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49화 (849/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49)

105. 경계 (2)

쿠구구구……!

맹효돈을 삼키자마자 목표를 달성했다는 듯, 갈라졌던 땅이 맞물리려 했다.

탁거산은 뒤늦게 그 뒤를 따르려 했지만, 에너미의 방해로 발목이 잡혔다.

주수혁은 맹효돈의 중학교 은사를 김철에게 맡기고 에너미 토벌에 돌입했다.

두빛나래를 휘두르는 모습이 언뜻 보기엔 침착하게 보였으나 주수혁의 속은 그렇지 못했다.

‘가든의 하늘에 구름이 껴 있어서 지하는 생각하지 못했어……! 높은 하늘과 지하를 동시에 갖춘 이계는 흔하지 않을 텐데.’

이계에는 저마다 희귀도와 유형이 있어 거기에 따라 구조와 출현하는 에너미가 정해졌다.

주수혁뿐만이 아니라 김철, 탁거산 심지어 중학교 은사도 그것에 관해 알고 있었다.

이 중에서 이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건 맹효돈뿐이었다.

그랬기에 맹효돈은 다들 경계하지 않았던 지하에서의 위협을 가장 빠르게 알아차렸다.

만약 맹효돈이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중학교 은사가 바닥으로 삼켜져 적에게 인질로 잡혔을 것이다.

‘지금 상대하는 에너미도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이계에서 나타날 것 같지 않은 타입이야.’

지금 나타난 에너미들은 바위를 부리고 있었다.

저 에너미들은 때때로 땅바닥의 일부가 되어 탁거산의 일격을 피하곤 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구조도, 출현하는 에너미도 구름이 가득한 이계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닥을 통째로 엎어 주마!”

제자가 눈앞에서 사라진 걸 본 탁거산은 눈이 뒤집혀 있었다.

저 에너미들이 맹효돈을 따라가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더 그랬다.

탁거산의 전신에서 이능파가 들끓었다.

땅을 다 뒤집어 에너미를 분쇄시키고 그대로 맹효돈이 사라진 바닥 끝까지 파헤칠 기세였다.

저랬다가는 이 가든의 주인과 마주칠 때 힘이 남지 않을 것이다.

주수혁은 광림, 무결한 날갯짓을 발동하며 그 앞을 막았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주수혁의 등에서 뻗어 나온 날개가 두빛나래를 감싸고, 검날이 나무색으로 변했다.

주수혁의 쌍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지한 에너미들이 땅을 울리며 주수혁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광림을 발동 중인 주수혁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주수혁은 에너미가 몸을 숨긴 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검이 남긴 잔상이 바닥을 긁으며 넓게 퍼져 나갔다.

동시에 목(木) 속성의 힘이 땅을 파고들었다.

오행상극(五行相剋)의 원리 중 하나인 목극토(木剋土)에 의해 토(土) 속성의 에너미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땅에서 뛰쳐나왔다.

기기긱……!

에너미의 바위 같은 피부 곳곳이 나무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괴로운 듯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탁거산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탁거산의 발끝이 정확히 나무색으로 물들어 있는 부분을 꿰뚫었다.

콰앙!

탁거산의 발에 꿰뚫린 에너미가 산산조각 나며 소멸했다.

탁거산은 뒤이어 맹효돈이 사라진 방향의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 했다.

마치 땅을 파기라도 하겠다는 모습을 보고 주수혁이 말렸다.

“다른 길을 찾는 게 좋겠어요. 효돈이가 떨어진 깊이를 보니 힘으로 파면 오히려 더 오래 걸릴 거예요. 가든의 주인과 이어진 길을 찾는 게 빠르겠죠.”

“으음…….”

“이곳은 마치 여러 종류의 가든이 합쳐져 있는 것 같아요. 이 가든의 배후에 있는 자는 상식에 어긋난 힘을 다루니 실제로 복수의 가든이 합쳐져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겠죠. 그 점을 생각하며 가든의 주인을 찾으러 가요.”

맹효돈이 한참을 떨어지던 모습을 떠올린 탁거산이 복잡한 표정으로 주먹을 거두었다.

눈앞에서 친구가 사라져서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주수혁은 냉철하게 분석을 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수혁이 저리 구는데 어른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에 탁거산은 헛기침을 하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탁거산이 진정한 것을 확인한 주수혁이 싸우는 동안 생각했던 점을 전하고, 맹효돈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천리안을 사용했다.

먼 곳을 꿰뚫는 눈이 깊은 바닥 너머 맹효돈을 찾아 멀리 뻗어 갔다.

주수혁의 시야 안에 곧 맹효돈이 담겼다.

착지할 때 충격을 덜기 위해 바닥에 주먹을 여러 차례 날렸는지 땅이 엉망으로 파여 있었다.

거칠게 착지한 탓에 맹효돈은 흙투성이였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효돈이가 별다른 피해 없이 도착했어.’

주수혁은 맹효돈의 상태 외에도 그가 있는 곳의 방향, 깊이, 주변 광경 등을 확인했다.

주수혁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하고 맹효돈이 낙법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주수혁의 시야가 흐려졌다.

이어서 날카로운 통증이 눈을 찌르고 천리안이 해제되었다.

주수혁이 눈을 깜빡이며 이능파를 거두자 초조하게 이를 지켜보고 있던 중학교 은사가 물었다.

“……효돈이가 보이니? 무사해?”

“네, 효돈이는 무사히 착지했어요. 하지만 천리안에 간섭이 들어온 걸 보면, 근처에 강한 이능파를 뿜는 존재가 있는 듯해요.”

중학교 은사는 주수혁은 첫 마디에 안심했지만, 이어진 말에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땅을 가르고 강력한 에너미를 부를 만한 힘을 가진 자가 맹효돈의 주변에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가득해졌다.

탁거산의 주름 가득한 얼굴도 분노와 걱정으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효돈이는 저희가 도착하기 전까지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그리고…….”

주수혁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며 다시 천리안을 발동했다.

이번에 보는 건 맹효돈이 사라진 방향이 아니었다.

주수혁은 그가 믿고 있는 친구가 두었을 수를 확인하려 했다.

“효돈이한테는 저 말고도 다른 친구도 있으니까요.”

“그 친구라면 설마…….”

다른 친구라는 말에 탁거산이 운을 뗐다.

탁거산은 맹효돈의 친구 중에 아주 믿을 만한 아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탁거산이 제자들을 맞이하는 걸 포기하고 은광고를 떠나려고 했을 때, 그를 붙잡고 청소년 수련회에서 움직여 달라고 부탁한 맹효돈의 친구가 있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맹효돈은 탁거산 선생님 제자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가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방윤섭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걔도 제자로 삼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대신 부탁드릴 게 있어요.

탁거산은 반신반의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말대로 행동했다.

맹효돈과 방윤섭에게 직접적으로 뭔가를 한 것도 아닌데, 그 이후 그 둘은 제자가 되겠다며 직접 탁거산을 찾아왔다.

명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없었다면 탁거산은 맹효돈과 방윤섭, 둘을 제자로 삼을 수 없었던 것은 분명했다.

탁거산이 조의신을 생각하니 묘한 믿음이 차올랐다.

*    *    *

맹효돈은 떨어지는 동안, 어쩌면 여기에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착지에 전념하면 무사하겠지만, 내려가는 도중에 에너미에게 습격당하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맹효돈이 바닥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낙법을 구사하는 동안 에너미의 습격은 없었다.

‘도인이랑 주수혁이 다 잡아 줬나 보네.’

주변은 잠잠하고 어두웠다.

벽 여기저기에 빛을 뿜는 수정이 박혀 있어 앞을 분간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강한 광원은 아니었기에 전체적으로 어둡게 보였다.

우우웅……!

그때, 주변 공기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맹효돈을 향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닥을 가르고 에너미 부른 새끼겠지?’

맹효돈은 진족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맹효돈의 예상과 달리 나타난 것은 에너미의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에너미는 멀리서 봤을 때에는 인간의 형태에 가깝고,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잘 보면 등의 형태가 뒤틀리고, 로브 사이로 드러난 피부가 돌로 덮혀 있어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에너미가 맹효돈을 향해 접근할 때마다 주변의 공간이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층 전체가 이상해지는 걸 보니 플로어 마스터다. 지하로 가는 바람에 또 나온 건가? 그런데 아까 나온 새끼랑 좀 다르네.’

타워 형태의 이계가 아닌 한, 보통 플로어 마스터는 닮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새로이 나타난 플로어 마스터는 주수혁이 쓰러뜨렸던 무형종의 에너미와는 많이 달랐다.

마치 다른 이계의 플로어 마스터 같았다.

‘모르겠다. 어차피 쓰러뜨리면 다 똑같지.’

맹효돈은 생각을 포기하고 싸우기나 하기로 했다.

플로어 마스터가 로브 자락 사이로 돌조각을 뭉쳐 만든 것 같은 손을 휘두르자 거대한 기둥들이 소환되었다.

쿵! 쿠웅! 쿠구구구……!

거대한 돌기둥이 플로어 마스터를 중심으로 세 개가 놓였다.

세 기둥에서 이능파가 발산되어 투명한 벽을 만들어 플로어 마스터를 감쌌다.

마치 플로어 마스터를 보호하는 방어막처럼 보였다.

‘저딴 걸 왜 세워? 방어막 같은데 플로어 마스터 새끼는 약한 건가. 잠깐, 저게 뭐야.’

세 기둥 위에 황색의 수정이 떠오르고, 그 위에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황색의 수정이 불길한 빛을 머금었다.

위이잉…….

맹효돈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기민하게 어떻게 싸우고 무엇을 노려야 할지 깨달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플로어 마스터의 힘에 이끌려 에너미들이 스멀스멀 몰려들기 시작하고 그것들과 싸워야 했다.

에너미들을 날려 버리는 동안 세 기둥 위에 생성된 수정이 뿜는 힘이 강해지고, 방어막에 가려진 채로 중심에 선 플로어 마스터는 로브 자락을 휘두르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오래 내버려 두면 뭔가 일어날 것 같았다.

‘아, 저 덩어리를 빨리 부숴야 할 거 같은데!’

만약 반 아이들이 같이 싸우고 있었다면, 맹효돈은 플로어 마스터가 부른 에너미들을 저지하는 데에만 신경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에너미들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기둥을 부수러 갔을 텐데, 지금 맹효돈은 혼자였다.

‘……이렇게 싸우는 건 오랜만이네.’

은광고에서 한 이계 공략은 늘 파티 단위로 움직였다.

반 아이들과 공격대, 수비대를 나누고 여럿이서 역할을 정해 싸우곤 했다.

갑작스러운 위기가 닥쳐 싸워야 했을 때에도 은광고의 누군가가 늘 곁에 있었다.

1대1 대련을 한 적은 몇 번 있지만, 그때에도 혼자 싸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보통 대련을 지켜보는 탁거산이 있거나 응원하는 반 친구들이 있었다.

이렇게 오롯이 혼자 싸우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파이트 클럽에서의 싸움 이후로 처음일지도 모른다.

‘혼자 싸우는 게 이렇게도 힘든 거였나!’

파이트 클럽에서 혼자 싸우는 게 당연한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다.

또, 처음 은광고에서 반 아이들과 같이 싸울 때에는 어색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맹효돈이 에너미를 여럿 날려 버리는 사이, 황색의 수정이 뿜는 기운이 점점 커졌다.

눈이 아릴 정도로 빛이 강해졌다.

‘안 돼, 못 부순다! 늦어!’

맹효돈은 감이 잡힐 듯 말 듯 한 필살기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러나 맹효돈이 떠올린 필살기는 한 방에 한 놈을 노리는 기술이었다.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세 곳을 동시에 노리는 건 불가능했다.

맹효돈은 방어에 전념하기 위해 황색의 수정을 향해 전진하는 걸 멈추고 후퇴하려 했으나 또 생성된 에너미들이 발을 잡았다.

우우우웅!

플로어 마스터의 주문에 따라 황색의 수정이 폭발할 듯이 빛을 뿜었다.

그때였다.

쐐애액!

세 개의 화살이 짙은 농도의 이능파와 빛을 두르고 황색의 수정들을 향해 쏘아졌다.

궁사의 존재를 본 맹효돈이 눈을 크게 떴다.

맹효돈을 지옥에서 구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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