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89)
108. 취재 (7)
황지호의 목소리에서 진한 후회가 묻어났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 신호를 발견하지 못한 건 황지호 책임이 아니다.
문제아들이 귀신이 나온다 떠든다고 직접 가 보는 이사장이 얼마나 있겠는가.
0반 선배놈들이 기억 속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태만한 바람에 최편득 같은 놈을 방치한 건 좋게 생각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그리고 기억을 확인하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왜 황지호가 구교사 철거에 반대했을까?’
구교사를 철거했다면 단서가 완전히 사라졌을 테니 다행이긴 했다.
호랑이들이 침묵한 가운데, 졸업한 0반 선배놈이 보여 주는 기억이 계속되었다.
구교사 제령을 위한 선배놈들의 분투가 이어졌다.
[아, 나 꿈에서 구교사 귀신 봤어…….]
[반장한테 책임지라고 해.]
[그건 좀.]
[꿈에서 보진 않았지만 찝찝해서 제령 스킬 강의 영상 봤다.]
[귀신이 그렇게 무섭냐? 한심한 놈들.]
[님, 그런 말 하려면 ‘퇴마’ 검색한 홀로그램은 끄고 하세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던 0반 선배놈들은 처음 맛보는 공포 앞에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
저들은 제령, 벽사, 퇴마 스킬을 배우겠다고 난리를 쳤다.
타고나거나 긴 수련 시간을 거친 후에야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인데, 저들은 졸업 전에 배우겠다며 이를 갈았다.
현재 간사를 맡고 있던 당시 반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반장으로서 제령 관련 커리큘럼을 확인해 봤는데, 졸업 전까지 스킬을 습득하긴 어려울 것 같다. 빨라도 1년 이상은 걸려.]
1년 정도면 너무 빠른 거 아닌가?
선배놈들이 머리가 이상하지만 우수한 건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저들은 스킬 습득에 성공하여 작년 은광고 축제에서 난리를 쳤다.
[야, 그렇다고 포기할 거야?]
[구교사 귀신 본 건 너 때문인데 포기한다고?]
[그런데 우리 담력 시험 왜 한 거야?]
[아, 그거 무슨 0반 전통이래. 너희도 귀신 봤냐고 묻더라.]
[전통이라고? 그걸 우리가 왜 지켜!]
[미친, 귀신을 보는 전통을 물려주는 선배놈들이 어딨어.]
그러게 말이다.
지금 저 선배놈들 중 하나가 후배에게 광림을 통해 귀신을 보여 주고 있는데, 결국 저놈들도 전통을 이었다.
하여튼 저 말을 들어 보니 처음에 반장이 구교사로 담력 시험을 한 계기는 윗기수의 언질이 있었던 덕이었나 보다.
하지만 역대 모든 0반이 구교사를 제령하겠다고 나선 것 같진 않았다.
‘전통이라지만, 모든 0반 선배놈들이 저걸 순순히 했을 것 같진 않아. 저 선배놈은 정말 한가해서 한 거겠지.’
그렇게 한가한 몇몇 0반이 구교사에 덤벼들고, 졸업 후에는 후배를 구교사에 돌진시켜서 현역에게 제령을 시키고자 한 듯하다.
아무래도 졸업생이 학교에 개입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나와 저 간사 사이에 있는 0반 선배놈들, 우기환이나 금찬왕찬은 담력 시험을 안 했을 거야. 자칫하다간 전통이 끊길 것 같으니 초조하겠지. 우리 반이나 1학년 0반을 회유하고 싶을 거야.’
우기환, 금찬왕찬 선배놈들이 구교사를 어찌해 보겠다고 떠드는 걸 본 적이 없다.
저 두 기수를 끌어들이기 어려우니 취재를 계기로 나와 은호를 한 번에 제령 작업에 밀어 넣고자 이런 걸 준비한 걸까?
구교사 귀신을 자세히 보여 줘서 제령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저들의 목표였을 거다.
교우회관을 오를 때, 14층까지는 그저 제령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사고하던 중에도 0반 선배놈들은 말싸움에 가까운 토론을 계속했다.
[물론, 포기하는 건 아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말은 완벽하게 무시하고, 간사는 답하고 싶은 것에만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지 결연하게 말했다.
[이능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물리적으로 해결하면 돼. 구교사를 부수어 버리자! 귀신도 있을 곳이 없으면 갈 곳으로 가겠지.]
[오, 반장이 맞는 말을 하고 있어!]
과연 맞는 말일까?
자치 기구 소속 학생들이 저 말을 들었다면 얻어맞은 기분이 들 것 같긴 하다.
갑자기 구교사를 물리적으로 제령하겠다고 미쳐 날뛰는 0반 선배놈들을 두고 질려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다들 그냥 평소대로 맛이 갔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예외는 있었다.
당시 저놈들의 담임 교사는 함근형 선생님이셨는데, 하도 제자가 난리를 치니 직접 구교사로 가서 확인을 하기도 했다.
‘저 미친 소리를 믿어 주다니…… 역시 우리 담임 선생님은 다르구나.’
그러나 함근형 선생님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함근형 선생님이 기록 기기를 켠 채로 구교사의 모든 곳을 확인했으나 운사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함근형 선생님이 귀신을 목격하지 못했음을 전하자 0반 선배놈들이 아주 아쉬워했다.
[어떡해, 귀신도 우리 담임은 무섭나 봐!]
[얼굴 보고 도망갔나 보네, 아이고.]
[보다 보면 근형 쌤 얼굴은 안 무서운데…… 귀신은 계속 무서운데!]
[이렇게 된 이상 담임에게 가면을 씌워서 구교사에 입장시키는 게 어떠냐.]
[가면 디자인은 내가 할래!]
소리를 왁왁 지르며 요란하게 구교사를 떠도는 0반 선배놈들과 달리 함근형 선생님은 조용히 구교사를 순찰했기에 그런 듯했다.
선배놈들은 그냥 함근형 선생님의 얼굴이 험악해서 귀신이 도망갔다 생각하고 쓸데없는 노력을 들였다.
결국 구교사 귀신을 직접 목격한 건 0반 선배놈들뿐이었다.
증거를 만든답시고 기록 기기를 들고 돌진한 적도 있었다.
[기록 기기에도 안 찍혀…….]
[구교사에 오래 있었더니 디바이스가 망가졌어!]
[구교사 주변에 진짜 뭐가 있다니까. 은광고에 기록 기기가 없는 곳은 저기뿐이잖아.]
[철거 예정이라서 그런 거 아님?]
[그럼 왜 철거를 안 하냐고!]
0반 선배놈들은 답답한 나머지 더욱 맛이 간 듯했다.
제령 스킬을 습득하려면 시간이 남았고, 물리적으로 구교사를 부수려 하면 자치 기구 학생들이 방해했다.
철거 예정이라고는 하는데 철거도 안 한다.
게다가 기록 기기에도 증거가 남지 않아서 귀신을 본 걸 다들 믿어 주지 않았다.
“은광고는 강한 힘이 흐르는 땅이에요. 그만큼 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건물을 짓고 부술 때에는 신중해야 하죠. 건물을 지을 때에도 소재 선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해요.”
은호가 그렇게 말하며 황지호 쪽을 바라봤다.
묵묵히 0반 선배놈들의 기억을 지켜보고 있던 황지호가 입을 열었다.
“구교사는 이계 충돌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계 충돌 후에 지맥의 흐름이 변화하며 그 영향을 크게 받았지. 구교사는 건물 일부가 지맥과 동화한 상태다. 언젠가 철거는 해야 하겠지만,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황지호가 학교 운영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느라 철거를 미룬 게 아니었나 보다.
정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면 철거를 하든 말든 반대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시절에 대충 구교사 철거를 진행했으면 문제가 생겼을 거다.
지맥의 흐름에 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철거를 진행하는 것도 위험한데, 철거 과정에서 부패한 교사들이 많이 해 먹느라 더 허술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러다가 안전 문제가 불거져 사고가 터졌을 수도 있다.
황지호는 여전히 생각이 많아 보였다.
“이제 끝났군요. 정말 기억을 보여 주는 게 목적이었나 봐요.”
선배놈들의 기억이 끝났다.
우리는 다시 이계 금속으로 가득한 방에 돌아와 있었다.
혹시 또 다른 함정이 있을까 봐 대비하고 있을 때였다.
쾅!
큰 소리와 함께 16층으로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0반 선배놈들이 대거 등장했다.
“야, 너희 괜찮아?”
“간사 놈이 힘 조절을 못 했네! 저거 오래 보면 멀미 나던데.”
“쟤가 이능파 거둬도 광림이 안 끝나더라.”
교우회칙을 들먹이면서 싸우게 한 건 선배놈들인데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평소보다 더 강력하게 발동한 간사의 광림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한 걸까.
간사는 당황해서 이렇게 길게 기억 속에 잡아 둘 생각은 없었다, 귀신이 나오는 장면만 보여 주려고 했다 등의 말을 늘어놓았다.
우선 인사를 하고 선배놈들을 진정시켰다.
“저희는 괜찮아요. 준비한 이능은 잘 확인했어요. 이제 16층으로 이동해도 될까요?”
황지호, 은호가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이 멀쩡한 걸 확인한 후에야 선배놈들이 안심했다.
“와, 엄청 멀쩡해. 괜히 걱정했어.”
“여전히 예의가 바르네. 0반 후배한테 저런 평범한 인사를 받을 날이 올 줄이야…….”
선배놈이 투덜거렸다.
교우회칙을 들먹이면서 싸우게 하는 졸업생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할 만한 0반 선배놈들이 있는 게 더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미안해하고 있고, 호의를 가지고 있다면 이야기하기 편할 거야. 선배놈들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지금은 운명력을 통해 얻은 정보와 이 상황 덕에 얻은 입장을 이용할 때였다.
16층은 벽이나 방 없이 모든 공간이 트여 있었다.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될 만한 장소인 듯했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구교사 귀신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지? 학교에 저런 귀신이 있는 걸 견딜 수 있나? 아직도 꿈에서 저 귀신을 보는 자도 있다!”
우리가 정말 괜찮은지 몇 번이나 확인했던 교우회 간사가 다짜고짜 물었다.
간사가 쳐다보고 있는 상대는 나였다.
나는 황지호와 달리 부반장이고, 은호는 1학년이니 당연히 나를 대표로 여기는 듯했다.
상의할 시간은 없었지만, 호랑이들도 나에게 맡길 생각인 것 같으니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관심이 생겼어요. 선배님들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내 말을 듣자 선배놈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선배님의 이능을 통해 그 현상을 자세히 관찰했어요. 많지는 않지만, 변화가 있었죠.”
“그것까지 알아채다니, 과연 구교사 귀신에게 관심을 주는 훌륭한 후배답다!”
귀신에게 관심을 주면 훌륭한 후배인 걸까?
일단 훌륭한 후배 흉내를 내기로 했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선배놈들을 둘러보았다.
간사와 동기인 선배놈들이 많았지만, 윗기수도 꽤 섞여 있었다.
오늘 굳이 시간을 낸 선배놈들은 전부 학창 시절 귀신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컸다.
“다른 시간대에 간 목격자들은 조금씩 다른 현상을 접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목격자다! 그리고 너희도 목격자이기도 하지.”
아직 우리는 구교사에서 귀신을 직접 보진 않았는데.
그 정체인 운사를 직접 만났으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나는 나를 보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님들의 모든 목격담을 확인하고 싶어요.”
내 시선은 간사에게 멈췄다.
간사는 내가 구교사 귀신에게 관심을 보인 덕에 아주 들떠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기세였다.
“만약 선배님의 이능을 사용해서 그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간사가 자신의 기억 외에도 타인의 기억을 재현할 수 있다면, 운사의 모든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