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87화 (78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87)

98. 송사 (4)

도원우는 학업상을 받을 때와 달리 침착하게 답사를 읊었다.

도원우의 답사 속에는 은광고의 3년이 담겨 있었다.

답사를 듣는 졸업생들은 지난 3년이 생각나는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도원우는 가라앉은 공기를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다.

작별은 어떤 식으로 포장하든 슬프다는 걸 깨닫고 이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교사진과 후배들에 대한 감사의 말이 나올 때 즈음엔 다른 3학년들도 작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듯했다.

“3년의 여정이 끝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였습니다. 은광고에서의 시간, 인연을 마음속에 새기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도원우의 진심 어린 인사말을 끝으로 답사가 끝났다.

갈채 속에서 도원우는 다시 졸업생들 사이로 돌아왔다.

도원우는 미련을 털어 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을 계기로 도원우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도원우는 나아갔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도원우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도원우의 행복은 하나인데, 나나 도원우의 힘으로는 손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졸업식 노래, ‘석별의 정(Auld Lang Syne)’을 제창할 차례가 되었다.

반주는 관례대로 음악 관련 동아리, 소모임의 모든 부장들이 맡았다.

오케스트라부의 부장이 하는 지휘 아래, 피아노, 태평소, 일렉 기타, 첼로, 프렌치 호른, 마라카스, 꽹과리 등의 듣도 보도 못한 조합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플마고에서는 부장들이 사망하거나 연주할 상태가 아니어서 녹음된 노래를 틀고 끝났다고 묘사됐지.’

그런 생각이 들고, 연주의 퀄리티가 높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든 내 친구여’ 소절의 음이 높아 음 이탈을 일으킨 이들이 대량 발생해서 그런 걸까.

몹시 슬픈 노래인데 웃으며 따라 불렀다.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라는 소절로 노래를 마치고, 교가를 부를 때에도 그랬다.

“졸업생들의 졸업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합니다. 새롭게 시작될 은광고 졸업생 플레이어들의 여행을 응원합니다.”

사회를 본 제갈재걸이 마지막으로 졸업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 말을 듣자 눈물을 그쳤던 졸업생들이 다시 울려고 했다.

제갈재걸은 졸업생들을 달래듯이 미소 지으며 식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졸업모를 던지며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3학년들이 각자 쓰고 있던 모자를 벗는 사이, 제갈재걸이 허공에 크게 글씨를 썼다.

언령을 발동해 쓴 졸업 축하문이 따뜻한 빛을 머금고 상인관 천장으로 떠올랐다.

제갈재걸의 심성처럼 곧은 글씨가 졸업생의 머리 위 높게 떠다녔다.

언령의 발동은 일종의 축하 퍼포먼스이기도 했지만, 사실 안전을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대비를 안 하면 상인관이 무너지고, 다치는 사람이 나오겠지.’

말이 졸업모 던지기지, 500명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흉기를 던지는 거나 다름없다.

일반인들의 졸업모 던지기 행사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해 금지하는 곳이 있을 정도이므로 플레이어의 졸업식이면 말할 것도 없었다.

제갈재걸은 이에 대비해 언령으로 안전을 확보한 것이다.

졸업생들은 제갈재걸의 힘을 믿고 학사모를 높게 던질 준비를 했다.

“셋, 둘, 하나……!”

제갈재걸의 카운트다운에 맞춰 졸업생이 졸업모를 던지는 순간.

내가 주시하고 있던 인물이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우기환이 맛이 간 눈으로 어딘가에 신호를 보냈다.

‘우기환이 뭔가 하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은광고의 주전력들이 다 모여 있는데, 여기에서 사고를 친다고?’

나 외에도 3학년 0반을 신경 쓰던 이들, 아주 감이 좋은 플레이어들은 어렴풋이 이를 눈치챈 듯했다.

교직원석에 앉아 있던 황명호 이사장 모습을 한 황지호, 임연화가 이능파를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졸업생들과 내빈의 환호 속에 온갖 종류의 모자가 하늘 위에 떠올랐다.

이능파에 힘을 실어 던진 졸업생도 있었기에 상인관에 온갖 색의 빛이 넘쳐 흘렀다.

지명수가 광림 ‘부유선물(浮遊選物)’을 거둬 그의 주변에 있던 모자가 땅에 내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졸업식이 무사히 끝났다.

우기환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휙휙 둘러보는 게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여기서 뭔가가 터질 뻔한 것 같다.

‘누군가가 3학년 0반을 저지한 게 아닐까?’

그때, 도시후와 장남욱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두 사람은 제갈재걸의 언령 너머의 상인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욱아, 저기에 뭐가 있어?”

“응.”

장남욱의 눈에 별빛이 잠시 어른거렸다.

‘별 처녀의 눈’으로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정확하게는 밖에 뭐가 있어. 큰일이 있었나 봐.”

“보러 가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했던 걸까, 도시후의 제안으로 밖으로 향했다.

유상훈은 가기 귀찮아했지만, 결국 따라왔다.

어차피 지금은 졸업생들끼리 사진을 찍느라 바빠서 당장 만나러 갈 수 없으니 시간이 좀 남긴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상인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을 열자 공중 정원이 보였다.

“오, 은광고에는 공중 정원도 있구나. 밑에서 봤을 땐 안 보였어.”

“이건 이능으로 만든 거 같은데…….”

허공을 떠다니는 공중 정원을 보고 사관학교 생도 둘이 태평한 소리를 해 댔다.

이 공중 정원은 은광고 측에서 설치한 게 아니다.

이건 3학년 0반이 우주의 기운을 독점하겠다며 다른 학생들을 따돌릴 때 쓰던 미끼, 공중 정원이었다.

“오, 수상한 부반장님 오셨네. 이미 모든 게 잘 끝났음요!”

공중 정원에서 문새론이 풀쩍 뛰어내렸다.

문새론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수혁과 안다인 건을 두고 적의를 불태우던 게 거짓말처럼 친근해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물론, 있었음요. 지금부터 설명해 드림!”

문새론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3학년 0반은 졸업식이 끝나는 순간, 졸업모를 던질 때를 노려 일을 벌이려 했다고 한다.

졸업식 시작 전에 상인관 밖에서 난동을 부린 건 양동 작전이었다.

그들은 둘로 나뉘어 상인관 밖에서 난리를 피우고, 다른 한쪽은 그들의 비장의 무기가 실린 공중 정원을 소환했다.

‘상인관의 결계가 견고해 밖의 기척을 읽기 어렵다는 걸 이용해 허를 찔렀구나.’

아무리 그래도 황지호는 눈치챘을 텐데, 왜 이걸 가만히 내버려 둔 건가 싶었지만,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문새론은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손짓했다.

“그리고 3학년 0반의 음모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게 바로 저 두 분임요!”

공중 정원 위, 둘만의 세계에 빠진 주수혁과 안다인이 있었다.

주수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안다인에게 무언가를 묻고, 안다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대답하는 중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수혁이가 좋아한다는 애였지. 잘 어울린다.”

“둘이 아직도 안 사귀는 게 신기해.”

장남욱과 도시후가 둘을 보고 말했다.

저 둘도 은광고의 공식 커플 아닌 커플에 관해 알고 있는 건가!

장남욱은 농구 시합을 계기로 주수혁과 알고 지냈고, 도시후는 옛날부터 친구로 지냈다 하니 알 만하긴 했다.

‘저 둘이 나섰다면 3학년 0반 선배놈들의 계획을 무너지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런데 주수혁은 괜찮았나?’

최근 주수혁은 안다인만 보면 상태가 이상해지지 않았던가.

문새론은 내 의문을 알아채고는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졸업식이 끝나는 순간, 자신들의 재입학과 강한 담임과의 결전을 예고하는 티저 영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려고 했다.

공중 정원은 어그로를 끌기 위해 만든 것으로, 그런 짓거리를 하기에 특화된 장비가 준비된 상태였다.

‘결계를 넘어서 영상을 투사시킬 수 있는 장비라니…… 무해한 힘이라 결계가 걸러 내지 못하는 건가. 그래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주수혁과 안다인은 당시 외부 순찰을 도는 상태였다.

우연은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이를 어떻게 하고 싶었던 학생회와 선도부가 일부러 둘의 순찰 타이밍을 맞췄고, 지원 사격을 위해 문새론이 대기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그 둘은 상인관 옥상의 공중 정원을 발견했다.

“공중 정원에는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이능과 함정이 잔뜩 준비되어 있었음요.”

문새론은 자신의 숙원 중 하나였던 3학년 0반의 공중 정원 취재에 전념했고, 주수혁과 안다인은 둘이서 공중 정원 공략에 나섰다.

선배놈들은 강한 담임을 상대할 만하고, 진족도 잡는 함정을 만들던 놈들이다.

물론 공중 정원의 크기상 천익산에 설치한 정도의 함정은 없었지만, 꽤 공략 난이도가 높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호각이었는데, 공중 정원 공략 중에는 아니었음요.”

안다인은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였다.

둘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최고의 천재들이었는데, 문새론의 눈에는 주수혁의 빛이 바래 보일 정도로 안다인의 활약이 엄청났다고 한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수혁은 방윤섭 사건 이후로 의기소침해져 있었고, 황지호가 심은 오해로 정신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그에 반해 안다인은 어떤가.

‘강해져야 할 목표를 얻고, 가족이자 스승이 생겼지.’

안다인은 스승인 김신록에게 은혜를 갚는 제자가 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진정한 가족인 호족 부부와 만났다.

거기에 더해 호족 부부는 안다인을 가르쳐 그녀의 재능을 개화시키고 있다.

차이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다인느님의 월등한 활약상을 본 주 반장님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게 되었음!”

안다인은 주수혁이 좋아하는 상대이기도 했지만, 라이벌이기도 했다.

성적은 전 과목 만점으로 항상 공동 수석을 하고, 무력도 엇비슷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대였는데, 이대로 가단 주수혁은 남겨질 것이다.

그 순간, 주수혁은 지금까지의 번뇌를 털어 버리고 맑은 정신을 되찾았다.

공중 정원의 공략이 끝나자 주수혁은 곧바로 안다인에게 청했다.

―다인아, 졸업식이 끝나면 나와 대…….

‘대’라는 소리를 들은 순간 문새론은 입을 틀어막고 기대에 부풀었다.

‘데이트’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소리는 문새론을 실망시켰다.

―대련해 줄래?

안다인은 대련이란 말에 기꺼이 응했다.

문새론은 기가 차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지만, 일단 만족한다고 한다.

‘내가 수를 둘 필요도 없이, 타이틀 히어로는 위기를 극복했구나.’

둘이 대화를 하다 보면 나에 대한 오해도 금방 풀릴 것이다.

주수혁은 여태까지 뭔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였으나, 지금이라면 이해할 것 같다.

주수혁의 위기의 원인은 안다인이었는데, 극복하게 된 계기도 안다인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뒷수습은 내가 할게. 공략하느라 고생한 둘은 잠시 쉬게 하는 게 좋겠다.”

이야기의 도중에 나타난 김유리가 제안했다.

나는 적극 찬성했다.

김유리외 함께 나타난 학생회 멤버들도 이에 동의해 둘은 두 사람의 세계에 있도록 놔뒀다.

훈훈한 기분으로 물러나던 중, 도착한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주수겸] 도착했다.

생김새만 제외하면 정말 주수혁의 육촌인가 싶은 답 없는 골초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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