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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01화 (70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01)

90. 가면 (5)

호족 부부가 안다인을 만나겠다고 하자 바로 만남을 주선했다.

신보를 은닉한 죄를 받을 생각은 해도 이 세상에서 아이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부부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부부를 상대로 황지호는 몸가짐을 단정히 할 것을 권했다.

황지호가 준비를 돕겠다고 비서를 불러 부부의 사이즈를 확인하고 의상을 픽업시켰다.

공휴일 늦은 시각인데도 전화 한 통에 명품관의 VIP 라운지가 열리는 걸 보고 황지호가 재벌 총수였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부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서둘러 안다인을 만날 준비를 했다.

여전히 비쩍 말랐으나 좋은 옷을 갖춰 입고 긴장과 기대로 얼굴이 상기된 덕에 무섭던 인상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이렇게 늦은 시각인데 아이가 졸려 하지 않을까요?

―먼 길을 와야 하면 날이 밝을 때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밤이 깊은데 춥지는 않을까요?

부부는 준비하는 내내 안다인 걱정만 했다.

어차피 곧 만날 예정이니 안다인에 관해서 어느 정도 밝혀도 되겠다 생각한 것인지 황지호가 말했다.

―그 아이는 은광고의 학생이다. 교내에 있으니 금방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다.

부부는 안다인이 무사히 올 것이라는 말에 안심했다.

그리고 안다인이 은광고의 학생이라는 말에 놀라워했다.

―우리 아이가 은광고 학생이라니…… 아직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군요.

―은광고는 한국 최고의 명문고지요. 그리고 학생들도 빼어나다고 들었답니다.

―우리 아이가 은광고의 일원이라니, 분명 노력가겠지요.

호족 부부는 안다인의 부모님답게 만나기 전부터 그녀에 관해 잘 파악했다.

부부의 추측대로 안다인은 문무, 재색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부족한 게 있다면 가족이었다.

그건 플마고의 유저로서, 친구로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언젠가 주수혁과 맺어져 둘이 가족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었다.

‘저 두 분과 안다인이 얘기를 잘 했으면 좋겠다.’

부부가 안다인이 은광고의 학생인 점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을 하자 은광고의 이사장이나 학생인 황지호가 아주 흡족해했다.

부부가 은광고 칭찬을 하는 게 듣기 좋은가 보다.

―잘 알고 있군. 물론, 이 몸의 학교에 소속한 학생은 전부 우수하다. 조의신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갑자기 황지호가 나를 저격했다.

같은 은광고 학생이라 해도 완벽한 타이틀 히로인, 은광고의 역사를 새로 쓸 수재 중의 수재, 만년 수석 안다인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지 않나?

부부의 지나친 기대감을 다소 낮추는 데에는 좋을 것 같긴 하다.

―아아, 그렇군요! 건강하게만 있어 주면 바랄 게 없는데 우수하고 착하기까지 하다니…….

―은인 같은 아이라니요, 저희 같은 죄 많은 부모에게 과분하네요.

―은인께서는 우리 아이에 관해서도 잘 알고 계셨죠. 혹시 친분이 있나요?

황지호가 불필요한 예시를 드는 바람에 부부의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은인 연호와 칭찬과 금칠을 견디며 신중하게 답을 고르느라 막대한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내가 어색하게 답할 때마다 황지호가 처웃으려는 걸 참느라 입가를 움찔거렸다.

좋은 일을 앞두고 있으니 일단 저 꼴은 무시하기로 했다.

‘이제 두 분이 몸단장도 마치고,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쳤으니 안다인을 부를 차례야.’

디바이스로 연락해서 은휘관으로 와 달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중요한 자리인데 마중 없이 불러내기가 좀 그랬다.

현재 지익회관에 있는 김신록과 함께 오도록 하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으나 바로 말을 꺼내기가 그랬다.

‘어차피 안다인에 관해 알게 되면 둘이 사제간이라는 게 밝혀지겠지. 그래도 지금은 내가 마중 가는 게 낫지 않나.’

부부와 김신록이 서로 만나기 어려워할까 봐 처음엔 내가 안다인을 데리러 가려 했다.

하지만 제안하기 전에 황지호가 김신록에 관해 바로 밝혀 버렸다.

―무슨 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담임 교사는 김신록이다.

―네……? 아…… 그 아이가 교사를 한다고 했죠…….

―우리 아이의 선생님…….

―그 아이와 같은 자리에 있으니 김신록을 시켜 데려올 수 있다.

황지호는 호족 부부에게 선택권을 줬으나 은근히 김신록이 그 자리에 있길 바라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도록 유도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의지가 엿보이긴 했으나 황지호는 강요하지 않고 선택권이 부부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황지호의 말을 듣고 잠시 서로를 보며 눈짓을 교환하던 부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담임 교사라면 선생님 중 가장 가까운 분을 가리키는 거죠……?

―아닌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그렇지.

―그렇군요…….

담임 교사는 담당하는 반에 소속한 학생들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지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니 대부분의 학생은 담임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까워진다.

선택한 과목이나 학교나 학생의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안다인의 경우, 김신록을 위해 반 아이들을 모아 용제건과 대결을 펼치기까지 했다.

안다인에게 가장 가까운 교사를 꼽으라 하면 그녀는 주저 없이 김신록이라 답할 것이다.

김신록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부부는 고심 끝에 말했다.

―그 아이도 이 자리에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상황은 내가 설명하지.

황지호가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지 모르겠지만, 김신록을 내심 딱하게 여겼다.

갑자기 호족의 수장이 웅족과의 전쟁에서 유산된 부부의 아이가 네가 담당하는 반 학생이니 데려오라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무리 잘 포장해 봤자 저 부분은 숨기기 어려울 텐데 김신록이 제정신으로 여기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황지호는 분신을 통해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낸 건지 김신록을 통해 안다인을 데려올 것을 지시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담임 교사와 학부모 면담 자리가 만들어졌다.

‘안다인이 이 자리를, 저 두 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했는데.’

내가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안다인은 부부의 얼굴을 보자마자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상식과 이성이 그녀를 주저하게 만든 것 같지만, 그래도 부부를 두고 ‘엄마’, ‘아빠’라고 불렀다.

‘호족들의 가족 상봉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될지 확신이 안 섰는데…….’

황지호랑 부부가 붙잡아서 이 자리를 지키게 되었으나 가슴이 벅차올랐다.

안다인이 가족을 찾는 모습을 직접 보다니.

‘안다인이 저 두 분을 계속 뵙고 싶었다고 했지. 좀 더 빨리 알아냈으면 좋았을걸.’

사실 플마고에서 안다인은 저 부부를 만났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알지 못했고, 그걸 알게 된 건 유감스럽게도 안다인의 쓰레기 같은 팬의 기억을 통해서였다.

그래도 그 쓰레기가 없었다면 이 자리를 마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플마고 속에서도 저 부부가 가면을 벗었다면 안다인이 알아봤을까?’

이 질문의 답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어쩐지 긍정의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안다인은 가깝게 지내던 이들을 여럿 떠나 보내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고, 부부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무관한 타인을 해치려 할 만큼 타락한 상태였으니까.

생김새가 닮았다고 하나 플마고 속의 저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변한 상태였을 거다.

“이 아이는 먼 옛날 우리를 찾아와서 너와 놀고 싶다고 했단다.”

“김신록 선생님이요? 저랑요? 정말요?”

“그래, 우리가 펼친 결계를 뚫고 온 말썽쟁이였지.”

안다인이 김신록의 자랑인지 소개인지 모를 소리를 한참 하자 부부가 사고뭉치의 흑역사를 공개했다.

먼 옛날 김신록은 결계로 숨겨진 부부의 처소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어린 말썽꾸러기 김신록은 부부에게 잠입이 발각된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는 이런 말을 했다.

―왜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요?

―아이가 있어요? 어디에 있어요? 같이 놀아도 돼요?

그리고 아이를 뵐 낯이 없어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부부를 상대로 이런 말을 했었다.

―그런데 저라면 부모님 얼굴을 보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까 두 분의 아이에게 얼굴을 보여 주세요.

안다인은 부부의 얼굴을 보자마자 보고 싶다는 말을 했으니 김신록의 말은 틀리지 않은 셈이다.

만나기 전부터 안다인의 속마음을 잘 알다니, 과연 그녀가 존경하고 따를 만한 교사다웠다.

부부로부터 김신록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은 안다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선생님이 호족의 후예고, 저는 호족의 아이죠. 가족 같은 사이네요. 기뻐요.”

“아, 그…… 그러니까…….”

김신록은 아까부터 말을 제대로 못 했다.

얼굴색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데 혈액순환에 문제가 없는지 걱정될 정도였다.

안다인은 말을 잇지 못하는 김신록을 상대로 생긋 웃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직접 응시하면 눈이 부실 것 같을 정도로 밝은 미소였다.

“김신록 선생님, 앞으로는 저랑 반 아이들이랑 자주 많이 놀아요.”

“다인아, 다인 학생…… 나는…….”

김신록은 평소 교사로서 하는 말투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당황한 듯하다.

안다인도 이 상황에 적응했는데, 김신록이 가장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부부가 김신록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애랑 잘 놀아 주렴.”

“……!”

안다인이 김신록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부부 역시 그를 어떻게 대할지 정한 것 같았다.

먼 옛날 아이와 놀고 싶어 하던 제호에게 답을 해 준 부부는 이번엔 안다인의 담임 김신록에게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애를 잘 부탁드려요, 김신록 선생님.”

부부가 김신록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김신록은 입술을 깨물었다 입을 열었다를 반복하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황지호가 다리에 힘이 풀린 김신록을 앉도록 권하는 사이, 화살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부부는 안다인에게 나를 은인이라고 소개하고, 양쪽 다 감사의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게 없다고 해도 내 말은 그냥 다 흘려듣는 것 같았다.

“의신이는 학교 친구예요. 학교생활 중에도 여러 번 도움을 받았는데, 이렇게 또…….”

안다인이 계속해서 저렇게 말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과정이 어떻건 부부가 부모라는 걸 알아본 것은 안다인 본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안다인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 만남은 매우 어색하게 끝나거나 슬픔과 고통만 남았을 거다.

사실상 내가 한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은인 소리를 하는 호랑이가 늘어나서 머리가 딱딱 아팠다.

“또 그 소리군. 아, 마침 할 말이 있다.”

한 게 없다는 말에 황지호가 끼어들었다.

단순히 끼어들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얻은 두 개의 호족의 신보는 네게 주려 한다. 은인에게 준다 하면 어느 호족도 이 몸의 결정을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황지호가 정신 나간 소리를 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건지 명계에 가는 길에 사용했던 향로, 부부가 지니고 있었던 초혼의 보옥을 내 쪽으로 밀었다.

테이블에 올라가 있는 두 개의 카드가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황지호는 나를 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샘에서 신보를 직접 얻지 못했지만 더 귀한 것을 얻었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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