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1)
105. 경계 (4)
맹효돈의 친부가 사건을 일으킨 날, 호랑이 저택.
흑막은 스승의 날 전에 맹효돈을 행동 불능으로 만들려고 했다.
기록 기기를 통해 그 상황을 확인한 적호의 말에 의하면 맹효돈의 친부가 데려온 플레이어들의 이능은 후져서 맹효돈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즉, 흑막이 둔 수로는 맹효돈을 확실하게 죽이긴 어려웠다.
흑막은 딱히 맹효돈을 살릴 마음은 없었지만, 죽일 마음도 없었던 거다.
‘흑막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어. 맹효돈이 죽지 않고 크게 다치기만 해도 성공이었던 거겠지. 또, 성국언 암살이라는 큰 계획을 앞두고 있는데 왜 굳이 움직였는지도 마음에 걸려.’
어쨌든 맹효돈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듯했지만, 그게 하필 흑막이 성국언 암살을 계획 중인 스승의 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성국언 암살을 막기 위한 작전에 맹효돈 습격이라는 변수가 더해지자 나는 여러 수를 재고하고, 재배치했다.
“맹효돈은 5월 15일, 탄래중에 방문할 거야. 그날이 지날 때까지는 경계를 늦춰선 안 돼.”
“알았다.”
여기까지는 황지호도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저 맹효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호족 쪽에서 붙이는 경호원은 좀 허술하게 배치했으면 좋겠어. 조금만 조사하면 황명 재단 소속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줘.”
“단순히 맹효돈을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닌가 보군.”
“응, 진짜 수는 따로 있어. 함근형 선생님께 도움을 청할 거야.”
맹효돈의 사정을 알고 진심으로 그를 보호하려 하고 그 정도의 힘이 있는 플레이어.
또한 이 사건에 개입했던 게 드러나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인물.
이 조건을 만족하는 분은 함근형 선생님이었다.
담임 교사가 사건에 휘말렸던 제자를 걱정해 움직였다 하면 이상하지 않다.
“굳이 함근형을 부르지 않더라도 호족이 보호할 수 있다만.”
“아무것도 안 하면 의심을 살 거고, 허점을 보이지 않으면 저쪽에서 강수를 둘 거야. 맹효돈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저쪽이 어떻게 나올지 확인하고 싶어.”
“의신이 형은 이미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짐작하신 것 같은데요.”
은호는 내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황지호가 막았다.
황지호가 눈을 반짝이며 내가 무엇을 알아낸 건지 추리하려 했다.
“맹효돈이 탄래중에 방문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지. 성국언이 예전에 그 주변 학교의 비리를 밝혀낸 것과도 관련이 있나? 하지만 그건 꽤 시간이 지났을 텐데.”
황지호가 성국언 암살 사건과 엮어 그럴싸한 짐작을 했으나 부족했다.
황지호는 맹효돈의 처지나 인간관계, 주변 상황에 관해 잘 모르니 짐작하기 어려울 거다.
나는 내가 생각한 답을 입에 담았다.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님이 무언가를 발견하셨을 거야. 그걸 흑막도 알아챘을 거고. 그게 뭔지 확실히 알려면 그날 상황을 지켜봐야겠지.”
내 말에 호랑이들이 의아해했다.
갑자기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가 튀어나온 게 이상한가 보다.
적호가 먼저 대놓고 물었다.
“중학교 은사라면 이능이 없는 인간 아닙니까? 그 잔악무도한 쓰레기가 무언가를 발견한 인간을 살려 둘 리 없을 텐데요.”
그야 그렇다.
만약 지금 현실이 플마고 속 전개대로 흘러갔다면 중학교 은사는 흑막의 손에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흑막이 중학교 은사를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물론, 흑막은 그분을 죽일 생각일 거예요. 하지만 그분이 이르게 돌아가시면 움직일 플레이어 둘이 있어서 순서를 미룬 거겠죠.”
“둘?”
“하나는 맹효돈이고, 다른 하나는 성국언 선배님이에요.”
만약 그 중학교 은사가 사망하면 맹효돈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는데 아무런 확인 과정 없이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정말 그게 사고였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지 알아보게 된다.
감이 좋은 맹효돈이라면 그 과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될 거고, 그에겐 도움을 줄 사람이 많았다.
“맹효돈은 학생이지만, 탁거산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은광고인과 연이 있어요. 사고로 위장하더라도 맹효돈이 한 번쯤은 알아볼 거고, 주변 은광고인들도 도움을 주겠죠.”
그렇게 되면 그 은사의 죽음으로 비밀을 묻기는커녕 폭로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성국언 또한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성국언 선배님은 작년에 탄래중 관련 비리를 적발했어요. 그 이후로 주기적으로 탄래중을 비롯한 인근 학교의 인사, 회계 자료를 요구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만약 탄래중의 은사님이 돌아가시면 알게 되겠죠.”
아무리 교묘하게 사고로 위장해도 성국언을 속이기는 힘들 것이다.
성국언은 그런 은폐 공작, 속임수를 파헤치는 데에 능숙했다.
황지호가 미간을 좁히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다면 맹효돈을 습격한 목적은…….”
“죽이거나 장기간 병상에 묶어서 은사님과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 했을 거야. 죽이지 못해도 중상을 입으면 맹효돈이 은사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겠지. 시간을 벌면 은폐할 수도 있어.”
“맹효돈이 죽더라도 그 은사 때문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없을 테니 조사하는 것도 어렵겠군.”
게다가 스승의 날엔 맹효돈이 은사와 만날 예정이었다.
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맹효돈이나 탁거산은 다르다.
흑막은 맹효돈, 성국언, 은사를 차례대로 처리하고 싶었겠지만, 순서가 꼬인 이상 한 번에 없애려 들 거다.
만약 성국언, 맹효돈, 탁거산이 죽거나 실종되면 난리가 날 텐데, 평범한 중학교 교사에 관한 건은 묻히고 말 것이다.
흑막은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할 때에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한 큰 사건을 일으켜 진실을 묻어 버리곤 했다.
“천동하 선배님의 배치를 바꾸자. 은광구 주변을 살피는 대신 탄래중 쪽을 봐 달라고 해야겠어.”
“적은 전이를 사용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천동하의 광림이 전이 과정을 꿰뚫어 볼 거라고도 했지.”
“내 생각대로라면 탄래중 쪽에서도 전이가 발생할 거야.”
만만치 않은 플레이어들을 처리해야 하니, 플마고 속 성국언과 전무영에게 그랬듯이 가든으로 전이시키려 할 것이다.
전이가 없더라도 공격은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만약 그쪽에서도 전이가 일어난다면, 포모르 마족들이 할 일이 늘어나겠지.’
포모르 마족에게 시킬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말했다.
포모르 마족에게는 우선 은광구 쪽을 살피게 할 예정인데, 탄래중 주변에서도 이용하려면 그쪽을 확실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천동하 선배님의 눈으로 모든 과정을 확인해 줬으면 좋겠어.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누가 움직이는지 알아야 해.”
“그럼 은광구 쪽을 살필 자를 정해야겠군요. 언제 시선이 사라질지 알아야 움직이기 수월할 겁니다.”
적호의 말에 바로 답변할 수 있었다.
천동하가 넓은 시야로 확인하는 게 확실하긴 하지만, 시선에 민감한 우리 편이 하나 있었던 덕이다.
바로 용제건이었다.
“은광구 쪽은 천동하 선배님을 대신해 용제건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어요.”
“……용제건이 좋아하겠군. 김신록을 귀찮게 하며 끼어 달라고 열심히 어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들의 친우가 이번 계획에 더해진다면 안심이 됩니다.”
용제건을 부른다는 말에 반대하는 호랑이는 없었으나 적호를 제외하면 그리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호랑이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니 좀 걱정되었다.
‘용제건 말고도 불러야 할 진족이 하나 더 있는데.’
내가 부르고자 하는 진족은 용제건보다 덜 환영받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진족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수의 성공률이 크게 오르므로 반드시 부르고 싶었다.
게다가 앞으로 있을 시나리오에 대비해 그 진족과 접촉해 둘 필요가 있었다.
“의신이 형, 말씀하세요.”
언제 말할지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은호가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덕분에 쉽게 입을 뗐다.
“마족(馬族)의 수장, 흑마를 부르고 싶어.”
예상대로 호랑이들은 그리 탐탁지 않아 했다.
마족(魔族)과의 일로 협력은 하고 있지만, 운사를 구출하는 중요한 작전에서 손을 빌릴 만큼 신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둔 수에 관한 설명을 더해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알았다, 조의신.”
황지호가 먼저 긍정하자 다른 호랑이들도 저 말에 따랐다.
흑마를 부르기 전, 황지호가 덧붙여 말했다.
“흑마를 불러 이번 작전이 더 안전해진다면 바라던 바다.”
* * *
가든 안, 황지호와 합류한 후.
부상을 입었으나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황지호, 전무영, 나는 운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지호가 앞장서긴 했지만, 방향은 계속 내가 지시했다.
“이쪽입니다.”
“언뜻 보면 막힌 곳 같군요…….”
내가 가리킨 방향이 구름과 안개로 흐려져 있는 것을 보며 전무영이 말했다.
가든의 구조는 복잡하고 갈수록 이능파의 농도가 짙어져 조금만 방심해도 길을 잃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생사의 안광으로 새긴 운사의 위치는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어 헤맬 일이 없었다.
이 정도의 눈이 없으면 길을 잃을 정도라니, 가든에 서린 힘이 무거웠다.
‘운사가 아무리 오래되고, 강력한 진족이라 해도 이능파의 양이 많아. 흑막이 감추고자 하는 비밀과 관련이 있겠지. 이곳의 에너미는 꽤 강할 텐데, 맹효돈은 괜찮을까?’
위치만 알면 함근형 선생님이 맹효돈을 구했을 거다.
그 위치는 흑마가 찾아냈을 것이다.
‘흑마는 맹효돈의 위치를 확보하고, 다음 목표로 이동했을 거야. 내가 생사의 안광으로 옛 한국 지부장을 찾아내 흔적을 남겼으니까…….’
흑마는 죽음, 삶과 깊은 연관이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전에 마족의 사제를 생포해 고문했을 때, 흑마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사제를 고정시켜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읽었다고 한다.
흑마는 자력으로 옛 한국 지부장의 시체를 찾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운사의 기운이 탐색을 방해할 테니 생사의 안광으로 강한 죽음의 기척을 남겨 흑마를 보조해 두었다.
그러니 옛 한국 지부장 쪽은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여전히 맹효돈 쪽에 있었다.
‘흑막이 맹효돈을 노리는 이유는 더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은사가 알게 된 비밀과도 연관이 있을 수도 있어.’
통증을 잊을 정도로 사고에 몰두하고 있을 때, 20대의 모습을 한 황지호가 말을 걸었다.
“다른 곳이 신경 쓰이나?”
“……네.”
순간, 반사적으로 성국언인 척하는 걸 잊고 ‘어’라고 답할 뻔했다.
이어진 황지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오 그룹의 주수혁과 그의 비서 김철이 가든 안에 들어왔다.”
어떻게 주수혁이?
맹효돈을 따라온 건가?
주수혁이 맹효돈의 뒤를 캤다면 이쪽에서 눈치챘을 텐데.
“함근형을 따라서 움직이다가 가든에 뛰어들었겠지.”
어째서 주수혁이 함근형을 따라온 거지?
속으로 쌓은 의문에 황지호가 알아서 대답했다.
“주수혁은 영민한 학생이다. 맹효돈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자를 찾아내 추적하다가 함근형을 특정 지은 것 같군.”
플마고 속 주수혁은 지금보다 훨씬 막막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흑막의 실마리를 예리하게 파고 들어가 싸웠다.
주수혁이라면 맹효돈을 위해 움직이고, 이 가든에 뛰어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주수혁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주수혁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를 둬야 하지 않을까?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말했다.
“그 아이는 강하고, 제 자신을 아낄 줄 아니 다치진 않았을 거다. 심려치 말거라.”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한 소리일 텐데, 황지호의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문 너머에 운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