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74)
107. 선발 (4)
아침부터 주수혁과 안다인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천리안을 쓴 것도 아닌데 눈앞이 맑아지고 넓게 변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주수혁이 나를 찾는다면 굳이 천리안을 써서 찾으러 오지 않아도 바로 응했을 텐데.
디바이스 메시지를 보냈는데 내가 확인 못 한 건가?
확인해 봤으나 주수혁이 메시지를 보낸 이력은 없었다.
“그냥 불러내는 대신 직접 찾아내고 싶었어. 은광고에서 의신이를 찾아낼 능력조차 없어 보이기는 싫었거든.”
주수혁은 가볍게 말했지만, 은광고의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타이틀 히어로 다운 마음가짐이라며 감탄하고 있을 때, 맹효돈이 말했다.
“주수혁 보다 내가 먼저 찾았다.”
“응, 효돈이 보다 늦었지. 혹시 효돈이도 천리안을 썼어?”
“천리안은 아니고 파생 스킬이다. 이번에 싸우면서 파생 스킬을 두 개 얻었는데, 그중 하나가 ‘싸움꾼의 눈’이라는 거라서…….”
주수혁이 관심을 보이자 맹효돈은 바로 자신의 파생 스킬에 관해 설명했다.
맹효돈이 얻었다는 파생 스킬은 ‘싸움꾼의 눈’과 ‘싸움꾼의 스승’이라고 한다.
파생 스킬을 얻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맹효돈이 파생 스킬을 두 개 얻었다고?’
나는 플마고를 통해 맹효돈을 한계까지 육성했다.
그 과정에서 파생 스킬을 얻었지만, 두 개가 아니라 하나였다.
내가 맹효돈이 얻을 것이라 예상한 파생 스킬은 ‘싸움꾼의 스승’으로, 한 번 보고 이해한 무술을 재현하는 능력이었다.
내가 육성한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이능을 사용하는 광림, ‘플레이어의 궤적’과 비슷하지만, 캐릭터 풀이 한정되어 있는 내 능력과는 달랐다.
맹효돈은 ‘싸움꾼의 스승’을 통해 앞으로 새로운 기술을 얻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플레이어의 궤적은 그게 불가능했다.
그 엄청난 파생 스킬 못지않은 이능을 하나 더 얻다니, 싸움 천재에게 뛰어난 사부가 붙으니 더욱 굉장해졌다.
“부반장이 그 무림인 놈이랑 같이 나갔다고 하던데. 무림인 놈은 빛을 싫어하고, 매복을 경계하니까…… 그래서 그늘을 따라 매복이 없을 만한 곳을 이 눈으로 따라간 거다.”
‘싸움꾼의 눈’은 싸움과 관련된 것이라면 보일 리가 없는 것을 보여 주는 듯했다.
설명이 길어지자 말을 더듬거리긴 했지만, 맹효돈이 몸 쓰는 데에 천재라는 건 잘 전해졌다.
말을 마친 맹효돈은 내 쪽을 바라봤다.
마치 평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칭찬해 주는 걸 기대하나 싶어서 칭찬의 말을 입에 담았지만, 맹효돈의 표정이 미묘했다.
주수혁과 안다인도 나를 비슷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이게 정답이 아니었나?’
셋의 진의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중요한 것부터 말하기로 했다.
맹효돈에게 파생 스킬이 두 개나 생겼으니 조심해야 할 게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믿을 만하지만, 파생 스킬에 관해 밝히는 건 신중하게 해야 해. 귀한 이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표적이 될 수 있어.”
“어…… 도인도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는 했는데…….”
맹효돈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안다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큰 비밀을 밝혀서 효돈이의 심리적 장벽이 내려갔나 봐.”
안다인이 큰 비밀을 밝혔다고?
설마 호족과 엮인 출생의 비밀을 말하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비밀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어서 함부로 반문할 수 없었다.
안다인은 이어서 말했다.
“나는 내가 그분들의 자식이라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밝히고 싶어.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믿을 만한 친구들을 시작으로 조금씩 밝혀 나갈 생각이야. 그래서 오늘은 효돈이, 어제는 수혁이에게 내 출생에 관해 말했어.”
안다인의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안다인의 비밀이 주변에 알려진다면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타이틀 히로인에 관해 과소평가하고 있던 게 아닐까?
안다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용감하고, 친구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내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안다인이 이어서 말했다.
“어제 수혁이랑 만나서 이 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 수혁이는 처음에 비밀을 밝힐 대상으로 유리를 추천했는데, 유리는 이미 알고 있어서 효돈이에게 말하기로 했어.”
뭐, 주말에 개인적으로 만났다고?
둘은 만나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저 만남 자체도 이야기 못지않게 중요했다.
물어보나 마나 저 둘은 친구들끼리 나눈 진솔한 대화의 시간 정도로 여기겠지만, 은광고의 모든 사람들은 그냥 데이트라고 생각할 거다.
안다인은 조리 있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안다인이 유상훈에게도 출생의 비밀을 밝히려 한다는 말에 또 크게 놀랐다.
‘유상훈에게도 비밀을 밝힐까 고민 중이라니…… 맹효돈하고 유상훈이 호족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안다인과도 친분이 있긴 하지.’
안다인은 맹효돈과 유상훈에 관해 이런 말을 덧붙였다.
“효돈이는 수혁이랑 의신이의 친구잖아. 그리고 상훈이는 나와 같이 학급 임원을 한 사이인 데다 의신이와 입학 전부터 연이 있어. 호족 측에서도 효돈이랑 상훈이는 믿을 수 있으니, 내 비밀을 밝히는 건 나에게 맡긴다고 했어.”
안다인의 설명에 홀린 듯 납득했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왜 안다인은 지금 출생의 비밀을 밝힌 걸까?
설마 주말 사이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결심을 하게 된 건가.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안다인이 나를 곧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왼쪽 눈을 보는 것 같았다.
“의신이는 오래전부터 호족과 같이 움직였다고 들었어. 그러니 호족과 연이 있는 친구들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마치 안다인이 출생의 비밀을 밝히기로 마음먹은 건 나 때문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과분한 상상을 하고 있자니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내가 지호나 다른 호족 분들 만큼 강했다면 지난 작전에 함께 행동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쉬워.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강해지려고 해.”
“나도 그래.”
“……나도.”
셋의 얼굴에 아쉬움과 분함이 묻어났다.
저 셋이 약해서 얕보거나 배제하고 생각한 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안다인의 말대로 저들이 황지호 정도로 강하다면, 수를 둘 때 당연히 고려하지 않았을까?
진족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황지호를 비교 대상으로 두는 건 그렇지만, 만약 그랬다면 나도 안심하고 저들에게 협력 요청을 했을 거다.
흑막이 노리고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라 해도 용제건을 작전에 포함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몰라. 아니, 얕보고 무시한 게 아니냐는 말에 부정할 수 없어.’
그냥 너희가 안전하길 바라고 있었다는 핑계로는 부족했다.
저 셋도 전선에 나서는 플레이어들인데, 저런 변명을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다.
암담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맹효돈이 말했다.
“저 새끼 미안해하는 것 같은데?”
“그러라고 한 말이 아닌데…….”
안다인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니, 타이틀 히로인이 저런 표정을 짓게 하다니 내가 죄인이었다.
다행히 타이틀 히어로 주수혁이 나서서 상황을 수습해 줬다.
주수혁은 밝고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안 되겠다. 이번 선발전에서 우리 실력을 보여 줘야겠네.”
“선발전?”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에 출전할 학생들을 선발할 거야. 효돈아, 너도 출전해 줘.”
“알았다.”
맹효돈이 의욕에 찬 얼굴로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인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기간에 지호보다는 강해질 수 없겠지. 그래도 의신이가 둘 수에 포함시킬 만큼 강해질게. 이번 선발전에서 확인해 줘.”
의문이 많이 남는 대화였지만, 하나 정해진 게 있었다.
바로 넷 다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에 출전할 선수 선발전에 참가하는 것.
교실로 향하던 중에 문득 어느 생각이 떠올랐다.
맹효돈이 파생 스킬에 관해 설명했을 때, 저 셋이 왜 미묘한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한 이유였다.
‘설마 앞으로 같이 싸우자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고 지금 저걸 물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해산했다.
한편, 우리 반에는 맹효돈 외에도 선발전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나갈 거야. 이름을 알릴 기회잖아. 게다가 학교 홍보 대사인데 일을 해야지. 너도 나갈 거지?”
바로 독고미로였다.
PlayerZ 정식 오픈을 앞두고 독고미로는 자잘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다.
게임을 메인으로 하는 스트리머들이 방송 각을 잡기 위해 독고미로를 초대하고 있었다.
독고미로는 방송의 규모보다는 논란이 없는 스트리머를 택해 신중하게 출연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리고 공개 가능한 범위에서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에 관해서도 언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너도 같이 출연했으면 하는 스트리머도 있더라. 일단 너한테 얘기는 해 보겠다고 했어.”
같은 학교 홍보 대사라서 그런가, 나한테도 초대가 왔다.
해야 하는 일이 많고 눈에 띄는 행동을 해 봤자 이득이 될 일이 없어서 일단 고사하기로 했다.
독고미로는 아쉬워했지만, 그 대신 선발전에서 잘해 보자는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구나.’
큰 사건이 있었지만, 내 주변에는 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1학년 0반 후배들도 몰려와서 선발전에서 응원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저렇게 응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선발전에서 적당히 빠지는 게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이다.
하지만 내가 탄래중 주변에 일어난 사건에 개입했다는 것, 왼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그렇게 방과 후가 되었다.
이슈가 많은 덕에 문새론의 의욕이 넘쳐 신문부 활동이 길어졌다.
‘저렇게 의욕이 넘치는 이유 중에는 주말에 주수혁과 안다인이 데이트 비슷한 걸 한 덕이 있겠지.’
은광구의 어느 카페에서 목격담을 입수한 문새론은 내게 그 좋은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다.
목격담을 대가로 선발전에 관한 정보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긴 했지만 말이다.
문새론은 은광구 주변에서 발생했다는 성국언의 전이에 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기에, 그 관심을 조금 돌릴 겸 아낌없이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신문부 활동을 마치고 귀갓길에 올랐을 때였다.
“의신아, 지호야. 기다렸어.”
황지호가 뭐라고 하든 일단 기숙사로 갈 생각이었는데, 안다인이 저렇게 기다리고 있었다니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안다인과 황지호와 함께 호랑이 저택으로 가게 되었다.
호랑이 저택의 별채에 도달했을 때, 안다인과 황지호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지호야, 오늘 중요한 거래가 성사되었다고 했지?”
“그렇다.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거다.”
별채의 문을 열었을 때, 호랑이 외에도 다른 진족이 하나 더 있는 게 보였다.
작은 그림자가 있어서 황유호였으면 했는데, 아니었다.
향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