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91화 (69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1)

89. 선물 (10)

시합이 시작되기 전, 자칭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운기토납을 하였다.

검객은 사부를 믿고 완전히 경계를 푼 상태로 집중하고 있었다.

깊게 집중하는 중이었기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안 건 결계가 발동한 이후였다.

‘결계를 발동한 건 이 학관의 학주인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무명의 초신성이로군.’

검객은 은광고의 이사장에 관해선 별 관심이 없었으나 조의신 쪽은 달랐다.

검을 다룰 수 있는 데다 절흑풍림을 상징하는 것과 동일한 색의 기를 사용하는 동갑 플레이어, 그것도 일단은 같은 반이니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검객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자세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마교가 한반도를 노리고 있다고? 좌시할 수 없다. 역시 학관에 나갈 틈은 없어!’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호의 말에 검객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이어서 흑림의 검성이 제자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말하자 검객의 뜻은 더욱 굳어졌다.

흑림의 검성이 넌지시 은광고를 권하였고, 은광고에 입학하여 사부의 후배가 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여겨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할 생각은 없었다.

검객은 하루라도 빨리 마교와의 싸움에 몸을 던지고 싶었고, 흑림의 검성도 이를 허락했다.

그래서 검객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직후 마교의 일당과 싸울 겸, 수련을 할 겸 한반도를 떠났다.

“이 몸은 그게 조건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조건은 조의신에게 듣도록.”

조의신의 이름이 나오자 분위기가 변했다.

다소 위압적으로 보였던 이사장은 어딘가 너그러워 보이는 공기를 둘렀고, 절흑풍림 소속의 무림인들도 관심을 기울였다.

검객도 고등학생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고등학생에 불과한 조의신이 이 자리에 왜 있는지 줄곧 궁금했다.

“절흑풍림은 현재 7대 마신의 광신도 외에도 경계하는 마족 집단이 있죠.”

“마교에 귀의하거나 동조한 자는 집단 가릴 것 없이 모두 우리의 경계 대상이오.”

흑림의 검성은 현재 그들이 쥐고 있는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무난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조의신은 그 속내를 꿰뚫어 본 것처럼 곧게 말했다.

“국내 4대 프로 플레이어 팀을 대표해 포모르 마족을 상대하고 계시다 들었어요. 그들은 한반도에 터를 잡으려 하고 있죠.”

“흥미로운 말이군. 계속 말해 보시오.”

4대 프로 플레이어 팀이 모였을 때, 영원의 호수 측에서 포모르 마족의 동향을 알렸다.

포모르 마족이 영국 영토에서 철수하고 한반도로 이주할 낌새가 보였기에 절흑풍림이 이에 대처하기로 했다.

현재 붉은 사자와 활발하게 정보 공유를 하고 있는 조의신은 이를 알고 있었다.

조의신이 포모르 마족이 여는 경매에 참석하기 위해 붉은 사자의 전용기를 타고 이동했는데, 추후 포모르 마족에 관한 정보를 접한 염방열이 그 인과관계를 짐작해 냈다.

그래서 염방열은 포모르 마족에 관한 정보도 공유했다.

물론, 절흑풍림 측에선 이런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조의신이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당황할 법도 했으나 흑림의 검성은 절흑풍림의 장문인답게 표정이나 말투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저는 포모르 마족과 대치한 적이 있어요.”

“대단하오. 내 제자도 마교도와 대치한 적이 있소. 후기지수들이 하나같이 뛰어나니 강호의 앞날이 밝군.”

언뜻 듣기에는 조의신을 칭찬하는 말이지만, 이를 해석하면 ‘내 제자도 마족을 상대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조의신은 그 뜻을 알아들었을 텐데도 예의 바르게 선배가 하는 칭찬에 감사를 표한 후, 말을 이었다.

“제가 상대한 건 포모르를 이끄는 마왕, 외눈 거인 발로르였어요.”

발로르라는 말에 무림인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포모르 마족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은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래서 죽음의 눈, 사안(死眼)을 가진 마왕 발로르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것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극악한 사술(邪術)은 절흑풍림 모두가 경계하고 있었다.

경악한 무림인들이 조의신에게 말했다.

“죽음의 눈을 마주치고 살아남았다는 건가? 농담이라면 지금 밝히게.”

“젊은 친구가 객기를 부리면 좋지 않아. 말이 잘못 퍼지면 죽음의 눈에게 노려질 수도 있네!”

무림인들의 말투는 꾸짖는다기보다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조의신을 괄시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조의신은 그들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의 도움을 받고, 기연을 얻어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도대체 무슨 기연을 마주쳤다는 말인가?

무림인들이 되묻기 전에 조의신이 그 기연의 증거를 꺼냈다.

그것은 아이템 카드였다.

카드에 그려지고 쓰인 내용을 본 무림인들이 경악했다.

“루의 창이다!”

“다누 신족의 신보가 어째서……!”

발로르의 눈을 쓰러뜨렸다는 신화를 가진 신보였다.

피를 탐하는 성질 때문에 다루기 상당히 까다로웠으나, 저것을 들고 있다면 발로르의 사안에서 살아남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신보를 다룰 수 있는 건지 놀라움이 솟았으나, 창밖에 내리는 검은 눈을 생각하며 납득했다.

절흑풍림이 은광고 사건에 관해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이 검은 눈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학교를 구한 영웅을 상징한다고 한다.

학교 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프로 플레이어 팀이라도 대처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것들뿐이었는데, 이에 대처할 만한 영웅이라면 신보를 다루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흑림의 검성은 당장이라도 질문을 쏟아 내려는 수하들을 제지하며 대표로 물었다.

“그 병기는 마교도가 소지하고 있었을 터. 어떤 기연을 얻은 건가.”

“자세한 내용은 지금 알려 드릴 수 없어요. 밝힐 수 있는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의신은 어느 사이엔가 눈을 뜨고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조의신은 어딘가 수상하게 웃고는 말했다.

“지금 제자분께서 상대할 예정인 두 사람이 없었다면, 신보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구슬비와 옹길동 학생을 말하는 건가?”

“네. 그 두 사람도 발로르의 눈과 마주쳐서 살아남았어요.”

조의신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루의 창을 들고 저렇게 곧고 자신만만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데 어찌 거짓이라 치부할 수 있겠는가.

흑림의 검성은 다시금 경탄했다.

“범상치 않군. 과연 이 눈을 내린 이답소.”

“하하하! 그렇지. 애초에 우리가 확보한 마족을 생포한 것도 조의신의 공이 컸다.”

황명호 모습을 한 황호의 발언에 흑림의 검성과 수하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제 더 이상 명상에 집중할 겨를이 없는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도 마찬가지였다.

절흑풍림의 무림인들은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치열하게 마교도와 싸우고 승리를 거둔 이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

“마교도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자결을 하고, 정보를 본거지로 보내오. 쉬이 붙잡아 둘 수 없을 터인데……!”

흑림의 검성으로부터 찬사를 듣던 조의신이 황명호 이사장을 흘끗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귀찮아서 그냥 입을 다문 것처럼 보였다.

“……마족에게는 약점이 있어요. 그 약점을 이용한 것뿐이에요.”

조의신은 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건지 화제를 급하게 돌리기 위해 검객에게 말을 걸었다.

“은광고에서 배울 게 없다고 여겨서 등교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은광고에서는 함께 싸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함께 싸우는 방법…….”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검객이 택한 수련법은 혼자 싸우는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이었다.

일인당천(一人當千)의 스승을 동경하여 자신도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제 기술을 아무리 갈고 닦는다 해도 발로르의 사안 앞에서는 살아남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의 눈 앞에서 힘을 합쳐 살아남은 자가 저렇게 말하니 뭐라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의신은 마지막으로 조건에 관해 말했다.

“제가 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객이 두 사람과 동시에 대련한 후, 등교 여부에 관해 한 번 더 숙고해 줄 것. 이상입니다.”

조의신이 말을 마쳤으나 검객은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갈등하는 검객의 등을 밀어 주듯 흑림의 검성이 말했다.

“나는 수련에 매달려 학관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소. 후회는 없지만, 미련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오.”

흑림의 검성은 제자한테 하는 말인지, 조의신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계속했다.

“어디까지나 제자의 선택을 존중하겠지만, 나와 같은 미련을 남기지 않길 바라오.”

검객은 흑림의 검성이 단 한 번도 강요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은광고에 머무를 수 있게 시험을 상기시키고 도와줄 이를 파견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흑림의 검성은 그가 학관 생활을 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학관 생활을 놓친다면, 어쩌면 검객도 흑림의 검성과 같은 미련을 가질지도 모른다.

검객은 긴 고민 끝에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명의 초신성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    *    *

카아아앙!

옹길동이 내려친 카드가 비껴가며 연검의 날을 찍었다.

멀리 튕겨 나가는 카드를 보며 구슬비가 탄식했다.

“아니, 그걸 못 맞춘 거야? 코앞에 있었잖아!”

서걱!

덩굴을 잘라 낸 연검이 어느새 옹길동의 목 앞에 멈춰 섰다.

조금만 연검을 움직인다면 옹길동의 목이 꿰뚫릴 것이다.

“호신강기 정도는 다룰 수 있소. 고작 이 정도에 마음이 약해지다니.”

옹길동이 내려친 와일드 카드는 검객의 손목을 꿰뚫을 뻔했다.

회복 아이템을 바로 쓴다 해도 손목의 동맥과 정맥이 잘리면 후유증이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옹길동은 손목을 자를 뻔한 카드를 틀어 버렸고, 검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격했다.

“그렇게 마음이 약하면서 어떻게 그 눈 앞에서 살아남았소?”

“……!”

“아니, 그런 마음이 있기에 서로 도와 살아남은 걸지도 모르겠군.”

검객이 옹길동에게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를 낮춘 탓에 입술 모양을 읽지 못한다면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설령 알아듣는다 해도 ‘그 눈’이 발로르의 사안을 의미한다는 건 모를 것이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대체 저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만, 검객은 워낙 괴상한 대사를 많이 했으니 묻힐 거라 믿는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 승!”

승부가 났다고 생각한 건지, 0반 판독기 학생 주임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고개를 푹 숙인 둘에게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손을 내밀었다.

“두 분이 따로 싸웠으면 절대 나를 여기까지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오.”

“지금 놀리는 거야?”

“그럴 리가. 두 분의 협공에서 많은 것을 배웠소.”

검객은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으키며 말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내 마음은 정해졌소.”

“응?”

멀리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은 다행히 내 수대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당분간 이름 없는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으로 지내는 대신, 학관에서 가르침을 얻을까 하오.”

두 사람이 일어난 가운데,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큰 소리로 이름을 밝혔다.

꿋꿋하게 마지막까지 ‘다크니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마음이 걸리지만, 어쨌든 마음을 정한 것 같다.

“소생의 이름은 진정묵, 잘 부탁하오!”

와아아아아!

우리 반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반 아이들도, 함근형 선생님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심을 맡은 0반 판독기 학생 주임 교사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학생이 해외를 방황하는 것보다 보이는 곳에서 사고를 치는 게 더 안심될 거라 생각한다.

‘전원 출석까지 앞으로 두 명 남았다.’

남은 두 명이 출석할 때까지 관종들이 등교할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이 자리에 우리 반 아이들이 열넷이나 있는 걸 기뻐하기로 했다.

*    *    *

1학년 운동장 옆 체육관.

전투의 흔적이 남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선수들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구슬비와 옹길동은 한 명을 등교시켰다는 사실에 희희낙락하다가 한발 늦게 들어오는 진정묵을 발견했다.

구슬비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시합 중에 말했던 그 눈…… 혹시 그거 죽음의 눈 말하는 거야?”

진정묵은 진지하게 묻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렇소. 두 분은 마교도와 마주치고도 살아남았다고 들었소.”

두 사람이 영국에서 벌어진 포모르 마족의 경매 사건에 관해 밝힌 상대는 있었다.

옹길동은 서돌에게, 구슬비는 멀린에게 그날의 일을 전했다.

하지만 옹길동은 서돌에게 구슬비에 관한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고, 멀린은 꿈속에서만 한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즉, 구슬비와 옹길동이 마족을 상대했다는 사실을 아는 건 두 사람 외에 이 땅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거, 누구한테서 들었어?”

“누가 네게 그걸 알려 줬나!”

구슬비와 옹길동이 동시에 물었다.

두 사람은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자.’라고 인사하며 사라진 적벽괴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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