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695화 (69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95)

89. 선물 (14)

안다인은 오늘 주수혁과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디를 구경 갈지, 언제 선물을 건넬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그러나 그 설렘과 기대감은 연이어 쏟아지는 전화에 무너졌다.

‘갑자기 전화해서 학교에서 받은 보상금과 배상금을 내놓으라니…….’

자신의 무사와 생존을 알리는 디바이스 메시지에 단답으로 대답한 것과 연이은 통화가 비교되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은광고 이벤트에 온 초대객 중, 단란해 보이는 가족 손님들이 보일 때마다 참담한 기분은 무거워졌다.

주수혁은 학생회 쪽에서 순찰 인원 배치 및 연락을 도왔다는데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해서 안다인은 알지 못했다.

마주치지 못했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주변을 살필 틈이 없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학생회 임원들이 둘을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하려고 은근히 유도했으나 안타깝게도 전부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안다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학생회 업무와 통화에 시달렸고, 시간이 흘러 주수혁과 약속한 시각이 되었다.

“…….”

“…….”

검은 눈송이 아래에서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눈 이후, 도통 대화가 진행되질 않았다.

억지로 말을 꺼내다 할 말이 없어져 어색하게 대화가 중단되고, 동시에 입을 여는 바람에 말이 겹치는 등 대화가 단절되는 여러 케이스를 단시간에 재현했다.

‘수혁이는 지금 대화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좋은 날에 붙잡고 있는 건 미안하니까 일찍 헤어지는 게 좋겠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물론, 주수혁도 안다인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전혀 몰랐고 그렇게 은광고인이 고대하던 두 사람의 데이트가 박살 날 위기에 놓였다.

두 사람이 쓸데없이 비장하고 슬픈 결심을 하려 할 때였다.

“안녕.”

그들에게 말을 건 인물은 은광고에 내리고 있는 검은 눈의 주인공, 조의신이었다.

조의신 뒤에는 황지호의 모습을 한 황호도 있었다.

둘의 모습을 본 주수혁이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의신아, 무사했구나! 지호도 괜찮아?”

“하하하하! 물론이다.”

주수혁은 조의신이 다친 곳이 없는 걸 보고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서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의신이 네가 위험에 처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생각 없이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별로 위험한 일은 없었어. 걱정 끼쳐서 미안해.”

“별로? 조의신,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이다.”

조의신은 주수혁의 자책 섞인 말을 중간에 끊어 버렸다.

그러자 황지호의 모습을 한 황호가 불쑥 끼어들었으나 조의신이 이를 무시했다.

조의신은 황호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자기 할 말을 했다.

“신문부의 전시회를 보러 온 거지? 마침 잘됐다. 전시 사진이 추가되었는데 두 사람 사진이 많아서 허락을 받고 싶었어.”

“새론이가 말한 그 사진 말한 거야? 그거면 허락을 했는데…….”

“방금 추가된 사진이라 허락을 받지 못했어. 문새론이 지금 전시 준비 중이야. 일단 가서 이야기하자.”

조의신의 개입에 주수혁과 안다인은 어색해할 틈도 없이 전시실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넷 사이에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조의신은 두 사람이 가볍게 대답할 화제를 던졌고 적절하게 치고 빠진 덕에 누가 혼자 길게 말하는 사태 없이 순조롭게 대화를 진행시켰다.

“여기야.”

조의신이 가리킨 곳에는 은광고의 교표처럼 보이는 거대한 벽이 있었다.

벽을 자세히 보니 여러 사진을 모아서 조각조각 배열한 거대한 모자이크 작품이었다.

가장 가까운 벽에 배열된 사진을 본 순간, 주수혁과 안다인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와 다인이가 같이 있었던 적이 이렇게 많았나? 왜 몰랐지?’

‘기분 탓인가? 나랑 수혁이 사진이 많은 것 같은데…….’

사진 속에는 은광고의 1학년 시절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사진 속에 두 사람만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주수혁과 안다인이 있긴 했다.

“이 사진들 전부 신문부에서 찍은 거야?”

“아니, 우리가 찍은 사진들은 다른 곳에 전시했어. 여기에 있는 건 신문부 공식 SNS 계정으로 모집한 사진들이야.”

조의신은 홀로그램을 띄우며 설명을 했다.

조의신의 말대로 신문부가 공식 계정을 통해 ‘은광고의 지난 1년’을 주제로 사진을 모집하고 있었다.

신문부가 모집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투고한 사람들이 꽤 되었다.

“신문부에서 찍은 사진 외에도 다른 사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모집했어.”

이 모자이크는 신문부 공식 SNS 계정으로 모인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주수혁과 안다인의 사진이 많은 걸까.

그 이유도 조의신이 밝혔다.

“예시 사진으로 이 사진을 올려서 두 사람의 사진이 많이 모인 것 같아.”

신문부에서 모집 글을 올릴 때 사용한 건 바로 은광고의 입학식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 주수혁과 안다인이 신입생 대표로 단상에 나란히 서서 선서문을 외우고 있었다.

신문부에서 예시 사진으로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을 올렸기에 투고하는 학생들도 덩달아 둘이 찍힌 사진 위주로 보낸 듯했다.

‘그때 처음 만났었지…….’

공동 수석, 반 배정 조정 등의 문제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에 관해 알고 있었으나 직접 만나서 얼굴을 본 건 입학식이 처음이었다.

입학식 사진을 보던 주수혁이 물었다.

“저 때 기억나?”

“응, 엄청 긴장했었어. 사람이 많아서…….”

“사실 나도.”

사람이 많았다기보다는 서로의 모습을 본 순간 느낀 긴장감, 두근거림이 더 컸지만, 두 사람은 솔직히 이를 밝히지 못했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자신들이 찍힌 사진을 전시해도 좋다는 허락을 한 후, 모자이크 속에 담긴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입학식 사진 이후로 눈에 띈 건 첫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로 간식을 먹을 때였다.

1학년 0반 아이들과 피자를 먹는 주수혁의 바로 뒤쪽에 안다인이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게 찍혀 있었다.

“이건 첫 수업 때네.”

“와, 그때 이렇게 가까이 앉아 있었구나.”

주수혁과 안다인은 학생들이 보낸 사진을 살펴보며 은광고의 1년을 되짚어 보았다.

청소년 수련회 같은 위기도 많았지만, 좋은 추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살펴보는 사진이 늘어날수록 두 사람의 대화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던 부정적인 마음이 좋았던 기억으로 덧씌워졌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모자이크 벽 앞에서 둘만의 세계에 빠졌다.

*    *    *

먼발치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 마주 보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찼다.

지금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덮어쓸 만한 추억을 되살려 주고, 계기를 마련해 주기만 하면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였다.

문새론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둘의 데이트 장면을 디바이스 카메라에 담으며 작게 환호했다.

“하, 좋은 일 했다. 수상한 부반장님, 수고했음요!”

“아니야, 사진 정리 쪽이 더 고생했을 텐데.”

“아님요. 좋은 사진 득템해서 이득 봄…… 응?”

문새론이 사진이 더 잘 찍힐 것 같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전시회 출구 가장 가까이에 전시된 사진 쪽이었다.

그쪽을 본 나는 순식간에 인상을 썼다.

퍼스트 크리스마스 사건이 끝난 후, 주수혁과 안다인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 담긴 명작 앞, 쓰레기가 있었다.

“…….”

쓰레기의 정체는 지익회장 ‘계’새끼였다.

‘계’새끼는 사진을 보다가, 저편에 있는 두 사람의 실물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무표정이었는데, 목덜미가 벌겠다.

이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감히 안다인의 팬질을 하고 있나 보다.

안다인과 마주치기 전에 얼른 퇴치해야겠다.

“지익회는 한창 바쁘다고 들었는데 지익회장이 왜 여기에.”

“윽……!”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계이담이 화들짝 놀랐다.

내가 신문부 소속인 걸 몰랐나?

겁도 없이 여기에서, 그것도 한창 바쁜 시기에 지익회장으로서 일도 안 하고 이러고 있다니.

‘계’새끼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아, 지익회 지금 엄청 바쁠 듯요. 오늘부터 우기환 일당에 강한 사람이 추가됐음.”

우기환 일당에 강한 사람이 추가됐다니 그게 뭔 소린가.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몹시 불길하게 들렸다.

“출장에서 돌아온 강한 담임께서 제자들이 너무 기특하다고 소원 들어주겠다고 함. 그래서 우주의 기운 수색을 도와준댔나 그랬음요.”

우주의 기운에 관해 취재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 문새론이 불만스러워했다.

임연화는 예정된 출장 기간보다 더 빨리 귀국하여 은광고에 합류했다.

그리고 3학년 0반 선배놈들이 겪은 일을 듣고는 제자의 무사와 성장에 깊이 감동을 받은 듯하다.

임연화 입장에선 귀엽고 약한 제자들이 진족을 퇴치했으니 아주 기특한가 보다.

어쨌든, 가뜩이나 3학년 0반은 취재하기 어려운 대상인데, 거기에 강한 담임 임연화가 가세한다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선배놈들을 말려야 할 임연화가 한패가 되다니…… 지익회는 끝났군. 여기에서 농땡이나 부리는 ‘계’새끼가 지익회장인 시점에서 오래전에 끝났지만.’

지금은 그나마 성시완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곧 3학년은 졸업하지 않는가.

박승현 혼자서 지익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박승현이 디바이스 메시지로 지익회의 근황을 전해 줬는데, 상대할 괴짜들과 처리해야 할 일이 태산 같아 걱정이 많았다.

내가 꺼지라는 의미를 담아 ‘계’새끼를 노려보자 변명하듯 말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곧 복귀할 거다.”

추한 변명을 하는 ‘계’새끼가 꺼진 걸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고 전시회를 즐길 수 있었다.

퍼스트 크리스마스에 찍힌 사진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마지막에 주수혁과 안다인의 재회 장면이 찍힌 사진을 보니 감동이 벅차올랐다.

“님, 좋은 거 들려드림! 사진에 좀 더 가까이 가 보셈요.”

문새론의 제안을 받아들여 사진에 가까이 선 순간,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고 영상이 자동 재생되었다.

영상의 정체는 무려 권제인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즉흥곡을 연주하는 광경이었다.

‘두 사람을 테마로 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작곡하고 연주한 곡이라니!’

이 장면을 실제로 못 본 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영상 버전도 존재하긴 했으나 실제로 그 장면을 보는 것에 비할 순 없었다.

감동과 아쉬움에 젖어 캐럴을 듣고 있자니 황지호가 옆에서 처웃었다.

“하하하하! 그러게 남지 그랬나, 조의신.”

처웃는 황지호를 내버려 두고 캐럴을 끝까지 감상한 후에야 자리를 떴다.

다음은 학생회관 쪽에 들러서 김유리와 만나 물건을 넘겨받으려 했는데, 그 전에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유리] 의신아, 지금 학생회관이야?

[김유리] 미안해, 지금 그쪽으로 가기 힘들 것 같아. 우리 반 상영회에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ㅠ▽ㅠ;;

절흑풍림 무림인들이 몰려올 때부터 불길했는데, 결국 화제가 커져서 사람들이 몰린 모양이다.

김유리는 추가로 좌석을 배치하고, 상영 시간대를 조정하느라 바쁜 것 같았다.

오히려 부반장으로서 돕지 못해 내 쪽이 미안해졌다.

약속한 장소만 돌고 우리 반 쪽으로 가서 일을 도와야겠다.

[김유리] 부탁받은 물건은 학생회관 내 사물함에 있어! 사물함 위치랑 비밀번호 알려 줄게.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사물함을 여는 건 좀 그렇지만, 김유리를 번거롭게 할 수 없어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한산한 학생회관 복도에는 수많은 사물함이 늘어서 있었다.

학생회 임원 수에 비해 설비가 정비되어 있어 한 사람이 여러 사물함을 사용하는 듯했다.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며 사물함 위치를 찾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연 순간.

파아아!

갑자기 옆에서 이능파가 터져 나와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황지호의 눈에서 황금빛 이능파가 일렁이고 있었다.

“왜 그래?”

황지호의 시선은 사물함 안에 들어 있는 물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황지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물체를 보다 입을 열었다.

“조의신, 이건…… 호족의 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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