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58화 (75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58)

96. 오룡쟁주 (1)

용제건의 소원을 미끼로 무녀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킨 밤.

김신록은 조의신과 동행하여 황룡궁 내의 호수, 황운호(黃雲湖)에 왔다.

조의신은 구름과 안개 너머로 보이는 호수의 수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조의신 군이 또 수를 생각하고 있나 보군.’

황룡과 용제건을 비롯한 용족들이 조의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척 보기에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데 조의신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조의신은 윤여랑과 어울려 용궁 탐험을 하고, 탐험을 하지 않을 때에도 용궁을 돌아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김신록은 조의신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대로 시험이 무사히 끝날 리가 없어요. 용을 상대로 하니 예비책을 준비해 왔을 거예요.

―조의신 군, 적이 무슨 짓을 벌이리라 생각하십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상황 속에서는 적이 극단적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조의신은 그가 ‘아는 상황 속’을 간략히 설명했다.

황룡을 제외한 모든 용족이 불참한 가운데 벌어진 시험은 무녀들이 의도한 대로 끝이 난다.

무녀들이 큰 수작을 부릴 필요도 없이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조의신이 알고 있는 정보량은 적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을 노릴지는 짐작이 가요.

조의신은 그렇게 말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황호가 그 얼굴을 보면 ‘조의신,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앉아서 차나 마시거라.’라고 말해 주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황호는 그 자리에 없었고 적호도 없었다.

김신록이 조의신에게 말을 걸 틈을 가늠하고 있을 때, 구름 사이로 황룡이 조용히 나타났다.

“손님이 왔군.”

“안녕하십니까.”

황룡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기운을 숨기고 있는 건지 존재감이 옅게 느껴졌다.

거기에다 호수 주변에는 황룡의 구름이 가득하여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조의신은 황룡의 기척과 소리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황룡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 아이는 생각에 잠긴 것 같으니 방해하고 싶지 않구나.”

김신록은 황룡의 배려를 이해하고 자신도 기척을 죽이기로 했다.

눈만을 움직여 황룡의 주변을 살핀 김신록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 돌아보고 계셨습니까?”

“방금까지 청룡과 있었다. 나를 걱정한 게냐? 용제건이 자랑할 만큼 착한 아이로구나.”

용족은 용제건 때문인지 별것 아닌 일로도 김신록을 좋게 봐 주곤 했다.

김신록은 얼른 말을 돌려 버렸다.

“아닙니다. 용궁을 위험한 곳 취급하여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말아 다오. 실제로 위험한 곳이 되지 않았느냐.”

황룡은 부드러운 말투로 지상의 일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김신록은 성심성의껏 답하면서도 속으로 잡생각을 했다.

‘그 망할 용이 착용하고 있는 눈가리개는 황룡 님이 얼마 전에 건네준 거라고 했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건데…….’

김신록은 용제건이 오래전부터 신격이 오르면 곧장 눈가리개를 착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룡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건 최근의 일인 듯했다.

그래 봤자 오래전부터 신격을 쌓아 왔다는 건 변함이 없긴 했다.

김신록이 저도 모르게 황룡의 눈가리개를 응시하며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용제건은 네게 말을 자주 걸더만, 정작 중요한 대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네?”

“네 시선을 보면 안다. 용제건이 승천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지은 네 표정도 기억하고 있다.”

김신록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표정 관리를 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눈가리개를 했으나 신격 덕에 시야가 크게 열려 있는 황룡은 그 모습을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이제 그 녀석을 여의보주가 아니라 용제건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해졌다. 그러니 너를 제호라고 불러도 되겠느냐?”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알았다, 제호야.”

김신록은 처음 보는 황룡이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의문을 가졌으나 뒤늦게 납득했다.

황룡이 갑자기 용제건을 언급한 걸 보아 그 뻔뻔한 용이 여기저기에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용제건의 히죽이는 얼굴이 떠올라 울컥했으나 황룡 앞이라 구겨지려는 표정을 애써 폈다.

“백룡, 적룡, 흑룡 그리고 사해 용왕들…… 많은 용들이 승천하는 걸 지켜보며 느낀 게 있다. 그들이 승천하는 이유와 시기는 제각각이었지만, 단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황룡은 김신록이 울컥한 걸 달래려는 것처럼 다정히 말했다.

“승천 직전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는 점이다.”

김신록은 어째서 황룡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고민한 끝에 황룡의 뜻을 짐작해 물었다.

“그 용이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황룡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룡의 말만 들으면 용제건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김신록이 본 용제건은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닌데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용이었다.

용궁에서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그 용을 잘 아는 건 분명 내가 아니라 저분이겠지.’

김신록이 어두운 생각으로 결론을 지으려 하는 순간, 조의신이 둘을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왔다.

조의신은 황룡을 발견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해요. 마침 말씀드리고 싶었던 게 있어요.”

“또 제안할 게 있나 보군. 말해 보거라.”

조의신의 제안을 듣는 사이 김신록의 머릿속이 다소 개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조의신이 저렇게 부지런히 수를 두는데 용제건에게 휘둘리는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져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 용이 무엇을 숨기고 있든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아.’

김신록은 맑아진 머리로 조의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    *

황룡의 구름이 용궁을 훤히 밝힌 아침, 황운호.

첫 번째 시험을 참관하기 위해 용궁에 머무는 이들이 모두 모였다.

용왕신의 무녀, 용궁의 무녀들은 어제 있던 파란이 없던 것처럼 고요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황이 있었다.

유황의 장악력은 여전한 듯했다.

‘이 정도로 유황을 무너뜨릴 수는 없겠지. 예상한 바야.’

후보생을 제외한 이들이 운룡이 마련한 구름 의자에 앉았다.

모든 이들의 착석을 확인한 후, 호수의 수면 위에 구름을 타고 떠 있는 황룡이 후보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제때 왔군. 잘 쉬었느냐.”

“네!”

“활기차서 좋구나.”

다른 후보생들은 긴장한 것 같은데, 윤여랑만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밝게 답했다.

긴장되고 걱정될 법도 한데 윤여랑은 플마고 속에서도 시험을 치는 내내 즐거워했었다.

인사를 마친 황룡이 첫 번째 시험 주제를 발표했다.

“첫 번째 시험 주제는 사전에 고지한 대로 ‘노래’다.”

무녀의 시험 주제 중 하나는 노래였다.

“첫날에 용왕신의 무녀들이 노래한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노래는 용왕신과 무녀들을 잇는 매개 중 하나다.”

처음 붉은 사자 팀 빌딩을 방문했을 때, 용왕신의 무녀들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자 운명력이 발동하여 용왕신을 만났었다.

무녀들의 노래에 운명력이 더해져 용왕신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다.

‘그때는 무녀들의 노래가 용왕신과 이어졌다는 뜻이겠지.’

황룡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번 시험 과제는 너희의 노래로 황운호의 구름과 안개를 물리는 것이다. 질문이 있나 보군. 해 보도록.”

“어떤 노래를 부르면 되나요?”

“원하는 노래를 부르거라. 악보를 제공할 테니, 그중에서 골라서 불러도 좋다.”

과제 곡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듯했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중요한가 보다.

윤여랑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많은 건지 끙끙거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황룡 님이 주신 곡들도 좋지만, 디바이스에 저장한 곡 중에도 좋아하는 노래가 많은데!”

윤여랑에 비해 다른 두 후보생은 평범한 고민을 했다.

“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떨려서 노래하다가 실수할 것 같아. 디바이스로 반주를 틀어도 되려나?”

“음, 반주 버전 음원은 있어?”

“아, 저는 몇 곡 있어요! 필요하시면 보내 드릴게요.”

후보생들은 부여된 준비 시간 동안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플마고에서는 후보생들이 저렇게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는데, 이 부분도 달라진 듯했다.

‘체재하는 시간이 길어져 서로 친해졌구나.’

윤여랑은 다른 후보생들에게 가지고 있는 반주 버전 음원을 제공했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윤여랑은 플레이리스트 팬이었는지 출연진들의 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래훈의 힙합과 독고미로의 댄스곡을 용왕신의 무녀 시험에서 부르기엔 좀 그랬던 탓이다.

이를 지켜보며 용족들과 담소를 나누던 황룡이 반주라는 말을 듣곤 한마디 했다.

‘명곡들이 많지만 여기에서 그 노래들을 부르는 건 어렵겠지.’

여래훈의 랩은 가사의 양이 많고 템포가 빠르다.

독고미로의 과제 곡은 춤을 추면서 부르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높은 음정의 곡이 많다.

고민 끝에 후보생들은 플레이리스트 과제 곡을 부르는 걸 포기했다.

이를 지켜보며 용족들과 담소를 나누던 황룡이 반주라는 말을 듣곤 말했다.

“반주라…… 직접 반주를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 손님들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가.”

황룡이 호족 손님들을 향해 질문했다.

그러자 적호가 가장 먼저 답했다.

“제 아들은 교사로서 음악 교과 과정에 필요한 악기를 다룰 줄 압니다.”

김신록은 음악 교사가 아니지만, 배워 뒀나 보다.

참고로 적호의 아들은 ‘그걸 적호 님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라고 되묻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용제건, 너도 교사였지. 너는 어떻느냐.”

“음악은 안 가르쳐 봤는데. 지금부터 연습해 볼까?”

“됐다.”

용제건은 악기를 다룰 수는 있지만, 딱히 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황룡은 이번에 나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는?”

갑자기 시선이 내 쪽으로 쏟아졌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딱한 것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나는 가감 없이 답했다.

“연습을 하면 간단한 타악기는 다룰 수 있어요.”

“그래, 의신이는 트라이앵글 연습을 많이 하더라.”

“……그렇구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제건이 끼어들고 황룡은 무언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주는 좋아하나?”

“듣는 건 좋아해요.”

은광고의 수업종을 듣는 건 좋아한다.

특히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연주하는 곡은 꼭 챙겨 듣는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연주하는 건 별로 즐기지는 않는다.

수행 평가나 학급 연주회 등 필요한 상황이라면 연습해서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쪽에서 제시한 악보의 곡을 부른다면, 내가 반주해 주마.”

반주와 관련하여 황룡이 후보생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아는 곡을 반주 없이 부를지, 처음 보는 곡을 황룡의 반주로 부를지 선택지가 생겼다.

그 결과, 윤여랑은 본인이 아는 곡을 반주 없이, 두 후보생은 황룡이 준비한 곡을 반주와 함께 부르게 되었다.

“그럼 순서를 정하겠다. 이름을 적어 운룡에게 건네도록.”

준비 시간이 끝나자 운룡이 상자를 들고 후보생들 사이를 오갔다.

상자 안에 이름이 적힌 세 개의 종이가 들어가고, 이를 황룡이 뽑기로 했다.

황룡이 택한 종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첫 번째로 노래할 후보생이 정해졌군. 앞으로 나오도록.”

황룡이 허공에 띄운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본 윤여랑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호수의 수면 가까이 다가갔다.

처음으로 노래를 부를 후보생은 윤여랑이었다.

돌아가기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