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86화 (78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86)

98. 송사 (3)

“지금부터 졸업식을 시작합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졸업식 사회는 교무부장이자 학교 홍보대사이기도 한 제갈재걸이 맡았다.

제갈재걸의 말이 시작되자 내 위치의 반대편에 자리 잡은 2학년 0반 일당이 촬영을 개시하였다.

저 선배놈들은 졸업을 축하하러 온 게 아니라 제갈재걸을 찍으러 온 것 같다.

졸업식을 맞이해 교직원 전원이 평소보다 더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으니 찍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갔다.

나도 신문부로서 사진을 많이 찍어 둘 예정이다.

“다음으로 졸업생에 대한 졸업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은광고는 학생 수가 많아 졸업장은 각 반의 반장이 대표로 받는다.

제갈재걸의 말에 0반 반장 우기환과 1반부터 10반까지의 반장들이 차례로 단상에 올랐다.

단상에 오른 덕에 3학년들의 옷차림이 잘 보였다.

3학년 학생들은 전원 교복 차림에 가운을 입었는데, 모자의 디자인은 제각각이었다.

사각모가 대부분이었지만, 아얌, 사모 심지어 반 단체로 맞춘 듯한 술이 달린 야구 모자를 착용한 학생들도 있었다.

저렇게 모아 두니 은광고의 교풍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새삼 느껴졌다.

“저분들 졸업 안 한다고 하셔서 졸업장 안 받는다고 하실까 봐 걱정했어. 하지만 3학년 0반 반장분은 사각모도 잘 착용하셨고, 수여식 중에도 정중하게 행동하시네. 다행이다.”

“……저럴 인간이 아닌데.”

머리카락과 스카프로 얼굴을 반쯤 가린 황보윤 교장으로부터 얌전히 졸업장을 받는 우기환을 보며 장남욱과 유상훈이 소곤거렸다.

개인적으로는 유상훈의 말에 동의한다.

3학년 0반 선배놈들을 상대로 마지막 날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졸업장 수여식이 끝날 때까지 우기환을 관찰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우기환은 흔해 빠진 인상의 얼굴로 평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상당히 맛이 갔기에 주의해야 했다.

다행히 상장 수여식이 시작될 때에도 별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어서 상장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근면 부문, 모범 부문, 학력 부문, 특별 부문 넷으로 나누어 시상하겠습니다.”

근면 부문은 출석으로 정해진다.

흔히 말하는 개근상, 정근상이 이 부문에 속한다.

출석과 상관없이 성적을 내고 졸업이 가능한 은광고의 경우, 3년 개근상을 타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유독 출석 상태가 좋지 않은 우리 반의 경우 개근상을 탈 수 있는 건 한이밖에 없을 거다.

다른 반의 경우, 대부분 출석을 잘 하는 편이나 이계 공략이나 유학 등의 이유로 결석하는 학생들이 발생한다.

“근면상을 수여하겠습니다. 3년 개근…….”

제갈재걸이 입에 담은 이름은 고작 세 개였다.

3년 동안 하루도 결석하지 않은 학생이 셋밖에 없다니.

아니, 셋이나 있다고 해야 할까?

셋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사건에 잘 휘말리는 편이고, 성시완은 이계 공략을 자주 다니고, 신문부 선배는 취재와 수업이 겹치면 취재하러 갔어. 3학년 0반 선배놈들은 뭐…… 그놈들이 그렇지.’

세 명의 학생들이 단상에 올라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광고 3년 개근이라니, 자랑할 만하다.

다음으로 모범 부문의 시상이 진행되었다.

모범 부문은 공로상, 모범상, 봉사상, 선행상, 효행상 다섯 개의 상이 있었다.

‘모범 부문은 3년 동안 한 번도 징계 사실이 없는 학생만 받을 수 있어. 의외로 거기에서 걸러지는 선배도 많겠지.’

예를 들자면 오혜지가 그러했다.

오혜지는 선도부장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학생이지만, 1학년 때에는 집안 영향으로 엇나가 이런저런 사고를 많이 쳤다.

역시나 모범 부문 수상자 명단에 오혜지의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아는 이름이 꽤 많네.’

교내, 교외 활동, 뛰어난 지도력으로 학교의 명예를 높였거나 발전에 기여한 학생이 받는 공로상.

공로상을 받은 이 중 아는 사람이 둘 있었다.

한 명은 도원우, 다른 한 명은 성시완이었다.

도원우는 항상 수석이었기에 학업상을 받는 게 확정된 상태였지만, 재학 중, 특히 크리스마스에 보인 활약을 생각하면 공로상을 받는 게 당연할 거다.

성시완은 교내 최대 이계 공략 플레이어로, 최대 공헌자 명단 단골이었다.

아마 성시완은 학력 부문에서 이능상을 또 받을 것 같다.

“와, 원우 형이 상 받았다!”

“…….”

위치를 알려 준 것도 아닌데 귀신같이 합류한 도시후가 태평하게 박수를 보냈다.

유상훈은 도원우가 빈틈없는 표정으로 상을 받는 걸 보고 크게 표정을 구겼다.

다음 시상자를 보고 도시후의 눈치 없는 발언이 이어졌다.

“상희 누나가 상을 수상하는 상황. 하하하!”

“도시후, 저거 농담이라고 한 거냐?”

“그럴걸. 그냥 무시해, 상훈아.”

유상훈의 기분은 더욱 나빠지고, 도시후는 시무룩해하고, 나와 장남욱은 이를 외면하고 유상희의 수상을 축하했다.

유상희는 치유 이능을 살려 봉사 활동을 자주 다닌 점을 인정받아 봉사상을 받았다.

선행상을 받은 것도 내 플레이어블 캐릭터였다.

‘지명수 덕에 학생회가 원활하게 돌아갔지. 도원우는 집안 문제 때문에 학교 일에 신경을 못 쓸 때가 많았으니까.’

지명수는 두루두루 친한 사람이 많아서 박수 소리가 평소보다 더 컸다.

마지막으로 효행상 수여가 끝난 후, 학력 부문 시상이 이어졌다.

학업상의 기준은 학교별로 조금씩 다른데, 은광고의 경우 3년 누적 성적 상위 1%가 받을 수 있다.

한 학년당 500명이 조금 넘으니, 다섯 명만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어차피 수석과 차석은 도원우기환이라서 자리는 셋밖에 없지. 학업상 선발이 꽤 까다로웠을 거야.’

저 둘은 고정이지만 그 밑으로는 순위 다툼이 매우 치열하다고 들었다.

성적순으로 차례로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그 다섯 명 중, 유상희의 이름이 있었다!

도원우는 당연히 학업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유상희 이름이 불리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섯 명의 학업상 수상자가 단상에 오르자 상인관이 잠시 조용해졌다.

말 그대로 은광고에서 손꼽는 수재들이 뿜는 기백에 사람들이 감탄해 입을 다문 것 같다.

‘도원우가 긴장한 것 같아.’

공로상을 받았을 때에는 태연했는데, 하도 해서 익숙해졌을 수석의 자리를 두고 왜 긴장한 걸까.

짧게 관찰한 결과, 아무래도 상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같이 상을 받는 유상희를 의식한 것 같았다.

비록 사람들 앞이라고 하나 저 둘이 이렇게 가까이에 서 있는 건 오랜만일 거다.

제갈재걸이 매끄럽게 사회를 진행한 덕에 큰 문제는 안 됐지만, 상을 받고 내려온 도원우가 작게 한숨을 뱉는 게 보였다.

“에휴.”

유상훈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지만, 다음 수여식을 기대하는 분위기에 묻혔다.

이어서 운동 능력,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을 보는 이능상, 예능 분야를 기준으로 하는 예능상, 과학과 기술 등의 분야를 보는 기능상 수상이 이어졌다.

이능상은 예상대로 성시완이 받았고, 예능상은 예상은 했으나 별로 탐탁지 않은 인물이 받았다.

“예능상, 3학년 0반 정해수. 위 학생은 예능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3학년 0반 부반장 선배놈, 해금 연주자 정해수가 예능상을 탔다.

진족의 수장이 이능 악기를 바칠 정도의 실력자이니까 당연한 거긴 한데, 저 선배놈의 실체를 생각하면 영 그랬다.

독고미로랑 같은 반을 하기 위해 재입학하겠다고 난리 치던 선배놈들 중, 정해수의 목소리가 제일 컸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특별 부문의 수상식이 진행되었다.

‘특별 부문은 학교 밖에서 주는 상이었지. 아마 플레이어 협회장하고, 플레이어 관련 과목이 있는 대학교 총장이 줄 거야.’

특별 부문에서는 대부분 진로에 따라 상을 받았다.

이 중 오혜지는 진학할 예정인 대학교의 총장으로부터 상을 받아 무관을 면했다.

수여식이 모두 끝난 후에는 이사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보통은 학교장이 식사(式辭)를 하지 않나? 황보윤 교장은 어지간히 사람 상대하기 싫었나 보네.’

졸업생에 대한 예우를 갖춰 졸업장과 상장을 주긴 했지만, 식사까지 할 의리는 없었나 보다.

그 대신 이사장이 일을 하니까 별 상관은 없을 거다.

제갈재걸이 다음 순서 소개를 하자 곧 황명호의 모습을 한 황지호가 단상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은광고등학교 졸업생 플레이어 여러분. 졸업을 맞이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황지호의 모습일 때보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졌다.

대외용으로 추정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황지호는 천천히 상인관을 둘러보았다.

3학년 학생들과 그 가족들, 내빈을 돌아보는 모습에 여유가 넘쳤다.

어쩐지 나와도 눈이 마주친 것 같다.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눈은 좋은가 보다.

황지호는 의례적이긴 하지만, 산뜻한 내용의 축사를 막힘 없이 전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다들 박수를 보내고 있는데,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내 눈이 잘못됐나?”

장남욱은 아주 혼란스러워하는 얼굴로 황명호의 등장과 퇴장을 지켜봤다.

장남욱은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는 혼잣말을 했다.

‘설마 황명호의 모습을 할 때도 황지호로 보이는 건가.’

장남욱에게는 ‘별 처녀의 눈’이 있다.

예전에 그 눈으로 2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를 봤을 때, 장남욱은 겉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황지호라고 불렀다.

60대의 모습도 저 눈으로 봤을 땐 별다를 바가 없는 걸까?

노친네가 퇴장할 때 장남욱 쪽을 흘끗 봤었는데, 저 눈으로 자신을 꿰뚫어 봤다는 걸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장남욱이 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 숨길 생각이 있으면 황보윤 교장한테 억지로 저 자리에 서도록 시켰겠지.’

황지호는 장남욱에게 안경에 마법진을 새겨 줄 만큼 마음에 들어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아마도.

이사장의 축사에 이어서 재학생이 송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송사를 하는 건 물론 은광고의 현 학생회장, 염준열이다.

염준열이 단상에 오르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크리스마스를 지난 이후부터 염준열은 힘이 부쩍 상승한 덕에 더욱 용다워졌다.

그 덕에 인기가 더 오르고 있다.

“오늘 은광고 졸업식을 찾아 주시어 선배님들의 새로운 출발을 빛내 주신 모든 분들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염준열의 송사는 감사의 말로 시작되었다.

염준열은 찾아 준 이들과 그동안 이끌어 준 선배들에 대한 감사, 존경의 마음을 숨김없이 송사에 담았다.

선배를 보내는 아쉬움을 담은 말에는 아련한 슬픔이 느껴졌다.

남은 후배로서의 책임감, 앞으로의 결의를 표명하는 말에서는 용기가 전해졌다.

‘염준열의 송사는 밝고 힘이 넘치는데, 듣고 우는 사람이 있구나.’

염준열의 송사를 들으니 정말 졸업해 은광고를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난 걸까.

졸업 예정자 중에 우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내빈 중에서도 우는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3학년들의 가족들이었지만, 염준열의 당당한 모습에 감동을 받은 용족과 붉은 사자 팀원도 일부 섞여 있는 듯했다.

염준열의 간결하고 진심 어린 송사가 끝나고도 고개를 못 드는 이들이 꽤 있었다.

“다음으로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있겠습니다.”

침울한 분위기 속, 도원우가 상인관 단상 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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