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42화 (742/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42)

94. 용반호거 (4)

적호도 김신록처럼 용족의 영역 출입을 허락받은 건가?

적호는 김신록의 아버지고, 용제건과 용궁에 간 적도 있고, 훈련을 계기로 청룡과 얼굴을 몇 번 맞댔으니 신뢰를 쌓았을 거다.

호족과 용족의 동맹이 돈독해졌으니 적호가 방문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호족과 용족이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런데…….’

적호와 청룡이 지나치게 친해진 것 같다.

당장이라도 나와 김신록을 데리고 돌아갈 것 같았던 적호는 어느 사이엔가 청룡과 옛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란히 선 적호와 김신록 부자를 두고 청룡이 덕담을 던졌다.

청룡은 김신록을 향해 자상한 어조로 옛날에 그가 처음으로 용제건을 따라 용족의 영역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과 자네는 매우 닮았군.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자네 생각이 났다.”

“물론입니다. 제 아들이니까요. 아들이 몇 번 자고 갔다는데 인사가 늦었군요. 아들은 잘 놀다 갔습니까?”

청룡이 적호 기준 어린 아들이 더욱 어렸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아들 바보가 정신을 못 차리기 시작했다.

적호는 청룡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용제건의 유일한 친구 아닌가, 당연히 잘 대접했다. 용제건을 제외하면, 자네 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자는 없었네.”

“용제건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한밤중에 처소에 들어가 자는 얼굴을 구경하거나 속 긁는 소리를 해 대 깨웠지. 그래서 편히 쉬게 해 주려고 결계를 쳐 자네 아들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네.”

청룡은 아낌없이 그때 있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용제건은 처음 생긴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신난 건지 평소보다 더 유희계 여의보주다운 기질을 발휘해 장난질을 쳤다고 한다.

하여튼 용제건을 제외한 용족들은 먼 옛날부터 김신록에게 잘해 줬나 보다.

‘용족들은 다들 김신록을 보고 반가워했지.’

김신록이 올 때마다 친근하게 말을 거는 용족들을 보면 청룡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 분위기가 짐작이 갔다.

적호는 아들이 환영받는 분위기가 기쁜 건지 연신 웃고 있었다.

미성년자의 생일 파티라 술이 없었기에 청룡과 적호는 술 대신 차를 주고받으며 실컷 김신록의 옛날이야기를 떠들었다.

청룡은 가끔 염준열 자랑을 추임새처럼 넣고 염방열이 맞장구를 쳤는데, 의형제답게 둘의 호흡이 기가 막혔다.

‘나 혼자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야. 적호가 모르는 아들의 비화가 나오니까 답이 없네.’

구하러 왔다가 잡히는 게 아들이나 아버지나 똑같았다.

처음 적호가 등장했을 때에는 반드시 아들을 데려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다.

청룡이 의도한 건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건지 몰라도 적호를 다루는 솜씨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내일부터 호족과 용족은 같이 행동하게 되니, 청룡은 호족 일행이 이대로 묵고 가도 괜찮을 거라고 여기는 걸까?

어쨌든 적호는 실컷 즐기고 있지만 즐기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바로 김신록이었다.

팔불출끼리 의기투합하는 꼴을 지켜보며 김신록은 오도 가도 못했다.

“신록아, 너도 편히 앉아.”

“싫어.”

자꾸 나오는 옛날이야기와 아버지의 반응 때문에 얼굴이 벌게진 김신록이 투덜거렸다.

용제건이 히죽거리며 뭐라고 한마디 할 때마다 김신록의 얼굴에 어린 짜증이 깊어졌다.

그걸 지켜보던 촉룡이 말을 건넸다.

“얘야, 좀 앉았다 가는 게 어떻느냐.”

“……네.”

용제건이 아무리 약 올려도 꿋꿋하게 서 있던 김신록이 결국 권하는 대로 적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북풍과 태양 우화의 용족 버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앉자마자 청룡이 척척 차를 건네고 곶감 과자를 내미는 게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행동이었다.

김신록, 적호가 다 잡힌 것 같은데, 이대로 가면 이만 가 보겠다는 말을 꺼내기가 더 어려워질 거다.

“제건이 형, 의신이 방은 그대로인가요?”

“응, 저번에 의신이가 묵고 간 이후부터 계속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대로 쓸 수 있어.”

“잘됐네요.”

염준열과 용제건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내 방?

저번에 하루 자고 간 방을 설마 내 방이라고 부르는 건가.

용족들은 자고 가는 손님이 얼마 없어서 저렇게 방을 턱턱 내주는 걸까.

오늘 어쩌면 용족의 영역에 적호의 방이 추가될지도 모르겠다.

딩동.

그때, 이 자리에 없는 호랑이로부터 디바이스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황지호였다.

[황지호] 귀가가 늦어지는 걸 보니 적호도 붙잡힌 모양이군.

그야 안 오면 붙잡힌 거겠지.

‘적호를 보낸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체할 만한 이가 없었다.

백호군은 신역의 수인이니 은광구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은호나 산령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기껏해야 황지호의 비서나 죽호 정도가 떠오르는데, 저들이 용족의 영역에 들어오는 걸 허락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황지호] 내일 출발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은호도 계속 기다리는 중이다.

[황지호] 번거롭지만 강행 수단을 써야겠군.

그 강행 수단의 정체는 아주 단순하고 강력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청룡이 탄식하며 말했다.

“흐음, 아쉽지만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야겠군.”

청룡이 작게 떠오른 홀로그램을 꺼 버리고, 눈을 감았다 떴다.

힘을 개방했는지 청룡의 눈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돌려보내지 않으면 황호가 직접 오겠다고 한다. 디바이스 메시지만 보낸 게 아니라 12지 회담 전용 마법진에도 반응이 있는 걸 보니 진심인 것 같군.”

그 막대한 힘이 소모되는 마법진을 고작 호랑이들 귀가시키려고 쓴다고?

황지호가 돈 낭비, 힘 낭비를 참 잘했다.

청룡 입장에선 황지호가 그렇게까지 나왔는데 붙잡고 있겠다는 말을 하긴 어려울 거다.

“조금만 이야기하다가 돌아가려 했는데 늦어졌군요. 황호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 돌아가겠습니다.”

적호도 정신을 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호는 잠입 임무가 많아 디바이스 메시지 알람을 다 꺼 두어서 주변에 홀로그램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황지호가 메시지를 잔뜩 보내 뒀을 것 같다.

청룡이 붙잡지 않으니 다른 용족들도 아쉬워하면서 호랑이들을 보내 줬다.

용족들은 관계에 있어 선을 잘 긋는 대신 한 번 그 안으로 받아들인 대상에겐 정을 많이 주는 것 같다.

‘그만큼 무녀의 배신이 충격적일 텐데 잘 극복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플마고 속 용족과 붉은 사자 팀은 염준열의 죽음과 용족의 천적, 용살자 카드모스의 존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이 무너진 건 용왕신이 가호를 거두며 등을 돌리고, 무녀들이 배반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였다.

상실의 고통과 슬픔, 강적의 맹공 앞에서도 버티던 이들이 가족의 배신을 믿을 수 없어 하다가 무기력하게 죽거나 깊은 잠에 빠졌다.

만약 무녀들의 배신에 좀 더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처했다면, 많은 걸 잃었더라도 염준열의 복수에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의신아, 오늘 와 줘서 고마워. 자고 갔으면 했는데, 안 될 것 같네. 내년 생일에도 와 줘.”

“네, 초대해 주시면 꼭 올게요.”

“당연히 의신이를 초대할 거야.”

염준열이 한 번 말한 걸 어길 리가 없으니 내년에도 생일 파티에 초대할 것 같다.

내년 염준열 생일날 일정은 반드시 비워 둬야겠다.

‘염준열이 다시 가족들에게 축하받기 위해서는 용궁 사건을 무사히 해결해야 해.’

붉은 사자 팀 빌딩을 떠나 황명호 대저택으로 향하는 사이 점점 머릿속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연이은 파티로 들떠 있던 머리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플마고 속 용궁 시나리오와 현재 상황의 차이점, 혹시 모를 변수, 촉룡의 부탁, 용제건에게 빈 소원, 김신록이 한 훈련의 결과물 등등.

수많은 피스가 얽혀 있어 생각할 게 많았다.

어느덧 황명호 대저택에 도착했다.

적호 부자와 대문을 넘은 후, 평소 머물던 본채로 향하던 대신 저택 내 은호가 머무는 현대식 별채로 향했다.

“다녀오셨어요? 늦으셨네요.”

말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은호의 말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유호의 모습으로 있는 황지호는 은호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저러고 있으니 형이 혼나는 걸 즐겁게 구경하는 동생 같다.

“죄송합니다. 청룡과 환담을 나누다 그만 늦고 말았습니다.”

“서로 후예 자랑을 하다가 늦으셨나 보군요.”

은호가 마치 본 것처럼 정확하게 지적했다.

말이 옛이야기지 결국 내용의 본질은 후예 자랑이었다.

“내일 큰일을 앞두고 있는데 집 밖에서 주무시면 피로가 덜 풀리겠지요. 해야 할 이야기도 있고요.”

그렇게 따지면 호랑이 저택도 집 밖 아닌가?

일단 학적부 등에 올라간 내 집 주소는 기숙사로 되어 있을 텐데.

적호가 은호에게 잔소리를 듣는 내내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은호가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었다.

“의신이 형, 생일 파티는 잘 즐기고 귀가하셨나요? 형이라면 별문제 없었을 테지만요.”

은호가 ‘귀가’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묘하게 힘이 실린 것 같다.

은호가 말을 돌리자 적호가 이때다 싶었는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을 얹었다.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다.

“조의신 학생은 또래 학생보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죠. 청룡을 비롯한 용족들이 몇 차례 칭찬했습니다.”

“이전 세계에서 의신이 형은 어느 파티에 출석해도 순식간에 모든 초대객들의 환심을 샀죠.”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은호의 말대로 예전 세계에서도 파티에 출석한 적이 있긴 하지만, 모든 초대객 운운하는 건 좀 많이 나간 것 같다.

체스 기사 시절 스폰서들을 소개하는 자리에 불려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땐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다들 호의를 보낸 거다.

천성헌이 주최한 다과회의 경우, 앞에서 적의를 드러낸 이도 있지 않은가.

그 말을 적당히 포장해서 전하니 은호가 답했다.

“아니에요, 의신이 형. 그때 입을 함부로 놀린 분은 초대객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제가 말한 ‘모든 초대객’에는 해당하지 않지요.”

은호의 말에 의하면 초대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초대객이라 부를 수 없는 이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초대객의 지인, 초대객의 사돈의 인척 같은 이들이 그러했다.

“그런 분들은 본인이 초대받았다고 오해하시는 것 같아 오해를 풀고 보내 드렸죠.”

은호는 그때 초대객이 아니었다는 자들을 향해 웃었던 것처럼 온화한 표정이었다.

“어떤 오해가 있었지? 나중에 조의신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었나.”

“당연히 없었죠. 다시는 오해할 일이 없게 했으니까요.”

황지호와 은호의 문답에 호랑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방식을 써서 오해를 방지한 건지 모르겠지만, 호랑이들이 잘 쓰는 방법으로 해결한 듯했다.

적호를 향한 잔소리와 쓸데없는 내 옛날이야기를 일단락한 은호가 말했다.

“내일 용궁으로 가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어요.”

“무엇이지?”

은호는 나와 같은 것을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용왕신의 무녀 후보생, 은광고의 예비 1학년인 윤여랑에 관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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