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50화 (850/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0)

105. 경계 (3)

함근형을 발견한 순간, 맹효돈은 몸이 멈출 뻔했다.

파이트 클럽을 탈출하던 날, 폭우 속 은광고의 시계탑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함근형의 모습과 지금이 겹쳐 보였다.

싸우던 중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화살이 날아가는 걸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제일 먼저 느낀 건 안심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함근형이 나타나 맹효돈을 안심시켜 줬다.

아직 상황은 좋지 않은데도 함근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맹효돈의 사기가 치솟았다.

쩌적!

함근형이 쏜 세 개의 화살이 정확히 수정을 맞추었으나 내구도가 상당한 건지 금만 갔을 뿐 부수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금이 간 수정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이능파의 농도가 옅게 변했다.

맹효돈은 대체 플로어 마스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우선 위기는 넘겼다는 건 알아챘다.

함근형은 다음에는 더 강력한 화살을 쏠 심산인 듯 활시위를 당기는 사이 이능파를 크게 모았다.

쿠구구구…….

황색의 수정에 금이 가자 플로어 마스터가 잠시 주문을 외우는 걸 멈추었다.

방어막 저편에서 플로어 마스터가 화살이 쏘아진 곳을 응시했다.

곧 함근형을 발견한 플로어 마스터가 로브 자락을 휘저었다.

그러자 맹효돈을 노리던 에너미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함근형을 바라보았다.

휘익!

플로어 마스터가 무겁게 손을 휘둘러 함근형을 가리켰다.

그러자 에너미들이 함근형을 향해 돌진했다.

수정들을 단숨에 박살 낼 기세로 힘을 모으던 함근형은 무방비한 상태였다.

맹효돈은 그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에너미들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파아앗!

맹효돈이 광림, 싸움꾼의 인력을 발동해 모든 에너미들을 묶었다.

거대한 주먹의 형태를 한 이능파가 떠올랐다가 흩어지자 에너미들이 진군을 멈췄다.

맹효돈이 싸움터로 지정한 구역에는 함근형이 서 있는 자리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에너미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곧 맹효돈을 쓰러뜨려야 함근형이 있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걸 이해한 에너미들이 방향을 바꾸었다.

주먹을 고쳐 쥔 맹효돈 역시 에너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생님 앞에서 꺼져!”

맹효돈의 주먹과 발길질이 가차 없이 에너미를 가격했다.

맹효돈의 싸움에는 그동안 탁거산이 전수한 각종 무술이 섞여 있었다.

몸을 낮추고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치기, 빠른 보법으로 뒤를 잡아 올려차기 등등 대체 어떤 무술을 쓰는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분명한 건 에너미들은 맹효돈의 싸움 실력과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주먹과 발이 몇 배는 가벼워진 것 같아!’

방금까지 상대하던 것들과 똑같은 에너미인데, 훨씬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광림을 발동한 덕에 신체 능력치가 상승한 덕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맹효돈의 뒤에는 함근형이 있었다.

혼자 싸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쐐애애액!

맹효돈은 아직 한참이나 혼자서도 에너미를 상대할 만큼 여유가 있었는데, 함근형이 준비를 마치고 화살을 쏘았다.

연이어서 쏘아진 세 개의 화살이 광원이 적은 주변을 밝히며 수정을 부수기 위해 날아갔다.

플로어 마스터가 급히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에너미에게 지시를 내렸다.

에너미들이 몸을 날려서라도 저 화살을 막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싸움터에 묶인 에너미들은 맹효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콰앙!

폭발음이 주변을 뒤덮고, 화살이 터뜨린 수정의 잔해가 주변에 흩어졌다.

수정이 깨지자 돌기둥이 빛을 잃고 금이 가고, 플로어 마스터를 감싼 방어막이 사라졌다.

함근형은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수정이 아닌 플로어 마스터의 핵을 겨냥하고 있었다.

함근형은 현재 광림, 명사수의 시선과 광궁(光弓)을 발동 중이었기에 상위 존재의 눈을 빌린 그 눈은 여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맹효돈, 플로어 마스터 쪽을 보지 마라!”

플로어 마스터를 관찰하던 함근형이 외쳤다.

맹효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근형의 말을 따라 플로어 마스터로부터 등을 돌리고 에너미들을 상대했다.

에너미들은 수정이 깨진 뒤부터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더욱 괴상하게 날뛰고 있었고, 플로어 마스터도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으나 맹효돈은 충실히 함근형의 말대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함근형은 플로어 마스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플로어 마스터 새끼를 보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선생님은 괜찮나?’

맹효돈은 함근형을 믿고 있지만, 괜히 자신을 보호한답시고 위험을 감수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맹효돈의 그런 속내를 읽은 것처럼 함근형이 입을 열었다.

전투 중에 함근형이 굳이 목소리를 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정신에 간섭하는 이능을 가지고 있군. 하나 명사수들의 정신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함근형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플로어 마스터가 뿜는 사기(邪氣)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데도 함근형의 화살촉 끝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곳에 모이는 맑은 이능파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는 맹효돈이 처음 예상한 대로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한 듯했다.

견고한 방어막과 대량의 에너미 뒤에 숨어야 제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함근형도 이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바로 플로어 마스터를 부수기로 결정했다.

‘저 새끼, 도망갈 것 같은데.’

맹효돈은 플로어 마스터를 보고 있지는 않았으나 힘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는 중이라는 건 감지했다.

플로어 마스터가 함근형에게 수작을 부리는 것을 포기하고 퇴각을 택했다.

맹효돈은 순간 싸움꾼의 인력을 다시 발동해 플로어 마스터도 묶어야 하나 고민했으나 생각을 접었다.

함근형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선생님이 플로어 마스터를 보지 말라고 했어. 맡기자.’

플로어 마스터가 달리기 시작했다.

함근형은 표적이 움직여도 개의치 않았다.

허둥지둥 달아나는 플로어 마스터를 향해 함근형이 주저 없이 화살을 쏘았다.

플로어 마스터는 발악하듯 금이 간 돌기둥 뒤로 숨었다.

콰아아아아!

함근형의 화살이 돌기둥을 부수고, 그대로 플로어 마스터까지 꿰뚫었다.

넝마처럼 흩어진 로브 자락 사이로 핵이 부수어졌다.

플로어 마스터가 완전히 힘을 잃자 돌기둥에 이어 맹효돈이 상대하던 에너미도 소멸하기 시작했다.

소멸 이펙트가 보여도 함근형과 맹효돈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부스스…….

모든 것이 돌가루가 되어 흩어진 후에야 함근형이 활시위에서 손을 떼고, 맹효돈이 준비 자세를 풀었다.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함근형이 맹효돈이 서 있는 바닥으로 뛰어 내려왔다.

맹효돈은 위에서 내려오는 함근형을 바라보며 처음 등교했을 때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함근형은 오자마자 맹효돈의 몸 상태를 살폈다.

“맹효돈, 다친 곳은 없나?”

“……없어요.”

맹효돈은 와 줘서 고맙다, 구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그 전에 함근형이 말했다.

함근형은 험악한 얼굴로 면목 없어 했다.

“에너미들과 혼자 싸우게 해서 미안하다. 저런 타입의 기믹은 동시에 부수지 않으면 디버프 효과를 일으키거나 아예 부수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함근형은 교사답게 간단히 기믹 설명을 했다.

플로어 마스터는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한 대신 도구와 기믹을 활용해 정신적인 공격을 가하는 타입인 듯했다.

힘이 응집된 수정을 동시에 부수면 공략이 매우 쉬워지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면 까다로운 유형이라고도 했다.

‘정신을 지배해서 뭘 어쩌려고…….’

설명은 짧고 간결했으나 맹효돈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맹효돈이 멍하니 생각했다.

‘그런데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왜 여기 계시지?’

김유리가 스승의 날 이벤트 일정을 조정할 때, 함근형이 오늘 출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출장지가 어디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보통 함근형이 출장을 가면 홍천으로 갔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반 아이들 대부분 그렇게 짐작했던 탓이다.

‘설마 이곳이 출장지였나? 그게 아니면 부반장이 수상한 짓을 해서…….’

맹효돈은 바보 같은 생각과 사실에 가까운 짐작을 동시에 했다.

하지만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맹효돈은 혼자서 생각해 보려 했지만, 도저히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설령 함근형이 맹효돈을 걱정해 따라왔다고 해도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가든의 구조는 몹시 복잡하고, 그 주인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주수혁과도 저 위에서 헤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어떻게 찾았어요?”

함근형은 숨길 생각은 없는 건지 곧바로 답변했다.

처음 나온 말은 맹효돈이 떠올렸던 생각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다.

“홍천에 있는 어느 진족이 네게 빚을 졌다고 들었다.”

홍천이라면 함근형의 단골 출장지 아닌가.

만약 거기에 있는 진족이 빚을 졌다면 맹효돈이 아닌 함근형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맹효돈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홍천에서 뭔가를 한 기억이 있던가?

그러다가 맹효돈은 어떤 사건이 벼락같이 떠올랐다.

‘아, 태풍 오던 날!’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맹효돈은 탁거산, 방윤섭과 함께 홍천의 어느 야산에서 수행하던 중이었다.

그때 협회에서 구조 활동 협력 요청을 했고, 비상소집에 응했다.

그러던 중 맹효돈은 덫에 걸려 있던 야생마 하나를 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야생마는 마족(馬族)의 권속인지 신수인지 하여튼 중요한 존재였다.

마족의 수장 흑마가 직접 맹효돈에게 찾아와 감사를 표하고 선물을 줄 정도로 말이다.

“네 방에 그 진족이 선물한 아이템이 있지 않나?”

“어…… 그럴걸요?”

맹효돈은 그 선물 자체는 잊고 살았지만, 선물을 받던 순간은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사장실로 불려 가 얼떨결에 선물 여러 개를 떠맡은 건 잘 기억하고 있었다.

친척 아니랄까 봐 같은 반 돌아이와 아주 닮은 황명호 이사장이 처웃을 기세로 기분이 좋아 보였던 것도 기억났다.

‘드림캐처였던가? 반 애들이 그건 침실에 두는 거라고 해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관종들이 스승의 날 기념으로 드림캐처를 선물했는데, 맹효돈이 본 적이 있다고 하니 반 아이들이 그 아이템이 무엇인지 설명해 줬다.

맹효돈이 가진 드림캐처는 유니콘의 꼬리털을 모아 만든 귀한 물건이었지만, 그의 눈엔 그냥 털뭉치였다.

하지만 반 아이들이 열성적으로 아이템에 관해 설명하기에 그날 맹효돈은 방 한구석에 처박아 뒀던 드림캐처를 꺼냈다.

방 어딘가에 있던 걸 그냥 잘 보이는 구석으로 옮긴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맹효돈은 그 아이템에 관해 인식했다.

“너도 알겠지만, 그 진족의 수장은 흑마다. 그리고 네가 가진 아이템은 흑마가 귀하게 여기는 동족의 꼬리털로 만들었다고 하는군. 그 기운을 따라 너를 찾아냈다.”

함근형은 그 흑마라는 진족과 같이 여기에 온 듯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걸 보니 흑마는 맹효돈의 위치를 알려 준 후, 따로 행동하는 중인 것 같았다.

무슨 과정을 거쳐 여기에 왔는지는 알았으나 이상한 게 있었다.

함근형이 흑마와 맹효돈의 관계, 선물받은 아이템에 관해 전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이걸 계획한 건…….’

이 모든 것을 알고 준비했을 이는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함근형은 이어서 맹효돈이 생각한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조의신이 나와 흑마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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