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87)
108. 취재 (5)
은광구 내에 위치한 0반 교우회관.
0반 교우회관은 동창회관처럼 은광고 내에 위치한 시설 같지만, 다르다.
이곳은 0반 교우회가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땅을 사고 건물을 세워 만든 시설이다.
0반 졸업생은 모일 때마다 장소를 정하는 게 번거롭다는 점, 보안 유지를 위해 아지트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어 교우회관을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은광구에는 0반 졸업생들이 만든 요새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은광고에 문의하면 학교 안 건물을 하나 내줬을 텐데, 굳이 이런 짓을 하다니. 아니, 그때를 생각하면 그럴 만했지.’
그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는데, 0반 졸업생들은 굳이 학교 밖에 교우회관을 세웠다.
교우회관이 세워졌을 때는 마침 황지호가 태만하여 은광고에서 온갖 갈등과 부패가 발생하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 겨우 은광고에서 벗어나 자유가 된 졸업생들이 학교 내에서 모임을 갖고자 할 리가 없었다.
또, 졸업생들이 은광고를 출입하기 위해선 주기적으로 결계에 등록한 정보를 갱신해야 하는데, 그게 귀찮기도 했을 거다.
“존재는 알고 있었다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나쁘지 않군.”
0반 교우회관 정문 앞.
황지호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평했다.
황지호의 말대로 외관은 나쁘지 않았다.
연식은 꽤 됐지만, 주기적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신축 건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깔끔했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았다.
황지호보다 더 길게 교우회관을 관찰하던 은호가 말했다.
“외장재는 일반적인 소재군요.”
그 외에는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인가 보다.
하긴 0반 선배놈들이 직접 세운 건물인데 일반적일 리가 없다.
건물 내 전투를 상정해 프로 플레이어 팀 빌딩처럼 이계 금속을 처발랐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딱히 이계나 에너미에 대비해서가 아니라, 0반 선배놈들끼리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니 말이다.
‘이런 위험한 곳에 은호를 데려가도 되나?’
은호가 호족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은호는 병상에서 일어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수업 중 1학년 0반 학생들과 대련했을 때,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나 저 무지막지한 0반 선배놈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하니 걱정되었다.
게다가 정체를 감출 마음이 없는 늙은 호랑이와 달리 은호는 천은하로 위장 중이다.
은호는 여차할 때 본 실력을 드러내는 대신 그냥 다치는 쪽을 택할지도 모른다.
“의신이 형, 제가 걱정되시나 봐요.”
은호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배로서 선배의 작은 호의에 기뻐하는 건 천성헌 시절과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은호가 내 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을 입에 담았다.
“응, 안에는 나랑 황지호만 가도 돼. 내부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어때?”
내가 말을 마친 후에도 은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는데, 주변이 서늘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 조의신이 그 말을 할 줄 알았다.’라며 황지호가 뭐라 말을 할 때에도 은호는 바로 답변하지 않았다.
이윽고 은호가 말했다.
“의신이 형의 상태를 알고도 저는 보고만 있으라는 건가요? 다음에 그런 제안을 하시면 제 힘을 증명하기 위해 혼자 행동할 거예요.”
은호를 얕보는 발언을 하고 말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자칫하다간 나 때문에 은호가 혼자 행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듭 사과했다.
변명을 하자면 은호가 나보다 어려 보이는 모습을 한 데다 천성헌에 가까운 외모를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후배 대하듯 해 버린 것 같았다.
사실 후배를 싸우게 하는 게 여전히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은호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진심을 다해 사과하기로 했다.
은호는 내 사과를 들은 후, 부드럽게 답했다.
“후배로서 대해 주시는 건 기뻐요. 하지만 저도 싸울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의신이 형이 어떤 일을 겪어서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도 잊지 마시고요.”
실수를 했는데도 은호가 관대하게 넘어가 주었다.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좋은 후배라고 생각하며 함께 교우회관으로 향했다.
“예전에도 이랬나?”
“비슷해요.”
“어땠는지 훤히 보이는군.”
호랑이들이 뭐라 떠들긴 했지만, 지금은 저 대화를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제 우리는 저 교우회관으로 들어가 선배놈들의 함정에 맞서야 했다.
‘약속 장소는 최상층인 16층이야. 내부에는 함정이 있을 테니 그냥 바로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 게 빠를 텐데…….’
아쉽게도 졸업생들은 교우회관 내에서는 교우회칙을 따라야 한다며 사전에 이리 말했다.
‘교우회관 입장 시 정문으로 걸어 들어올 것’.
당연한 소리였지만, 그걸 제대로 지키는 0반 선배놈들이 없었기에 만들어진 교우회칙이라고 한다.
우기환은 맨손으로 외벽을 타고 올라가려 했고, 금찬왕찬은 느낌이 안 좋으니 그냥 부숴 보자며 건물을 폭파시키려 했다.
위잉……!
굳게 닫혀 있던 교우회관의 유리문이 저절로 열렸다.
다른 곳으로 출입을 시도하기 전에 얼른 정문으로 들여보낼 생각인 듯했다.
황지호가 기록 기기의 렌즈로 추정되는 물체를 곧게 응시하며 말했다.
“우리가 온 게 보였나 보군.”
황지호를 필두로 교우회관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자동 유리문이 닫히고 그 위로 견고한 덧문이 내려왔다.
호랑이들이나 내가 마음먹으면 뚫고 나갈 수 있겠지만, 지켜보고만 있었다.
넓은 로비에서 방송이 시작되었다.
[역시 0반 후배답게 놀라지 않는군. 환영한다. 후배들이여!]
목소리뿐이었지만, 바로 그 주인을 알아보았다.
0반 교우회 간사를 맡고 있는 선배였다.
역대 0반을 다 모은 교우회의 간사치고는 상당히 젊은 편이었는데, 저 간사는 수많은 0반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미쳐 있는 듯했다.
[교우회칙에 따라 시련을 시작한다!]
졸업하지 않은 0반이 교우회관에 오면 저 시련인지 뭔지를 하는 게 교우회칙에 있었나?
그딴 교우회칙이 왜 있는 걸까?
의문이 솟아올랐지만, 미친 자들의 사고 회로를 진지하게 이해하려 드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해 앞으로 나아갔다.
1층에는 교우회 간사의 환영 인사뿐이었으나 위층부터 그 시련이라는 게 시작되었다.
‘사전에 디바이스 메시지로 경고받은 대로 함정이 있긴 있었네.’
한 층씩 나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2층에 마련된 넝쿨 함정은 약점을 노릴 필요도 없이 힘으로만 뚫고 갈 수 있었고, 3층의 불장판도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에는 꽤 공략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직접 상대해 보면 맥이 빠질 만큼 간단했다.
“생각보다 간단하군요.”
자신의 힘을 증명할 생각이었는지, 은호가 적극적으로 공략에 나섰다.
은호는 4층에서 전기 충격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원을 차단하는 버튼을 찾아내 눌러 버렸고, 우리는 그냥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조명이 없고 창문에는 암막이 내려오는 바람에 어두웠지만 두 호랑이들은 밤눈이 밝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디바이스의 조명을 활용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다음 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찾았다.
그 이후로도 순조롭게 공략이 진행되었으나 뭔가 마음에 걸렸다.
‘고작 이런 수준이라면 디바이스 메시지로 굳이 경고할 필요도 없지 않나?’
성국언은 내 눈을 걱정하기도 했고,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으므로 이런 허술한 함정이라도 경고해 줄 법했다.
하지만 다른 선배놈들은 다르다.
우기환과 금찬왕찬은 내가 그럭저럭 싸울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이 정도 함정이면 순식간에 공략할 수 있으리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 선배놈들은 본인 입으로 늘 바쁘다고 떠드는데 심심해서 경고를 했을 리도 없다.
‘이 중에 1학년이 있어서 봐주는 건가? 아니, 저 선배놈들이 그럴 리가 없어. 뭐가 더 있을 거야.’
황지호는 대놓고 따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교우회관의 규모를 보고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준비된 함정을 보고선 실망을 숨기지 않았다.
은호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이 정도 수준의 함정이면 은호의 진정한 힘은 물론이고, 천은하로서 보일 수 있는 역량도 보여 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이래서야 의신이 형이 제가 잘 싸울 수 있을지 의심하겠어요.”
호랑이들은 그렇게 말하다가 내 쪽을 휙 돌아봤다.
지루해하던 호랑이들은 나를 보며 묘한 기대를 하는 듯했다.
“하지만 조의신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고 있지 않다. 단순히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뭔가 있다고 믿고 계신 것 같아요.”
10층을 넘어서자 다소 난이도가 올라갔다.
은호에게 맡기던 황지호가 처음으로 손을 써야 했다.
사방에서 퍼져 나온 먼지구름을 본 황지호가 바로 결계를 펼쳤다.
생명을 위협하는 함정은 아니었지만, 자칫하다간 옷이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던 탓이었다.
“퍼지는 속도가 제법 빠르군. 교복이 더러워질 뻔했다.”
공격이 이어졌으나 황지호의 개입은 거기까지였다.
뿌옇게 가라앉은 먼지 사이로 레이저 빔이 쏘아지자 은호가 순식간에 거울 아이템을 만들어 반사시켰다.
바로 옆에 걸려 있는 장식용 액자와 학교에서 지급한 아이템 제작용 기본 재료를 활용한 작품이었다.
일회용이긴 했으나 모든 레이저 공격을 막아 내기엔 충분할 정도의 내구도를 지니고 있었다.
10층 이후부터는 조금 까다로운 함정이 이어졌다.
“공략 난이도가 낮은 층을 계속 이어지게 하여 방심하게 하다가 허를 찌를 계획이었나? 나쁘지는 않지만, 그리 대단하지는 않군.”
“이제 곧 마지막 층이군요. 시간은 얼마나 남았죠?”
현재 층은 14층.
방금 은호가 이능파에 교란 작용을 일으키는 바람개비를 나사 단위로 완전히 분해하여 함정의 파훼를 마쳤다.
이제 15층만 돌파하면 약속한 16층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디바이스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30분 정도 남았어.”
약속한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다.
30분 정도면 마지막 층에 뭘 준비했더라도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 같다.
15층에 올라섰을 때였다.
우우웅……!
벽과 바닥, 천장이 강력한 이능파에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 층 전체는 이계 금속으로 뒤덮여 있었고, 복잡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황지호가 짧게 감탄하고 있을 때, 방송이 시작되었다.
[너희도 그 구교사 귀신의 두려움을 맛볼 때가 되었다!]
헛소리처럼 들렸으나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 공간은 그 구교사의 귀신과 관련되어 있는 건가?
정말 귀신을 데려올지, 환상을 보여 줄지 미지수였기에 대응책을 생각해야 했다.
‘은호는 싸울 준비를 하고 있어. 황지호는 우선 결계를 펼치고 지켜볼 것 같은데……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벽사 스킬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은호가 파훼할 것 같지만, 만약을 대비하는 건 나쁘지 않을 거다.
내가 선배 놈들이 보더라도 문제없을 수준의 벽사 스킬을 고려하는 사이 황지호가 결계를 펼쳤다.
그 순간, 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시스템 음이 들렸다.
〈스킬 ‘운명력’이 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