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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799화 (79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9)

99. 새로운 1학년 0반 (10)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윤여랑이 학교에서 지급한 R급 무기 아이템 카드를 실체화했다.

윤여랑의 전투 스킬은 석궁술로, 크로스보우를 다룬다.

사실 윤여랑은 벽사의 힘을 지닌 화살을 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활시위를 당기고, 거대한 활을 들고 다니기 위해 생각보다 팔 힘이 많이 필요한 데다 실력이 잘 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윤여랑은 큰 무기를 들고 전투를 하는 게 잘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화살을 쏘는 걸 포기할 수 없어서 타협한 결과 택한 게 크로스보우였다.

‘크로스보우로 쏘는 벽사의 화살이라니. 뭔가 이상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화살이지.’

윤여랑은 크로스보우를 들고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후, 견제하기 위해 은호를 겨냥했다.

은호는 아이템 카드를 몇 개 꺼내긴 했지만, 윤여랑에 비해서는 느긋해 보였다.

“쟤는 왜 무기 안 꺼냄?”

“불, 물, 바람 속성 같은 자연계 전투 스킬을 가졌을 수도 있고, 맨손 격투를 할 수도 있겠지.”

“서포터나 보호대가 없어. 자연계 전투용 서포터는 비싸서 없을 수도 있지만, 보호대는 학교에서 주지 않냐?”

“우리 학교 돈 많아서 서포터도 신청하면 준다.”

“야, 1학년 수석! 나 너한테 걸었단 말이야! 놀지 마!”

아무런 무기를 꺼내지 않는 은호를 두고 1학년 후배들이 여러 말을 꺼냈다.

은호는 무기 아이템을 꺼내는 대신 아이템 제작용 도구 세트를 꺼냈다.

이능을 사용해 무기를 제작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살상력은 0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시작 전 1학년 애들은 누가 반장이 될지 간식을 걸고 베팅을 했는데, 은호의 배당률은 나쁘지 않았다.

은호에게 건 아이들 중, 지금 목 뒤를 잡는 애들이 많을 것 같다.

덧붙여 말하자면 황지호가 눈을 반짝거리며 고등학생 간식비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돈을 걸려는 건 내가 막았다.

타다닥, 척!

윤여랑은 견제를 하며 거리를 계속 벌리다가 멀리 멈춰 섰다.

무기의 특성상 조준을 하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거리부터 벌리기로 판단한 듯하다.

은호는 윤여랑의 위치를 눈으로 좇긴 했으나 몇몇 아이템 제작 재료를 실체화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지급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낮은 희귀도의 재료들이 은호 주변에 늘어져 있었다.

“음, 뭘 준비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래도 나는 싸울 거야!”

윤여랑도 은호의 이상한 행동을 두고 나름 고민을 한 것 같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싸우는 길을 택한 듯했다.

윤여랑은 크로스보우의 끝을 움직였다.

조준한 방향은 아이템 카드를 쥐고 있는 은호의 손이었다.

공청훤은 화살촉이 급소를 꿰뚫는 상황에 대비해, 은은한 이능파를 두르고 크로스보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은하에게 간식비를 건 바람에 애가 탄 1학년 후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호를 향해 왁왁 소리를 질렀다.

“뭐라도 해 봐! 보여 줘!”

“이대로 수석이 1차전 탈락한다고? 그러지 마!”

천은하에게 건 사람 중 유일하게 침착하게 굴고 있는 건 천동하 하나였다.

천동하는 천리안을 발동해 모든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살피는 중이라 눈에 이능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잘 앉아 있었고, 초조해 보이지도 않았다.

동생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는 형다운 모습이었다.

픽!

크로스보우에서 화살이 발사되었다.

윤여랑의 석궁술 스킬 레벨이 높지는 않았으나 움직이지 않는 타깃을 맞출 정도는 되었다.

화살이 발사된 후에야 은호가 처음으로 움직였다.

파아앗!

갑자기 은호의 앞에 거대한 그물망이 나타났다.

아니, 나타났다기보다는 ‘만들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은호는 화살의 발사와 동시에 이능파를 이용해 바닥에 늘어놓은 재료들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손을 들어 올려 도구를 사용해 그물망을 완성해 버렸다.

이능적인 의미로 눈이 나쁜 사람이라면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고 섬세한 움직임이었다.

휘리릭!

은호가 그물망을 향해 이능파를 흘려 넣어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듯 빙글 돌렸다.

그렇게 은빛으로 덮인 그물망에 삼켜진 화살은 은호에게 닿지 못한 채로 힘을 잃었다.

“와! 방금 어떻게 한 거야? 저건 학교에서 지급한 아이템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 사용 가능한 카드를 한정했으니까 아이템 카드를 써서 불러낸 건 아닌 듯? 이능 쓴 거 아님?”

“아니야, 쟤가 재료 갖고 방금 만들어 낸 거야.”

“오,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움직임도 엄청 정교했어. 나는 천천히 하라 해도 저렇게 못 하겠다.”

1학년 중에서는 은호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간 애들이 꽤 있는지 전투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했다.

윤여랑은 그 움직임을 다 알아본 건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은호의 실력에게 순수하게 감탄한 건지 확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능파의 여파로 꿈틀거리던 그물망의 움직임이 멈추자 은호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크로스보우는 사전에 장전해 둘 수 있어서 첫발을 막기 까다롭죠. 하지만 연사력이 떨어져서 첫발을 넘기면 다음은 쉬워요.”

장전을 준비하던 윤여랑이 무슨 대처를 하기도 전에 은호가 움직였다.

눈으로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의 완만한 속도였으나 허를 찌르기 어려울 만큼 빈틈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냥 걷고 있는 게 아니라 무술의 보법을 사용해 움직이는 듯했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걸음인데…….”

“나는 처음 보는데.”

“나 알아. 저거 태호권에서 쓰는 보법이야!”

은호는 태호권을 사용해 움직이는 듯했다.

태호권을 쓸 줄 알다니, 청호한테 직접 배운 걸까?

보호대가 없어서 맨손 격투를 할 거라 생각하지 못한 이들이 웅성거렸다.

그동안은 은호가 들고 있던 아이템 카드 중에 무기 아이템 카드가 있을 거라 어림짐작한 듯했다.

윤여랑도 그렇게 생각한 건지, 급히 재장전을 멈추고 몸을 피했다.

윤여랑은 거리를 벌리며 장전을 서둘렀지만, 은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걸 깨닫자 윤여랑은 거리를 벌리는 걸 멈추고, 근접전에 대비했다.

‘원거리형 무기를 쓰는 플레이어들은 근접전을 할 가능성도 상정하고 전투 능력을 키우지.’

하지만 윤여랑의 근접 전투 능력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닌데, 호족이 쓰는 태호권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승패가 기울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황지호가 말했다.

“태호권을 쓰기에는 제약이 많을 텐데, 굳이 그걸 택하다니 은호답군.”

“제약?”

“오랜만에 쓰는 것일 테니 몸이 제대로 따라 주지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은호는 골격이 맞지 않는다.”

전자는 이해가 가는데 후자는 잘 와닿지 않았다.

태호권은 골격이 맞지 않으면 배울 수 없는 것 아니었나?

내 의문에 황지호가 답했다.

“골격이 맞지 않아도 태호권을 배우는 건 가능하다. 비유하자면…… 악기 연주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동작 하나를 반복시켜서 소리를 내게 하는 건 가능하지 않나? 그런 거다.”

황지호는 ‘악기 연주’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며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왜 저따위로 보는지 모르겠지만, 황지호가 무슨 의도로 말을 한 건지는 알겠다.

피아노를 잘 모르는 사람이 특정 곡을 온전히 연주하는 게 불가능하더라도 악보를 보면서 한 음씩 치는 건 가능하다.

박자 등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연주는 못 하겠지만, 어쨌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 피아노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셈이다.

골격에 맞지 않는 태호권을 쓴다는 건 그런 걸 거다.

그때, 전황이 기울었다.

“앗!”

윤여랑은 크로스보우로 주먹을 막으며 틈을 노리던 중, 보법에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만 한쪽 발이 바닥에 널려 있던 그물망에 걸리고 말았다.

급히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는 않았어도 방어 태세가 무너졌다.

은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들어 윤여랑의 갑상연골 앞쪽으로 가져갔다.

은호는 말 그대로 그 앞에서 손가락을 멈추었지만, 공청훤이 급히 끼어들어 선언했다.

“멈추세요.”

지이잉.

공청훤의 말에 담긴 이능파에 주변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공청훤이 언령을 썼기 때문이었다.

맨손인 은호가 그저 손가락을 목 가까이 들고 있을 뿐이었으나 공청훤은 그리 판단하지 않은 듯했다.

공청훤은 이번에는 언령이 담기지 않은 평범한 말을 꺼냈다.

“천은하 학생의 승리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에는 아직 윤여랑이 더 싸울 수 있는데 대련을 중지시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지호의 말에 의하면, 승부는 저 순간 확실히 갈린 듯했다.

“방금 은호가 쓰던 기술은 ‘호랑이 발톱’이다. 이전 동작으로 힘을 순환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손끝에 힘을 모아 단숨에 목을 꿰뚫는 기술이지.”

그런 살벌한 기술이었나.

태호권의 고수인 공청훤이 그 전조 동작을 보았다면 저렇게 급히 언령을 사용해 끼어든 이유도 이해가 간다.

“태호권은 이능파를 속으로 갈무리하면서 쓴다. 즉, 태호권은 겉으로 이능파가 잘 드러나지 않아 상대를 쉽게 방심시킬 수 있다. 이게 실전이었다면 방심한 상대의 목이 관통되었을 거다.”

그런데 골격이 맞지 않는데 저런 기술을 쓸 수도 있나?

내 속을 읽었는지 황지호가 덧붙여 말했다.

“윤여랑의 발이 걸리지 않았다면 쓸 수 없었을 거다.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은호는 골격이 맞는 자에 비해 몇 배나 무방비해지니, 그전에 제압당했겠지.”

일부 관중들이 항의하자 공청훤은 태호권 사범으로서 태호권의 ‘호랑이 발톱’에 관해 설명하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공청훤이 은호와 같은 준비 동작과 과정을 거쳐 호랑이 체육관에 구비되어 있던 강화 송판을 구멍 내었다.

그걸 보여 주자 항의하던 관중들은 입을 다물고 윤여랑은 굉장하다며 박수를 쳤다.

위험한 기술의 상대가 되고, 진 직후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발랄한 태도였다.

공청훤이 은호에게 물었다.

“잘 배웠군요. 태호권을 쓰기에는 골격이 맞지 않는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태호권은 특성상 실전에 쓰는 기술이니까요. 골격이 맞지 않아도 제 싸움 방식에 활용하기 좋아요.”

은호는 온화하게 말했다.

저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은호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은호는 태호권을 배울 신입생을 모으려고 한 거다.

은호는 동아리 가입 기간이 시작되기 전, 신입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태호권을 보여 주고 태호권을 가르치는 사범인 공청훤을 소개했다.

황지호의 재력과 권력으로 홍보하는 것보다 신입생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이쪽이 더 효과적일 거다.

‘게다가 은호는 골격이 안 맞는데도 이런 활용법을 보여 줬어. 은호 같은 변칙적인 싸움을 하는 신입생이라면 골격이 맞지 않아도 배워 보려 할지도 몰라.’

신입생들의 태도를 보니 벌써 태호권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이대로라면 태호권 소모임이 폐부 걱정을 할 일은 없지 않을까?

공청훤과 한이의 근심을 덜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은호가 대련의 복기를 가장한 태호권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치고 대기실로 향하기 전, 공청훤이 은호에게 말했다.

“그래도 태호권을 배우기 쉽지 않았을 텐데, 굉장하군요. 골격이 맞지 않는데도 이 정도로 사용하는 분은 처음 봤어요.”

“좋은 스승을 둔 덕이에요.”

은호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좋은 스승일 거다.

은호에게 태호권을 가르쳤을 청호는 태호권의 창시자이자 그의 친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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