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8)
99. 새로운 1학년 0반 (9)
1학년 구역 제1체육관.
체육복 차림의 1학년 0반 후배들이 몸을 풀고 있는 가운데, 관객들이 입장했다.
은광고에서 싸움 소식은 정말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금세 사람이 몰려들었다.
방과 후라 부 활동 혹은 이계 공략을 하느라 바쁜 2, 3학년들보다는 1학년들이 많이 와 있었다.
1학년 후배들은 은광고에서 처음으로 하는 싸움 구경이라 신이 나 보였다.
덤으로 말하면 나이가 많은 호랑이도 그에 못지않게 신난 듯했다.
“이런 구경을 할 날이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황지호가 나이 자랑을 하며 말했다.
나와 황지호는 일단 신문부 활동의 일환으로 이 자리에 왔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명색이 신화계 호족에다가 호족의 수장인데 호족 조손이 싸우는 걸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촉룡과 염준열이 교육이 아닌 목적으로 싸운다고 하면 청룡을 필두로 용족 전체가 나서서 뜯어말릴 텐데.
아, 용족 전체는 아닐 것 같다.
용제건은 염준열이 다치지만 않는다면 황홀해하면서 구경할 테니까.
황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적호와 백호도 이 싸움을 보러 왔다. 적연으로 몸을 숨기고 있지.”
보이지 않는 관객 중에 호랑이가 더 있는 듯하다.
모습을 감추면서까지 보러 오다니, 두 호족이 후예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호족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 있으니 누가 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하하! 싸우면서 친해졌으면 좋겠군.”
호랑이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신화시대에 호랑이들이 싸우고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설마 은호네 조손들도 싸우면서 친해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건가?
감정의 골과 오해만 깊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예 서로 모르는 채로 사는 것보단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후배들은 배고프지 않을까? 배고플 시간인데,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되니까 경기 수가 많아 한참 걸리지 않나?’
배고플 시간에 1학년 애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학교 운영을 하는 황지호는 왜 보고만 있는 건가.
나라도 뭔가 사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매점으로 향하려 했다.
“조의신, 곧 시작인데 어디에 가는 거냐.”
“매점.”
“흠,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하니 말해 보도록.”
딱히 속내를 티 내려 하지 않았는데, 노친네의 눈치가 날이 갈수록 는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애들한테 간식 사서 나눠 줄 거야.”
“그런 거였나? 듣던 대로 후배들한테 극진하군. 네가 갈 필요 없다. 준비시키마.”
황지호가 고르는 간식은 맛있을 테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려 할 때, 은호가 이쪽을 보고 다가왔다.
학교 체육복을 입은 모습이 신선했다.
“다들 오셨군요. 와 주셔서 감사해요.”
“하하하하! 네가 싸우는 걸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칠 수 없지.”
“기대에 부응해야겠네요.”
은호는 고작 반장 자리 때문에 일어난 소란을 두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한 은호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반장은 은호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은서호, 은이호, 윤여랑 다 좋은 아이들이지만, 은호는 경험이 많지 않은가.
은호는 천성헌 시절에는 조장이나 과대표 등 대표 자리를 자주 맡았다.
총학 선거는 본인이 고사했지만, 나갔다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화시대에는 호족의 우두머리도 했고.’
하지만 저런 경력을 1학년 0반 후배들에게 어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 상황을 보니 경력을 봐도 저들은 납득하지 않을 것 같다.
은호와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천은하의 형이 급히 이리로 달려왔다.
“은하야!”
은호는 천동하에게도 보러 오라고 했나 보다.
천동하는 선도부 회의를 일찍 마치고 바로 달려온 건지, 뒤에 선도부원들이 몇 명 보였다.
그중에는 주수혁도 있었는데, 나와 황지호를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보기만 해도 뻣뻣하게 굳었을 때보다는 훨씬 낫네.’
주수혁은 안다인과 대련을 하고 대화하며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얼마 전, 두 사람과 둘을 응원하는 이들에게 있어 크고 중요한 이벤트가 일어났다.
바로 둘 다 성적우수자로서 2학년 1반에 배치되어 같은 반이 됐다는 것이다!
플마고에서는 주수혁이 2학년 0반에 들어가는 바람에 둘이 같은 반이 되는 일은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되었다.
문새론은 2학년 1반 교실 문만 봐도 뿌듯해진다고 평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음 학생 대표 회의에는 주수혁과 안다인이 반장과 부반장으로서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보게 되겠구나.’
2학년 1반의 경우, 사실 반장과 부반장을 정하는 데에 난항을 겪었다.
몇 번이나 재투표, 재개표해도 주수혁과 안다인이 25표씩 받는 바람에 반장과 부반장을 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지하게 공동 반장으로 추대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안다인이 양보했다.
주수혁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안다인은 완강했다.
―1학년 때 반 배정할 때, 수혁이가 양보한 덕에 내가 1반이 되었어. 그 덕분에 김신록 선생님을 담임으로 두게 됐잖아. 늘 고마워하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그런 미담이 있었다.
1등은 1반, 2등은 2반 이런 식으로 배치되어야 하는데, 공동 수석이라 저 둘 중 누굴 2반으로 보내야 할지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양자의 합의 결과 가나다순으로 정해 안다인이 1반에 가게 되었다.
주수혁은 자신이 양보한 게 아니라 공정하게 합의한 결과라며 반박했지만, 안다인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게 주수혁이 반장, 안다인이 부반장이 되었다.
‘저런 식으로 양보를 한 걸 보니, 투표하는 내내 두 사람은 계속 서로의 이름을 써 냈나 보구나.’
처음에 자신의 이름을 써 냈다면, 양보하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상대의 이름을 썼으면 표 수가 바뀌어 금방 반장이 결정되었을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의 이름을 적는 바람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영민한 은광고 학생들은 그 일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정을 파악하고 흐뭇해했다.
“괜찮아? 이번 0반 아이들은 좀 과격한 것 같아서 걱정된다. 네가 0반에 있는 덕에 선도부장으로서는 그나마 안심되긴 하는데…….”
한편, 천동하는 계속 동생 걱정을 했다.
은호가 진족이라는 걸 알아도 천동하는 감금 증후군에 걸린 동생의 모습과 천방지축 날뛰는 0반 일당의 모습을 오래도록 봐 왔기에 저렇게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은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모셨으니 편안하게 봐 주세요.”
“그래…… 내가 걱정이 지나쳤나 봐. 아, 선도부 애들을 소개 안 하고 있었네. 얘들아, 내 동생인 천은하야.”
천동하는 은호의 말을 들은 후에야 안심하고 동생 소개를 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은호를 흘끗거리던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하러 왔다.
천동하의 동생, TC 그룹의 자제, 수석, 0반…… 은호의 정체를 몰라도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멀리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대기업의 자제도 0반에 가는구나.”
“처음은 아니야. 3학년 0반의 금찬솔, 왕찬솔 선배, 2학년 0반의 황지호 선배가 있잖아.”
“들어 본 거 같다. 잊고 있었어.”
“뭐야, 1, 2, 3학년 0반에 다 있네.”
“……쟤는 0반 갈 줄 알았다.”
마치 천은하를 아는 1학년 학생이 있는 것 같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해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은호가 은광고 면접을 치를 때, 옆자리에 앉았던 학생이었다.
성적이 아슬아슬한 건지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지만 침착하게 답해 좋은 인상을 받았는데, 합격하는 데에 성공했나 보다.
‘그 형 자랑을 라이브로 들은 후배가 입학했구나.’
끝도 없이 늘어놓던 형 자랑을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물론 은호가 말하는 형의 지분은 백호군과 천동하의 비중이 크겠지만, 일단은 나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던 탓이다.
“이제 시작하겠군.”
황지호가 부하를 통해 대령시킨 오리지널 버터맛, 양파맛, 초콜릿맛 등 여러가지 맛의 팝콘과 핫도그, 탄산음료와 주스 배분이 끝났을 때,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은서호와 은이호와도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둘은 초긴장 상태로 몸을 풀고 집중하는 중이라 말을 걸 틈이 없었다.
길을 헤매느라 제1체육관을 늦게 온 윤여랑과 멀리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직후, 공청훤이 앞으로 나왔다.
“룰을 확인할게요. 토너먼트전의 목표는 반장과 부반장을 가리는 거예요. 우승자는 반장, 준우승자는 부반장이 될 예정이죠.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
“네!”
선량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지자 우렁찬 답변이 돌아왔다.
저 모습을 보니 1학년 0반 아이들은 공청훤을 꽤 따르는 듯하다.
금찬왕찬 일당이 처음엔 제갈재걸에게 반항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알겠어요. 반장은 학급 구성원이 납득하는 방법으로 뽑는 게 좋겠죠. 요청한 대로 심판을 보겠습니다. 상대를 제압하되, 필요 이상의 싸움이 이어지면 개입할게요.”
“네!”
아무리 맛이 간 아이들이 섞여 있다 해도 저렇게 말해 주는 담임 교사가 있다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려는데 최대한 이해해 주고 합의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대전표는 준비되었나요?”
“네, 사전에 준비했어요!”
“쌤 디바이스로 보내 드림요.”
은호가 보내 준 덕에 나도 그 대전표라는 걸 가지고 있다.
1학년 0반이 마련한 토너먼트 대전표는 제비뽑기와 사전 교섭, 합의에 따른 교환 등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별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소모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들은 진지해 보이니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고민하는 건 있었다.
‘당장 만나지는 않지만, 토너먼트 방식상 은호와 후예들은 언젠가 만나게 될 거야.’
은서호와 은이호는 호족의 후예이다.
김신록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과 이능파 링크를 해서 싸우지 않는 한, 호족에게 대항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대로 싸움이 진행되면 호족인 게 들통날 텐데 괜찮을까?
진명을 숨긴 것처럼 무슨 수단을 준비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후예가 근원이 이어진 진족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비법이 있었다면, 진작에 김신록에게 알려 줘 웅족으로부터 몸을 지키게 했을 거다.
‘은호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좋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 말한 걸 보니 싸울 생각은 있어 보이는데.’
공청훤이 대전표를 확인한 후, 말했다.
첫 시합에 나서는 이들은 전부 아는 이들이었다.
“첫 경기는 천은하, 윤여랑. 두 사람은 앞으로.”
그 말을 듣자 윤여랑이 경쾌한 걸음으로 뛰어나오고, 천은하는 차분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둘은 공청훤이 지정한 자리에 나와 멈춰 섰다.
‘첫 시합부터 저 둘이라니…….’
첫판부터 은호 조손이 싸우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어째 조합이 누굴 응원해야 할지 미묘해지는 시합이었다.
“시작!”
“와아아아아!”
공청훤의 신호와 관객들의 함성 속에서 옛 호족 수장과 현 용왕신의 무녀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