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44화 (74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44)

94. 용반호거 (6)

윤여랑은 새해를 맞아 17세가 되었다.

17세가 되니 서구초법에 따라 팔목에 새긴 광림 봉인술식 인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광림 사용이 가능해졌다.

윤여랑이 얻은 광림은 ‘제의(祭儀) 기구 소환’으로, 의식에 필요한 도구를 불러내는 광림이었다.

자신의 광림이 무엇인지 안 순간, 윤여랑은 아주 조금 실망했다.

단순히 공격력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4대 프로 플레이어 팀 마스터 같은 강력한 광림을 얻고 싶었는데!’

예를 들자면 영원의 호수 팀 마스터인 푸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수면의 요영(謠詠)’처럼 물을 노래하게 해 적을 수면 속으로 삼켜 버리거나.

수국향기 팀 마스터인 백화난만(百花爛漫)의 ‘농화향만의(弄花香滿衣)’처럼 꽃보라를 불러 꽃이 품은 독과 가시 속에 적을 묻어 버리거나.

또한, 홍염의 제왕이 사용하는 주홍의 불꽃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절흑풍림의 팀 마스터 흑림의 검성이 사용하는 광림은 강력하긴 했지만, 다룰 자신이 없어 그쪽은 부럽지 않았다.

어쨌든, 공격력이 떨어지는 광림을 얻은 윤여랑은 조금 낙담하긴 했으나 이는 오래 가지 않았다.

‘용왕신의 무녀 시험을 치를 예정인 나한테 어울리는 광림이야. 소환 타입의 광림은 엄청 희귀하잖아. 희소성이 있어! 게다가 소환 타입 광림은 시전자에 따라 얼마든지 강력해질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아.’

윤여랑이 얻은 ‘제의(祭儀) 기구 소환’ 같은 타입의 소환류의 광림은 보통 두 가지의 형태로 발현되었다.

첫 번째, 한 번 얻은 것을 아공간에 저장했다가 광림을 사용할 때 부르는 형태.

은호가 제작한 백아와 웅렵조를 백호가 광림의 소환물로 사용하는 게 그 사례다.

이 경우, 얻은 대상을 소환체로 광림 그 자체에 동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한 광림의 소환체로 동화된 대상을 시전자의 능력과 연동하여 성장시킬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N급의 무기를 소환체로 동화시킨 후에 SSR급 이상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다.

‘갖고 있는 아이템은 없고, 제의 기구 아이템은 진짜 비싼 데다가 매물 자체도 없어. 제대로 광림을 다루려면 공부해야 해.’

소환류 광림이 발현되는 두 번째 형태.

광림 시전자의 지식과 상상을 바탕으로 구현화한 대상을 소환한다.

이는 오로지 소환사의 개인적인 능력에 달려 있다.

대상의 구체적인 구조부터 사용법, 파괴력, 효과 등등을 완전히 파악해야 제대로 된 소환물을 부를 수 있다.

조의신의 경우, 플레이어의 궤적을 통해 윤여랑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조의신은 설정집을 통달하고 인게임 플레이를 통해 설정집에 나오지 않은 부분도 파악하고, 소환물의 원전으로 추정되는 물건의 유래도 따로 조사했기에 강력한 제의 기구를 불러 능수능란하게 다뤄 냈다.

막 17세가 된 윤여랑은 조의신 정도로 광림을 다룰 수 없었다.

하지만 윤여랑은 미숙한 채로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계 공략을 열심히 해도 내 성에 차는 아이템을 사는 건 좀 어려울 거야. 그러니까 공부해야 해!’

새해 첫날, 가족과 TV를 보며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무사히 광림을 발현한 걸 축하받은 후.

윤여랑은 방으로 돌아가 잠에 드는 대신 제의 기구에 관해 공부했다.

처음에 만들고자 한 건 무선(巫扇)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깃대에 벽사의 주문을 새기고, 부채 얼굴에 태양과 달 그리고 용을 그리면 멋질 것 같았다.

‘그 부채를 불러내면 이름은 일월청룡선(日月靑龍扇)이라고 붙여야지!’

무선(巫扇)에 붙일 이름까지 생각해 두고 자신만만해하던 윤여랑이었지만, 끝내 부채를 소환하는 데에 실패했다.

부채의 소재, 구조, 그 안에 담길 벽사의 힘 등등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이능파 총량에도 문제가 있어 소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윤여랑은 무구(巫具) 중에서도 가장 간단한 구리 방울을 소환하는 데에 그쳤다.

다루기 까다로운 광림을 얻었는데 얻은 첫날에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 소환물을 불러낸 건 아주 훌륭한 성과였지만, 윤여랑은 만족하지 못했다.

‘혼자 공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그 시험에 합격하면 선배 무녀님들이나 용족분들이 가르쳐 주실까? 그분들께도 배우고 은광고에서도 공부하고 싶은데.’

용왕신의 무녀로 선정된 이들은 보통 외부 활동을 삼가고 용족의 곁에 머문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금지된 건 아니었다.

자애로운 용왕신은 자신과 용족을 잇는 역할을 소홀히 하지만 않는다면 무녀의 자유를 존중했다.

이계 충돌 후, 세계가 혼란스러워지고 용족이 용왕신과 멀어졌기에 무녀들은 자진해서 자유를 버리고 있던 것뿐이었다.

윤여랑은 용왕신에 의해 무녀의 후보로 선정되었을 때, 말을 전하러 온 용족으로부터 이러한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아직 용왕신의 무녀를 교외 동아리 활동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윤여랑은 은광고를 다니면서 무녀직을 겸임할 생각이었다.

‘이제 슬슬 잘까. 은광고 시험은 끝났지만 무녀 시험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일찍 자야지!’

실컷 공부하고 늦게 잠든 그날, 윤여랑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오색 채운이 가득했다.

윤여랑은 그 빛깔에 감탄하며 구름이 이어진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높이 든 윤여랑은 눈을 크게 떴다.

오색 채운 사이에 눈을 가린 거대한 용이 있었다.

거대한 용의 위용과 비늘의 아름다움에 윤여랑은 넋을 잃고 응시했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짓눌릴 것 같은 위압감을 느꼈지만 도저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안녕.]

용왕신이 짧게 윤여랑에게 인사했다.

그 짧은 인사를 듣는 순간, 윤여랑은 이능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웅장한 음성이 귀를 꿰뚫는 순간 정신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블랙아웃되는 정신 속에서 윤여랑은 얼빠진 생각을 했다.

‘목소리도 멋지시다.’

꿈속에서 기절하고 일어난 후.

윤여랑은 새해 첫날부터 몹시 신기하고 아름다운 꿈을 꿨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윤여랑은 다시 같은 용이 등장하는 꿈을 꿨다.

그 꿈은 윤여랑이 기절하지 않고 버틸 정도로 익숙해질 만큼 계속 이어졌다.

[안녕.]

“안녕하세요!”

윤여랑은 기절하지 않고 버티는 데에 성공해 인사를 하는 용에게 답인사를 했다.

윤여랑은 드디어 저 아름답고 멋진 용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게 웃었다.

하지만 계속 말을 걸어 준 용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왜 슬퍼 보일까.’

윤여랑은 덩달아 슬퍼지는 기분을 느끼며 용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용은 윤여랑이 기절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건지 조용히 그녀를 살핀 후, 입을 열었다.

[나는 용왕신이란다.]

*    *    *

용궁으로 향하는 날, 아침.

호랑이 저택의 객실에서 일어나니 천사가 아침을 알렸다.

왕!

천사는 착하게도 나와 같이 침대에서 자고 싶은 건지 잠시 전사로서의 천재성을 숨기고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눈을 뜬 게 기쁜 것처럼 내 주변을 깡총깡총 뛰며 꼬리를 흔들었기에 한참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천사를 품에 안고 출발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노크를 한 건 백호군이었다.

“아침 산책을 시키고 오겠다.”

끄응?

산책을 좋아하는 천사는 꼬리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긴 했지만, 백호군의 제안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건지 당황한 것 같았다.

어쩌면 산책을 가고 싶은데 착한 천사는 내가 붙잡고 있어서 못 가는 건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한 박자 늦게 그 생각에 미친 나는 허둥지둥 천사를 안고 있던 팔을 놓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백호군이 천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할 일을 하도록.”

백호군은 짧은 말을 끝으로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갔다.

백호군과 올무의 모습이 사라지자 낮아졌던 지능이 간신히 복구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할 일이 있었는데, 자칫하면 좀 늦을 뻔했다.

그런데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백호군은 언제 온 걸까?

‘천재 전사와 인사를 나누느라 열중해서 바깥소리가 안 들린 걸까? 아니면 백호군이 계속 기다리고 있던 걸까?’

내가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정도라면 백호군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만약 백호군이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올무와 산책하겠다고 말한 거라면, 배려심이 깊다는 뜻이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백호군이 내 최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뛰어나고 배려심이 남다르다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었다.

‘일단 디바이스 메시지부터 확인해 볼까.’

출발 직전, 디바이스 메시지를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부터 약 일주일간 용궁에 체류할 예정인데, 해저 깊은 곳에 위치한 데다 강력한 결계가 있어 디바이스 통신이 안 된다.

용궁과 지상의 용족 간의 연락은 보통 마법진이나 높은 레벨의 전령 스킬을 활용한다고 한다.

‘급한 일로 연락할 수 있으니 미리 말하고 가는 게 좋겠지.’

신문부원들과 해외 취재 여행을 간 사이 우리 반 아이들이 큰일을 겪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는 바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용궁은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면 호족 측에서 도움을 줄 수 있게 연락망을 정리해 두고 싶었다.

‘……주수혁은 아직도 정신적인 충격이 남아 있는 건가.’

주수혁과 맹효돈과 함께 있는 메시지방.

그곳에도 일단 일주일간 여행하느라 자리를 비운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주수혁은 약간 정신을 놓은 듯한 메시지를 보냈다.

[주수혁] rmfjgrnskgyehsdk

[주수혁] 아니, 그렇구나효돈아

[주수혁] 아니, 그렇구나. 의신아.

[주수혁] 조심해서 잘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주수혁의 머릿속에선 이상한 공식이 성립한 바람에 정신이 어지러운 것 같다.

황지호의 헛소리 때문에 나와 안다인은 가족 같은 사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주수혁 입장에선 내가 장애물 비슷한 무언가나 다름없을 텐데 여행 가는 나를 염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맹효돈] 주수혁 왜 저래

[맹효돈] 야 부반장 너 또 어디 가

[맹효돈] 작년에 갔던 거기 또 가냐

작년에 갔던 거기는 명계를 가리키는 걸까.

그때 내가 좀 더 맹효돈과 주수혁, 유상훈의 동선을 신경 썼다면 그 장면을 마주치지 않게 했을 텐데.

쓸데없는 장면을 보여 줘서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걱정하지 않도록 열심히 화제를 바꿔 말을 돌렸다.

맹효돈은 내 목적지를 두 번 정도 물어보다 포기하고, 다른 이야기에 어울려 줬다.

그 결과, 방윤섭이 설을 쇠고 나서 탁거산과의 훈련에 다시 참가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방윤섭이 회복됐나 보네.’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린 주수혁과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맹효돈과의 메시지 교환을 마친 후.

방윤섭의 회복 소식 외에도 좋은 소식을 몇 개 들었다.

그중 하나는 독고미로가 올해 어느 음원 녹음 작업에 참가할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독고미로는 당분간 보컬 트레이닝을 하느라 자신도 연락이 어려울 것 같다 했고, 반 아이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데뷔 싱글을 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

독고미로는 정식으로 데뷔 싱글을 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음원은 여러 개 있었다.

플레이리스트 경연을 하며 부른 음원들이 다른 경연자의 것들과 묶여서 발매가 됐으니까.

하지만 그걸 두고 데뷔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내 메시지를 받고 갑자기 긴장한 홍규빈과의 연락을 마지막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용족에서 마중이 왔다.”

황지호가 뚱한 목소리로 현관 쪽을 봤다.

현관에는 용이 하나 있었다.

낯선 곳에서의 결전을 앞둬 묘하게 날이 선 호랑이들과 달리, 마중 나온 용은 매우 들떠 보였다.

“나 왔어. 얼른 용궁 가자.”

용제건은 승천 직전에도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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