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37화 (83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38)

104. 곁 (3)

갑자기 개별 룸 밖의 기척이 일제히 사라지고, 그 대신 불길한 기운이 몰아쳤다.

이를 느끼자마자 맹효돈은 곧바로 은사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맹효돈은 일견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었으나 속은 그렇지 못했다.

맹효돈과 탁거산만 있었다면 모를까, 일반인인 은사가 있는 자리에서 위험한 상황이 되니 마음이 술렁거렸다.

탁거산의 반응을 보았을 때, 맹효돈의 감각이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감지하지 못한 게 아니야. 도인도 눈치채지 못했잖아.’

맹효돈은 몰라도 탁거산을 속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맹효돈이 느낀 대로 적은 단숨에 주변의 기척을 지우고, 불길한 무언가로 채운 듯했다.

중학교 은사는 놀란 와중에도 이 이변이 이능과 관련되었다고 판단하여 긴급 상황 대처 요령에 따라 좌표 정보를 플레이어 협회에 전송하려 했다.

그러나 ‘좌표 정보 전송에 실패했습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되돌아올 뿐이었다.

“디바이스 통신이 되지 않네요. 식당에 있는 유선 전화도 먹통일까요?”

“여기는 식당이 아닐세. 눈을 속이기 위해 비슷하게 흉내 낸 공간이지.”

“비슷하게 흉내 냈다니…… 어째서 그런…….”

“나와 내 제자는 보통 플레이어가 아닐세. 그런 플레이어의 감각과 인지를 속이고 기습에 성공하려면 그만한 준비를 해야지. 정확한 이능은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장난질은 몇 번 경험해 봤네.”

탁거산과 중학교 은사는 잠시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전이를 통한 위상 전환’, ‘좌표와 공간의 왜곡’ 등 맹효돈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섞여 있었다.

은사는 일반인을 가르치는 중학교 교사였으나 맹효돈의 은광고 수험을 도우면서 이것저것 공부한 게 많은 듯했다.

현역 플레이어인 맹효돈은 넋이 나간 채로 그 말들을 들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몰래 우리가 있던 방을 통째로 옮겼다는 거지? 도인이랑 내 감각을 속이고 이동시키려면 가짜 식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고…… 아, 뭔 말이야. 저게.’

해석을 포기한 맹효돈은 그냥 바깥을 경계하기로 했다.

미닫이문 밖은 한식집이긴 한데, 맹효돈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드문드문 달랐다.

예를 들면 계산대 옆에 놓여 있던 박하사탕 바구니가 그러했다.

들어올 때는 3분의 2 정도 차 있던 바구니가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계산하고 나갈 때 두 개를 먹으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벽지의 재질이나 의자의 개수 등 차이점이 꽤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구나.’

탄래중학교 주변은 시설이 낙후되어 있어 탁거산 입맛에 맞는 메뉴가 있는 음식점이 여기밖에 없었고, 또 사전에 예약을 하고 왔었다.

적은 맹효돈이 이곳에 은사를 만나기 위해 오리라는 것을 알고 대비한 것 같았다.

“여기 식당 주인도 한통속일 걸세. 먹을 거에는 손대진 않은 것 같다만…….”

음식에 문제가 있었다면 산전수전 다 겪어 본 탁거산이나 맛에 민감한 미식가 맹효돈이 알아차렸을 거다.

음식에 문제가 없던 게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처한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적은 탁거산이나 맹효돈을 노린 듯했다.

즉, 중학교 은사는 맹효돈을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에 처한 셈이다.

‘오지 말걸…… 나 때문에 선생님이…….’

맹효돈의 마음속으로 아득한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얼마 전에 맹효돈의 친부가 학교에 쳐들어오는 바람에 일어난 난리가 떠올랐다.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은광고의 자치 기구 선배들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

맹효돈의 친부와 그가 끌고 온 패거리를 흠씬 팬 탁거산은 정당방위냐 과잉방위냐를 두고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그 패거리들이 플레이어라서 미성년자를 습격한 다수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한 방어 행위인 점이 참작되어 무사히 풀려났다.

그 과정에서 지금처럼 맹효돈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에이 씨, 엄청 이상하네. 그 사건이랑 관련 있는 거 아니야? 내 디바이스 코드는 어떻게 알았고, 그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모았겠냐고.’

맹효돈에게 돈을 뜯어내 봐야 저 정도 되는 수의 플레이어들과 나눠 먹으면 그리 대단한 금액은 되지 않을 거다.

맹효돈을 노렸던 이유는 돈이 아니라 파이트 클럽 탓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플레이어들은 파이트 클럽과 연관이 되어 있는 자들이고, 지금 이 사건도 배후에 있던 누군가가 벌인 게 아닐까?

빈곤한 상상력과 지혜를 끌어모아서 한 추측의 내용은 처참했다.

자꾸 파이트 클럽에 관해 생각하는 바람에 오한이 느껴지기도 했다.

맹효돈이 한창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문득 조의신이 떠올랐다.

조의신이 파이트 클럽에서 맹효돈을 구해 줬던 덕분이기도 했고, 그가 어제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 잘 다녀와. 수학 질문할 거 있으면 하고 오고.

조의신은 맹효돈이 은사와 만나고 오도록 등을 밀어 줬다.

그리고 조의신은 맹효돈이 파이트 클럽에 갇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친부와의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지난 습격도 직접 목격했다.

‘맞아, 부반장 그 새끼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잖아!’

만약 맹효돈과 이 상황이 관련이 있다면 조의신이 대비했을 것이다.

조의신은 말없이 수상한 짓을 벌였을 게 분명했다.

크고 작은 위기에서 조의신이 둔 수가 떠올랐다.

확실한 근거는 없었지만, 갑자기 맹효돈의 마음에 안심감이 차올랐다.

“효돈아, 괜찮니? 탁거산 선생님 말로는 이 방 안은 당분간 괜찮을 거래. 힘들면 조금만 쉬다가 가자.”

“……네.”

“괜찮아 보이네. 다행이다.”

중학교 은사가 맹효돈을 다독였다.

맹효돈이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며 긴장하고 괴로워했던 게 티가 난 듯했다.

조의신을 떠올린 지금은 눈에 띄게 안정되었다.

“그러면 대체 저희가 어디에 있는 거죠?”

“여긴 이계일세. 전이의 목적지로 지정된 걸 보니 가든이겠지.”

기긱. 끼기긱…….

탁거산이 말을 마쳤을 때, 한식집의 벽이 우그러졌다.

형태가 변한 벽은 마치 누가 거대한 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찌그러지고, 뒤틀려 있었다.

벽이 망가지는 바람에 큰 틈이 생겼는데, 틈 사이로 이 주변을 포위한 에너미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그 광경을 본 탁거산이 혀를 찼다.

“지원을 기다려 보려 했거늘. 그 전에 이 공간이 다 삼켜지겠구먼.”

“……그럼 어떻게 하죠?”

탁거산과 중학교 은사의 말을 반도 못 알아들었던 맹효돈이라도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다.

이계에 떨어진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금방 떠올릴 법한 사실이었다.

“가든도 이계이니, 이계 공략을 하는 수밖에.”

*    *    *

진짜 성국언과 전무영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찾은 도철은 바삐 움직였다.

고작 몇 초도 안 되는 사이, 도철은 함정의 좌표를 재조정하고 새로 이능을 발동시켰다.

대부분 빌린 힘과 그자가 한 안배를 따랐을 뿐이었지만, 고차원적인 이능을 실수 없이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록 기기는 전부 꺼져 있고, 적연 주변을 제외하면 호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도철은 적호가 다루는 붉은 안개의 움직임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운사의 힘이 없으면 포착하는 게 불가능할 수준의 이능을 사용하면서 에어 세단의 속도에 맞출 만큼 빠르게 이동하다니.

과연 먼 옛날 신화 속에서 활약한 호족다웠다.

저런 대단한 힘과 은밀히 준비한 계략이 헛수고로 돌아갈 것이라는 게 도철을 기쁘게 했다.

‘드디어 저들을 데려오는군.’

이번 작전에는 변수가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모르 마족이 은광구를 들쑤시고 다녔고, 마교를 잡는답시고 절흑풍림이 날뛰지 않았던가.

성가신 요소들 탓에 수가 어그러질 법도 한데, 그자는 호족이 이렇게 나올 경우를 대비한 수도 완벽하게 마련했다.

준비는 끝났다.

도철은 눈치채지 못한 척, 속은 척하기 위해 가짜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에어 세단 쪽으로는 이능 발동의 매개가 아니라 가짜 미끼를 보내면 되겠지.’

가짜 미끼는 에어 세단 쪽에, 이능 발동의 매개는 진짜 성국언과 전무영 쪽에 보낼 계획이었다.

‘그럼 이제 미끼를 골라야겠군.’

만약 풍백과 우사가 잡히지 않았다면, 에어 세단에 탄 이들이 진짜였다면 그들의 어린애 같은 겉모습으로 감싼 함정 이능의 매개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모습에 주의가 팔린 틈을 이용해도 좋고, 설령 계속 경계한다 해도 가까이에만 오면 함정 이능의 발동이 가능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하면 매개에 힘을 싣는 것만으로도 함정을 발동시켜 그대로 아공간 속으로 삼키는 게 가능했다.

‘가짜 미끼는 이걸 이용할까.’

화르르륵!

도철이 화로에 이능파를 흘리자 구름이 흘러나왔다.

구름의 형태는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덥수룩한 머리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만 봐도 곧 쓰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만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운사의 겉모습을 빌린 미끼였다.

저걸 발견한 적호가 어찌 반응할지 기대하며 그들의 앞에 미끼를 던져 넣었다.

팟!

아공간을 통과한 미끼가 비실거리며 은광구의 인적이 없는 도로를 걸었다.

미끼를 발견한 에어 세단이 속도를 낮추었고, 세단 밑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붉은 안개 덩어리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운사의 모습을 빌린 걸 알아보고 동요하는 것 같았다.

도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폭하라.”

콰아앙!

운사의 모습을 한 미끼가 폭발했다.

도로는 물론, 근방의 상가까지 한순간 폭풍에 삼켜질 만큼 규모가 컸다.

에어 세단에 탄 가짜들은 탈출에 성공했는지, 폭발에 휘말리지는 않았다.

적연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호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폭발의 위력이 제법 컸으나 적연을 뚫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에어 세단 쪽에 있던 이들에게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도철의 목표는 완벽하게 완수되었다.

‘됐다. 그들을 가든에 몰아넣었다!’

운사의 시야 너머, 아공간이 남긴 흔적이 보였다.

방금까지 진짜 성국언과 전무영이 있던 자리에는 희미한 이능파가 타오르다 사그라들고 있었다.

파아아…….

폭발이 일어난 틈을 타 진짜 함정을 발동시켜 성국언과 전무영을 삼킨 것이다.

아직도 호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을 못 한 듯했다.

그들은 추가 폭발은 없는지 경계하며 주변을 살필 뿐, 아공간이 삼킨 이들에 관해선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그사이에 함정 이능의 흔적이 서서히 날아가고 있었다.

‘이제 눈치챘다고? 너무 늦군.’

완전히 흔적이 녹아 없어졌을 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철의 손아귀에 들어온 이들이 있던 곳을 살피고는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국회의원과 그 비서는 지금 이 가든에 갇혀 있는데, 소용없는 짓을.’

게다가 국회의원에게는 장난질을 쳐 뒀다.

도철은 가든 한구석에서 발동 중일 어느 이능에 관해 생각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이능의 주인이 성국언의 조부라는 걸 생각하면 아주 우스운 일이었다.

무사히 납치에 성공했으니, 이제 은광구를 살필 필요는 없었다.

도철이 운사와 혼돈의 힘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허탕을 친 가짜들을 비웃기 위해 그쪽을 살폈다.

‘전무영 쪽은 역용술을 쓴 티가 많이 나는데, 저 성국언은 진짜에 가깝게 보이는군. 꽤나 잘 만든 가짜야.’

도철은 의미 없는 소감을 속으로 읊고는 은광구를 관찰하던 힘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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