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36화 (83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37)

104. 곁 (2)

탄래중학교 주변에 위치한 한식집.

맹효돈은 탁거산과 함께 중학교 은사와 만났다.

맹효돈은 그간 중학교 은사와 디바이스 메시지를 주고받고, 통화도 몇 번 했지만 직접 만나는 건 1년 만이었다.

어색해하거나 좀 더 자주 찾아오라고 타박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중학교 은사는 그저 따뜻하게 대해 주기만 했다.

비쩍 마른 중학교 은사는 자꾸 더 크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석쇠불고기 그릇을 밀어 주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머뭇거리던 맹효돈은 은사가 제 몫의 음식을 챙겨 먹게 하기 위해 은광고에서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줄줄 늘어놓아야 했다.

“그래그래, 아침에는 기숙사 밥을 먹은 다음에 친구랑 같이 간식도 먹는다고?”

“어…… 그러니까…… 반장이 자주 간식을 만들어 와서…….”

중학교 은사는 맹효돈이 잘 먹는다는 사실에도 기뻐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먹는다는 말에는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 맹효돈은 좋지 않은 집안 사정과 허술한 옷차림, 얕보일 정도로 자그마한 체구와 그에 대비되는 운동 신경 때문에 늘 겉돌았다.

중학교 은사는 맹효돈과 아이들 사이를 좁혀 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이는 실패로 끝났다.

하필 그 반에는 탄래중의 학부모회장의 아이가 있었는데, 회장은 맹효돈의 가정사를 들먹이며 절대로 친해지지 말라 했고 아이는 그 말을 친구들에게도 퍼뜨렸다.

그래서 맹효돈은 내내 혼자였다.

중학교 은사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같이 온 친구들은 잘 지내니? 아, 두 사람이 기사에 나온 건 몇 번 봤어.”

“부반장은 오늘 바쁘다 했고…… 주수혁한테는 안 물어봤는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뭐 하냐고 물어보던데…… 아, 수학 가르쳐 준 애가 부반장이에요.”

맹효돈은 횡설수설하며 말했으나 여전히 그 둘과 친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주제는 맹효돈의 수학 도전기에 관한 것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은사는 맹효돈의 머리 상태를 아주 잘 알았기에 그 과정을 듣고 크게 감동했다.

“그 단원은 어려워서 수학 잘하는 애들도 실수가 많은데! 정말 노력했구나…….”

“내 제자가 큰 노력 했네. 저러다 머리가 쪼개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

묵묵히 듣던 탁거산도 수학하는 맹효돈에 관해서 할 말이 많았기에 한마디 얹었다.

맹효돈은 인삼 소갈비찜을 베어 물며 쑥스러움을 삼켰다.

수학을 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는 건 쪽팔리지 않았지만, 노력을 칭찬받는 건 속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후식으로 매실 화채가 나왔을 때, 중학교 은사가 처음으로 맹효돈과 관련 없는 주제에 관해 꺼냈다.

중학교 은사는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상담드릴 게 있습니다만…….”

“말해 보게.”

탁거산은 흔쾌히 말했다.

탁거산은 맹효돈이 중학교 시절 겪었던 일과 이 은사가 없었다면 은광고에 오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소 무거운 부탁이라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줄 생각이었다.

“……올해 탄래중에서 또 은광고에 가는 학생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맹효돈은 돌머리를 꾸역꾸역 굴렸다.

올해 은광고에 간다고 하면 맹효돈과는 두 살 차이다.

그러니 맹효돈이 탄래중 3학년일 때, 1학년이던 아이였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둘은 탄래중학교에 같이 다녔다는 뜻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주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긴 했는데, 그럴 플레이어가 있었나?’

탄래중에는 인재가 없었다.

천덕꾸러기 취급 하던 맹효돈의 이름을 플래카드로 걸 정도 아니었는가.

만약 탄래중에서 은광고를 간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면 맹효돈의 이름은 생략하고 ‘그 외 1명’ 정도로 표시했을 거다.

‘탄래중에 있는 플레이어 중에 공부 잘하는 새끼, 운동 좀 잘하는 새끼들 다 들먹이면서 나랑 비교했었지. 만약 후배 중에 은광고 갈 만한 놈이 있었으면 얘기가 안 나왔을 리가 없는데.’

맹효돈은 그 이상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중학교 은사가 언급한 후배가 전학생이라면 모를 가능성도 있는데, 맹효돈의 머리로는 거기까지 떠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맹효돈이 차가운 매실 화채를 입에 밀어 넣으며 달구어진 돌머리를 식히고 있자니 탁거산이 운을 뗐다.

“허허, 우리 제자에게 또 후배가 생기겠구먼. 한번 싸우는 걸 봐도 되겠나?”

탁거산은 중학교 은사의 의도를 지레짐작하고 이야기하기 쉽도록 말을 꺼냈다.

맨손 무술의 전설인 탁거산에게 재능 있는 아이에 관해 말을 꺼내는 자는 십중팔구 무술 지도를 부탁했다.

탁거산은 학연, 지연을 잘 따지지는 않지만, 저 중학교 은사가 학생의 지도를 부탁하면 얼마든지 해 줄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든지요.’라고 답하면서 부자연스럽게 웃는 은사를 보니, 탁거산의 짐작은 틀린 것 같았다.

중학교 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학생은 올해 들어서 막 이능을 발현했거든요.”

그 말을 들은 탁거산이 눈을 크게 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이능을 발현했다는 겐가? 그런 애가 은광고에 올 수준이라고?”

“네, 작년까지는 플레이어가 아니었어요. 실력은 확실해요. 효돈이 은광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청소년 이능 테스트에 관해 알아본 게 많아서…….”

중학교 은사가 과장된 말을 하거나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중학교 은사는 이능파, 신체 능력 수치 등을 늘어놓았는데, 들어 보니 과연 은광고에 들어올 만한 인재 같았다.

맹효돈은 대체 저 숫자들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못 알아먹었지만, 탁거산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그런가 보다 했다.

‘중3 때 이능을 발현하는 일도 있나?’

플레이어 이론 공통 과목에서 발현 시기는 제각각 다르다고 한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맹효돈은 관련 이론을 떠올리려다가 포기하고 이야기나 듣기로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게 있어요. 그애에게 이능파 수치 측정 키트를 사용했을 때…….”

휘익!

중학교 은사가 말을 마치기 전에, 탁거산과 맹효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람처럼 움직였다.

맹효돈은 즉각 문과 중학교 은사 사이를 막아서고, 탁거산은 문 가장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

중학교 은사는 놀라 말을 멈추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지나치게 빨라 마치 그 둘이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탁거산이 조용히 손을 들어 한지가 발린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을 여니 아무도 없었다.

한식집은 처음 봤을 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는데, 손님은 물론이고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맹효돈은 말없이 보호대 아이템 카드를 꺼내 실체화하여 착용했다.

탁거산이 나직하게 말했다.

“포위되었구나.”

아무도 없는데 포위라니?

이상하게 생각한 중학교 은사가 한식집의 정문 쪽을 바라봤다.

유리문을 통해 밖을 본 중학교 은사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아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 밖이 새카맣게 보였다.

*    *    *

오후, 은광고의 중앙 구역.

정장 차림의 성인 남성 둘이 카네이션 꽃다발을 들고 교내를 걷고 있었다.

성국언과 전무영이었다.

평일 이 시각에 은광고 내에서 둘이 돌아다녔다면 눈에 띄었겠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사람이 그리 보이지 않았다.

성국언이 말했다.

“15년 전, 아니, 이제 16년 전이군. 그때 일을 기억하나? 우리가 여기에서 침묵 시위를 했지.”

“당연하죠.”

중앙 구역을 둘러보던 성국언이 고개를 돌려 구교사 쪽을 바라봤다.

사감을 몰아내는 계획에 참가한 학생들은 학교 밖이나 기록 기기가 없는 구교사에서 작전 회의를 하곤 했었다.

사감을 엿 먹일 계획을 신나게 떠들던 동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지만, 사감에게 약점을 잡혀 울면서 미안하다고 도와달라고 애원하던 이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 같지도 않은 사감들이 학생회 간부를 중독시키는 바람에 이계로 해독제를 구하러 갔던 건?”

“물론입니다. 그때 학생회 총무 선배님의 가정사를 약점으로 잡히는 바람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죠. 저는 허락받지 못해 공략에 참가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네가 있었다면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전무영은 1학년 1학기 재학생이었기에 담임과 이사장의 허락이 필요했다.

전무영의 담임 교사는 허락할 생각인 듯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함근형이 반대하고 담임 교사가 그 말에 동조해 무산되었다.

함근형은 자신이 대신 동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성국언은 함근형을 믿지 못해 이를 거절했다.

그때 성국언이 신뢰하는 은광고의 교사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함근형 선생님이 그때는 꼰대셨지.”

“함근형 선생님이 들으시면 자신은 지금도 꼰대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대화를 하며 걷던 성국언과 전무영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섰다.

그들의 앞에 아날로그한 타입의 게시판이 있었다.

게시판에는 종이로 된 유인물이 붙어 있었다.

리플레이 속에서는 없던 것들이었다.

“아…….”

전무영이 목이 막힌 듯한 탄성을 뱉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성국언이 짐짓 모르는 척 말했다.

“무영아, 너는 카네이션을 드릴 분이 계시지 않나.”

“……네, 그렇죠.”

“오늘 그 선생님은 출근하지 않으셨으니 2학년 교무실에 맡겨 두고 와라.”

“……그러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의원님.”

전무영은 스승에게 줄 카네이션을 맡기러 갔다.

성국언이 카네이션을 건넬 스승은 아직 제 정체를 밝히지 않았기에 그는 계속 꽃다발을 들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빈손의 사내가 나타났다.

“이만 가야겠군. 선생님은 제자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실 테니.”

“…….”

성국언은 한 손에 카네이션 꽃다발을 든 채로, 앞장서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제 학교 밖으로 나설 때였다.

*    *    *

어둠 속, 굽어 있는 뿔을 가진 자, 도철이 은광고를 살피고 있었다.

지금 은광고를 보고 있는 건 도철의 힘도 아니었고, 그 잘난 마족(魔族)의 ‘눈’도 아니었다.

바로 혼돈의 감각을 통해서였다.

그자는 진을 통해 잠시 혼돈의 감각과 도철의 눈을 이어 두었다.

사흉 제일의 감각을 자랑하는 혼돈의 힘답게 은광고 안은 보이지 않아도 그 주변이 훤히 보였다.

“성국언이 움직인다. 비서도 곁에 있어.”

성국언이 탄 에어 세단이 움직였다.

성국언은 그자가 예상한 경로와 시간대로 움직였다.

그 주변의 인적은 정리해 두었으니, 이대로 함정을 발동시켜 성국언을 삼키면 끝이었다.

하지만 함정을 발동시키기 전, 그자가 당부한 게 있었다.

‘삼키기 전에 반드시 운사의 힘으로 주변을 확인하라고 했지.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면 계획을 바꾸라고도.’

도철의 한 손은 현재 혼돈으로 이어지는 진 위에 있었다.

도철은 비어 있는 손을 들어 운사가 봉인된 화로의 표면 위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태울 듯한 열기가 이글거렸으나 도철의 피부에는 아무 손상도 없었다.

화르륵!

꺼져 있던 화로에 불이 붙으며 주변이 밝아졌다.

도철이 화로에 이능파를 흘리자 운사가 저항하기라도 한 것처럼 불꽃이 어지럽게 타올랐다.

운사가 저항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 행동했든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운사의 의지로는 그의 힘이 화로를 통해 빨려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혼돈의 감각에 운사의 힘이 얹어지니 시야에 구름이 끼얹어진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그렇게 시야는 흐려졌는데,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붉은 안개!’

성국언의 에어 세단 아래에서 붉은 안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자가 경계하던 것 중 하나였다.

‘그분의 예상대로 호족이 우리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나!’

누군가가 수를 두어서 성국언의 곁에 적연을 쓰는 자를 배치한 게 분명했다.

도철은 이번에는 성국언과 전무영을 살폈다.

카네이션 꽃다발을 들고 있는 성국언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운전석에 탄 전무영의 얼굴은 비교적 또렷하게 보였다.

운사의 힘으로 살피니 그 얼굴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역용술을 쓴 흔적이다. 그분께서 청호가 역용술의 고수라 했고, 이를 배운 제자가 호족 중에 있다고 하셨다.’

상대는 그자가 읽은 대로 나왔다.

성국언과 호족이 가짜를 준비하고, 옆에 적연으로 모습을 감춘 적호를 배치했다.

그리고 그자는 호족이 저리 나왔을 때 어떤 수를 둬야 할지도 지시해 두었다.

도철은 다시 은광고의 주변을 살피기 위해 운사의 힘을 사용했다.

도철이 힘을 쥐어 짜내자 화로가 비명을 지르듯이 크게 타올랐다.

화르르륵!

화로가 토해 내는 비명 소리를 배경으로 도철이 외쳤다.

“저기 진짜가 있군!”

마침내 도철이 성국언과 전무영을 찾아냈다.

그 둘은 멀리서 가짜를 태운 에어 세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역용술의 사용 흔적이라곤 조금도 없는, 틀림없는 진짜였다.

도철은 이능 발동의 좌표를 수정하는 사이에도 그들을 관찰했다.

그러던 중,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하군, 어쩐지 저 국회의원이 평소보다…….’

도철의 눈에 성국언이 수상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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