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29)
93. 손님 (1)
관종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오니 반 아이들은 귀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 아이들은 영원의 호수 팀 빌딩을 나서기 전 얼굴에 있는 낙서를 지우느라 바빴다.
“하하하! 이 몸의 걸작을 지우기 아까웠나 보군. 친우가 부탁한다면 한 번 더 그려 줄 테니 아쉬워하지 말고 지우도록.”
“한이야, 내가 지워 줄게!”
“…….”
낙서를 늦게 지우는 바람에 한이가 봉변을 당했다.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독고미로가 한이의 낙서를 지우는 내내 황지호가 처웃고, 그 모습을 김유리가 복잡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신화계 호족이 반 아이 하나를 친우라 부르고 장난질을 치니 유능한 반장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 같다.
‘황지호가 자꾸 저러면 송대석은 몰라도 김유리는 한이의 정체에 관해 알아차릴 것 같은데.’
노친네는 자신의 정체는 물론 친우의 정체까지 숨길 마음이 없는 걸까?
“이제 왔군. 더 늦었으면 마중 가려 했다.”
처웃던 황지호가 휙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친우와 노느라 정신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없어진 건 알았나 보다.
어쨌든, 딱히 할 말이 없었으므로 저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니 민그린이 보였다.
민그린은 목우람에게 할 말이 있는 건지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왜 이능 바이올린을 권레나에게 주지 않는 거냐고 묻고 싶은 걸까?
“그린아, 자꾸 저놈 쳐다보면 호구 옮아!”
“대석이랑 이야기하면 못된 게 옮을 것 같아.”
민그린이 망설이고, 송대석이 방해하는 바람에 민그린과 목우람의 대화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일 파티가 끝나자 영원의 호수 팀원들은 사람을 붙여 배웅해 줬다.
나와 황지호는 은련관으로 향할 예정이라 기숙사에 돌아가는 아이들과 함께 은광고로 향했다.
“부반장, 오늘은 기숙사 오냐?”
“조의신은 내 저택에 머무를 예정이다.”
“부반장한테 물었는데 왜 네가 답하냐?”
“하하하!”
맹효돈이 어처구니없어했지만, 황지호는 뻔뻔하게 굴었다.
오늘 기숙사에 남는 맹효돈과 목우람, 한이 세 사람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거나 상담이 필요하면 연락해.”
“……쟤가 너 귀찮게 하는 거 아니야?”
“친우여, 걱정하지 마라. 이 몸은 은인을 귀하게 여긴다.”
“너한테 안 물었어.”
한이는 내가 황지호한테 끌려다닌다고 생각한 건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한이는 청호 시절에도 말수는 적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을 잘 챙기는 타입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청호의 제자들이 긴 세월을 기다리고, 인간이 된 한이 곁에 있는 것 같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반장.”
목우람은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생일 파티를 할 때에는 그나마 권레나가 주변에 있어서 기운이 났지만, 지금은 아닌가 보다.
이능 바이올린 장인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길 바랄 뿐이었다.
세 사람이 거주 구역으로 향하는 걸 배웅한 후, 나와 황지호는 조경 구역의 은련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황지호가 앞장서자 청랑호의 호수 안개가 스르르 열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호, 조의신.”
은련관으로 들어서자 적호가 우리를 맞이했다.
적호 뒤편에는 명상을 하고 있는 김신록, 한발 물러나 있는 백호군 그리고 흐트러진 이능파를 두르고 있는 은서호와 은이호가 있었다.
“황호 님이랑 의신이 오빠다!”
“저희가 광림 쓰는 거 구경하실래요? 이제 좀 잘 쓰게 됐어요!”
오늘은 은서호와 은이호도 같이 훈련을 하기로 한 건가?
일단 겉보기에는 훈련을 하는 중인 건 은서호와 은이호뿐이고, 김신록은 쉬고 있는 것 같았다.
안광 스킬을 발동해 은서호와 은이호를 살피던 황지호가 말했다.
“이능파 상태가 별로군. 다음 기회에 보여 다오.”
“저희는 괜찮아요. 한 번 정도는 더 광림을 쓸 수 있어요. 의신이 형한테 광림을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요.”
“광림 연습 대신 저희도 호족분들과 싸우는 훈련을 하고 싶어요!”
단순히 광림을 보여 주려는 것뿐만 아니라 얼른 김신록과 같은 훈련을 하고 싶나 보다.
후예인 은서호와 은이호가 지금 김신록이 하는 훈련을 해 두면 좋겠지만, 막 광림을 사용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하긴 좀 위험할 것 같다.
“광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안 된다. 광림 외에도 전투 스킬을 연습해야 한다. 은광고의 수석을 노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치만 입학 실기 시험은 끝났잖아요!”
“입학시험이 끝이 아니다. 안다인을 동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안다인은 주수혁과 공동 수석으로 입학하여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방학 기간에도 정진했겠지.”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에게 안다인 이야기를 꺼내자 잠잠해졌다.
안다인이 호족의 일원이 되어서 그런 건지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
“다음에는 안다인과 같이 훈련을 하는 게 어떻느냐. 그 아이는 너희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진짜요? 다인이 언니가 저희와 친해지고 싶대요?”
“다인이 누나랑 같이 훈련해도 돼요?”
“저번 식사 자리에서 권해 봤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아, 그 아이는 반 아이들과 훈련이 있다고 하니 일정 조정이 필요하겠군.”
황지호는 분신을 활용해 안다인 일가 상황을 자주 살피곤 했는데, 식사 자리를 함께하며 그런 이야기를 했나 보다.
황지호가 안다인을 신경 써 줘서 아주 고마웠다.
안다인이 빠르게 호족 사이에 녹아드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았다.
‘그런데 안다인이 반 아이들과 훈련을 한다고? 그러면 유상훈도 같이 훈련하는 건가.’
1학년 1반의 단체 훈련 하니 김신록을 위해서 용제건과 싸우던 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설마 김신록을 위해 훈련하는 게 아닐까?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거의 인원 변경이 없는 0반과 달리 반 구성이 바뀔 텐데, 그래도 1반 아이들은 김신록을 위해서 계속 모이려나 보다.
‘2학년이 됐으니 특별반이 구성되겠지.’
은광고에서는 1학년 때에는 0반을 제외한 10개의 반이 반 평균이 비슷하도록 입학 성적별로 반 편성을 한다.
그렇기에 공동 수석인 안다인이 1반에, 주수혁이 2반에 각각 배치된 거다.
2학년이 되면 이러한 반 편성법이 조금 바뀐다.
특출나게 뛰어난 아이들을 1반에 배치한 후, 남은 9개 반의 평균이 비슷하도록 나눠서 반 편성을 시행한다.
그래서 보통 은광고 학생들의 목표 중의 하나는 2학년 1반, 3학년 1반에 들어가는 것이 된다.
‘수석과 차석은 어느 쪽이 0반이 아닌 한 같은 반에 소속하지. 염준열과 천동하가 같은 1반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 말은 즉, 2학년이 되면 주수혁과 안다인은 같은 반이 된다는 뜻이다!
플마고에서는 주수혁이 0반에 들어가는 바람에 두 주인공이 같은 반에 배치되지 못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주수혁이 0반에 들어갈 이유가 없으니 둘은 무사히 같은 반이 될 거다.
주수혁과 안다인이 함께 반 행사를 할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반 배치를 생각하니 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0반 구성원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
한 번 0반이 되었다고 해서 졸업할 때까지 0반에 소속하는 건 아니다.
0반은 잠재 가능성이 높은 학생이라는 명목으로 문제아, 교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학생들이 소속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문제아가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라고 판단되면 0반이 아닌 다른 반에 들어가도록 권하기도 한다.
‘0반이 아닌 다른 반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는 애들이 몇 명 있지.’
대표적인 인물은 김유리다.
김유리는 광림을 두려워해 자진해서 0반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광림 제어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으니 본인이 희망하면 0반이 아닌 반에도 갈 수 있을 거다.
김유리 정도 성적이면 1반행도 가능할 테니, 절친인 안다인과 같은 반에 가게 될 거다.
‘그 외에도 독고미로, 민그린, 송대석도 원한다면 다른 반에 갈 수 있겠지만, 저 셋은 남을 것 같아.’
세 사람이 0반에 배치된 이유는 그저 대놓고 등교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다.
등교를 잘 하고 있으니 0반에 배치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독고미로는 한이를 생각해서 남을 것 같고, 민그린과 송대석은 사람이 많은 걸 그리 좋아하지 않고 함근형 선생님을 잘 따르니 남을 것 같다.
나머지는 출신이나 속사정, 학교에서 벌인 괴상한 짓들 등등 때문에 자동으로 0반에 남게 될 거다.
“조의신, 안다인이 예비 2학년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증진시키기 위한 어떤 제안을 했다. 알고 있나?”
반 편성을 두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황지호가 말을 걸었다.
안다인이 어떤 제안을 했을지 생각해 봤지만, 바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반 아이들이랑 한다는 훈련이 관계있는 걸까?
내가 되묻기 전에 황지호가 먼저 답을 말했다.
“2학년 1반 담임을 김신록으로 하는 게 어떻냐는군.”
김신록이 2학년 1반 담임을 맡는 것과 예비 2학년들의 학습 의욕 증진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이유를 생각해 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먼저 은서호와 은이호가 답했다.
“2학년 1반은 특별반이죠? 그럼 적어도 상위 10% 안에 들어야 신록이 형네 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네요.”
“그럼 열심히 해서 들어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신록이 오빠가 0반 담임 해 주시면 안 돼요?”
둘의 말을 들으니 깨달았다.
김신록을 2학년 1반 특별반 담임으로 배정하고, 이어서 3학년 1반 특별반 담임까지 맡으면 팬들이 죽어라 공부할 것이다.
김신록을 위해서 용제건과도 싸우는 아이들인데 공부쯤이야 열심히 하지 않겠는가.
안다인의 지혜로운 제안에 감탄했다.
“하하하! 안다인이 먼저 말했으니 어렵겠군. 다음 1학년 0반 담임은 훌륭한 교사니 우선 1년 다녀 보고 생각하거라.”
“신록이 오빠네 반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인이 누나가 먼저 말했으면 어쩔 수 없죠…….”
다음 1학년 0반 담임은 아마 임연화가 되지 않을까?
제갈재걸은 금찬왕찬 일당이 놔주지 않을 거고, 우리 반 아이들도 함근형 선생님이 좋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남는 건 임연화 하나다.
임연화의 강함을 생각하면 다음 1학년 0반을 맡기에 적합할 거다.
‘다음 1학년 0반에는 은호, 은서호, 은이호가 소속하게 되니 평범한 교사가 맡긴 어려워. 강한 담임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거야.’
반 배정과 담임에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김신록이 벌게진 얼굴로 근처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명상을 마치고 인사를 하려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나 보다.
김신록을 두고 담임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호랑이들이 있는 게 쑥스럽나 보다.
황지호 표정을 보니 일부러 들으라고 김신록 주변에서 저 말들을 꺼낸 게 분명하다.
황지호는 김신록을 보면서 안다인이 얼마나 열심히 자신에게 부탁했는지 구구절절 설명해 댔다.
“다음 훈련에 관해 할 말이 있다.”
얼굴을 푹 숙인 김신록이 황지호에게 인사도 못 하고 있을 때, 백호군이 말을 꺼냈다.
제자를 배려해 황지호의 정신 공격을 중단시킨 것 같다.
황지호가 말을 멈추자 백호군이 나를 보며 말했다.
“조의신과 홍룡을 부르는 후예가 훈련을 도와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