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63화 (76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63)

96. 오룡쟁주 (6)

유황이 배신을 결심한 계기는 선대 무녀의 존재였다.

무녀의 자리에서 내려와 불로의 가호를 잃은 선대 유황은 이제부터 평범한 인간의 수명을 따라 살겠노라며 웃었다.

선대 유황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유황은 겁에 질렸다.

유황의 자리에 올라 불로를 손에 얻어 기뻐한 것도 잠깐, 불로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황은 선대 무녀가 은퇴했을 때, 즉, 자신이 무녀가 된 순간부터 지금을 준비해 왔다.

‘진족은 오래될수록 강해지는데, 인간은 그 반대라니.’

진족의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강한 건 아니지만, 역사가 길어져 지명도가 오르면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이 어느 시점을 지나면 노화와 수명 앞에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유황은 영원한 불로불사의 힘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소원을 들어주는 힘을 가진 여의보주, 용제건과 친하게 지내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용제건은 무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용제건은 늘 변덕스럽게 바뀌는 흥밋거리를 좇느라 바빴고, 그 흥미의 대상에 무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용왕신과 황룡 님은 좋은 분이지. 이럴 수밖에 없어 아쉽게 됐구나.’

처음부터 용왕신을 배신할 마음은 없었지만, 배신이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고 깨달은 후 유황은 주저 없이 용들을 등졌다.

그 유효한 수단이란 자신이 진족이 되는 것이었다.

그 수단에 관해 알려 준 것은 어떤 나비였다.

―불로불사는 인간의 오랜 염원 아닌가요? 그리고 용왕신의 무녀들은 불로에 몹시 가까운 것을 얻었다가 잃는 분들이지요. ‘그분’께서는 언젠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자가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황과 면식이 없는 ‘그분’은 그녀의 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했다.

‘그분’의 명령에 따라 유황과 접촉했다는 나비의 진족이 권속을 통해 말했다.

―신화와 전설 속에서 인간이 상위 존재에 오르는 일은 적지 않았습니다. 현대에서 그러한 위업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나비령의 권속이 화려한 빛깔의 날개를 팔랑이며 덧붙였다.

―용왕신과 용족의 관계, 용궁의 특이성을 이용하면 당신의 소원은 이루어지겠지요.

처음에 유황은 나비령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칫하다간 소원을 이루긴커녕 배신할 마음을 품은 게 들통나 무녀의 자리를 잃어 불로를 상실하는 날이 빨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유황의 의심은 ‘그분’의 힘을 목도할 때마다 천천히 옅어졌다.

그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용왕신을 대신할 존재, 이무기를 만들어 대령했을 때였다.

만들어졌다는 이무기는 용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지만, 당장 하늘로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용왕신의 자리에 이무기를 올리세요. 그리한다면 당신은 새로운 용왕신을 옹립한 존재로서…… 아니, 불로불사를 얻겠지요.

자신이 용이 된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신빙성이 있었다.

용왕신의 무녀들은 인간 중에서는 용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고, 용의 힘을 다루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비령의 말대로 일을 도모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용들의 상징성은 지상에 널리 퍼져 있었기에 용왕신을 끌어내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른 무녀들의 포섭과 지상과 격리된 용궁의 제압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무녀들의 포섭은 어렵지 않을 것 같구나.’

용궁의 무녀 중 뜻에 따르지 않을 것 같은 자는 조용히 내보냈다.

폐쇄적인 용궁에서 지내는 걸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으니, 고립시키고 괴롭히면 금방 우는 소리를 내며 그만두었다.

문제는 용왕신의 무녀 쪽이었다.

홍의 무녀는 용왕신을 매우 좋아했기에 마음의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용왕신을 따른다 해도 부족한 게 많은 아이였어. 그 부족함을 상기시켜 주었더니 알아서 그만둘 정도였지. 용왕신에 대한 마음도 고작 그 정도라는 거야.’

홍의 무녀를 그만두게 했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새로운 후보 중, 제일 우수한 아이가 다루기 어려워 보였던 탓이었다.

조금 떠봤지만 오래 사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고, 심리적으로 압박해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후보 중에 가장 어리고 심약한 아이를 홍의 무녀로 삼고자 했다.

시험 과정에 은밀하게 부정을 행하고, 현직 무녀들이 뜻을 모아 용왕신에게 간언하자 그들이 원하는 후보생이 홍의 무녀로 뽑히게 되었다.

‘그 아이가 용궁에 남은 게 변수였지만, 수적으로 어찌할 수 없겠지. 용궁을 우리 손에 넣는 데에는 지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유황은 새로운 홍의 무녀를 정신적으로 장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유황의 다음 목표는 용궁이었다.

―용궁은 지상과 격리된 곳. 그렇기에 외부에서 공격하기 어렵지만, 내부가 무너지면 기댈 곳이 없지요.

―용궁에 이무기신을 모시자는 뜻이구나.

―네, 용궁에서 용왕신을 밀어내고, 다섯 용을 상징하는 용궁을 제압하면 용의 세상이 바뀌겠지요.

나비령의 말대로 밖에서 부술 수 없다면 안부터 무너뜨리면 된다.

용궁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곳곳에 이무기의 비늘이 뿌려졌다.

용궁을 홀로 지키는 황룡에게는 이무기의 비늘을 조금씩 먹였다.

뿌려진 이무기의 비늘은 극히 소량인 데다 용왕신과 가까운 존재인 무녀들의 힘과 섞여 있었기에 용왕신도, 황룡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유황이 무녀의 자리를 내려놓을 때가 다가왔다.

새로운 무녀 시험이 가까워지자 ‘그분’은 시험을 무효로 만들고, 유황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전했다.

‘용왕신은 시험이 무효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용궁에 접근하지 못하게 이무기를 용궁 주변에 배치해 막아야 한다고 했지.’

무녀가 수작을 부린 결과, 용왕신은 이무기의 비늘에 잠식된 용궁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무녀들은 용왕신과 용족을 잇는 존재이므로, 그들 사이를 차단해 용왕신이 용족에게 계시 등을 통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녀 시험은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후보생들은 모두 우수했고, 무녀들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무사히 진행되었다.

무녀 시험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자 ‘그분’은 일을 결행할 것을 권고했다.

‘그분’은 정월 초하룻날이 되는 즉시 이무기를 새로운 용왕신으로 추대하고 용궁을 제압할 것을 요구했다.

‘유황의 무녀 자리를 잃더라도 어쩌면 계속 뜻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이리 강경하게 나오실 줄이야.’

‘그분’은 용족이 크게 흔들릴 순간을 노려 이무기신을 옹립하고, 용족을 일소하려 했다.

유황도 그편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황룡 님은?”

“인간과 후예 손님, 둘과 동행 중입니다.”

유황이 묻자 황룡을 살피던 무녀가 답했다.

손님 중 인간은 한 명, 후예도 한 명뿐이었다.

누구를 칭하는지 알아들은 유황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었구나. 마침 그 아이가 황룡 님과 같이 움직이다니 찾아다닐 수고가 줄겠어.”

무녀들이 칭하는 ‘그 아이’란 김신록을 가리켰다.

호족과 용족이 김신록을 어리게 취급한다고 하나 수천 년 산 후예이므로 무녀들이 아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용왕신과 용족을 오랜 시간 완벽하게 속여 온 무녀들은 자신이 그들의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오만함을 발휘해 김신록을 아이 취급 하였다.

이무기를 새로운 용왕신으로 삼을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홍의 무녀가 벌벌 떨고, 자의 무녀도 주저하는 태도를 보였다.

“걱정되는가 보구나.”

“일을 거행하는 건 지상의 용족이 약해졌을 때라고 들었으니까요.”

벽의 무녀가 말하자 유황이 이들을 부드럽게 달랬다.

“마침 승천하지 않은 두 용이 용궁에 있다. 이무기의 힘에 곧바로 짓눌리겠지. 용궁으로의 전이가 가능하신 청룡 님이 밖에 계셨다면 일이 더 까다로워졌을 거란다.”

유황의 말에 무녀들이 마음을 놓았다.

지상의 용족이 건재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용궁이 당장 무녀들의 손아귀에 떨어져도 밖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용궁으로의 전이가 가능한 황룡, 청룡, 무녀들이 모두 용궁에 있으니 외부에서 올 방법이 없던 것이다.

심해에 직접 잠수해서 여기까지 오는 방법밖에 없는데, 먼 거리에서 온 이들이 용궁의 견고한 결계를 깰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밖에서도 손을 쓸 생각이란다. 용족에게는 약점이 있으니, 지금 노려 두는 게 좋겠지.”

“밖에서도요?”

“그렇단다. 용왕신의 가호를 잃고, 용궁을 빼앗기고, 약점을 잡힌 용족들을 ‘그분’이 손쉽게 사냥하시겠지.”

용궁의 중심, 이무기의 비늘을 곱게 빻아 만든 가루와 ‘그분’이 건넨 독을 섞어 그린 대형의 진(陣)이 완성되었다.

정월 초하룻날이 될 때까지는 1분도 안 되는 시각을 남기고 있었다.

“자, 새로운 신을 받들어 우리의 소원을 이루자!”

유황이 제 위치에 서서 채운을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무녀들이 차례차례 구름을 불러내었다.

홍의 무녀는 마지막까지 벌벌 떨며 제대로 구름을 불러내지 못했다.

결국 옆에 서 있던 자의 무녀와 벽의 무녀가 혀를 차곤 대신 채운을 부려야 했다.

오색의 채운이 거대한 힘을 머금은 진(陣)을 메웠을 때 날이 바뀌었다.

파아아아아아!

다섯 가지의 색을 띤 구름이 용궁 전체로 퍼져 나가고, 용궁이 변화하였다.

오방색에서 오간색으로 변하는 용궁 속, 다섯 명의 용왕신의 무녀들이 모시기로 한 이무기신이 그들에게 은혜를 내렸다.

쩌적, 뚜둑…….

다섯 무녀들의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무녀들의 손등에 비늘이 돋쳐 있는 걸 발견하고 용궁의 무녀가 탄성을 뱉었다.

그들은 용으로 변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소원을 이루었어!”

“이제 늙어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면사 뒤에서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무녀도 있었다.

용궁의 무녀들은 얼른 자신들도 저들처럼 용이 되길 고대하며 기뻐했다.

무녀들의 환희 속에서 유황이 경고했다.

“아직 이무기신의 힘은 완전하지 않아. 우리가 용으로 있을 수 있는 건, 이무기신의 힘이 닿는 이 용궁뿐이란다.”

유황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걷어 올렸다.

무녀의 상징인 면사를 벗고, 용으로 존재하겠다는 의사였다.

면사가 벗겨져 드러난 유황의 얼굴에는 비늘이 돋아 있었고, 눈은 파충류의 것처럼 세로로 열려 있었다.

“용왕신께는 몹시 아끼는 여의보주가 있지. 하나 우리의 새로운 용왕신, 이무기신께는 아직 여의보주가 없단다.”

유황이 말하는 여의보주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소원을 미끼로 무녀들의 마음을 어지럽힌 유희계 용, 용제건이었다.

“이무기신께 여의보주를 드리면 완전해지고, 우리 또한 완전해지고 다른 무녀 역시 은혜를 받게 될 거란다.”

용제건이 언급되자 무녀들이 꺼림칙해했다.

유황은 무녀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덧붙였다.

“여의보주를 이무기신께 드리기 전에 소원 하나를 이루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소원이라는 말에 무녀들 사이에 활기가 돌았다.

“지금 여의보주는 어디에 있죠?”

“여의보주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백룡궁으로 온다고 들었다.”

백룡궁이라는 말에 자의 무녀가 말했다.

백룡궁은 현재 자색으로 물드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여의보주는 제가 얻으러 가야겠군요.”

“어머, 여의보주를 독점할 생각이야?”

“여의보주는 혼자 얻기 어렵지요. 같이 해요.”

“그런데 여의보주를 받아 소원을 이루게 하면 좋겠지만, 여의보주가 우리의 말을 듣겠어요?”

유황은 자신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황룡궁을 둘러보다가 황룡궁의 지하에 있는 이들을 떠올렸다.

유황이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여의보주에게는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은 이 황룡궁 안에 있단다. 제일 먼저 그 약점을 손에 넣는 용이 여의보주의 소원권을 얻는 건 어떻느냐.”

여의보주의 약점이라는 말에 모두가 그의 하나뿐인 친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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