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7화 (847/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7)

104. 곁 (12)

은광구의 한 구역.

포모르 마족이 물러난 후, 도철이 전이를 사용한 전후쯤으로 사람이 전혀 오가지 않았으나 점차 통행하는 이들이 늘었다.

인식을 저해하고 통행을 막았던 스킬이 사라진 덕이었다.

스킬이 더는 인근 주민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걸 확인한 뒤, 성국언과 전무영의 모습을 한 김신록이 이동하려 할 때.

포모르 마족보다 더 성가신 존재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안녕?”

용제건이 나타났다.

용제건은 뻔뻔한 얼굴로 실눈을 뜨고 있었다.

실컷 눈을 크게 뜨고 다니던 용제건은 최근 들어서 다시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

이제 신격을 전부 버렸으니 굳이 저렇게 눈을 뜰 필요가 없는데, 용제건은 일부러 저랬다.

실눈을 유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확 뜨는 순간 주변 반응이 아주 재밌다는 게 용제건의 주장이었다.

예전 같으면 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었을 텐데, 성국언은 이제 웃음이 나왔다.

‘이 주변에 있는 적들의 시선과 힘이 사라지면 오실 거라고 생각했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었을 테니까.’

리플레이가 끝난 후, 용제건은 성국언과 전무영을 찾아왔다.

그날 그들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쌓여 있던 오해를 풀었다.

오해는 성국언과 전무영이 일방적으로 품은 것들이었고 용제건은 알면서도 자극하고 방치해 왔다.

크게 곪아 있던 부분도 있었고 용제건은 계속 오해하는 채로 있는 것도 괜찮다는 태도를 취했기에 서로 대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셋의 대화는 잘 풀렸다.

반은 성국언의 크나큰 배포와 이해력 덕이었고, 남은 반은 그 자리에 없던 김신록 덕이었다.

‘선생님이 무영이 흉내를 내고 있으니 가까이에서 보고 말도 걸고 싶겠지. 이쪽 일은 잘 풀렸으니 우선 지켜볼까.’

예전의 성국언이라면 용제건이 은사에게 장난질을 하려는 순간 곧바로 끼어들어 막았을 거다.

학창 시절에는 0반 아이들을 동원해 난리를 피워 용제건과 은사를 떼어 놓곤 했다.

여의치 않으면 진로 상담을 핑계로 은사를 불러내기도 했다.

너무 상담을 자주 하면 제자가 고민이 깊어 보인다고 은사가 걱정했기에 자주 쓸 수 없던 방법이긴 했다.

그때는 유희계 용족이 인간에게 재미 삼아 장난질을 한다고만 생각했기에 온 힘을 다해 방해하곤 했다.

그런 제자들의 반응이 즐거워서 용제건은 더욱 장난질에 박차를 가해 악순환이 이어졌다.

‘두 분이 오래된 친우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방해하진 않았을 텐데. 지금처럼 지켜봤을 거다.’

지금은 예전과 달랐다.

용제건이 김신록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아는데, 그저 꼴 보기 싫다고 어깃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0반 출신 동창 중에는 용제건 정도는 아니지만, 장난기가 많은 친구들이 꽤 있었으므로 허용할 만했다.

그렇게 성국언의 묵인 속에 용제건이 김신록에게 접근했다.

“안녕?”

“…….”

전무영의 모습을 한 김신록이 못마땅해하는 얼굴을 했다.

꽤 신선한 표정이라 순간 성국언은 용제건의 심정을 아주 조금 이해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국언이 은사에게 감히 저렇게 용제건 같은 짓을 할 일은 없지만 말이다.

용제건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인사 안 받아 줄 거야? 나 요새 무영이랑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응, 나는 안녕해. 무영아, 그 디자인 좋아하나 봐. 저번에 입었던 디자인의 양복인데, 옷감이 새것이네.”

김신록은 뭐라 반박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였으나 말을 못 했다.

평소에 김신록이 역용술을 사용해 누군가의 얼굴을 빌릴 때는 의상까지 완벽하게 갖춘다.

옷으로 알아채지 못하도록 옷감과 단추의 마모도 등을 조정했는데,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김신록이 연기해야 하는 건 ‘가짜 전무영’이었기에 허술하게 역용술을 사용하고 옷도 디자인만 같은 새 옷을 착용했다.

계산하에 행동한 결과인데 용제건이 마치 허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여 김신록은 울컥한 심정이 들었다.

“무영아, 왜 그래? 할 말 있어?”

“……아닙니다.”

“하하하, 그래? 할 말 있으면 언제든지 해. 오늘은 스승의 날인데 선생님이 밥이라도 살까?”

“……됐습니다.”

김신록이 순간 전무영의 얼굴로 용제건을 한 대 치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여기에 성국언이 없었다면 맞든 안 맞든 일단 압정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용제건은 그 얼굴을 관찰하며 아주 즐거워했다.

전무영의 얼굴 밑에서 은사의 감정이 새어 나오는 걸 본 순간, 성국언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용제건 선생님은 알고도 저러시는 중일 텐데. 사려 깊은 선생님도 친우의 장난질 앞에서는 시야가 좁아지는구나.’

성국언은 주변에서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기척들을 감지했다.

슬슬 통행인이 늘어나고 있으니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거다.

적이 직접 이쪽을 관찰하는 눈은 사라졌지만, 나중에 일반인과 기록 기기를 통해 목격 정보를 모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성국언은 ‘가짜’를 연기하는 중이므로, ‘진짜’가 잡혀가 당황스럽지만 태연한 척 이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성국언은 이동을 제안했다.

“일단 이동합시다. 오늘은 황명 타워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습니다만, 용제건 선생님도 같이 가시겠습니까?”

“갈래.”

용제건은 두말없이 응했다.

이동하는 내내 용제건이 속 긁는 소리를 몇 번 했으나 김신록은 꾹 눌러 참았다.

황명 타워에 도착할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황명 타워는 겉보기에는 평소처럼 운영되고 있었으나 호족이 직접 관리하는 구역의 보안은 몇 배로 강화되어 있었다.

직원용 출입구를 지나 황금 문으로 된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김신록은 역용술을 풀었다.

우득, 우드득.

역용술을 푸는 과정에서 뼈와 근육을 다시 맞추는 소리가 들렸다.

김신록과 전무영은 체격이 비슷하긴 하지만 키, 어깨 폭, 근육량 등에서 차이가 있어 뼈를 다시 맞추고 이능파로 피와 살의 양을 조정해야 했다.

성국언은 덤덤한 얼굴로 그 과정을 지켜봤지만, 속이 영 좋지 않았다.

‘이능을 통해 마법처럼 변화한 게 아니야. 이능파로 근육과 뼈를 조정하고 있어. 통증이 있을 거다.’

용제건이 헛소리를 할 때마다 울컥거리는 심정이 드러났던 얼굴은 역용술을 해제하는 내내 고요했다.

친우의 장난질에는 쉽게 동요하던 은사는 통증은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성국언은 용제건 쪽을 흘끗 보았다.

방금과 다를 바 없이 실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장난기가 사라져 있었다.

용제건은 김신록이 역용술을 푸는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고, 재미있어하지도 않았다.

역용술의 해제가 다 끝나고 현재 은사가 사용 중인 김신록의 얼굴로 돌아왔을 때, 그제야 용제건이 말했다.

“이제 푸는 거야? 아쉽다. 무영이 모습을 한 것도 재미있었는데.”

“대체 왜 온 거야. 너는 이번에 그 주변을 살피고 눈이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역할이었잖아. 올 필요가 없었는데.”

“당연히 신록이를 놀리러 왔지.”

휘익!

이제 성국언 앞에서도 참을 수가 없어졌는지 김신록이 순간 압핀 세 개를 용제건의 입 쪽으로 날렸다.

성국언은 그 깔끔한 몸놀림에 감탄했으나, 용제건은 김신록보다 더욱 날렵하게 움직여 빙글 돌며 피하고는 손가락 틈으로 압핀을 모두 회수했다.

김신록이 혀를 차고 용제건은 히죽거리며 압핀을 챙겼다.

성국언은 이제 김신록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끼어들었다.

“다른 곳 소식을 확인하죠. 탄래중에서 발생한 일부터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신록은 머뭇거리다가 방금 추태를 보인 것을 사과했다.

성국언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좋게 말했다.

오히려 성국언 앞에서 저리 행동한 건 그만큼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라 성국언은 기뻤다.

김신록은 탄래중에서 발생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효돈이 일행이 전이된 시점에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이 일어났고, 대기 중이던 진족들의 이능파가 빨려 들어갔다고 하셨습니까?”

“네, 그 탓에 호족 측에서 대기시킨 자들은 아무도 전이에 맞춰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신이가 준비한 수가 있어서…….”

이어진 김신록의 설명을 들은 성국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수한 0반 후배 조의신이 상대의 강수를 받아치는 데에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조의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수가 있었는 듯했다.

“수혁이랑 그 비서가 그 자리에 있었군요. 그들은 자연 이능파 방출에 휘말리지 않았습니까?”

“다른 곳에 있었고, 거리를 두고 탁거산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합니다.”

주수혁과 김철이 맹효돈 일행과 함께 전이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말에 감탄했다.

설령 자연 이능파 방출에 휘말리지 않았더라도 전이가 발생한 순간 곧바로 함께하긴 쉽지 않았을 거다.

충분한 신체 능력, 이능, 반응 속도가 있다 해도 조금이라도 망설였으면 전이에 따라갈 수 없었을 텐데, 주수혁은 친구를 위해서 뛰어든 거다.

과연 주수혁은 성국언이 리플레이 속에서도 주목한 인재다웠다.

‘수혁이는 의신이와도 친하다고 했지. 둘이 이참에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이면 좋겠는데…….’

조의신은 동급생을 상대로 도움을 청할 것 같지 않아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적이 은광고를 노리고 있는 한, 재학생에게 위험을 주지시키고 같이 움직일 이들을 모을 필요가 있긴 했다.

조의신이 어른의 힘을 빌려 모두를 보호하려는 것보다 함께 싸우는 게 안전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조의신이 무사히 이번 작전을 마치면 의견을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걸렸던 것을 물었다.

“자연 이능파 방출 현상까지 조절할 수 있다라…… 저번에 의신이가 키모폴레이아호에서 그 현상을 조우했죠. 그것과 관계있습니까?”

“배후에 있는 존재는 같지만, 다릅니다. 키모폴레이아호에서 그 현상을 일으킨 자는 호족이 확보했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는 김신록의 얼굴에서는 희미한 분노가 묻어났다.

그 사건을 일으킨 저강렵이 적호의 속을 아홉 갈래로 찢어 중상을 입혔으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성국언은 그 사연에 관해 몰랐으나 김신록의 마음을 고려해 화제를 바꿨다.

“의신이 쪽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까? 진짜 무영이 소식도 신경 쓰입니다. 그야 둘 다 무사하겠지만요.”

“그건 곧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용제건이 황금의 호랑이가 새겨진 문고리를 턱짓하며 말했다.

어느덧 황명 타워의 최상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 앞에 도착했다.

이 안에서 호족의 수장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디바이스 통신은 안 되지만, 호족의 수장은 분신을 써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끼이이…….

셋이 앞에 서자 문이 그들을 기다린 것처럼 열렸다.

문이 열린 순간, 그들은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문 너머로 한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압박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용제건조차 입을 다물고 방 저편을 응시했다.

‘……말을 붙일 분위기가 아니군. 무슨 일이 있던 건가.’

열린 문 너머 상석에는 교복 차림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황지호의 모습을 한 황호였다.

셋은 각자 황호에게 물어볼 것들이 있었는데, 황호를 보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황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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