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10화 (81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0)

101. 흔적 (1)

전무영의 은사 김신록의 부고.

그 소식에 성국언은 전무영을 위로하며 자신도 조문을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금방 그 생각을 접었다.

‘내가 졸업한 후 부임한 교사라고 했지. 사망한 학생들도 아직 은광고 학생이 아니었다.’

합동 분향소라도 생기면 모를까, 직접적인 연이 없는 정치인이 조문을 가면 정치적인 목적으로 죽음을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살 것이다.

은광고의 졸업생으로서 근조 화환을 보내는 데에 그치는 게 상식적인 선택이다.

그래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전무영이 그토록 따르던 좋은 교사가 수험생을 지키지 못하고 죽은 무능한 교사라며 비난당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무능한 건 힘 없는 교사가 아니라 그 위에 있는 태만한 자일 텐데.’

결국 성국언은 조문을 가는 대신 후속 대책 마련에 힘썼다.

웅족의 동향을 살피고, 은광고의 결계 정비 상태를 확인하고, 다른 시험장의 경비를 강화하는 등 다시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바삐 움직였다.

전후 관계를 확인한 결과, 학생들과 교사는 호족과 웅족의 다툼에 휘말려서 죽은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진족을 향한 분노가 더 짙어졌다.

그러던 와중, 조문을 다녀온 전무영으로부터 의외의 말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용족과 마주쳤습니다.”

“용족과 연이 있었나 보군. 용족의 후예 중에 재학생이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조문을 온 건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중에는 용족의 수장, 청룡도 있었습니다.”

“용족의 수장이?”

그 말에 위화감을 느꼈다.

용족의 수장 청룡은 제 가족이 아닌 자에게는 가차 없는 진족이다.

세계에는 용살의 전승이 산적하고, 시대가 혼란하니 용족과 후예 그리고 용족과 깊게 연을 맺은 자를 지키기 위해선 당연한 태도였다.

성국언은 진족을 신뢰하진 않지만, 용족의 행보나 용족과 연이 깊은 염방열을 믿었기에 용족에 관해선 별다른 사감이 없었다.

어느 유희계 용족을 빼고는.

“상주가 용제건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용이?”

성국언이 불신하는 용족의 이름이 나오자 목소리의 톤이 낮게 내려갔다.

성국언의 은사가 급사했을 때, 상주인 주제에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장례식장에서 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좋게 생각할 수 없었다.

“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용제건 선생님은…….”

전무영은 주저하다가 말을 삼켰다.

“아닙니다. 제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용제건이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성국언은 캐묻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에도 은광고에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일어났다.

성국언이 자료를 요청해도 늦게 오거나 서류 미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혹시 담당자가 바뀌었나 싶어 확인했더니 진짜로 바뀌어 있었다.

‘사망한 교사가 매번 내가 요청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구나.’

서류를 담당하던 김신록이 사라지고, 빈자리를 채운 교사는 부패한 교사 최편득의 입김이 닿은 자였다.

성국언은 핑계를 만들어 조문을 갔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그 이후로도 가끔 김신록에 관해 떠올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눈이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성국언에게 가호를 내린 상위 존재가 그의 관심을 돌리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자에 관해 더 캐면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인가?’

어차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교사에게 오래 관심을 두는 건 어려웠다.

4월 중순에 총선이 있던 탓이다.

성국언은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무사히 재선에 성공하였다.

선거기간 동안 언론사가 실시한 모든 여론 조사에서 당선이 유력하다고 예측됐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성국언은 자신의 당선 결과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여당의 비례대표 당선 순번이 예상과 달랐다. 낯선 이름이 있었지.’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 공천 명부의 상위권에 있던 자 중, 성국언이 모르는 이름이 있었다.

유망한 정치 신인을 공천 명부에 올리는 건 흔한 일이었으나 성국언은 그자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표면상 큰 문제가 없는 후보였으나 성국언은 그자를 예의 주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정치인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5월이 되자 다시 큰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피해 상황은?”

“집계 중입니다. 이송 중인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에서 전조 없는 이계가 여럿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하필 그날 서울 시내에 이계가 대량 발생하여 협회와 프로 플레이어 팀의 대응이 늦고 말았다.

“어린이날에는 용족이 시구를 위해 야구장에 있지 않았나?”

“시구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 후예인 염준열이 유학을 간 이후로 그들은 공식 석상에 길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군.”

언제나 진족이 적이 될 가능성을 상정해야 한다.

용족은 적이 아니지만,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성국언은 그러한 인식을 다시 굳히고 정확한 원인 파악과 피해 수습, 대책, 보상에 관한 논의를 위해 움직였다.

“곧 스승의 날입니다. 이계 공략에서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하핫! 선생님께 겁쟁이 같은 꼴을 보여 줄 순 없지.”

“의원님이 존경하시는 교사분이라면, 안전을 우선하길 바랄 겁니다.”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성국언은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다.

하지만 스승의 날 직전, 성국언이 이계 공략 중 전무영을 감싸고 부상을 입어 팔에 석고 붕대를 하게 되었다.

그 일로 전무영이 사표를 쓰네 마네 하며 크게 다투었지만, 전무영이 먼저 꺾였다.

“선생님은 사이가 좋지 않은 학생들을 보면 늘 걱정하셨죠. 하늘에 계신 분을 걱정시킬 수는 없습니다.”

전무영이 지쳐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믿고 따랐던 은사가 비명횡사한 데다 죽고 나서도 여론의 비난을 뒤집어썼으니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성국언은 다치지 않은 팔을 들어 전무영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위로했다.

‘선생님께 다친 모습을 보여 드리기 싫었는데, 오늘은 무영이와 은광고에 가야겠군.’

그렇게 둘은 국화 대신 붉은 카네이션을 사 들고 은광고로 향했다.

건물을 둘러보던 전무영은 홀로그램 벽을 보다가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김신록 선생님은 아날로그한 장비를 선호하셨습니다. 그래서 은광고에는 종이 유인물을 붙이는 게시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신록이 사망해 더는 종이 서류를 사용하는 이가 사라졌다.

그래서 게시판이 철거되고 홀로그램이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김신록이 사망했으니, 은광고에는 게시판은 물론이고 종이로 된 출석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도 종이 유인물을 선호하셨다.’

성국언이 재학 중일 때에는 디바이스가 지금 수준으로 보편화되지 않았고 고참 교사들은 보통 종이 유인물을 선호했다.

그래서 성국언의 은사가 유별난 건 아니었다.

그런 고참들이 나이가 차 하나둘 은퇴하는 바람에 김신록처럼 아날로그를 선호하면 눈에 띄는 듯하지만 말이다.

‘그 선생님이 계셨다면 아직 게시판이 남아 있겠지.’

성국언과 전무영은 은사를 추억하며 은광고 안을 걸어 다녔다.

대화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지만, 가끔 전무영이 추억담을 입에 담았다.

그때마다 성국언은 이상하게도 기시감을 느꼈다.

‘김신록이라는 교사의 묘사는 어쩐지 선생님을 떠올리게 하는군.’

전무영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성국언이 말하는 선생님은 어딘가 김신록과 닮은 곳이 있다고 한다.

원래 훌륭한 교사들은 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형태는 달라도 닮아 있으니,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날과 장소 탓인지 사실 그 두 선생님 사이에 연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혹시…… 아.”

하지만 성국언은 금방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에서 지긋지긋한 장발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용제건이었다.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 있었나?’

거리는 다소 떨어져 있으나 용제건이 금방 성국언과 전무영의 존재를 감지하고 밉살스러운 소리를 하러 이리로 올 줄 알았는데, 반응이 없었다.

용제건은 그저 조용히 교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슨 장난질을 계획하고 있는 건지 힘이 없고, 느린 걸음이었다.

“용제건 선생님의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겠지.”

그저 용제건은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을 비는 데에 힘을 다 소모해 그들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성국언은 그가 꿍꿍이가 있어 저리 움직이는 거라 여겼다.

성국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은광고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용제건의 사정을 아는 건 극히 일부의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성국언은 잔혹한 말을 입에 담았다.

“여의보주의 힘을 사용한다면, 김신록 선생님의 소생이 가능하겠지.”

“으……!”

속마음을 읽힌 전무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전무영은 장례식장에서 본 용제건의 침울한 모습을 떠올리며 어쩌면 소원을 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용제건의 변덕으로 은사가 살아날 수 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버리고 용제건에게 매달려 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다.

하지만 성국언이 냉정하게 말했다.

“유희계 용족에게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시도했을 거다. 하나 선생님은 돌아오지 않았지. 예전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내가 저 용족과 나눈 대화를 기억하나?”

전무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성국언은 막 고등학생을 졸업한 시점이라고 하나 보기 드물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성국언은 그날 용제건에게 숨김없이 감정을 드러내며 말을 쏟아 냈다.

―인간의 세계에서 여의보주의 전능함이 사라졌다고 해도, 병 정도는 치료할 수 있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선생님이 죽는 걸 지켜보다가 상주를 한다고?

―네 말이 맞아. 용왕신이 허락한다면 여의보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 하지만 굳이 쓰지 않았어.

―그렇다면 왜······!

―여의보주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이야. 본인이 원하지 않는 소원은 안 돼.

불처럼 몰아치던 그때와 달리 성국언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겠지.”

성국언은 온기 없는 목소리로 그 말을 남기고 은광고를 뒤로했다.

용제건은 둘의 존재를 느끼지도 못한 채, 은광고를 배회했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되고, 다시 은광고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청소년 수련회에 간 1학년 학생들이 이계 발생과 전례 없는 규모의 에너미 군단의 습격을 받았다.

‘그 진족은 이런 사고가 발생해도 여전히 손을 놓고 있나 보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성국언이 조소를 삼켰다.

보고 내용 어디에도 은광고의 이사장이 수습에 나선 흔적이 없었다.

‘이만한 죽음도 저 진족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했나?’

성국언은 은광고에 재학 중인 학생을 걱정했지만, 그가 학교 일에 개입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학 중인 사촌 동생, 성시완은 올해 들어 마주칠 때마다 피로해 보였다.

교내에 사건이 다발한 데다 김신록을 대신해 고문 자리에 오른 최편득과의 대립 때문이었다.

최편득은 성시완에게 트집 잡을 거리가 없자 지익회의 1, 2학년 학생들을 건드렸다고 한다.

미숙한 후배들이 실수할 때마다 온갖 패악을 부려 지익회를 탈퇴하는 학생이 속출했다.

“내년에 제가 졸업한 뒤에 지익회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유급이라도 해야 할까요?”

성시완은 농담처럼 말하긴 했으나 반은 진심인 듯했다.

성국언은 지익회가 없던 혼란스러운 시절, 유급한 학생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봤기에 단호하게 말렸다.

“유급한 학생은 트집 잡히기 쉽다. 그런 짓을 하면 오히려 네가 지익회의 짐이 될 거다.”

그 말에 성시완이 납득하고 억지로 웃었다.

기운이 없는 성시완을 위로하며 성국언은 생각에 잠겼다.

‘시완이한테 비밀 결사 건을 맡길 수 없겠구나.’

성국언은 고인이 된 그의 할아버지, 옛 한국 지부장을 생각하며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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