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11화 (811/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11)

101. 흔적 (2)

생각에 잠긴 성국언을 보며 공연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성국언의 조부, 옛 한국 지부장이 은광고에 어떤 단서를 남겼다는 건 전무영도 알고 있었다.

하나 성국언이 재학 중일 때에는 지익회 설립 건으로 단서를 찾을 틈이 없었다.

그래서 성국언은 사촌 동생에게 다음을 맡기려고 했다.

성국언은 성시완이 3학년이 되고, 믿음직한 친구나 후배와 함께 조부가 남긴 단서를 찾는 순간을 기다려 왔다.

하지만 지금 성시완은 지익회와 다른 학생들을 지키기에도 벅차했다.

‘시완이를 통해 은광고에서 단서를 얻는 건 어렵겠어. 보좌로서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구나.’

성국언과 전무영은 정치계에 뛰어들어 다양한 정보를 열람하고, 사건에 간섭할 권리를 얻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옛 한국 지부장이 남긴 말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한반도를 노리는 진족이 있고, 그 침략은 은광고에서 시작할 것이다.

침략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둘이 가지고 있는 수는 많지 않았다.

“단서를 얻을 다른 방안을 찾자. 찾을 수 없다면, 없는 대로 그자들을 막는다.”

침략에 관해 생각하면 먼 곳에서부터 바닥이 점점 무너져 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자신에 찬 성국언의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났다.

성국언이라면 바닥이 꺼지든, 하늘이 무너지든 꼿꼿하게 서 있을 것 같았다.

성국언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었다.

그런 성국언이 앞장서서 싸웠기에 학생들이 따르고, 지익회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전무영은 여전히 불안했다.

만약 침략자가 있다면 성국언을 노릴 테니까.

침략자가 사람들의 정신적, 정치적 지주를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았다.

‘불안해해도 달라질 건 없다. 내가 뒤에서 의원님을 지키면 된다.’

전무영은 애써 불안감을 떨치며 성국언의 넓은 등을 응시했다.

*    *    *

여름이 끝나 갈 무렵, 은광고의 청소년 수련회 사건이 수습되어 한반도는 다시 안정을 찾아 가고 있었으나 정치계와 플레이어계는 다시 들끓고 있었다.

여러 이슈가 존재했는데,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건 플레이어 위성의 국유화 건이었다.

최근 발생한 큰 사건들은 플레이어 SAT-K가 이계의 전조 현상을 잡아내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정부에서는 플레이어 협회에서 위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사달이 났으니 책임을 질 겸 위성을 국유화시키자고 주장했다.

성국언은 그 주장이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협회의 유수한 플레이어들이 잡아내지 못한 문제점을 정부의 비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정부에서는 플레이어 위성의 국유화를 위해 인재를 끌어모았는데, 대부분 플레이어가 아니거나 정부 인사와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대다수가 대학원 입학과 논문 심사 과정에서 특혜 논란이 있었던 자들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협회의 위성 관리팀에 들어간 석학들이 하지 못한 걸 그들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위성의 기술 정보를 진족에게 팔거나, 나중에 다시 정부 예산을 핑계로 민영화하여 이득을 보거나…… 아니면 한국의 플레이어 위성을 무력화하려는 누군가의 수작이겠지.’

이계부와 협회의 충돌은 심각한 양상을 보였고, 국민의 대다수는 플레이어가 아니었기에 여론은 점점 이계부 쪽으로 기울었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언론과 정부가 괜찮다고 하니 생각을 바꾸려 했다.

게다가 그동안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협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컸다.

플레이어 협회는 여기저기 썩어 있었고, 제때 썩은 자들을 잘라 내지 못했기에 뿌리까지 곪은 상태였다.

“협회의 대처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우선 이계부 장관에 관해 재조사하겠습니다.”

“청문회 때와 뭔가 달라졌다. 그 점을 찾아내. 누군가에게 협박당한 건지, 돈으로 회유당한 건지 모르겠군.”

“먼저 이계부 장관과 혈연관계에 있는 자들의 통장, 부동산 보유 현황을 확인하겠습니다.”

조사는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성국언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던 탓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날조된 사항으로 공격할 때에도 있었고, 실제 있었던 일을 교묘하게 조작해 공격하려 하기도 했다.

성국언은 그 모든 공격을 사전에 확인하고 먼저 방어하거나, 시기적절하게 반박하는 데에 성공했다.

단기간에 걸친 성급한 공격은 성국언의 명성과 지지율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요새 국언무쌍 기사 자주 나네요. 찔러 보고 아니면 말고~ 하는 내용이 많은데 기분 탓인가요?]

[개소리한 기사 보면 같은 기자, 같은 언론사임ㅋ]

[기자가 어둠의 국언무쌍 팬 아니냐? 쟤가 쓴 기사 때문에 숨은 선행, 미담이 계속 발굴되는데]

[진지하게 말하면, 위성 국유화 문제 때문일 겁니다. 플레이어 출신 국회의원을 노리는 의도가 뭐겠습니까?]

[협회는 싫은데 국언무쌍은 좋음. 성국언 파이팅!]

유권자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성국언을 응원해 주고 언론을 불신하는 이들이 늘었다.

역풍이 불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성국언을 향한 여론은 좋았다.

하지만 피해가 없던 건 아니다.

‘공격에 대응하느라 이계부 장관의 조사가 늦어지고 위성 국유화 문제를 파고들지 못했다. 귀중한 시간을 빼앗겼군.’

게다가 기존 일정도 소화해 내야 했으므로 성국언은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유일한 플레이어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참석해야 할 자리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플레이어 특별법을 주제로 한 법률 세미나가 그러했다.

국회는 입법 기관이므로 성국언은 법률에 관한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고, 특히 플레이어 특별법에 관해선 해외의 최신 판례까지 연구했다.

유명한 플레이어가 다수 참석하다 보니 세미나를 사교장 정도로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말이다.

“성국언 의원님, 한잔 어떻습니까.”

내밀어진 잔에는 시큼한 향의 포도 주스가 채워져 있었다.

세미나가 길어질 때를 대비해 간단한 음료가 제공되곤 하는데, 보통은 생수였다.

하지만 오늘 제공된 음료는 해외의 유명 브랜드 주스였다.

아마 처음 참석하는 의원이 수작을 부린 것으로 추측되었다.

물만 제공되는 장소에서 비싼 음료나 술을 내놓으라며 진상을 부리는 권력 있는 손님의 이야기는 흔했다.

‘여당의 비례대표 공천 명부에 올라 있던 자로군.’

이 자리에는 기자들도 있고, 수많은 눈이 있다.

여기서 거절하면 ‘신경전’, ‘긴장 상태’라는 꼬리표가 붙은 기사와 목격담이 돌아다닐 것이다.

좋게 거절해도 거절했다는 것 자체로 흠을 잡힐 수 있었다.

잔을 받아들여도 마시지 않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우선 받아 들고자 했다.

“어이쿠!”

쾅! 쨍그랑!

그때, 낡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크게 굴렀다.

마침 잔을 받아 든 성국언과 부딪쳤고, 유리잔이 테이블 위에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테이블보를 보고 스태프가 테이블보 교체를 준비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성국언 의원님!”

“거참, 눈을 어디에다 달고 다니는 겐가!”

피해자인 성국언은 가만히 있었는데, 여당 의원이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성국언은 깨진 유리잔을 보며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솜씨가 좋군.’

유리잔을 깬 인물은 넘어지는 척하며 이능파를 쐈다.

정확히 유리잔을 노리고, 내용물이 성국언에게 닿지 않게 하고, 외부에서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게 이능파를 조정해 이 상황을 만들어 냈다.

허둥지둥 사과하는 모양새나 후줄근한 옷차림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능파 조작 능력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이고, 이런 곳에 얼룩이…… 우선 지우고 나중에 세탁비를 물어드리겠습니다.”

그 인물은 손수건을 꺼내 성국언의 깨끗한 옷소매를 가리곤 작게 눈짓했다.

흥미를 느낀 성국언은 의원을 상대하는 대신 이자를 상대하기로 했다.

전무영 쪽을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는 신분이 확실한 인물인 듯했다.

성국언은 여전히 분풀이할 생각이 만만인 여당 의원을 뒤로하고 자리를 비웠다.

“오늘 음료를 지정한 건 성국언 의원님이라고 하더군요.”

세미나 회장에서 멀어지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굽신거리던 인물이 눈에 띄게 침착해진 어조로 말했다.

또한, 말하는 동안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단정한 인상으로 바뀌었다.

역시 이자가 회장에서 벌인 촌극은 성국언을 그 자리에서 빼내기 위함인 듯했다.

“저는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습니다.”

“네, 하지만 스태프들은 그렇게 들었다 합니다. 성국언 의원님이 모처럼 부탁했다고 들떠 있었죠. 최근 의원님 주변이 시끄럽다 보니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또 장난질을 한 게 분명했다.

이런 건 앞뒤 조사를 하면 금방 밝혀질 일이고, 최근 성국언을 둘러싼 가짜 뉴스가 많아 헛소문이 돌아도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해명에 시간이 낭비될 건 분명했다.

“다들 평소대로 물만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의원님 혼자 저 잔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겠죠.”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군요.”

“아닙니다! 제가 뽑은 분을 믿고 지키는 건 당연하지요. 저희 사무소 직원들은 다 국언무쌍 팬이에요. 아, 이건 제 명함입니다.”

법무법인 변월.

대표 변호사 변재익.

명함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자 전무영이 쉽게 고개를 끄덕인 이유에 납득했다.

법률 사무소 변월은 ‘변방을 비추는 달’이라는 뜻에 어울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프로 플레이어 팀에 들어갔으면 대성했을 변재익은 직접 법률 사무소를 세우는 길을 택했다.

약소한 플레이어들을 법적으로 지키는 게 주 업무였지만, 수임한 사건 자체가 많지 않고 돈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이계 공략으로 사무소를 유지한다고 들었다.

“하핫!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변호사는 처음 봅니다.”

“이런 화통한 국회의원도 의원님 말고는 없죠.”

서로 존경심을 품고 있었고, 관심사도 같았기에 성국언과 변재익의 대화는 금방 활기를 띠었다.

마침 나이대도 비슷하여 말을 나누기도 편했다.

디바이스 코드를 주고받고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다.

‘귀찮은 일에 엮일 뻔했지만, 덕분에 좋은 만남이 있었군.’

한편, 성국언의 퇴장과 동시에 음료 해프닝의 뒤를 캐던 전무영이 보고했다.

전무영은 보고보다 사죄의 말을 먼저 전했다.

“죄송합니다. 물증을 잡지 못했습니다.”

“물증만 얻지 못한 거겠지. 뒤에 그 의원이 있었나?”

“네.”

“그자에게 시간을 끌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보군.”

성국언의 발목을 잡는 사건은 계속 발생했다.

플레이어와 이계와 연관된 사건, 특히 은광고와 연관된 사건이라면 성국언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은 많이 빼앗겼으나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좋은 후배들이군. 진족과 연도 없어 보여.”

성국언은 은광고의 학생 둘을 주목했다.

한 명은 주수혁이고, 다른 한 명은 안다인이었다.

은광고에서 대참사로 번질 뻔한 일들이 둘의 활약으로 피해가 그럭저럭 줄어들고 있었다.

게다가 둘은 각각 선도부와 학생회 소속이었다.

‘시완이를 통해 접점을 만들고, 비밀 결사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는 것도 괜찮겠어.’

은광고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으니, 그게 끝나면 성국언은 두 사람과 접촉할 생각이었다.

그 행사란 은광고의 크리스마스 자선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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