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78화 (878/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78)

107. 선발 (8)

풍백과 우사에 이어 운사까지 신인의 곁을 지키겠다고 하자 모두가 그들의 충심에 경탄하였다.

저 셋이 신인을 따라 신격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관리가 되고, 이제는 목숨까지 버려 가며 곁을 지키겠다고 하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은호도 저 셋이 신인의 곁을 지킨다는 것에 토를 달지 않았다.

“세 분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네요.”

불안해하는 건 운사뿐이었다.

풍백과 우사는 셋만 있을 때가 아니라면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모습을 두고 그들이 변절했다 판단하기도 모호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해도 사소한 오해로 서운한 마음을 품고 원망의 말을 뱉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니 신인을 두고 뒤에서 섭섭한 말과 태도를 조금 보였다고 이를 트집 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운사의 친우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풍백과 우사가 신인을 소홀히 대한다면, 내가 더 신인을 극진히 모시면 돼.’

부디 이번 위기를 계기로 그들이 다시 신인을 믿고 따르길 바랄 뿐이었다.

한편, 운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요소가 더 있었다.

바로 웅족의 존재였다.

“웅족이 구축한 방어선이 일부 무너졌습니다. 전사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전사자는…… 호족과 공동 전선을 구축할 것을 처음으로 제안한 자다.”

강력한 공통의 적을 만났고, 호족과 웅족의 평화를 바란 자들이 있어 둘은 손을 잡았다.

그러나 화평을 주장한 자들이 전장에서 스러지고, 교활한 외적이 둘을 이간질시키기 위한 책략을 짜내고 있어 동맹의 유지를 보장할 수 없었다.

외적은 호족과 웅족, 둘 중 하나를 회유해 내분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 시도는 은호와 웅족의 수장이 족족 찾아내어 대처하고 있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어찌 될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불안이 퍼지자 은호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적호 님과 웅녀 님이 굳게 맺어져 있는 한, 호족과 웅족의 동맹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천신의 힘을 받아 전장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리는 두 분께서 서로를 깊게 생각하며 아끼고 있는데, 어찌 호족과 웅족이 등을 돌리겠습니까?”

삼칠일의 시련을 마친 후, 적호와 웅녀의 힘과 위상은 크게 올라가 있었다.

두 영웅이 전장에서 무수한 수의 외적을 격퇴하고, 서로를 애지중지했다.

호족과 웅족이 갈라서야 한다고 강경히 주장하는 자조차 둘 앞에서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호가 딱 잘라 말하니 운사의 불안이 다소 가라앉긴 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았다.

‘은호의 말대로 적호와 웅녀가 있는 한, 어떤 문제가 있어도 호족과 웅족은 다시 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둘이 돌아선다면…….’

운사는 불안한 마음에 잠을 줄여 가며 바삐 움직였다.

신인의 곁에 있을 때에는 풍백과 우사를 지켜보았고, 허락된 자유 시간에는 웅족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웅족에 둘러싸인 웅녀를 보게 되었다.

‘전시 중에 이 정도로 구색을 갖추다니…….’

웅녀가 앉은 의자는 정중하게 손질된 모피가 깔려 있었고, 주변에는 계절과 맞지 않는 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잘 보니 생화가 아니라 보석을 가공해 만든 꽃잎이었다.

웅녀가 원해서 저기에 앉아 있는 건 아닌지, 부채로 입가를 가려 곤란해하는 표정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그런 웅녀를 바라보며 젊은 웅족들이 얼굴을 붉히며 구애했다.

구애의 말을 마친 이들은 적호를 선택한 웅녀를 설득하려 애썼다.

“웅녀, 어째서 그런 막돼먹은 호랑이 놈을 택한 것이오!”

“웅족에 당신을 흠모하는 인재가 이리도 많거늘, 다시 생각하게나.”

“대체 어디가 좋아서 호족에서도 내놓은 미친 호랑이를 정인으로 삼은 건지…….”

강하고 아름다운 웅녀를 마음에 품은 자들이 한둘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으나 저리 많은 줄은 몰랐다.

운사는 당혹스러운 나머지 끼어들어서 웅녀를 빼 오거나 물러나서 적호를 불러와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웅족들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을 때, 웅녀가 부채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짧은 동작이 매우 우아하여 핏대를 높여 가며 소리 지르던 웅족조차 말을 멈춘 후 넋을 놓고 응시했다.

“그러면 제가 적호의 어디를 좋아하는지, 당신들은 어디가 부족한지 말씀드릴게요.”

웅족들은 웅녀의 고혹적인 자태와 음성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들의 정신은 뺨을 후려갈기는 듯한 웅녀의 말에 겨우 돌아왔다.

“당신은 적호에 비해 얼굴이 별로라서 보는 눈이 괴로워요. 그쪽은 적호보다 발이 느리고 자세가 구부정하여 같이 걷기 어렵지요. 그리고 저기에 있는 자는 기(氣)의 색과 형태가 몹시 추잡하여 가까이 가는 게 꺼림칙할 정도랍니다.”

웅녀는 온갖 기준을 대며 구애자들을 평가하고 단호하게 찼다.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적호를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져 운사의 낯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웅녀가 댄 이유 중에 성품만큼은 나오지 않았다.

적호가 제법 멀끔하게 생기고 전투 능력이 탁월한 건 사실이나 웅녀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개망나니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제가 택한 호랑이는 당신들보다 몹시 멋지고 용감하지요. 이제 아시겠나요?”

구애한 모든 자들을 잔인한 진실의 말로 차 버린 웅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 태도에는 여전히 기품이 넘쳤는데, 어딘가 속이 후련해 보이기도 했다.

웅녀가 저리 잔인하게 군 건 웅족이 끈질기게 굴어서인 듯했다.

웅족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웅녀가 사랑 탓에 눈이 멀었다며 헛소리를 해 댔다.

웅녀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답했다.

“저보다 약한 당신들보다는 제 눈이 정확하지 않겠어요? 꼬우면 저한테 이기세요.”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웅녀는 적호가 할 법한 말을 했다.

웅녀를 이길 자신이 없는 웅족들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튀어나온 웅족 사내가 하나 있었다.

기(氣)의 색과 형태가 몹시 추잡하다고 평가받은 웅족이었다.

“웅녀, 네 선택이 꼬우니까 싸울게.”

저 웅족은 천인의 시련에 나설 자를 뽑았을 때, 웅녀와 마지막까지 경합한 후보이기도 했다.

웅녀 못지않은 강자임은 틀림없었지만, 웅녀는 질 마음이 없었다.

웅녀의 눈에 위험한 빛이 감돌았다.

당장이라도 저 웅족을 가루로 만들 기세였다.

웅녀는 전시고 나발이고 본보기를 하나 만들어 구애를 핑계로 귀찮게 구는 쓰레기들을 한 번에 처리할 마음인 듯했다.

하지만 웅녀가 부채를 휘두르기 전, 붉은 번개가 웅족 사이를 크게 갈랐다.

파지지직!

“……, ……!”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에 섞여 엄청난 욕설이 들렸다.

운사는 적호가 뱉은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고 까무러칠 뻔했으나, 적호라면 충분히 할 소리라는 걸 납득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적호는 적뢰를 아낌없이 뿌리며 곰 사냥을 시작했다.

“곰 새끼가 실성을 했나, 감히 웅녀에게 껄떡대? 네놈의 사지를 셋으로 분리하고 삼면의 바다에 던져 외적을 꾈 미끼로 삼아 주마!”

적호가 분노에 차 날뛰었다.

저항하는 웅족도 있었으나 웅녀가 눈에 안 띄게 그자들을 공격하며 적호를 보조했다.

난전 속에서 웅녀가 기습을 하니 당해 낼 웅족이 없었다.

웅녀는 웅족이 실컷 얻어맞은 후에야 슬픈 목소리로 적호를 만류했다.

“이런 자 때문에 당신이 그런 말을 입에 담게 되다니…….”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적호는 감전된 것처럼 멈춰 섰다.

적호는 후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주변에 굴러다니는 웅족을 내려다봤다.

운사는 적호가 이렇게 날뛴 걸 후회하나 싶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적호는 그저 웅녀 앞에서 고운 말을 쓰지 않은 걸 후회하는 중이었다.

“웅녀, 미안합니다. 그대의 정인다운 말만 쓰기로 다짐했는데,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이건 모두 저 쓰레기들 때문인 걸요. 오랜만에 거친 말을 쓰는 적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웅족들은 처맞은 것도 분한데, 그 둘의 애정 행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했다.

어쨌든, 웅족이 아무리 수작을 부려도 둘의 사랑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게 확실해졌다.

하늘 높은 곳에서 먹구름을 타고 지켜보던 운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땅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이제 내려오셨군요. 적호 님이 제때 도착한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은호가 운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호는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던 듯했다.

운사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은호가 적호를 보냈어?”

“네. 운사 님도 두 분이 걱정되셨지요? 저도 그랬어요.”

은호가 직접 지켜보고 있다가 적호를 부르진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수를 부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은호는 운사가 그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운사는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은호는 운사에게 차를 권하며 말했다.

“저 역시 두 분의 관계가 동맹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어요. 항상 마음을 쓸 생각이에요.”

은호는 그 자리에서 운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때로는 대화를 멈추고 가만히 차를 음미하기도 했다.

은호와 대화를 나누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보내자 운사는 겨우 마음에 쌓인 불안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최근 웅족은 외적을 상대할 힘을 연구하고 있다고 해요. 그 연구의 필두에 오늘 적호 님이 가장 먼저 쓰러뜨린 자가 있었죠. 호족에 비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었는데, 이번 건으로 확인하게 되었네요.”

웅족의 최정예들이 힘을 모으고 있지만, 적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은호는 이번 건으로 적호와 웅녀 사이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웅족의 힘을 가늠하려 했던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사소한 일화로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운사는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다.

풍백과 우사가 그 웅족에게 조언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    *

적호와 웅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호랑이들이 말을 잃었다.

적호가 이 자리에 있으니 최대한 말을 조심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듣다 보니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은호는 적호와 웅녀에게 항상 마음을 쓰겠다고 했어. 그런데 어째서 웅녀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한 거지?’

은호가 웅녀의 배신을 알게 된 시점은 적호가 자신이 한 짓의 의미를 깨닫고 은호를 찾아갔을 때였다.

은호가 방심할 만한 이유가 있던 걸까?

운사가 이야기한 때와 웅녀가 배신한 시점 사이에는 시간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변수가 많을 테지만, 이상했다.

물론, 변명할 여지도 있긴 했다.

‘두 사건 사이에 은호가 천기를 거스르고, 후예를 토족에게 넘기고, 몸이 쇠약해졌을 거야. 적호가 죄를 청할 때 황지호가 임시 수장을 맡고 있었잖아.’

임시 수장 자리를 넘겨야 할 정도로 약해진 상태이니 은호가 웅녀의 배신을 놓쳤을 수도 있을 거다.

호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납득했겠지만,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은호는 무녀에게 배신당한 후잖아. 하물며 웅족은 한 번 배신했고 적호가 사랑에 눈이 멀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 마지막까지 웅녀를 믿지 않았을 거야.’

내가 은호라면 누군가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 거다.

적호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자.

가능하면 적호와 웅녀가 경계하지 않을 만한 자.

절대 호족을 배신하지 않을 자.

그러나 웅녀의 배신을 알아채지 못한 자.

조건은 떠올랐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특정 짓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특정 짓지 못한다는 것 자체를 힌트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이어 갈 단서가 부족했다.

이걸 지금 호랑이들에게 말해 봤자 혼란만 줄 거다.

기력을 쥐어짜서 겨우 말하고 있는 운사에게 집중해야 했다.

“저한테 개기다가 박살 난 그 웅족의 최정예가 누군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잠든 진웅팔선 곰 새끼 중 하나 아닙니까.”

이야기를 듣던 적호가 말을 덧붙였다.

웅녀가 언급되는 바람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고자 일부러 말을 얹은 것 같았다.

운사가 적호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했다.

“……풍백과 우사는 현재 진웅팔선이라 불리는 웅족들을 돕고 있었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