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797)
99. 새로운 1학년 0반 (8)
은광고의 0반 반장 선거는 악명이 높았다.
0반에는 다른 반에 비해 관종들과 괴짜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호시탐탐 반장직을 노리는 자들이 존재했다.
0반의 괴짜들은 시시때때로 반장직을 두고 의미 없는 혈투를 벌이고, 정권 교체를 해 댔다.
우기환, 금찬왕찬의 경우 최상위 성적을 유지할 만큼 뛰어나고 미친 자들의 대장을 할 만큼 맛이 가 있었지만, 반장직을 위협당한 적이 꽤 있었다.
‘금찬솔과 왕찬솔이 탄핵당할 뻔해서 연가람이 임시 반장을 맡은 적도 있었지.’
우리 반은 작년에 등교한 사람이 얼마 없다 보니 원만하게 학급 임원이 결정되었지만, 이번엔 모른다.
오늘은 열네 명이나 등교했으니까 저번처럼 적당히 정할 수 없다.
착한 우리 반 아이들이 다른 0반 선배놈들처럼 유치하게 반장직을 두고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 두 개의 과제 중 하나는 쉽게 해결되었다.
“그럼 학급 임원은 작년과 그대로네. 올해도 열심히 할게! 잘 부탁해.”
전 반장으로서 투표를 진행한 김유리가 무난히 당선되었다.
득표 결과를 보니 아직 등교한 지 얼마 안 된 관종들과 진정묵도 김유리를 찍은 듯했다.
김유리는 연락처를 파악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아 인망이 깊었다.
‘김유리가 반장으로 뽑힌 건 그렇다 쳐도 왜 나까지…….’
반 아이들의 요청으로 반장과 부반장을 각각 따로 뽑았는데, 다들 나를 찍었다.
고생한 김유리에 비하면 나는 한 일이 없지만, 다들 그냥 ‘수상한 부반장’이라는 칭호를 쓰고 싶어서 뽑아 준 것 같다.
“의신이는 작년에 여러 일로 바빴을 테니 올해에는 쉬게 하고 싶은데, 그래도 부반장을 해 주셨으면 해서요!”
“유리랑 의신이한테 신세를 너무 많이 져서 일을 맡기기 미안하지만, 뽑는다면 둘밖에 없다고 할까…….”
“저도 레나 의견에 동감합니다.”
“어, 그냥 생각 없이 뽑았는데. 일 많이 시키는 건 좀 그렇냐?”
생각 없이 뽑은 맹효돈 같은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작년에 별 실수 없이 일해서 그냥 뽑아 준 것 같다.
아침 일찍 등교해 반 아이들을 상대로 관종스러운 행위를 마치고 오로라빛으로 책상과 의자를 포장한 구슬비와 옹길동도 한마디 했다.
“뭐, 쟤네 둘이라면…….”
“짧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은 반장과 부반장으로서 신뢰를 얻을 만한 행보를 보였다. 뽑는 건 당연하지.”
두 사람은 나를 보며 눈을 여러 차례 깜빡이며 눈짓했다.
왜 나를 저렇게 보지?
설마 괴도로서 의리를 보여 나를 뽑은 건가.
만약 그랬다면 정말 쓸데없는 짓을 했다.
“두 학우가 도전할 것이라 생각했소. 의외로군.”
교실에서 가장 그늘지고 어두운 구석으로 책상과 의자를 옮겨 콘셉트를 유지 중인 어둠의 다크니스 검객이 두 관종에게 말했다.
나도 진정묵과 같은 생각을 했다.
금찬왕찬이 눈에 띄겠다고 학생 대표 회의가 열릴 때마다 미친 짓을 해 대는데, 저 관종들도 그 짓을 하기 위해 임원직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반장과 부반장으로 김유리와 나를 택했다.
“어차피 우린 학급 임원이 아니라도 눈에 띄고 특별하고 위대한걸?”
“그 말대로다.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동아리 가입 기간이 끝나면 다시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첫날만 등교하고 바로 등교 거부자를 설득하기 위해 움직일 줄 알았는데,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보다.
동아리 가입 기간까지는 등교할 예정인 듯한데, 저들은 관심 있는 동아리가 있는 걸까?
“꽃을 그리고 싶어서 원예부가 운영하는 온실에 들렀을 때 슬비 얘기를 들었어. 원예부에 들어갈 예정이야?”
민그린이 저 말을 하니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대인기피증이 있던 민그린이 자진해서 원예부에 가고, 낯선 관종 반 친구에게도 말을 걸다니.
민그린이 말을 걸자 구슬비가 뽐내듯이 말했다.
“위대한 드루이디스의 힘을 빌리고 싶나 봐. 귀한 힘을 갖고 있으면 어디에서든 환영받는 게 당연하지.”
구슬비의 ‘녹색 손의 은혜’는 저런 말을 할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광림이긴 하다.
기후나 토양 등의 조건이 잘 갖춰지지 않으면 금방 죽어 버리는 식물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구슬비의 힘이 있으면 그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씨앗이나 묘목 등을 성장시킬 수 있다.
꽃을 보고, 열매를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일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원예부의 부장은 관종들과 진정묵이 대결할 때, 구슬비가 단숨에 멸종위기종인 구상나무를 몇 그루나 키워 낸 걸 보고 눈이 뒤집어진 듯했다.
“나는 작년, 어느 소모임에 가입했다. 등교는 안 해도 소모임 행사를 도울 때에는 몇 번 참가했지.”
“고문 선생님이나 소모임 부장 선배가 뭐라고 안 했냐?”
“고문 선생님께서 상관없다고 하셨다.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나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여기는 큰 인물이 편하게 지내고 있지.”
송대석이 날카롭게 묻자 옹길동이 과장된 어조로 답했다.
등교도 제대로 안 하는 옹길동을 받아 주다니, 어느 소모임인지 몰라도 고문이나 다른 부원의 마음이 넓은 것 같다.
옹길동은 그 소모임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지 덧붙여 말했다.
“올해에는 소모임 홍보에 힘써 부디 정식 동아리로 승격했으면 좋겠군.”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이가 옹길동의 입 모양을 읽고는 표정을 흐렸다.
태호권 소모임은 3학년이 졸업하여 인원수가 크게 줄었다.
태호권은 골격이 맞아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배울 곳이 거의 없어 주 공격 스킬로 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강 신청하는 사람이 세 명도 안 되는 바람에 태호권 관련 과목도 폐지되는 상황이다 보니 정식 동아리 승격은커녕 소모임의 유지도 빠듯한 상황이다.
“흠, 그럴 의사가 있다면 얼마든지 동아리로 승격을 해 줄 텐데.”
내 옆에 앉은 황지호가 한이는 보지 못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정식 동아리 승격을 위해선 여러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총동아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노친네가 뭐 어쩌려고 저러는 건가.
설마 호족 부하나 분신을 대량 편입시켜서 전부 태호권 소모임에 가입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한이나 공청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저럴 것 같긴 하다.
“자, 그럼 다음으로 급훈을 정하겠습니다!”
작년에는 함근형 선생님의 강력한 의사로 ‘정시 등교’로 정해졌지만, 올해는 달랐다.
함근형 선생님은 열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 협의하여 급훈을 정하길 바라셨다.
“그냥 작년 거 쓰면 안 되냐?”
맹효돈은 등신 같은 급훈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니면 급훈을 새로 짓기 위해 머리를 굴리니 돌머리에 부하가 걸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전부 다 출석에 관한 것들이었다.
결국 의견을 종합해 새 급훈이 정해졌다.
김유리가 대표로 급훈을 입력했다.
[출석률 100%]
급훈은 일종의 목표 아닌가.
우리 반은 올해에야말로 출석률 100%를 위해 나아가기로 했다.
함근형 선생님은 몹시 저 말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굵은 궁서체의 글씨가 새겨진 홀로그램 패널을 바라보았다.
아침 조회 시간을 알차게 보낸 우리 반 아이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전, 뒤풀이로 간식을 먹었다.
오늘의 간식은 제철 딸기를 사용한 딸기 크로스타타였다.
“그러니까, 기숙사에서 실험하던 애가 있었는데, 0반 애가 밖에서 장난질을 치는 바람에 이능파가 밀려와 폭발이 일어난 거야?”
“네, 그렇대요! 마네킹을 떨어뜨릴 때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강력한 이능을 사용했다고 해요. 그 바람에 이능파가 좀 새어 나와서…….”
대화의 주제는 1학년이 일으킨 폭파 사건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은 작년 일이 떠오르고, 올해 들어온 1학년이 걱정되어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권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돌렸다.
1학년 후배놈들이 어떤 사건을 재현하려 한 건지 알아챈 거다.
대화의 화제를 바꾸기 위해 말을 꺼내기 전, 목우람이 먼저 나섰다.
“1학년 후배들은 최고의 0반을 목표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무슨 짓을 할 것 같습니까?”
“먼저 0반 선배들이 했던 장난질을 따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러면 후보가 좀 많네요.”
사월세음의 말대로 후보가 많다.
모든 역대 0반들이 벌인 짓거리들을 요약해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며칠은 걸릴 텐데, 그중 어떤 짓을 벌일지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1학년 0반이 다음에 무슨 짓을 할지는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답을 가장 먼저 떠올린 김유리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났네.”
“왜?”
“현재 0반 중 최강최악으로 꼽히는 건 금찬왕찬 선배들이잖아. 그분들이 1학년 입학한 직후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해 봐.”
금찬왕찬이 막 입학했을 시기를 ‘지옥의 한 달’이라고 부른다.
제갈재걸에게 감화되기 전 이들의 행보는 은광고에 대혼란을 일으켰다.
그 대혼란은 금찬왕찬 일당이 서열 정리를 한답시고 우기환 패거리에게 도전하며 시작되었다.
현재 1학년 0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반이 첫 서열 정리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컸다.
“오, 그럼 대련하는 거냐?”
“덤비라고 해.”
우리 반 무투파인 맹효돈과 독고미로가 든든하게 반응했다.
쟤네들이 괜찮다는 건 잘 알겠는데, 다른 애들이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걱정 마라. 서열 정리에 이 몸이 당하진 않을 거다.”
노친네께서도 하극상에 당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은호가 그 전쟁에 참전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지만, 은호가 그런 쓸데없는 짓에 낄 리가 없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은서호와 은이호는 괜찮을까? 괜히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윤여랑은 말려도 구경은 하러 오겠지.’
그 생각을 하니 막 씹은 파이 크러스트가 쓰게 느껴졌다.
후배들이 멍청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주의해야겠다.
그리고 만약 싸움이 시작된다면 피해를 줄일 겸 얼른 제압해 1학년 후배들이 정신을 차리고 학교생활을 보내게 도와야겠다.
한편, 일련의 과정을 보던 함근형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네!”
말릴 수 없다는 걸 아는지, 함근형 선생님은 반 아이들 걱정이나 하기로 했나 보다.
반 아이들이 힘차게 답했다.
그렇게 1학년 0반과의 싸움을 대비하며 경계하고 있었으나 그쪽 상황은 예상외로 흘러가고 있었다.
[은서호] 의신이 형, 저희 참전할 예정이에요. 응원해 주세요!
[은이호] 꼭 이길게요! 성적으로는 져도 이능으로는 지지 않을 거예요!
[은서호] 저, 혹시 오실 수 있나요?
방과 후, 은서호와 은이호로부터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뭔가 한다는 것 같은데 둘이 지나치게 흥분한 바람에 열의만 전해지고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우리 반과 싸우겠다는 건 아닌 듯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성적 운운하는 걸 보니 차석원이나 은호를 노리는 게 아닐까?
그 의문은 은호의 메시지를 통해 풀렸다.
[천은하] 오늘 반장 선정을 위한 행사가 있어요. 공개 석상에서 진행될 예정이니 시간 되면 보러 오세요.
1학년 0반은 먼저 내부에서 반장 자리를 걸고 서열 정리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