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30화 (73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30)

93. 손님 (2)

붉은 사자 팀 빌딩으로 향하는 에어 리무진 안.

일정을 마치고 귀갓길에 오른 염준열이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염준열은 잘못 본 게 아닌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메시지의 발신인은 조의신이었는데, 염준열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의신이가, 스승님께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사실 조의신이 직접 도와달라고 한 건 아니었다.

조의신 보낸 메시지는 호족 측에서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길 텐데,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호족을 도울 예정이라고 했지. 만약 호족의 요청에 응하면 같이 무언가를 하게 되는 건가?’

염준열은 호족이 조의신과 함께 행동하는 것에 관해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학년 0반에는 호족의 수장이 있었고, 조의신과 친분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준열아, 좋은 일이 있었나 봐.”

용제건이 염준열을 향해 빙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늘 경호 역은 따로 있었으나 용제건은 멋대로 따라왔다.

언제는 마중 나온다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나오지 않는 등, 용제건은 승천 직전에도 자유롭게 살았다.

염준열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쓸쓸했지만, 용제건이 있는 동안 즐겁게 지내기 위해 속마음을 감추고 대했다.

“의신이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의신이가?”

“네, 호족 쪽에서 청룡 삼촌을 통해 제 파견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해요.”

염준열의 말을 듣자 용제건의 웃음이 짙어졌다.

용제건은 호족이 대체 염준열에게 무엇을 부탁할지 기대하는 것 같았다.

“우리 용족은 호족에게 빚이 있으니 네가 동의한다면 청룡이 허락할 거야. 우리도 호족에게 파견을 요청한 적이 있거든.”

“호족분이 붉은 사자 팀 빌딩에 오신 적이 있나요?”

“응, 너도 알고 있는 호랑이야.”

용제건은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기민한 염준열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제건이 형은 내가 맞히길 바라는 거구나.’

염준열은 용제건의 기대에 응하고자 그가 한 말을 되짚어 보며 추리했다.

호족 중에 붉은 사자 팀 빌딩에 방문한 적이 있는 자.

염준열도 알고 있는 자.

‘호족분들 중에 용족의 영역에 출입 가능한 건 제건이 형의 친구라고 들었어. 그리고 제건이 형은 친구가 하나뿐이라고 하니까…… 아.’

염준열은 용제건이 자신의 친구를 소개했던 자리를 떠올렸다.

용제건이 입이 짧은 친구를 위해 홍시 샤베트를 주문한 것도.

“김신록 선생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신록이는 솜씨가 좋거든.”

용제건의 뜬금없는 친구 자랑을 들으면서도 염준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건이 형, 제가 파견에 응할 때 같이 가실래요?”

“그럴까? 어떻게 할까. 내일부터 좀 바빠질 것 같은데.”

눈가리개를 착용하여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바람에 용제건의 표정은 예전보다 더 읽기 힘들었다.

가고 싶어 하는 건지,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염준열은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들이 진짜로 바빠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곧 내 생일이니까 파티를 준비하시느라 바빠지겠구나.’

매년 초, 염준열의 생일이 가까워지면 다들 깜짝 파티를 준비하느라 바빠진다.

파티의 장식품, 이벤트, 생일 선물 등을 감추기 위해 은근히 염준열을 멀리하고 비밀을 만들곤 했다.

염준열은 초등학생 시절,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니 소소하게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으나 그의 가족들은 대견스럽게 여기면서도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이후로 염준열은 가족들이 준비하는 생일 파티를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기대하기로 했다.

‘생일 파티 외에도 다들 뭔가 더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기분 탓일까? 아니면 10대 시절 마지막 생일이라 규모가 큰 파티를 준비하는 것뿐일까?’

염준열은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염준열의 예상대로 현재 이들은 무녀의 배신을 두고 경계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염준열을 무녀 사이에서 조용히 떼어 두고 그를 경호할 뿐, 무녀의 배신에 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확실하게 배신자로 낙인이 박힌 유황 외에는 누가 결백한지 알 수 없었던 탓이었다.

염준열을 아끼는 이들은 모든 것이 끝나면 그에게 밝히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아, 오늘도 무녀님들을 뵙지 못했는데 아직 몸이 안 좋으신가요? 병문안을 가도 될까요?”

“면회를 허락하긴 어려워. 준열이의 마음만 전해 줘.”

“유황 누나를 뵙는 것도 안 되나요?”

염준열이 하필 배신자 유황의 이름을 담자 리무진 안에 있던 이들이 긴장했다.

유황이 사전에 염준열에게 무슨 수를 쓴 게 아닌가 경계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용제건은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말했다.

“무녀의 계승식 때문에 그렇구나.”

“네, 유황 누나는 곧 무녀의 자리에서 내려오시잖아요. 이대로 가면 무녀를 그만두실 테까지 뵙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염준열의 말에 운전과 경호를 담당한 이들이 조용히 안도했다.

유황을 보겠다는 건 그저 염준열의 고운 심성에서 비롯된 말일 뿐이었다.

용제건은 긴장한 다른 이들과 달리 편안한 어조로 답했다.

“무녀를 그만둔다고 해서 당장 이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니란다. 홍이가 무녀가 된 이후에도 선대 무녀가 찾아왔던 걸 기억하니?”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용왕신의 무녀 계승식은 50년 주기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는 정식적인 주기로, 예기치 못한 사고나 선대 무녀의 선택 등으로 간이 계승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존하는 다섯 무녀 중, 홍이는 간이 계승식을 통해 무녀가 되었다.

선대 홍(紅)의 무녀는 몇 년 전 돌연 무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용왕신이 이를 받아들여 홍이를 새 무녀로 선정했다.

선대 무녀는 무녀 자리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붉은 사자 팀 빌딩에 몇 번 인사 온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한 번도 뵙지 못한 것 같은데…….’

염준열은 무녀에 관해 더 생각하려 했으나, 곧 용제건의 화술에 휘말려 다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염준열은 용제건이 무녀에 관한 화제를 피한다는 걸 눈치챘다.

‘제건이 형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 무녀에 관해서는 이제 말하지 말아야지.’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지만, 염준열은 용제건의 마음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    *    *

“손님을 만나러 가겠다.”

안다인과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라는 은호의 후예들이 먼저 귀가한 후, 황지호가 대뜸 손님을 맞이하겠다고 발언했다.

늦은 시각인데 황지호가 직접 가는 걸 보니 중요한 손님인가 보다.

누군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내가 알아야 할 손님이라면 황지호가 나중에 알아서 말할 거다.

그럼 황지호는 갈 길을 가게 하고 나는 먼저 귀가해야겠다.

“어딜 가는 거냐, 조의신. 너도 같이 간다.”

“나도?”

“그래.”

내 귀가 시도는 바로 중단되었다.

왜 나까지 황지호의 손님을 만나러 가야 하는 거지?

그 손님을 만나러 가는 이들 중에는 백호군, 적호, 김신록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이들을 전부 이끌고 간다는 건 특별한 손님인가 보다.

‘혹시 염준열이 벌써 온 건가?’

의욕이 넘치는 착한 제자라면 소식을 들은 즉시 바로 도우러 오겠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염준열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꼭 가겠다고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먼 길을 온 객이라 쉬기를 권했으나 그쪽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몸을 보고 싶어 하더군.”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그래, 한반도 밖에서 왔지.”

염준열에게 해외 스케줄이 있었나?

해외에 나간다면 염준열이 사전에 한마디 했을 텐데.

게다가 방학 중에, 그것도 이 시기에 용족이 염준열이 한반도 밖으로 나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 손님이란 건 염준열이 아닌 것 같다.

“하하하! 누군지 신경 쓰이나 보군. 정 궁금하면 말해 줄 수 있다.”

황지호가 또 약 올리는 소리를 했지만, 그냥 답하지 않기로 했다.

해외에서 온 손님이라고 하니 나름 짚이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내 예상대로 그자들이 왔나 보네.’

목적지에 도착하니 확신이 생겼다.

황지호가 향한 곳은 은광고의 유일한 마천루, 황명 타워였다.

‘황지호가 깊게 신뢰하는 자들은 아니라는 뜻이지.’

황지호가 매우 신뢰하는 자들, 호족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믿는 자들은 황명호 대저택으로 초대된다.

대저택 내에서도 본채, 별채로 갈리긴 하지만, 정문을 넘는 걸 허락받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호족을 제외한 대표적인 예가 용제건, 옥토연, 안다인이 있었다.

‘장남욱은 오래 머물지도 않았고 본채에 가진 못했지만, 정문을 넘는 걸 허락받았지.’

그리고 그럭저럭 신임을 얻었거나, 깊게 믿지는 않으나 예의를 차리는 상대, 황지호가 호족이라고 대대적으로 밝히지 않는 대상은 은광고의 은휘관에 초대된다.

은광고인들, 권제인, 홍규빈, 흑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저택의 본채, 별채도 아니고, 은광고의 은휘관도 아닌 황명 타워에서 맞이한다는 건 아직 신뢰하지 않는 상대라는 뜻이다.

“지하로 간다.”

나는 여태까지 옥상에서 권레나의 양부모를 처리하고, 타워 내에 입점한 케이크 뷔페와 레스토랑에 들르는 등 황명 타워에 자주 방문했다.

그러나 지하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황명 타워의 지하는 주차장 아니었나?

“이쪽이다, 조의신.”

황지호는 정문이 아닌 직원용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직원용 출입구로 들어간 후에 다소 복잡한 구조의 복도를 지나자, 황금 문으로 된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타워 내에 설치된 VIP 전용 엘리베이터보다 화려한 디자인인 걸 보니, 이건 황지호나 호족 전용인 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버튼이 하나도 없는 대신 터치 패널이 존재했다.

패널 위에 손을 올린 황지호가 말했다.

“주차장보다 더 아래로 간다.”

홀로그램에 떠오른 숫자는 황명 타워 안내도에 나온 지하 층수보다 더 낮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황지호가 제안했다.

“조의신, 까마귀 가면을 쓰고 체격을 바꾸는 게 어떤가? 그 가면과 이어진 자는 불쾌하지만, 상대는 너의 정체에 관해서 알지 못한다.”

“쓸게.”

나는 두말없이 까마귀 가면을 착용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까마귀 가면을 쓰는 게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 상대는 내가 까마귀 가면을 쓴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내가 까마귀 가면을 쓰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목적한 층에 도달했다.

문이 열리자 지상보다 서늘한 공기가 밀려들어 왔다.

낮은 조도의 조명 너머에 황지호가 말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초대 감사합니다.”

황명호의 비서 옆에 서 있는 비단옷 차림의 아이가 한국어로 유창하게 인사했다.

인사를 올린 아이는 리웨이(李伟), 중국 청두시의 야시(夜市)에서 만났던 아이였다.

그런데 손님은 리웨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리웨이의 뒤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눈을 가린 흑의의 존재가 우리를 향해 부드럽게 인사했다.

사수(四獸) 중 하나, 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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