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73화 (773/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73)

97. 용행호보 (4)

적호와 용제건이 앞서 용궁으로 향하기 전.

조의신은 용제건으로부터 용궁의 위치에 관해 전해 듣고 적호에게 어느 부탁을 했다.

“용궁에 가셔서 천신이 내린 권능이 닿는 범위를 확인해 주세요.”

조의신의 의도는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황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조의신, 이 몸이 분신을 움직여 용궁에 가 주길 바라는 건가. 설령 범위 밖에 있더라도 네가 바란다면 본신으로 가겠다.”

조의신은 그 말을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반응이라기보다는 조의신은 황호의 본신을 국경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으니 씨알도 안 먹힐 소리 하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조의신은 황호가 분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는 걸 몹시 꺼려 했다.

황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조의신이 적호에게 말했다.

“무녀에게는 반드시 숨기고, 황룡에게도 숨겨 주세요. 황룡이 호족보다 무녀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알았습니다.”

적호는 조의신의 부탁대로 움직여 천신의 권능이 닿는 범위를 정확히 파악해 왔다.

이후, 이를 이용해 조의신은 용궁에서 둘 수를 정했다.

“그렇다면 용궁에 가는 분들은 의신이 형, 적호 님과 아드님 그리고 황호 님이군요.”

“은호 씨, 나도 가는데?”

“네, 그랬지요.”

조의신의 설명을 듣던 은호가 말을 정리했고, 용제건은 쓸데없는 말을 얹었다.

“그렇다면 이 몸은 분신을 둘 움직이게 되는군. 하나는 붉은 사자 팀 빌딩, 다른 하나는 용궁에서 움직이는 건가. 동시에 전투가 발생할 경우를 상정해 대비해야겠군.”

황호가 국경 안에 있는 한, 분신도 상당한 힘을 다룰 수는 있지만 본신만은 못하다.

분신은 본신과 달리 광림이나 지력 사용에 제한이 걸리므로 여차하면 본신을 옮겨 가며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황호는 은인과 함께 행동하고, 자신의 힘을 마음껏 쓸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몹시 고양되어 있었다.

조의신이 들뜬 황호를 잠시 지켜보다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용궁으로 보낸 분신은 끝까지 모습을 안 드러내고 돌아올 수도 있어.”

“뭐?”

“용궁으로 향하는 분신은 계속 적연으로 모습을 감추고, 국경의 범위를 정확하게 아는 적호와 항상 함께 행동했으면 좋겠어.”

조의신의 말에 황지호가 불만을 표했다.

“그렇다면 이 몸은 적연으로 계속 몸을 감춰야 한다는 말인가? 조의신, 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거나 무모한 짓을 해도 말리기 어려워지지 않겠느냐. 모처럼 함께 움직이거늘.”

“흑막이 용궁에서 네 모습을 발견하면 너를 막을 수를 준비해 올 거야. 불필요한 싸움을 하게 돼.”

조의신이 무정하게도 맞는 말만 골라서 했기에 결국 황호가 꺾였다.

황호는 조의신의 말대로 적연으로 모습을 감추고 용궁에 가기로 하였다.

“황호 씨가 모습을 감추는 것도 재밌겠네. 아, 그런데 전이의 힘을 사용할 때 무녀들이 알아챌 수도 있어.”

용제건이 전이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다섯 명의 무녀가 부리는 힘 안에 들어간다면, 적연으로 엄중하게 감추어도 황호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많았다.

이 점을 해결할 겸, 전이의 충격을 줄일 겸 용족 측에서 힘을 쓰기로 했다.

“전이하기 전에 내 공간술로 일행 전체를 감쌀게. 구실은 멀미 방지라고 해 둘까. 청룡과 염방열에게도 거들라고 해야겠다.”

용족과 붉은 사자 중에서 손꼽히는 강자가 힘을 더한다면 무녀들이 그 속을 꿰뚫어 볼 수 없을 것이다.

황호는 회의 중 나온 모든 말들이 타당하다고 여기면서도 영 마뜩잖아 점점 말수가 줄었다.

그러던 중, 조의신이 다시 황호에 관한 화제를 입에 담았다.

“황지호의 용궁 출입 허가는 용새로 받았으면 해요.”

“내 용궁 초대권 또 써도 돼.”

용제건은 승천 전에 용궁 초대권을 전부 쓰고 갈 생각인 것처럼 저리 말했다.

하지만 조의신은 용제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호족의 수장이 용족의 수장과 용궁을 지키는 용만이 다룰 수 있는 용새의 허락을 받았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요.”

조의신의 말을 듣자 황호는 쌓여 있던 설움이 다소 녹는 걸 느꼈다.

황호가 유희계 용이 뿌려 댄 용궁 초대권을 사용해 용궁에 가는 것과 청룡과 황룡의 용새를 받아 용궁에 가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조의신은 황호의 권위를 세워 주고, 호족과 용족 사이의 동맹이 더 공고해졌다는 상징을 주려 한 것이다.

황호는 회의 중 처음으로 처웃었다.

“하하하하! 조의신이 이 몸과 호족의 미래를 이리도 깊이 생각해 주니 몹시 기쁘도다. 네 뜻은 잘 알겠다.”

조의신은 ‘그렇게까지는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으나 황호는 그저 기분이 좋았다.

황호는 조의신의 뜻을 헤아려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은인의 기대에 보답해야겠군.”

*    *    *

적연이 해제되어 나타난 황호가 금이 간 결계를 올려다보았다.

견고한 결계이기에 다소 금이 가도 수복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결계의 파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손상 수준을 고려하면 지금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지력을 끌어다 쓸 여력조차 없는 황룡과 청룡의 힘으로는 결계를 지켜 낼 수 없었다.

‘지상 쪽은 정리되었으니 본신의 위치를 여기로 바꾸어야겠군.’

파아아앗!

황호가 힘을 개방하자 황금의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사이에도 결계의 금은 점점 커져 당장이라도 용궁이 심해에 삼켜져 버릴 것만 같았다.

황호는 결계 수복에 필요한 힘을 가늠하며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 자리에 왔다면, 아예 오지 않았다면, 위험해졌을 것이다.’

흑막이 황호에 대비해 둔 수를 다 받아치느라 힘을 소모했다면, 이 정도로 여유롭게 힘을 운용하진 못했을 것이다.

황호는 만약을 대비해 힘을 더 아껴 두기로 했다.

“황룡, 이곳의 지력을 쓰겠다.”

“용궁의 관리자로서 허락하겠다.”

황룡의 온화한 답변이 듣자마자 땅에서 정순한 지력이 솟아나 황호의 주변을 감쌌다.

지력이 황호의 마력에 더해지자 용궁의 윤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휘익!

황호가 황금 빛을 감은 손을 크게 들어 올리자 하늘이 마치 황금으로 덮인 것처럼 빛이 위로 향했다.

금이 간 결계를 덮은 황금 빛을 향해 황호가 마치 지휘를 하듯 양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황호의 움직임과 힘에 반응해 빛은 결계의 형태로 재정립되었다.

점차 결계는 금이 가기 전보다 견고한 형태로 복구되었다.

“굉장하군.”

황룡이 눈가리개를 한 얼굴을 들어 올려 그 광경을 응시했다.

황룡은 이를 감탄하며 지켜보는 관객 신세가 되었으나 황호는 저 용이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용궁에 도착하자마자 내 존재를 눈치챘지.’

처음 마주쳤을 때, 황룡은 적연 속에 서 있는 황호를 곧게 바라보았다.

청룡이 황룡을 대리해 용새를 찍어 주었기에 황룡이 황호의 존재를 늦게 눈치채거나 끝까지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황룡은 바로 용궁에 온 눈에 띄지 않는 손님에 관해 파악했다.

황룡은 황호가 모습을 보여 주고, 그와 대화를 나눌 순간을 고대하며 청룡궁에 들르기도 했다.

결계 수복이 무탈하게 진행되어 빛이 다소 안정되었을 때, 황룡이 말했다.

“호족의 수장의 도움을 받은 건 기쁘고 감사한 일이나 용족의 은인이 걱정되는구나. 나는 적호와 자네 중 한 명이 은인과 합류할 줄 알았다.”

“호족의 은인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황호가 딱 잘라 말했다.

“수가 흔들리면 전서구를 보내기로 약조했다. 하나 아무 소식이 없지.”

황호의 말에서 조의신을 향한 걱정이 느껴졌으나 동시에 굳건한 믿음이 느껴졌다.

“조의신은 다음 수를 두고 있을 거다.”

*    *    *

흑룡궁.

무녀들이 오기 전에 그려 둔 마법진 위.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자리 잡고 각각 서 있었다.

결계에 금이 갔을 때에는 후보생들이 몹시 동요했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한 지 얼마 안 되어 황금 빛이 결계를 덮었다.

황지호가 제때 움직인 듯했다.

“황룡 님의 힘이 아니잖아. 손님의 힘이야?”

“네.”

“내가 모르는 손님이 있었나 보네.”

막내 무녀의 눈치가 매우 빨랐다.

용족은 현재 저런 힘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다른 호랑이 손님들은 다 붉은 머리를 하고 있으니 추측하기 어렵지 않긴 했다.

“준비는 끝나셨나요?”

“나는 끝났어.”

막내 무녀는 담담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녀 후보생 쪽을 돌아보니 두 사람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의 입장에선 자려던 중에 갑자기 용궁에 난리가 나고, 내 엉뚱한 부탁을 들어 매우 혼란스러웠을 거다.

막내 무녀가 침착하게 반응하고, 윤여랑이 신나서 하겠다고 하니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정말 이래도 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저도 됐어요! 언니들, 준비되셨어요?”

“으, 응.”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윤여랑은 빨리 의식을 했으면 하나 보다.

이 중에서 윤여랑이 가장 부담이 갈 텐데, 저렇게 기대에 찬 걸 보면 과연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다운 담력을 지녔다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위치를 확인할게요.”

내가 그린 마법진의 형태는 용왕신의 무녀들이 단체로 힘을 발현시킬 때와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즉, 내가 그린 마법진에는 오간색의 무녀가 서는 다섯 자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 자리를 채울 다섯 명이 갖춰졌다.’

벽의 무녀 자리에는 눈이 좋은 무녀 후보생이.

홍의 무녀 자리에는 막내 무녀가.

자의 무녀 자리에는 귀가 밝은 무녀 후보생이.

유황의 무녀 자리에는 윤여랑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녹의 무녀 자리에는 내가 서 있었다.

“너랑 쟤, 정말 괜찮겠어?”

막내 무녀가 걱정하는 이유는 잘 이해가 갔다.

벽의 무녀 자리에 선 후보생은 흑룡의 비늘을, 자의 무녀 자리에 선 후보생은 백룡의 비늘을 받았다.

또한, 홍의 무녀 자리에 선 막내 무녀는 적룡의 비늘을 받았다.

세 사람은 상위 존재의 서포트를 받을 수 있지만, 나와 윤여랑은 그런 게 없었다.

“윤여랑은 괜찮아요.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꿈에서 용왕신을 봤으니, 그 목소리가 쉽게 닿을 거예요.”

“어? 의신이 오빠 알고 계셨군요!”

“……뭔가 수상한 구석이 많긴 한데, 이 비늘을 들고 온 사람을 의심하기가 어렵네.”

윤여랑은 그녀의 꿈에 관해 파악하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막내 무녀가 윤여랑 몫까지 나를 수상하게 여겼다.

“쟤는 그렇다 쳐도 너는? 무녀도, 후보생도 아니잖아.”

막내 무녀의 말대로 나는 무녀도, 후보생도 아니었지만, 문제없었다.

“괜찮아요, 아주 강력한 무녀의 힘을 빌릴 거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무녀는 아니었고, 후보생이었지만 말이다.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을 사용합니다.〉

내가 고른 캐릭터는 물론 플마고에서 마지막까지 키운 버전의 윤여랑이었다.

윤여랑의 힘을 빌리자 막내 무녀가 내 기척이 변화한 걸 알아채고 경악한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경악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용왕신 강림 의식을 시작합니다.”

적룡, 흑룡, 백룡은 용왕신을 불러 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는 용궁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이무기를 몰아내고, 용왕신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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