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59화 (75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59)

96. 오룡쟁주 (2)

‘플마고에서는 윤여랑이 마지막으로 노래했었지.’

플마고에서도 첫 번째 주제는 노래로, 황운호에서 시험을 치렀다.

윤여랑보다 먼저 두 후보생들이 노래를 불렀으나 구름과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후보생들은 어쩔 줄 몰라 했고 황룡은 당혹스러워했다.

황룡은 여태껏 다양한 후보생들을 봐 왔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 겪어 봤을 것이다.

노래에 용의 힘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두 후보생의 자질이 바닥이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윤여랑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노래를 잘 부르면 저 구름하고 안개가 사라지나요?

―그렇다. 이 호수 주변에 있는 것은 용왕신과 가까이에 있는 용, 나 황룡이 부른 것들이다.

―하지만 저 구름과 안개에는 용의 힘 말고 다른 것도 섞여 있잖아요?

윤여랑은 구름과 안개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말했다.

윤여랑의 말 그대로, 플마고 속의 황운호는 황룡의 힘 외에도 다양한 것이 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무기의 비늘을 먹은 황룡은 그 말뜻을 인지할 수 없었다.

‘황룡도, 용궁에 있는 호수도 전부 무녀의 수작에 당한 상태였겠지.’

격노하여 윤여랑을 질책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황룡은 진지하게 그 말뜻을 생각해 보려 했다.

용왕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황룡은 용왕신이 선택한 후보생의 발언도 귀담아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녀들이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후보생을 대신해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용왕신의 무녀 중 하나가 나서 호수 앞에 섰다.

무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노랫소리에 맞춰 구름과 안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 탓에 황룡의 의심도 금방 잠식되었다.

사라진 구름과 안개 대신 남은 빛의 흔적이 황운호를 가득 메우는 장면은 보기에 아름다웠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했다.

황룡의 의문을 불식시키고 윤여랑을 사기꾼으로 몰아가기 위한 간계였으니까.

‘플마고 속의 무녀는 이무기의 힘을 다뤄 구름과 안개를 치웠겠지. 황룡은 잠식된 상태라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고.’

용궁에 온 이후, 유일하게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윤여랑이 이무기의 존재를 감지했으나 플마고 속에선 이미 무녀들이 득세한 상황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자리에서는 윤여랑이 혼자 싸울 필요가 없었다.

“어떤 노래를 부를 거지?”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의신이 오빠…… 선배가 반주했던 곡이에요.”

윤여랑이 곡명을 말하자 제목을 들어 본 이들이 몇몇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윤여랑이 택한 곡은 독고미로가 은광고 축제 때 우리 반 아이들의 반주로 불렀던 노래였다.

독고미로가 데스 매치 과제 곡으로 버스킹을 하며 불렀기에 음원이 공개된 상태다.

하지만 윤여랑이 택한 건 다 같이 연주하기 위해 목우람이 직접 편곡한 버전이라 반주 음원이 없을 것이다.

이 곡이라면 트라이앵글을 칠 수 있을 텐데, 악기가 준비되지 않아서 아쉽게 되었다.

“그럼 부르겠습니다!”

윤여랑은 무반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독고미로가 부르는 노래는 아이돌 지망생답다는 느낌이 든다면, 윤여랑이 부르는 노래는 음악 수행평가에서 A를 받는 아이가 부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고미로보다 기교는 떨어지지만, 잘 부른다. 목소리가 크고 밝아서 듣기 좋아.’

용왕신이 저 노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다만, 윤여랑이 저렇게 열심히 잘 부르고 있는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하지만 후렴에 가까워져도 황운호를 덮은 구름과 안개는 그대로였다.

윤여랑이 이대로 노래만 부른다면 플마고 때와 같은 꼴이 날 거다.

‘지금 호수의 상태는 가까이에서 보는 윤여랑이 더 잘 알고 있겠지. 나와 한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

수는 이미 둔 상태였다.

비밀을 감출 줄 모르는 윤여랑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한 수를 두었다.

나는 윤여랑의 용궁 탐험에 어울리던 도중, 이런 말을 했다.

―벽사 스킬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고 들었어. 무녀들이 벽사의 힘을 다룬다는 것도.

백호군이 대검으로 삿된 기운을 베어 내는 것도, 내가 윤여랑의 힘을 빌려 부채를 휘두르는 것도 벽사에 해당한다.

벽사 스킬은 시전자의 능력에 맞춰서 발현되므로 언뜻 보기에 벽사와 무관해 보여도 엮이는 경우가 있다.

그 점을 윤여랑에게 설명한 후 덧붙였다.

―무녀 계승식에서 자질을 확인한다면, 시험 과제에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벽사가 포함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 그렇네요. 저 벽사 스킬 쓸 수 있어요! 어떻게 시험이 나올지 모르니까 대비해야겠네요.

윤여랑은 빈말을 할 줄 모르니 여러 상황을 상정해 정말로 대비를 해 뒀을 거다.

믿고 기다리고 있을 때, 멀리서 노래를 부르는 윤여랑과 눈이 마주쳤다.

윤여랑은 싱긋 웃더니 양손을 모았다.

노래가 후렴부에 도입하는 순간, 모은 손바닥에서 이능파가 발산되었다.

파아아앗!

이능파를 감지한 이들의 시선이 윤여랑의 손에 쏠렸다.

적호와 김신록의 눈에 이채가 감도는 게, 안광을 사용해 지켜보는 듯했다.

용족들도 주목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능파다.”

“광림을 사용하는 것 같군.”

빛이 사그라들자 윤여랑의 마주친 손에 주먹 반 개 정도 되는 크기의 무언가가 나타났다.

청실과 홍실 장식이 되어 있는 구리 방울이었다.

윤여랑은 광림, 제의(祭儀) 기구 소환을 사용해 구리 방울을 불러낸 것이다.

딸랑.

방울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자 공기가 가늘게 떨렸다.

윤여랑의 이능파와 소리가 섞여 공기가 맑아지는 감각이 들었다.

윤여랑은 구리 방울을 흔들어 벽사 스킬을 발동시키며 노래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흔드는 게 아니라 노래에 맞추고 있었다.

‘내가 트라이앵글을 쳤던 타이밍에 맞춰서 구리 방울을 흔들고 있잖아.’

윤여랑은 노래에 맞춰서 구리 방울을 흔드는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박자를 잘 맞추는 걸까.

윤여랑의 방울 소리가 노래와 잘 어우러진 덕에 벽사 스킬이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사아아!

후렴구가 끝날 무렵, 시야를 가리던 구름과 안개가 조금씩 녹아서 사라져 갔다.

여러 가지 힘으로 포장해 가리고 있지만, 저 힘은 결국 삿된 것이다.

벽사 스킬 앞에서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지간한 벽사 스킬로는 저걸 어찌할 수 없겠지. 하지만 윤여랑은 자질이 뛰어난 데다, 용에게 위해를 가하는 존재에 강하지.’

무녀들은 용왕신과 용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무녀는 본래 용을 해하는 적에게 특효를 발휘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 점 때문에 흑막은 용족을 해하기 전에 무녀부터 회유했을지도 모른다.

무녀들 사이에 조용히 동요가 퍼지는 게 보였다.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긴장되고 벅찰 시험 중에 누군가가 벽사 스킬을 사용하리라는 것도, 또, 그 벽사 스킬에 무녀들의 수가 무너지리라는 것도 예상치 못한 듯했다.

딸랑.

어느덧 윤여랑의 노래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청량한 방울 소리가 울렸을 때에는 구름과 안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윤여랑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황운호를 보고 밝게 웃었다.

짝짝짝!

윤여랑이 노래를 마친 것을 보고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박수를 보냈다.

윤여랑의 첫 라이브와 벽사를 눈앞에서 본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열성적으로 성원을 보내자 감탄하느라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잊고 있던 듯한 용족과 호랑이 손님들도 손뼉을 마주쳤다.

갈채 속에서 윤여랑이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딸랑, 딸랑.

윤여랑은 아직 소환을 해제하지 않은 구리 방울을 높이 들어 흔들며 화답했다.

윤여랑은 지친 티를 전혀 내지 않았지만, 광림에 이어서 벽사 스킬을 사용하니 좀 힘에 부쳤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황룡이 황금의 실로 자수가 놓인 손수건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멋진 노래였다. 네 광림으로 불러낸 방울 소리도 훌륭했다.”

“모처럼 노래하니까 간단한 연출을 섞어 봤어요! 제가 직접 반주하는 건 괜찮죠?”

당연히 괜찮을 것이다.

방울 연주 타이밍을 정말 잘 맞추던데 나보다 더 트라이앵글을 잘 치지 않을까?

윤여랑은 용왕신의 무녀로서의 자질만 뛰어난 게 아니라 벽사와 노래, 악기 연주에도 소질이 있는 듯하다.

“다음 후보생의 노래를 듣기 전에 쉬어 가겠다. 구름과 안개를 다시 불러내고, 연주할 준비를 해야겠구나.”

“나도 돕겠다.”

“고맙다, 청룡.”

황룡의 선언에 윤여랑 뒤에 연주할 처지가 된 후보생들이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조금 쉬었다 가는 편이 덜 긴장될 것이다.

‘황룡 하나면 모를까, 청룡도 같이 행동하니 지금 무녀들이 나서지는 못하겠지.’

황룡과 청룡이 황운호의 호숫물로 안개를 만들고 구름을 만드는 동안, 무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들리지 않게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용족들 앞에서 티 안 나게 회의를 하긴 어려울 거다.

게다가 쉬는 시간을 틈타 용제건이 무녀들의 속을 뒤집으러 출동했다.

“소원은 생각했어? 아직 첫 번째 시험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급했나. 소원 후보라도 알려 주면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소원 후보라는 건 대체 뭔 소린가 싶었는데, 그냥 용제건이 무녀들의 속을 휘젓기 위한 재료의 일환이었다.

“저번에 말한 대로 유황의 불로불사라든가. 후보를 미리 정하면 투표를 해서 뽑을 수도 있잖아. 아니다.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납득하기 편하겠지?”

몇 마디로 무녀들을 혼란 속에 밀어 넣은 용제건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김신록과 용족들이 질린 표정으로 봤지만 용제건은 신경도 안 쓰고 무녀들을 관찰했다.

무녀들은 표정을 감출 수 있는 면사를 착용 중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사이에 후보생들은 서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다른 후보생들도 노래하는 동안 벽사 스킬을 사용할 생각인가 보네.’

이 시험은 사실 노래만 부르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윤여랑의 행보로 시험 중에 벽사 스킬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 결과, 남은 후보생들도 시험을 치르며 벽사 스킬을 사용했다.

윤여랑만큼 강렬한 효과를 내지 못했지만, 두 후보생들은 구름과 안개를 일부 치우는 데에 성공했다.

시험이 끝나자 황룡이 말했다.

“이번 후보생들은 정말 우수하구나. 노래를 하면서 벽사 스킬을 사용하다니. 용왕신께서도 저들의 노래에 감복했을 것이다.”

후보생을 칭찬한 후, 황룡은 무녀들에게 물었다.

“무녀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첫수가 무너진 무녀들은 크게 동요했을 텐데도 제 감정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

무녀들의 대표로 유황이 태연하게 황룡의 물음에 답했다.

“정말이네요. 셋 다 나무랄 곳이 없었어요. 안심하고 뒤를 맡길 수 있을 것 같군요.”

“유황이 이리 말할 정도다. 후보생의 남은 시험들이 기대되는구나.”

후보생들은 유황과 황룡의 속도 모른 채 순수히 기뻐했다.

황룡은 한결 맑아진 황운호를 등지고 말했다.

“이제 두 번째 시험을 치르겠다.”

황룡은 품에서 구름 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세 개의 구름 덩어리 안에는 시든 꽃이 들어 있었다.

“두 번째 과제는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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