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14화 (71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14)

91. 히든 피스 (6)

내가 호랑이들에게 한 제안 중 하나는 3학년 0반으로부터 완승을 거두는 것이다.

그래서 완승의 포석을 위해 수를 몇 가지 두었다.

첫 수로 이어폰 폭발을 유발시켜 산령이 도주할 시간을 벌었다.

두 번째 수로는 임연화와 3학년 0반을 분리시켰다.

사실 나는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었는데 황지호가 대뜸 지력을 쓸 것을 권했다.

‘황지호가 지력을 쓰라고 한 게 의외였지.’

황지호는 땅 아래에 마법진을 심어 둘 테니 지력으로 자극해 물리적으로 저들을 분단시키자고 했다.

‘지력 사용을 임시로 허락한 게 아니었나? 이렇게 막 허락해도 되나?’

지력을 두고 혈투를 벌이는 진족들을 생각하면 좀 그랬다.

황지호가 새긴 지력 허가 인장에는 무게가 없을 텐데, 괜히 손목이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한편, 흙의 폭류가 가라앉자 우기환은 나를 상대하는 것보다 3학년 0반의 안부 확인을 우선시했다.

“다들 무사하냐? 무사하지 않은 사람 손 들어.”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다들 무사하구나!”

우기환이 안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사하지 않으면 손을 어떻게 드나?

저 선배놈이 은광고 3학년의 수재들을 제치고 2등에 알박기를 한 게 맞나 의심스러워질 정도였다.

그야 힘 조절을 잘한 덕에 다들 무사하긴 했다.

“이거 네 짓이야? 지금 우리랑 힘으로 해보겠다는 거야?”

어쨌든 우기환은 선배놈들의 안부를 확인한 후, 뒤늦게 내 말에 답했다.

‘바로 덤빌 줄 알았는데, 의외네. 좀 더 도발해야 하나?’

힘으로 승부하자고 도발하자마자 달려들 줄 알았으나 우기환은 끝까지 내 의사를 확인하려고 했다.

후배와 싸우는 게 좀 그런 걸까?

원시인 대장에게 상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건 아닌가 보다.

“네, 힘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네가 우주의 기운을 노리지 않는다면 싸울 이유가 없다!”

“노리진 않아요. 하지만 그 우주의 기운이라는 건 선배님이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에요. 그러니 포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기환이 교신 스킬에서 우주라는 키워드를 느꼈다 해도 다룰 수 있고 없고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설령 초상우주와 접촉할 방법을 얻는다 해도 우기환이 여기에서 나를 이기지도 못한다면 초상우주의 힘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시는 우주의 기운을 노리지 않는다고 하신다면 싸울 이유가 없지만요. 싸우실 거면 무기를 드세요.”

실컷 도발하자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감정이 경악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야!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싸우자!”

“0반 후배놈의 버릇을 고쳐 주자!”

“저번에 담임 있다고 낚았을 때부터 때려 주고 싶었다!”

대놓고 후배놈이라니, 말이 심했다.

함근형 선생님께 혼났던 걸 잊었나?

나도 속으로 원시인들을 선배놈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파앗! 쉬익! 팟!

추적에 전념하느라 무기를 실체화하지 않았던 선배놈들도 무기를 꺼냈다.

우주의 기운과 결전을 벌이는 날이라서 그런지 들고 있는 아이템들의 희귀도가 제법 높았다.

나름 높은 희귀도의 이계에서 아이템 파밍이라도 한 걸까?

3년 동안 놀고만 있던 게 아닌가 보다.

그에 맞춰서 나와 백호군도 무기를 실체화시켰다.

이쪽 무기를 본 우기환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저거 학교에서 나눠 주는 공짜 무기잖아!”

우기환이 저렴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싸움에 내 상보심금파나 백호군의 백아(白牙)를 들 수는 없는 꼴 아닌가.

그래서 나와 백호군은 학교에서 학생에게 배부하는 희귀도 R급의 목검을 들기로 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선배놈들이 든 높은 희귀도의 무기에 비해서 목검은 나뭇가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선배놈들의 속을 더 긁는 것 같았다.

“작년에 금찬왕찬 놈과 싸울 때가 떠오르는군…….”

“그때도 패기 넘치는 0반 후배놈들이 우리에게 박살이 났지. 싸우자!”

금찬왕찬 입학 초기의 ‘지옥의 한 달’ 당시에 발생한 0반 서열 정리 사건을 말하는 건가.

결과적으로 올해도 0반 끼리의 싸움이 발생하게 되어 유감이다.

잘 생각해 보니 학기 초에 신문부 대표로 황지호가 금찬왕찬과 싸우지 않았나?

0반은 선후배끼리 싸울 운명인가 보다.

“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원시인 떼들을 보며 백호군에게 말했다.

“해금을 든 선배님부터 잡아.”

“알았다.”

국악부 소속의 선배놈이 해금 연주를 통해 거는 전방위 디버프 광림은 상당히 귀찮으니 먼저 처리하고 싶었다.

무려 아피스의 화신까지 발목을 잡을 정도니 제일 먼저 쓰러뜨리는 게 좋을 거다.

내게 지목당한 3학년 0반의 부반장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백호군이 날아가듯 앞으로 도약했다.

나도 전투 태세를 갖췄다.

〈스킬 ‘만물 사용’이 발동했습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시스템 음이 들렸다.

곧이어 우기환의 지시와 원시인들이 내지르는 기합으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소리가 뒤섞였다.

“안 돼! 부반장을 지켜라!”

“빨리 연주를 시작해!”

쉬이익!

“끄악!”

하지만 3학년 0반 부반장이 해금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 말총으로 된 활을 잡은 손에 목검이 날아왔다.

백호군이 던진 목검이었다.

제대로 가격당한 건지 부반장 선배놈은 벌겋게 부은 손을 부여잡고 자리에 무너졌다.

“손놀림이 보이지 않았어…….”

“저게 강한 담임이 말한 강한 근육인가!”

“수상한 후배놈부터 잡아라!”

백호군이 해금 연주자를 완전히 제압할 겸, 무기를 회수할 겸 달려가는 사이에 원시인들이 나를 노렸다.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단순히 원시인답게 내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다 대 일의 상황을 예측했기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따악! 퍽!

제일 먼저 달려든 선배놈들의 급소를 노리고 목검을 휘두르자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선배놈들은 학생치고는 제법 빠르긴 했지만 백호군과 훈련을 하고, 우마왕과 합을 나눈 덕에 몹시 느리게 보였다.

공격을 가해 오는 상대에게는 허를 찔러서 명치나 목 뒤를 목검으로 후려치고, 방어 태세를 취하는 상대로는 재빨리 뒤를 잡아 발로 걷어차 자세를 무너뜨렸다.

“무기 공격만으로는 못 잡아! 이능을 써!”

“제가 선배님들의 이능도 알고 있다는 걸 잊진 않으셨죠?”

우족과의 대결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할 때 3학년 0반의 수에 관해선 전부 들은 상태였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능을 소유한 선배놈들부터 노려 목검을 휘두르고, 급하게 쏜 이능은 주변에 있는 선배놈을 붙잡아 방패로 삼아 막아 버렸다.

선배놈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꽤 있는 덕에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크윽! 난전은 담임 상대로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우리 담임은 우리를 방패로 안 써!”

“담임은 이렇게 치사하게 안 싸우고 정면에서부터 하나씩 쓰러뜨린다!”

싸울 때도 담임 타령을 하다니, 정말 담임 사랑이 각별한 선배놈들이었다.

합을 몇 번 주고받자 슬슬 내 싸움 방법에 익숙해진 건지, 우기환이 날카로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능을 사용하는 선배놈들을 묶어 동시에 출력을 올리고, 내가 방패로 사용할 것 같은 선배놈들을 치우는 등 우기환은 대장다운 지휘를 하였다.

“상대는 1학년이고 한 명이야. 침착하게 싸워. 발부터 묶는다!”

고레벨의 얼음 이능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이능파를 끌어모으던 선배놈들의 손이 내 쪽으로 향했다.

이내 우기환의 신호가 떨어졌다.

“발사!”

채애앵!

하지만 그 스킬은 내게 닿지 않았다.

산산이 부수어지는 이능파의 잔해와 얼음 알갱이 속에서 백호군이 서 있었다.

백호군이 목검을 휘둘러 스킬을 저지했다는 걸 알아챈 선배놈들이 입을 떡 벌렸다.

“아, 아니…… 스킬 발현을 검압으로 취소시켜 버린다고?”

“강한 담임이 주먹으로 가끔 하는 그건가…….”

“부반장 옆에 함정 깔아 뒀잖아! 그건 어떻게 됐어!”

백호군의 손에는 회수한 목검 외에도 아이템 카드가 들려 있었다.

아이템 카드에는 해금이 그려져 있었다.

백호군은 부반장을 완전히 제압하고 이능 악기까지 빼앗아 온 것이다.

“그게 우족을 잡았던 함정이었나?”

백호군의 서늘한 시선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3학년 0반 부반장 주변으로 향했다.

검게 패인 구멍과 조각난 덫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내가 도발하는 사이 해금 연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은밀히 함정을 설치한 모양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들키지 않고 함정을 깔다니, 참 대단한 선배놈들이었다.

물론, 그 함정을 단숨에 파훼한 백호군은 더욱 대단했다.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너희의 담임에게도 통하지 않겠지.”

백호군의 위용에 사기가 꺾일 줄 알았는데, ‘담임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3학년 0반의 전의가 살아났다.

우기환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며 외쳤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 승부다! 가자!”

“으아아아아아!”

백호군과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선배놈들을 향해 검을 고쳐 쥐었다.

승부는 거의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바로 결판이 나지는 않았다.

백호군이 앞에 나서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면 아무리 목검을 쓰는 중이라 해도 3학년 0반이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백호군은 3학년 0반 학생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갈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백호군은 내게 맞춰서 보조할 뿐이었다.

‘엄청 편해.’

마치 내 머릿속을 읽은 듯한 움직임이었다.

비유하자면 아주 성능이 좋은 팔과 다리를 하나 더 사용하는 기분이었다.

황지호가 분신들과 협공해 싸운다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상보심금파와 무명의 운명을 다루는 법을 가르치고 영호(影虎)와 싸울 때, 내 버릇이나 움직임을 완전히 간파하고 거기에 맞춰 주는 걸까?

호족 최고의 무재는 무(武)를 가르치는 것도 최고인가 보다.

‘이렇게 기분 좋게 싸울 수 있다니!’

마지막으로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달려든 우기환을 쓰러뜨린 후.

나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투의 흔적으로 엉망이 된 천익산 여기저기에 선배놈들이 널려 있었다.

“끝났군.”

백호군의 손에는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무력화시킨 후 빼앗은 아이템 카드가 들려 있었다.

승부가 결정이 되어도 무리하게 달려들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 불필요한 저항을 막기 위해 카드를 회수하기로 사전에 정했었다.

카드를 회수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백호군의 상태였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네…….’

이기긴 했어도 나는 이렇게 지쳤는데.

백호군은 천신에 의해 힘이 봉인된 상태가 아닌가?

봉인되었는데도 힘 차이가 이렇게 나나?

이번엔 나는 광림이나 상보심금파 등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순 없지만, 백호군도 힘을 숨긴 상태에서 싸웠는데.

3학년 0반 선배놈들한테는 이겼으나 백호군에게는 진 기분이 들어 다소 울컥했다.

울컥함과 동시에 내 최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대단함에 뿌듯해지기는 했다.

감상을 접고 우선 이 자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선배님, 우주의 기운은 저도 다룰 수 없어요.”

“……뭐라고?”

분한 마음에 쏟아지는 눈물을 참고 있던 우기환이 몸을 벌떡 일으키다가 다시 쓰러졌다.

아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다.

몸 상태가 어떻든 일단 대화가 가능한 것 같으니 계속 말하기로 했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천익산에서 진족과 싸울 때 선배님들과 공투하는 대신 우주의 기운을 사용했을 거예요.”

초상우주의 힘을 사용해 적을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교신으로 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만신창이가 되는데 그 힘을 몸에 받아 사용하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렇다면 그 우주의 기운은 우리가 다뤄 보겠다. 넘겨!”

“저도 이기지 못하셨는데 어떻게 선배님이 다루실 수 있겠어요.”

“커억!”

맞는 말로 받아치자 우기환이 게거품을 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담임이 있다!”

“그래! 강한 담임이 너를 쓰러뜨리고 우주의 기운을 잡아 올 거다!”

우기환에 이어 여기저기 담임을 믿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강한 담임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화는 중단이다.

그때, 가장 먼저 전선에서 이탈했던 3학년 0반 부반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야, 저 부반장놈 수상하게 웃는데?”

나는 상대하지 않고 황지호와 임연화가 있을 토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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