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6화 (846/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6)

104. 곁 (11)

가든의 중심, 화로 앞.

화롯불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방금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바람에 화로에 부하가 간 듯했다.

도철은 화로 쪽엔 시선도 주지 않고 분노로 점철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째서 인간이 그런 힘을……!’

도철은 성국언, 전무영을 정신 공격 이능으로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다.

내용은 잘 알 수 없었으나 크게 일렁이던 이능파나 짙어진 운사의 기운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성국언 쪽은 큰 후회를 안고 있는 듯했다.

이능이 전개되기 무섭게 성국언의 정신은 크게 흔들렸다.

사흉 중 도올이 성국언의 정신력은 만만치 않을 거라며 그 힘을 사용할 거면 주의하라고 했는데, 역시나 인간의 정신력은 거기에서 거기라며 비웃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성국언은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고, 이능을 파훼하기 직전까지 갔다.

다행히 운사의 힘으로 이중으로 이능을 전개했기에 이에 대비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막히고 말았다.

‘설령 파훼했더라도 거기에서 다시 미래와 공포를 보여 줄 수 있었는데, 어째서 그 뒤를 꿰뚫어 본 거지?’

도철은 급히 개입하여 성국언과 대치했다.

성국언은 도철의 존재를 인지하고 말을 걸었다.

균열의 틈을 통해 성국언은 이쪽을 똑바로 보고 웃고 있었다.

‘이쪽에서 호족과 국회의원의 수를 다 꿰고 있었는데, 어떻게……!’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성국언은 도철을 포착하고 공격해 왔다.

균열 저편 성국언의 눈에서 거대한 힘이 뻗어 나왔다.

그 눈이 가진 힘은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도철조차 아득하게 느껴졌다.

도철은 사전에 확인했던 성국언의 능력에 관해 겨우 떠올렸다.

‘그래, 저 국회의원은 상위 존재의 가호를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눈에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했지! 인간에게 저 정도의 힘을 주다니. 대체 어떤 상위 존재가……!’

물론, 그때 조의신이 사용한 힘은 성국언의 것이 아니었다.

조의신이 사용한 생사의 안광은 죽음의 신들이 내린 힘으로, 가호로 이어진 성국언의 것과는 많이 달랐으나 도철은 이를 분간하지 못했다.

깊게 생각하지 못한 채로 그저 저 성가신 눈을 빨리 없애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철은 운사의 힘을 끌어모아 성국언의 눈을 노렸다.

성국언의 위치는 구름 속에 있는 것과도 같았기에 찾아내기 어려웠지만, 강렬한 힘을 발산 중인 눈만은 찾아낼 수 있었다.

마침내 도철은 그 눈을 부수는 데에 성공했다.

‘부순 건 두 눈 중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도철은 운사의 힘으로 그 눈을 꿰뚫던 순간을 떠올렸다.

운사가 부리는 먹구름에 그 눈이 닿는 순간, 도철은 심연으로 끌려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와 기묘한 불안,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다.

끔찍한 수렁 속에 발을 내디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감각을 느껴 도철은 눈을 부수기 무섭게 힘을 거두었다.

눈에 이어서 타깃의 목숨을 거두는 대신 도철은 도망을 택하고 말았다.

‘내가 도망치다니, 고작 인간 따위에게……. 그깟 상위 존재가 내린 가호가 뭐라고!’

도철은 도망을 택한 것을 두고 굴욕스러워했지만, 넓게 보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도철이 ‘어느 상위 존재의 가호를 받은 성국언의 눈’이라고 생각한 것은 ‘죽음의 신들이 무거운 의무와 함께 힘을 부여한 조의신의 눈’이었다.

감히 죽음의 신들이 허락한 힘을 부수려 했기에 도철은 죽음의 경고를 받았다.

한쪽 눈을 부수었고 운사라는 매개가 중간에 있었기에 경고로 그쳤다.

그러나 양 눈을 그리했으면 매개고 뭐고 죽음의 저주가 도철을 덮쳤을 것이다.

그렇게 도철은 끝까지 자신이 공격한 성국언이 조의신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저 눈에 대응하는 사이, 전무영이 이능에서 탈출해 버렸다.

‘둘뿐만이 아니라 플로어 마스터까지 쓰러졌다. 그 사제들은 물리 공격밖에 재주가 없다고 들었는데……!’

도철은 화로에 새겨진 인장을 확인했다.

몇몇 인장은 여전히 불꽃을 받아 타오르고 있었으나, 잿더미가 된 것도 있었다.

운사의 힘과 이어진 다른 가든이 파괴되었다는 뜻이었다.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도철은 여기에서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성가신 눈 중 하나를 그리 박살 내었으니 더는 못 쓰겠지. 나를 찾으려 한 걸 보니 그자는 탈출이 아니라 항전을 택했다. 그러면 방도는 있다.’

도철은 화로에 손을 올려 이능파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화로가 뿜는 불꽃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도철은 이를 갈고 새로운 수를 준비했다.

*    *    *

이번 사건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할 때, 황지호가 조건을 붙였다.

전무영과 준비한 수를 조정하라는 게 조건이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을 데려가라는 것이었다.

최대한 강한 이를 그림자 없는 시간으로 데려갈 생각이긴 했지만, 그걸 황지호로 택할 마음은 그리 없었다.

‘그래도 잘 생각해 보니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승낙했는데.’

여태까지 나는 호족의 개입 여부를 가능하면 감추고 있었다.

황지호의 태만으로 많은 것이 어그러졌지만, 그만큼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게 쉬워졌다.

가능하면 길게 흑막이 황지호가 여전히 태만하다고 여겼으면 했고, 황지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직접적인 개입은 삼가게 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달랐다.

‘호족이 개입하고 있다고 적이 파악했다면 더 숨길 필요가 없지. 황지호를 적극 기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물론, 안전에는 신경 써야겠지만.’

여전히 흑막이 호족의 개입과 이쪽의 수읽기를 알아채지 못해서 진짜 성국언 쪽을 노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처하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진짜 성국언과 적연으로 몸을 숨겼던 적호, 김신록이 대응하면 그만이니까.

만약 흑막이 이번에 수읽기에 관해 알아채 내 쪽을 노린다면, 황지호가 태만한 척을 해도 크게 의미가 없다.

호족의 적극적인 개입이 드러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황지호와 움직여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조금 후회했다.

‘괜찮다고 큰소리쳤는데, 부상을 입은 꼴을 보여 주다니.’

왼쪽 눈은 현재 통증 외에는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국언이 평소에도 소지하고 있는 수준의 회복 아이템을 사용해 어느 정도 수습했지만, 상처가 깊어 지혈이 완벽히 되지 않았다.

곽경구의 광림, 100초의 은총을 사용해 신체 재생 능력을 상승시키면 안구가 돌아오지는 않아도 상처는 아물겠으나 그리하지 못했다.

적이 모처럼 나를 성국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성국언이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힘을 활용하면 정체가 간파될지도 모른다.

‘치료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많은데,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적이 나를 성국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운사를 찾으려 한다고 생각하진 못하겠지. 그럼 운사를 되찾는 게 더 수월해질 거야.’

말을 하지 못하는 사이, 황지호가 움직였다.

2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는 지금보다 키가 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금방 가까워졌다.

성큼 다가온 황지호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성국언의 키도 꽤 큰데, 지금 황지호의 키는 더 큰 것 같았다.

황지호는 몇 초 동안 내 눈, 정확히는 왼눈을 가리고 있는 손등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지호가 입을 열었다.

“상처를 보겠다. 손을 내려 다오.”

화를 내거나 한심해하거나 어쩌면 조금 걱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황지호는 평소처럼 말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성국언이 취할 법한 태도를 떠올렸다.

황지호가 저렇게 말하면 나나 성국언은 같은 대답을 할 것 같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평소 같다고 생각하던 황지호의 눈 저편에서 황금빛이 일렁였다.

황지호가 되물었다.

“지금 괜찮다고 했나?”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능파 소모가 심하고, 아직 피가 멎지 않긴 했으나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 다음에 답했다.

“곧 피가 멎을 겁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싸울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상처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다.”

답이 잘못된 모양이다.

황지호는 다소 딱딱하게 말했는데, 이어진 말은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너는 방금 정신을 공격하는 이능에 당하고 왔고, 적과 맞서 큰 부상을 입었지. 지금 네게 설교하고 싶지 않다.”

황지호가 남아 있는 오른쪽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방금까지는 황지호의 눈동자 너머에서 황금빛이 사납게 일렁였는데, 지금은 비교적 잔잔해져 있었다.

20대의 모습은 겉보기에 나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았고, 아무리 모습이 바뀌었다 해도 저놈은 우리 반에서 잘 처웃는 황지호라는 인식이 있는데도 지금은 한참 어른으로 보였다.

황지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 적어도 내가 상처를 보게 해 다오.”

저렇게 말하니 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왼눈이 있던 곳을 누르던 손을 뗐다.

손을 떼어도 왼쪽 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왼눈 쪽에 황지호의 시선이 닿아도 그쪽으로는 마주 볼 수 없었다.

“…….”

황지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상처 부위를 보았다.

전무영도 몇 발자국 뒤에서 내 상처를 보다가 입을 막아 표정을 숨겼다.

아무리 내가 조의신이라는 걸 알아도 성국언의 모습을 한 상태에서 이 꼴이 됐으니 그리 보기 좋지는 않을 거다.

황지호는 내 상처에서 눈을 떼지 않고 관찰하였다.

한참을 관찰한 뒤에야 황지호가 움직였다.

파아앗!

황지호의 힘이 왼눈 위를 덮었다.

황금의 이능파가 피부 위를 덮자 새어 나오던 피가 멎기 시작했다.

예전에 황지호가 다친 적호를 상대로 지혈하는 걸 봤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못 하더라도 피를 멎게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한가 보다.

호족은 수많은 전장을 겪었으니 지혈할 일이 많아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피가 멎어서 그런지, 황금의 이능파가 따뜻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왼눈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줄어든 것 같기도 했다.

휙.

이어서 황지호가 자신의 넥타이를 풀더니 그 위로 이능파를 흘렸다.

황지호가 이능파로 모양새를 가다듬은 후, 내 눈이 가려지도록 넥타이를 감았다.

간이 안대를 만들어 준 것 같았다.

황지호가 넥타이로 만든 간이 안대 위에 결계술을 새기며 말했다.

“이 몸은 지금 지혈밖에 할 수 없다. 미안하다.”

왜 황지호가 사과를 하는 거지?

여기에선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할 차례다.

그렇게 생각해서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황지호가 내 말을 끊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네가 상대의 능력을 피할 수 없어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하필 눈을 당하다니. 아마 네 눈이 이리 당한 건 분명…….”

황지호는 내가 운사를 찾기 위해 그렇게 행동한 걸 알아차렸나 보다.

생사의 안광을 통해 운사와 옛 한국 지부장을 찾겠다고 한 상황이니, 바로 알아채도 이상하진 않았다.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네가 물러나진 않겠지.”

그야 그렇다.

운사와 옛 한국 지부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는데, 이대로 나 혼자 물러날 수는 없다.

게다가 혼자 탈출하고 싶어도 방도가 없고, 단독 행동이 더 위험하다.

지금은 곁에 있는 게 최선이다.

‘황지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

황지호가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전무영은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에는 황지호의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싸움을 앞두고 감정을 억누른 것 같았다.

“가자. 네가 흘린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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