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59)
105. 경계 (12)
평생 파생 스킬을 얻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이 차고 넘치는데, 연이어 두 개를 얻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물론, 맹효돈은 이를 알지 못했다.
강대한 적을 둘이나 눈앞에 둔 상황이라 맹효돈은 자신의 성취에 놀라고 만족할 틈조차 없었다.
스으으…….
아무 소리도, 기척도 없이 숨어 있던 적이 꿈틀거렸다.
‘싸움꾼의 눈’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면 맹효돈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거다.
함근형은 저 은밀한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함근형이 아무리 상대를 경계하고 있어도 교전 중에 저 정도로 은신에 능한 자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저 새끼는 선생님을 먼저 공격할 거다!’
적은 맹효돈보다 먼저 함근형을 처리하는 쪽을 택했다.
맹효돈은 바로 광림과 스킬을 발동해 적과 싸우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이를 억눌렀다.
지금 공격하는 건 최적의 타이밍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바로 싸울 수 있다고 해서 무작정 공격하지 않았어.’
함근형의 공격 범위는 매우 넓지만, 함부로 활을 쏘지 않는다.
타깃이 방심하여 화살을 피할 수 없다고 확신할 때, 혹은 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와야 활시위를 당긴다.
탁거산은 적이 뒤에 있든 위에 있든 나이답지 않은 기동력을 발휘해 유연하고 날래게 공격할 수 있으나 적당한 때가 오지 않으면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큰 힘을 각성했으니 바로 사용해 저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그런 자포자기식의 공격은 하지 않았다.
맹효돈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1초라도 더 시간을 끌 방법을 생각했다.
평정을 유지하고, 시간을 끌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반장하고 주수혁이 근처에 있다. 걔들이 반드시 도우러 온다.’
맹효돈은 적이 가장 방심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실제로는 몇십 초도 흐르지 않았지만, 아주 길게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저건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 버리고 싸우지 그래.”
도올이 자리에 굳어 있는 맹효돈이 우습게 보인 건지 도발하듯 말했다.
저런 말에 맹효돈이나 함근형은 흔들리지 않았다.
맹효돈은 파이트 클럽에서 매일같이 야유를 들었기에 저 정도의 말은 들리지 않는 셈 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차라리 지금 맹효돈이 겁에 질렸다고 착각해 주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맹효돈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저 새끼가 딴소리로 주의를 끌려고 하네. 지 동료가 기습할 거라는 걸 아는 거야.’
저들은 협공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싸움꾼의 눈에 새로운 것이 보였다.
저들이 기습하기 위해 택할 경로였다.
사실 ‘보였다’라기보다는 ‘알게 되었다’에 가까운 통찰이었다.
맹효돈은 그 차이점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째 파생 스킬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했다.
‘맨손으로 할 수 있는 공격 중에 가장 강한 거. 저 새끼들도 놀라서 공격을 한 번이라도 멈출 만한 거.’
스킬을 얻을 때, 플레이어는 자연스레 스킬명과 그 사용법을 인식하게 된다.
파생 스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식하는 것과 실제로 능숙하게 다뤄 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므로 연습이 필요하나 맹효돈에게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었으나 맹효돈은 파생 스킬을 활용해 자신이 싸울 수 있는 기량을 넘어선 수준의 힘을 써 볼 심산이었다.
스으으으…….
이윽고 이목구비가 존재하지 않는 적, 혼돈이 함근형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함근형은 도올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격전이라고는 하나 둘 다 제힘을 온전히 발휘해 싸우고 있지는 않았다.
도올은 함근형의 실력을 가늠하듯 다루는 머리카락의 수를 조금씩 늘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함근형은 숨어 있는 적을 생각해 전력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함근형이 도올의 머리카락을 잘라 내기 위해 빛의 화살을 불러내었을 때였다.
‘지금이다.’
혼돈이 함근형을 상대로 이능을 발동하려 한 순간, 맹효돈이 먼저 파생 스킬을 사용했다.
맹효돈이 처음으로 두 번째 파생 스킬을 사용하는 기념할 만한 순간이었으나 기습을 가하는 중이었기에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혼돈은 맹효돈의 주먹이 닿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그 공격을 알아차렸다.
‘그냥 맞아 주지는 않네.’
더 힘을 숨기고 있기도 어려웠으므로, 맹효돈은 시원하게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 중인지 알려 주기로 했다.
맹효돈은 억누르고 있던 이능파를 폭발할 기세로 분출했다.
쿠구구구……!
여기 있는 자들 중 가장 체구가 작은 맹효돈의 전신에서 주변을 모두 짓누를 듯한 무거운 이능파가 뿜어졌다.
마치 눈앞에서 산이 이동하는 듯했다.
그 감각에 함근형은 지원이 도착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맹효돈은 탁거산의 필살기, 이산일격(移山一擊)을 쓰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산을 옮길 듯한 한 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세였다.
“맹효돈……!”
함근형은 설마 탁거산이 벌써 저 기술을 맹효돈에게 전수했나 싶어 아연해졌으나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맹효돈이 사용한 파생 스킬의 이름은 ‘싸움꾼의 스승’.
맹효돈은 은광고에 들어올 때까지 정식 스승은 없었으나 수많은 스승이 있었다.
대회에 나가기 전에 TV나 학교 컴퓨터를 통해 본 드라마나 영화의 액션 신, 무술 시연 영상 등이 그러했다.
맹효돈은 한 번 본 기술은 어설프게나마 대충 구현할 수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보고 흉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탁거산 같은 일류 무도가의 필살기를 따라 하는 건 불가능했다.
‘싸움꾼의 스승’ 스킬을 얻기 전까지는.
‘내가 본 거 중에 도인의 이 기술이 가장 셌어!’
싸움꾼의 스승을 발동한 순간, 맹효돈은 현재 실력과 무예의 숙련도, 근력 등을 초월해 싸움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순간이나마 스승의 실력을 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탁거산의 필살기 수준의 공격이 날아오니 혼돈은 이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혼돈은 바로 멈춰 서서 피부의 강도를 높였다.
피하는 대신 방어도를 높이고, 덤으로 피부에 닿는 순간 곧바로 이능을 발동해 반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맹효돈의 공격은 닿지 않았다.
휘이이…….
맹효돈이 산 같던 기세를 완벽하게 죽였다.
들끓던 이능파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맹효돈은 탁거산이 자신에게 공격을 맞추기 전, 기세를 완전히 죽이는 것까지 흉내 낸 것이다.
‘이 능력을 진짜로 쓰면 힘이 빠져서 못 움직인다. 그러면 짐이 돼.’
맹효돈은 자신이 탁거산의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그 힘을 쓰고 나면 거동이 불편해진다는 것도 알았다
플레이어가 전장에서 움직이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도우려는 동료의 생존 가능성도 급격히 떨어진다.
전투 수업에서 생존법에 관해 가르칠 때, 어쩔 수 없이 다쳐야 하는 상황이 닥쳐 팔다리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면 무조건 팔을 고르라고 배울 정도다.
“스승을 위해 허세를 부린 건가? 쓰지도 못할 힘을 쓰려 하다니, 참 대단하군.”
맹효돈이 내빼자 도올이 비꼬았다.
그러나 도올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창천명궁의 짐짝,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척살 대상, 여차하면 인질로 삼을 수 있는 인간 정도로 여기던 맹효돈이 혼돈의 위치를 알고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혼돈은 방어 태세를 풀었으나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다시 그 일격을 날릴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효돈이 그 정도 수준의 힘을 또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 자꾸 손이 떨리려고 하네. 준비 동작에 들어간 것뿐인데 힘이 이 정도로 빨린다고?’
상대에게 준 타격은 전혀 없는데 맹효돈의 체력과 이능파가 크게 소모되었다.
그런 상태였지만, 맹효돈은 언제든 그 힘을 쓸 수 있을 것처럼 가장하려 했다.
맹효돈의 허세를 바로 알아차린 건 그의 체력이나 이능파 수준을 잘 알고 있는 함근형뿐이었다.
그러나 혼돈을 상대로 이를 오래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
혼돈이 꾸물거리며 도올에게 신호를 보냈다.
도올이 신호를 해석하고선 빙긋 웃었다.
“스승을 위해 그런 허세를 부리다니 가상하다.”
도올의 웃음에는 경멸과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선의와 희생정신이 섞인 행동에 대한 경멸과 그런 행동에 잠시나마 속은 것에 대한 노여움이었다.
도올은 분풀이를 하기 위해 장난질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전장에서 심심할 때마다 하던 장난 중 하나로, 의외로 성공률이 높은 장난질이었다.
도올이 웃으며 맹효돈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봐주지 않고 상대하면 너희는 이길 수 없다. 이곳은 우리가 관리하는 가든이고, 창천명궁은 거리를 좁히면 제힘을 발휘할 수 없고, 어린 쪽은 미숙하기 짝이 없지.”
그 말에 함근형과 맹효돈은 반응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도 반박할 수 없었다.
두 진족의 힘은 강대했다.
아직 제대로 싸우지는 않았어도 그건 알 수 있었다.
도올이 맹효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어린데도 우리를 속일 정도의 힘을 보인 점을 높이 사서 너는 살려 주겠다. 네 스승을 두고 가라.”
이 경우 대부분의 선한 인간은 두고 갈 수 없다며 버틴다.
그러나 한쪽에서 자신은 괜찮으니 부디 도망쳐 살아남아 달라고 애원하면 마음이 꺾이곤 한다.
도올은 이러한 제안을 수없이 했지만, 누구를 살려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의 기분에 따라 한쪽을 골라 먼저 죽이고 늦게 죽는 쪽의 반응을 감상하며 즐겼다.
둘 다 죽이고 나면 도올이 이런 장난질을 쳤는지 알려지지 않으므로 속는 자들은 계속 나왔다.
함근형이 먼저 말했다.
“저자가 진심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틈이 보이면 도망쳐라.”
함근형은 순진하게 속지는 않았으나 맹효돈의 살길을 생각해 그리 말했다.
그러나 맹효돈은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안 가요.”
맹효돈은 그냥 함근형과 같이 죽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맹효돈의 인생 경험은 함근형에 비해서 짧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악의를 많이 접했다.
파이트 클럽에서는 탈출과 빚의 변제 등을 미끼로 맹효돈을 부추기고 기대하게 만든 뒤 바닥에 떨어뜨린 자들이 있었다.
지금 도올은 그때 봤던 그자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맹효돈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저 새끼가 지금 거짓말하고 있거든요.”
말이 곱지는 않았으나 맹효돈의 강한 의지와 통찰력이 느껴졌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도올이 불쾌감으로 얼굴을 구겼다.
“도망가면 자비를 베풀어 주려고 했는데, 안됐군.”
도올의 자비란 내키면 몇 분 정도 늦게 죽여 준다는 것이었으므로 어찌 됐든 맹효돈과 함근형에게는 필요 없었다.
도올의 장난질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기대하던 혼돈이 실망하여 몸을 떨었다.
둘이 두 사제를 죽이기 위해 이능을 끌어올렸다.
도올의 이능파가 실린 머리카락은 몇 배나 늘어났고, 혼돈의 피부색이 변하였다.
그때였다.
“이 몸은 도망가는 적에게도 자비를 베풀 마음은 없는데, 마음이 넓군.”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자의 음성이 들렸다.
맹효돈과 함근형은 그 음성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다소 굵었지만, 아주 잘 알고 있는 0반 돌아이의 목소리였다.
곧 어두웠던 가든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