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26)
92. 카운트다운 (7)
이 게임의 룰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게임 참가자는 긍정 혹은 부정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둘째, 문제 출제자는 ‘네’, ‘아니요’ 외에도 부연 설명을 할 수 있다.
단, 거짓말은 할 수 없다.
셋째, 지나치게 구체적인 질문은 삼간다.
예를 들어 ‘선물은 장갑입니까?’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실제로 질답 과정에서 추리에 성공한 건 한 사람인데, 그 질문 때문에 전원 강제로 정답을 맞히게 될 수도 있으니까.
황지호는 당장 질문을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0반 아이들은 신중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평소에도 반 아이들에게 수제 음식 잘 주잖아. 수제 음식일걸?”
“어떤 메뉴를 준비했냐가 문제로군요.”
“메뉴 하면 생일이니까 케이크겠죠.”
계속 비슷한 의견이 나오자 별생각 없던 애들도 케이크라는 예상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반 아이들은 황지호가 평소 요리를 잘한다는 점, 오늘이 권레나 생일이라는 점 등등을 고려해 수제 음식이라 단정 짓는 것 같았다.
물론 황지호가 요리를 잘하고, 반 아이들한테 자주 대접하고, 오늘이 권레나의 생일이라는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황지호가 골랐다는 선물과는 인과관계가 없어 보였다.
‘황지호는 답을 정해 두고 생각하면 맞힐 수 없을 거라고 했어.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았는데 단정 짓는 건 위험해.’
대국할 때도 상대가 둘 수를 내 맘대로 단정 짓고 시작하면 이길 수 없다.
내 생각이 옳다는 생각, 내가 예상한 수와 관련성이 적어 보이는 정보는 불필요하거나 잘못되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시야가 좁아진다.
하지만 단서를 외면하고, 조작하고 끼워 맞춘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절대다수가 아무리 그럴싸한 가설을 세우고 우겨 봤자 상자 안의 선물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니까 정답이든 오답이든 재밌겠지.’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결론에 달할지 기대해 보기로 했다.
그래도 나는 노친네에게 낙서당하는 건 싫으니 열심히 추리를 할 거다.
“그러면 질문할게. 지호가 준비한 선물은 직접 만든 거야?”
첫 번째 질문을 던질 권리는 권레나에게 있었다.
권레나의 질문에 황지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답은 ‘네’다. 이 몸이 솜씨를 발휘했지.”
“⋯⋯!”
반 아이들이 빠르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최근에 등교한 아이들보다는 그동안 황지호의 요리를 자주 맛본 아이들은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호가 솜씨를 발휘했다면 뭐⋯⋯ 답은 뻔하네요.”
“음⋯⋯ 정말 케이크일까?”
사월세음은 이미 정답 항목에 잘 보이도록 케이크라고 적어 두고 가리지도 않았다.
권레나는 ‘ㅋ’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고민에 잠겼다.
다음 질문은 가장 최근에 합류한 진정묵 차례였다.
“원재료의 가치만을 고려했을 때, 반에서 정한 지침의 가격을 넘어가오?”
아직 황지호의 손맛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진정묵은 비교적 객관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 반에서 주고받는 선물에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했다.
첫째, 은광고 근로 장학 아르바이트 일당 기준, 이를 초과하는 금액의 선물은 안 된다.
선물을 고를 때, 지나치게 비싼 선물을 준비해 부담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덤으로 호구 목우람이 파산하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둘째, 단, 직접 만든 선물은 예외로 한다.
이 사항은 민그린 때문에 만들어졌다.
선물을 받은 반 아이들 중에 파는 이들은 없었지만, 민그린 화백이 그린 그림의 가치를 시가로 따지면 반 친구들끼리 가볍게 주고받을 만한 선물이 아니었으니까.
황지호는 이 조항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몸이 만든 음식은 얼마를 주더라도 함부로 먹을 수 없다. 가치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 조항이 필요하다.
0반 돌아이 겸 차기 재벌 총수가 할 법한 소리에 반 아이들은 그냥 대충 듣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은 호족의 수장이 만든 음식이니까.
“답은 ‘아니요’다. 하지만 이 몸의 가치를 고려하면 ‘네’라고 답할 수도 있다. 대부분 내 노동력으로 만든 것이니까.”
즉, 황지호의 노동력이 없다면 가치가 그리 없는 선물인 셈이다.
애초에 직접 만든 시점에서 당연한 소리긴 했다.
“달걀, 박력분, 설탕, 버터⋯⋯ 케이크 하나 분량으로 치면 재료 가격 자체는 얼마 안 되죠.”
“가이드라인 정할 때도 ‘이 몸이 만든 음식은 비싸다’라고 했어.”
사월세음의 말에 독고미로도 넘어가기 시작했다.
케이크 파의 말만 들으면 정말 저 선물 내용물이 케이크인 것 같긴 하다.
다음은 옹길동의 차례였다.
“크고 화려한가?”
왜 정답 유추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질문을⋯⋯.
설마 황지호의 선물이 본인 것보다 주목을 받을까 봐 신경 쓰이는 걸까?
“추상적인 질문이군.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답하지. 이 몸이 만들지 않았으나 같은 성질을 지닌 것들과 비교했을 때, ‘네’라고 답할 수준이다. 외적인 부분도 중요한 요소 아닌가.”
“흠, 지호가 만드는 요리는 늘 크고 화려했지. 마음이 기우는군.”
저 말에 케이크 파가 한 명 더 늘었다.
황지호는 이어지는 반 아이들의 질문에 답했다.
케이크 파 아이들은 그 답을 케이크와 연관 짓고, 그럴싸한 가설이 세워졌다.
다음은 한이가 질문했다.
“설탕 들어갔어?”
“답은 ‘아니요’다. 이 몸은 친우의 건강을 생각한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에 케이크 파가 흔들렸으나 이는 잠깐이었다.
무설탕 케이크의 존재를 상기한 후, 케이크 파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황지호가 덧붙인 ‘건강을 생각한다’라는 말을 바탕으로 반 아이들이 추측했다.
“설탕을 대체하는 감미료를 넣었나 봐.”
“쟤 한이가 단것을 먹는 걸 걱정하던데.”
“MITRON의 케이크는 맛있지만 설탕이 좀 많이 들어가죠. 레나에게 선물할 겸, 한이를 배려할 겸 케이크를 만든 걸까요?”
황지호의 대답에 케이크설에 그럴싸한 비화가 추가되었다.
예전에 송대석이 ‘당뇨병 주의’라는 코멘트를 날렸고, 황지호가 당뇨에 걸리면 명의를 소개해 주겠다는 참 듣기 좋은 소리를 해 댔다.
그 후에도 황지호가 실컷 약 올리는 소리를 했기 때문에 노친네가 있을 때에는 한이도 설탕 섭취를 삼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 비화가 과연 권레나의 생일 선물 선택까지 이어졌을지는 의문이었다.
‘황지호의 답변에서 알게 된 건 ‘선물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았다’뿐이야. 황지호가 지켜야 할 룰은 질문에 긍정, 부정으로 답하는 것과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두 가지니까.
아직 질문 횟수가 남아 있었으나 이미 반 이상의 아이들이 ‘케이크’라는 답을 적어 두고 있었다.
다음은 목우람의 차례였다.
“⋯⋯소리를 낼 수 있습니까?”
목우람의 엉뚱한 질문에 반 아이들이 어리둥절했다.
설마 황지호가 악기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쟤가 악기를 만들 수 있겠냐.”
“하하하! 간단한 악기라면 만들 수는 있다.”
황지호가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소리에 목우람이 움찔했다.
그래 봤자 노친네가 이능 바이올린은 못 만들 것 같은데, 뭘 긴장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답변부터 하지. 답은 ‘네’다. 악기가 아닌 물질로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참고로 내 선물로 소리를 낼 수는 있겠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군.”
“케이크도 집어 던지면 소리가 나잖아.”
“좀 더 신중한 질문을 해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재밌는 질문이었어.”
이미 케이크라고 확신을 한 아이들이 많아서 무슨 질문이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후 이어지는 질문들도 재미를 위주로 던져졌다.
그렇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모두 던지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철저히 인과관계를 따져 ‘권레나의 생일 선물’과 관련된 정보, 황지호의 대답만을 고려해 가설을 세웠다.
내가 황지호에게 물었다.
“선물을 받는 상대의 안전을 생각해서 만든 거야?”
내 질문도 단순히 재미를 위해 던져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반 아이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황지호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신중하게 답했다.
“답은 ‘네’다. 감사의 마음도 담았지. 그 희생이 없었다면 다치는 이도 있었을 테니.”
“아⋯⋯.”
황지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깨닫고 반 아이들이 작게 탄성을 뱉었다.
권레나가 이능 바이올린을 희생해 마족의 사제로부터 아이들을 지켰던 건을 말하는가 보다.
우리가 게임하는 것을 싱글벙글 웃으며 지켜보던 영원의 호수 팀원들은 일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영원의 호수 쪽에서도 그 사건을 매우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내 답은 정해졌다.’
그 대답을 들으니 황지호가 권레나에게 무엇을 선물해 주고 싶었을지 떠올랐다.
아마 처음엔 황지호는 이능 바이올린을 선물해 주고 싶었지만, 권레나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거다.
은광고의 이사장으로서 주든, 반 친구로서 주든 이능 바이올린을 턱턱 받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능 바이올린의 거래 자체가 안 되니 구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권제인도 못 주고 있다는데 황지호가 어떻게 주겠어.’
이렇게 황지호와 선물에 관한 사고와 지금 한 대답을 모아 결론을 내렸다.
답을 공개하기 직전, 황지호가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맞히지 못하더라도 인정해 주지.”
“뭐,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가 아니라 그냥 케이크라고 써도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야?”
“하하하! 그렇다.”
“진짜 케이크인가 봐!”
‘케이크’라고 답을 적은 애들은 황지호 얼굴에 뭐라고 낙서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이 디바이스에 답을 적어 제출한 후, 드디어 황지호의 선물이 공개되었다.
“이 몸의 선물을 공개한다!”
황지호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있던 건 내 예상대로 아이템 카드였다.
“어? 케이크는?”
“⋯⋯아이템 카드라고요?”
“케이크를 카드화시킬 수도 있습니까?”
“SSR급 카드로군, 저걸 직접 만들었다고!”
케이크 파 아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황지호는 투명한 선물용 카드 케이스에 들어간 아이템 카드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무려 셋이나 맞혔군. 훌륭하다.”
황지호 뒤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나를 포함해 정답을 맞힌 세 명의 이름과 답안이 올라가 있었다.
[김유리] 결계 아이템 카드! ^▽^
[송대석] 이능 바이올린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내구도를 지닌 방어 관련 아이템.
[조의신] 방어 결계의 전개가 가능한 아이템 카드.
수많은 케이크 사이에서 긴 정답을 쓴 셋이 눈에 들어왔다.
우연인지 몰라도 셋 다 황지호가 호족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셋 외에도 황지호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아는 맹효돈은 마지막까지 망설였으나, 미식가께서는 케이크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케이크를 쓴 듯하다.
“하지만 솜씨를 발휘했다고⋯⋯.”
“이 몸은 결계술에 능하다. 솜씨를 발휘해 오늘의 주인공을 위한 선물을 만들었지.”
황지호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을 정해 두고 생각하거나 그 생각에 함께 휘말려 버린 아이들은 결국 오답에 달하고 말았다.
재검증을 시도했지만 황지호가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게 확실했다.
심지어 결계의 성질을 고려했을 때, 옹길동의 질문에 답한 대로 크고 화려했다.
황지호는 아이템 카드를 권레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힘든 선택을 해 줘서 고맙다. 다음에는 소중한 것을 희생하는 대신 이것을 써 다오.”
케이크도 좋지만, 저 아이템 카드도 충분히 황지호가 줄 만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