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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55화 (75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55)

95. 도룡지기 (9)

연회가 끝난 후, 아침.

용궁에는 해가 뜨지 않지만, 황룡의 배려로 일출 시간에 맞춰 빛나는 구름이 아침을 알렸다.

구름이 떠오른 것을 보고 황룡궁에서 눈을 뜬 용궁의 무녀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용궁의 무녀 중 최고참이 나타나자 불침번을 섰던 무녀가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불침번의 태도에 최고참 무녀가 면사 뒤에서 미간을 좁혔다.

“황룡 님이 보이지 않는구나.”

“죄송합니다. 흑룡궁으로 향하신 후, 행적이 묘연합니다.”

“밤새 황룡 님의 행방을 놓친 거냐? 유황 님이 좋게 여기지 않을 거다.”

“정말 죄송합니다!”

최고참 무녀는 온화하게 말하는 듯했지만, 불침번을 선 무녀는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며 두려워했다.

무리에서 몇 발짝 떨어져 서 있는 무녀를 보면서 몸서리치는 게, 마치 그녀처럼 따돌림을 당할까 무서워하는 듯했다.

현재 그 따돌림의 대상인 막내 무녀는 무녀들 사이의 기묘한 기류를 느끼고 속으로 코웃음 쳤다.

‘황룡 님이 자리를 비우신 걸 두고 왜 유황 무녀가 좋게 생각하지 않는 건데?’

폐쇄된 무녀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궂은일을 떠맡은 무녀는 용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막내였다.

용궁의 무녀 중 막내는 몇 년 전, 홍(紅)의 무녀가 돌연 무녀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해 간이 계승식을 열었을 때 후보로 꼽힌 이였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탈락했지만, 용궁에 남기를 택했다.

용왕신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갸륵한 마음 탓이 아니었다.

그저 갈 곳이 없었고, 용왕신이나 황룡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걸로 트집 잡아서 갈구고, 그걸로 서열 정리를 하려는 건가? 에휴, 의식주가 보장되니까 참는다. 밥도 맛없게 하면서 맨날 싸우기만 하고.’

막내 무녀는 속이 시커먼 무녀들의 사이에 잘 섞이지 못했다.

처음에는 신입이라고 이것저것 잘 챙겨 줬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녀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 시작은 별것 아닌 질문이었다.

―너는 어째서 용궁의 무녀가 되길 택한 거니?

―지상에는 더 즐거운 일이 많지 않니?

그 질문을 들은 막내 무녀는 곱게 자란 무녀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상엔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의식주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집이 정말로 가난해서 그럴 수도 있고, 가난하지 않아도 부모가 자식을 쥐고 흔들기 위해 의식주를 두고 위협하는 경우가 그러했다.

막내 무녀는 그중 후자의 경우로, 정식 플레이어가 된 후에는 이계 공략을 해서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내쫓겠다는 부모의 협박을 들으며 살았다.

그리 강한 이능을 타고나지 않았기에 이계 공략을 무서워하던 그녀는 언젠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녀에게 이계 공략의 공포, 의식주 걱정, 부모의 협박이 없는 용궁은 천국 같았다.

―용궁이 좋아서요. 계속 여기에서 지내고 싶어요.

―계속 용궁에서 지내고 싶은 거구나!

막내 무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무녀들은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갑자기 막내 무녀를 둘러싸고 그들이 열을 올리며 말을 쏟아 냈다.

―우리 중에선 백 년이 넘게 산 자도 있단다. 진족 중에서는 수천 년을 산 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우리도 그들처럼 영원토록 젊음을 누리면서 살 수도 있겠지.

―영원히 용궁에서 지내면 즐거울 거야.

막내 무녀는 저들의 하는 말에 질려 버렸다.

백 년도 긴데 수천 년이라니!

막내 무녀는 그 정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무병장수하고 싶긴 한데,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진 않은데요. 제 친구들 죽을 때 같이 죽을래요.

황룡에게 부탁하면 외부에 편지를 전해 주기 때문에 막내 무녀는 몇 안 되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었다.

거리는 멀어졌지만,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이 다 죽은 후에도 천년만년 살 생각은 없었다.

이 답변이 무녀들의 심기를 거스른 건지 그 뒤로 막내 무녀는 따돌림을 당하게 됐다.

무시당한다고 해서 의식주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기에 막내 무녀는 별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준비하는 음식은 묘하게 식욕을 떨어뜨렸기에 눈치 안 보고 직접 해 먹을 수 있게 돼서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툭하면 궂은 일, 귀찮은 일을 떠맡기긴 했지만 말이다.

‘윤여랑이라고 했던가. 오늘도 나한테 그 후보생을 떠맡기겠지.’

유독 힘이 넘치는 후보생이 하나 있었다.

최고참 무녀는 그 후보생의 안내를 막내 무녀에게 떠맡기고, 그녀의 일과를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말이 안내지 사고를 치거나 당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경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행여 그 후보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모든 책임은 막내 무녀가 질 게 뻔하기에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무리 공정한 황룡이라도 후보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막내 무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 후보생을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잘 모르겠지만, 쟤들 무슨 짓을 꾸미는 것 같네.’

막내 무녀는 황색 면사 뒤에서 상황을 요리조리 살폈다.

용왕신의 무녀들이 황룡궁에 머물 때, 그들은 막내 무녀의 눈과 귀가 없는 자리에서 만났다.

딱히 그 자리에 끼워 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홍의 무녀와 이야기하지 못한 건 아쉬웠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간이 계승식 때 같이 시험을 치르며 안면을 튼 사이였기에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다.

‘착한 애였지. 속이 시커먼 것들하고 지내다가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홍의 무녀에 관해 걱정하려다가 막내 무녀는 생각을 멈췄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인 데다, 윤여랑의 탐험에 끌려다녀야 하는 상황에 남 걱정은 사치였다.

“막내야, 듣고 있니? 후보생이 용궁을 어지럽히지 않게 제대로 안내하렴. 그새 안내한 사람을 본받은 건지 천방지축이구나.”

“네에.”

“이번에는 손님도 있으니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게 주의해야지. 네가 비록 배움과 연식이 얕다고 하나 너는 용궁의 무녀란다.”

“네에.”

“대답하는 목소리에 기품이 전혀 없구나. 못 배운 티를 그만 내렴.”

어느 사이엔가 갈굼의 대상은 막내 무녀가 되어 있었지만, 막내 무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모든 말에 막내 무녀를 깎아내리는 말이 섞여도 정작 듣는 사람은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흔적이 남는 괴롭힘을 하면 내가 바로 황룡 님한테 증거를 모아 일러바칠 테니까, 말로만 저러거나 무시밖에 못 하지. 선을 넘기면 황룡 님과 손님 앞에서 개망신을 줄 거야.’

무녀들의 좁은 사회 속에선 권모술수가 넘쳤지만, 현대 사회의 정글도 만만한 곳이 아니었고 막내 무녀는 그 정글 속을 경험한 인물이었다.

막내 무녀가 ‘네’와 ‘에’의 중간 발음을 내어 성의 없이 답하고 있을 때였다.

“아침부터 소란스럽구나.”

“황룡 님!”

구름을 이끌고 황룡이 느긋하게 걸어왔다.

황룡은 자신에 방에 들르지 않은 것인지, 연회에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최고참 무녀가 맨 앞에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간밤에 자리를 비우셔서 걱정했습니다.”

“제건이와 할 말이 많았다. 제건이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으니 자주 자리를 비울 것이다.”

황룡은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무녀들과 말을 나눌 때마다 그 피로는 급격하게 커지는 듯했다.

“환담이 길어져 피곤하신 듯합니다.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괜찮다. 연회 때 술이 과했던 모양이다…… 응?”

황룡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천장을 바라보는 황룡의 시선을 따라 무녀들도 고개를 돌렸다.

막내 무녀도 덩달아 위쪽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황룡은 눈가리개를 착용했기에 표정을 읽기는 어려웠지만, 늘 미소가 걸려 있던 입꼬리가 굳어 있었다.

‘황룡 님이 왜 저러시지?’

막내 무녀는 황룡이 보는 방향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해 보았다.

뭔가 불쾌한 느낌이 밀려오는 것 같긴 했지만, 그녀의 능력으로는 그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황룡 님? 무슨 문제라도…….”

최고참 무녀가 다시 말을 걸자 황룡이 고개를 돌렸다.

황룡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소대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다. 어제 제건이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말이다.”

“부디 무리하지 마시옵소서.”

황룡이 좀 이상하게 굴긴 했지만, 더 이상한 용제건이 있었기에 다들 넘어간 듯했다.

특히 연배가 있는 무녀들은 용제건의 장난질을 본 적이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용제건에 관해서 잘 모르는 막내 무녀만이 황룡의 이상한 태도를 머릿속에 새겼다.

*    *    *

연회가 끝나고 며칠 뒤, 백룡궁.

윤여랑은 오늘 백룡궁을 탐험할 예정이라고 하니, 나도 그쪽으로 향하기로 했다.

청룡궁을 나서기 전, 행선지를 밝히자 적호가 아쉬워했다.

“서쪽에 있는 백룡궁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는 갈 수 없겠군요. 오늘 용왕신의 무녀들이 자리를 비운다고 하나 백룡궁은 무녀가 머무는 곳이니 부디 몸조심하시길.”

“백룡궁으로 갈 거야? 그럼 나랑 신록이는 황룡궁으로 갈게.”

“왜 내가 갈 곳을 네가 정해?”

“안 갈 거야?”

적호의 배웅을 받으며 청룡궁을 나섰다.

용제건과 김신록은 잠시 행선지를 두고 투닥거렸지만 결국 황룡궁으로, 나는 백룡궁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용궁의 지리에 적응했기에 따로 움직여도 괜찮다는 판단의 결과였다.

백룡궁의 정문에 도착하자 마침 탐험을 시작한 윤여랑이 도착해 있었다.

“의신이 선배! 안녕하세요!”

어느덧 윤여랑이 부르는 내 호칭은 의신이 오빠에서 의신이 선배로 굳어졌다.

윤여랑은 붙임성이 좋아서 나 외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곤 했다.

“백룡궁에 들르신 건가요?”

“백룡궁 구경도 하고, 너랑 이야기도 하려고. 모처럼 후배를 만났는데 제대로 이야기도 못 했잖아.”

“와, 진짜요? 그럼 같이 탐험해요! 은광고에 관해서 묻고 싶은 게 많았어요.”

쉼 없이 재잘거리는 윤여랑 뒤에는 지쳐 보이는 운룡과 용궁의 무녀가 있었다.

며칠 내내 시달린 운룡은 구름 위에 축 늘어져 있었고, 용궁의 무녀 중 막내라는 무녀는 좀 비틀거렸다.

‘저 막내 무녀는 홍의 무녀와 같이 시험을 치렀다고 했지. 용궁에 소속된 지 몇 년 안 되었어.’

면사를 쓰고 있어서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모든 무녀들의 대략적인 프로필과 구분법은 모두 익혀 두었다.

저 막내 무녀는 다른 용궁의 무녀와 잘 섞이지 못하는 무녀로, 요새 윤여랑에게 실컷 휘둘리는 중이다.

막내 무녀에 관한 정보를 떠올리며 백룡궁에 들어섰을 때였다.

“손님이 오셨군요.”

정원을 통과했을 때,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유황이었다.

“제 뒤를 이을 후보생 중에 아주 활발한 아이가 있다고 들었어요. 만나 보고 싶었답니다.”

오늘 용왕신의 무녀들은 황룡궁에서 시험 준비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

유황은 시험 준비를 돕는 대신 이 자리에 남은 듯했다.

갑자기 유황이 왜 일정을 바꾼 건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을 때였다.

“나와 마음이 맞는구나.”

다정한 말씨의 목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구름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이번에 나타난 건 황룡이었다.

“나도 이 후보생과 이야기하고 싶었단다.”

예기치 못한 만남 앞에서 유황과 황룡은 서로를 마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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