유상훈은 황지호를 상대로도 툭툭 말을 뱉었다.
유상훈은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황지호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눈을 뗐다.
황지호가 보인 흐트러진 모습이라는 게 참 인상 깊었나 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장시 얼빠진 얼굴을 한 장남욱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응? 지호는 키가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키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장남욱은 TC 연구소 사건 당시, 도시후를 데리고 제천대성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 2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와 마주쳤다.
장남욱은 특별한 눈을 타고난 탓인지 별 의심 없이 그게 황지호라고 생각했다.
‘동일 존재인 건 맞긴 한데…… 눈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알아보기 힘든 걸까?’
그렇기에 장남욱의 인식 속 황지호는 ‘키가 컸다’라고 여겨졌기에 지금 10대 모습의 황지호를 보니 헷갈리나 보다.
그래도 제멋대로 줄었다 늘었다 하는 황지호를 보고도 동일 존재라고 단언하는 게 신기했다.
황지호는 뻔뻔하게 말했다.
“하하하하! 이 몸의 나이는 성장기다. 키가 다소 변할 수는 있지.”
“그렇구나. 성장기에는 신체가 이능파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들었어.”
옆에 선 유상훈은 멍청이를 보는 표정으로 장남욱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정정해 줄 생각은 없는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 장남욱이 오면 얼굴을 한번 보자는 약속은 달성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신문부 쪽이었다.
추가로 준비한 전시회 준비 과정을 전혀 돕지 못했기에 필히 들를 생각이었다.
“님, 여기에 있을 때가 아님요! 빨리!”
신문부가 대관한 전시실 앞에 도착했을 때, 문새론이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급한 일인가 해서 바로 문새론을 따랐다.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긴급 사태임을 깨달았다.
“…….”
“…….”
찬바람이 부는 실외, 벤치.
주수혁과 안다인이 매우 어색한 공기 속에서 한마디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