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90)
108. 취재 (8)
딱히 광림에 관해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간사는 자신의 광림에 관해 줄줄 말했다.
거기에 더해 은호가 예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으니 광림에 관해 아주 잘 알게 되었다.
어떻게, 어느 정도 구교사 귀신을 재현할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간사의 광림을 거의 파악할 수 있었다.
간사의 광림은 파격적인 성능을 지닌 만큼 제약이 많았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타인의 기억까지 재생할 수 있다니. 제약이 많긴 해도 좋은 광림이야. 그런데 간사의 광림을 이용해 귀신을 보여 주려고 15층을 그렇게 해 놨다고?’
간사의 광림은 컨트롤하기 상당히 까다로웠다.
광림 사용에 소모되는 이능파는 크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기억은 흐려지고, 여러 명에게 동시에 기억을 보여 주기도 어려웠다.
간사는 이능을 잘 쓰기 위해 도구가 필요했다.
맨손 격투를 하는 한이, 맹효돈이 보호대를 착용하고, 자연계 이능을 사용하는 도원우나 도시후가 서포터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간사에게 있어서 그 도구가 바로 교우회관 15층이겠지.’
이계 금속으로 뒤덮인 그 공간은 간사의 힘을 사용하기 위한 도구로, 기억을 송신하고 재현하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편하게 모이겠다고 건물을 세운 것도 그렇고 0반 선배놈들은 참 이상한 것에 정성을 들이는 것 같다.
그 덕에 운사의 메시지를 볼 수 있게 됐지만 말이다.
“정보의 양이 많아 셋에게 한 번에 보여 주는 것은 어려울 것 같군. 방금은 이상하게도 별 힘을 들이지 않고 광림이 강력하게 발동했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아. 며칠 나눠서 하면 가능하다.”
“그렇게 오래 선배님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어요. 또, 광림을 연속으로 사용하시면 선배님께 부담이 될 것 같고요.”
“내 걱정을 하는 후배는 처음 봤다……!”
간사가 감동한 목소리로 말했다.
딱히 걱정을 했다기보다는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을 뿐이지만, 그냥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선배놈들은 간사에게 플레이어용 자양강장제를 마구 먹이며 광림을 사용하게 할 준비를 했다.
자양강장제 외에도 회복 아이템 카드와 식량을 꺼냈는데, 이계 공략 최전선에서나 볼 법한 아이템들이 왜 교우회관에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어쨌든 간사의 힘을 활용해 여러 선배놈들의 기억에 남은 운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호랑이들이 보는 것보다 내가 보는 게 낫겠지.’
기억을 볼 한 명을 정해야 했다.
아까 기억을 보면 멀미가 나네 마네 했는데 1학년인 은호를 택하는 건 말도 안 됐다.
황지호는 구교사를 방치한 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기억 속 운사를 본 후로 말수가 부쩍 줄었다.
기억 속에선 운사가 온갖 형태로 타들어 갔을 게 분명하니 그걸 보여 주는 건 좀 그랬다.
내가 하겠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이 몸이 하겠다.”
황지호가 나섰다.
황지호는 자신이 해도 되겠냐고 의견을 묻지도 않고 그냥 정해진 것처럼 저리 말해 버렸다.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였지만, 일단 말은 해 보기로 했다.
“내가 해도 돼. 아니면 번갈아 가면서 보는 방법도 있어.”
“전부 나 혼자 보겠다. 조의신, 요새 너는 바쁘지 않았나. 또, 후배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
황지호의 시선이 내 왼눈에 닿았다.
부상자 취급을 하려나 보다.
‘그런데 선배놈들 앞인데 고등학생 흉내를 안 내도 되나?’
황지호는 저 말을 하면서 고등학생 같은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선배놈들은 딱히 지적하거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황지호보다 이상한 말투를 쓰는 인간이 교우회에 많아 위화감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지호에게 후배 소리를 들은 은호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다.”
황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진작에 확인했어야 했던 것을 지금 하는 것뿐이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더 말릴 수가 없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선배놈들이 떠들었다.
“후배야, 아직 안 늦었다!”
“그래, 넌 2학년이잖아.”
“후배님이 한 백 년은 늦은 것처럼 말하네.”
“백 년은 좀 길고 오십 년 정도?”
“아니, 입학하자마자 귀신 제령에 힘써야 했는데 충분히 늦었다!”
황지호는 선배놈들의 헛소리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홀로 15층으로 향했다.
* * *
오늘 취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큰 문제 없이 끝나긴 했지만, 사실 순조롭진 않았다.
황지호가 기억을 보는 동안, 나와 은호는 선배놈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선배놈들은 답변을 하긴 해도 계속 구시렁거리며 불만을 쏟아 냈다.
―왜 이제야 취재를 온 거야? 매년 괴담 특집 할 때도 구교사 얘기는 끽해야 한두 줄 나오더만.
―구교사 귀신 이야기가 플젯 기사의 반만 나왔어 봐, 진작에 귀신이 성불했을 거다!
내가 생각해도 은광고 교내에서 플젯에 주목하는 학생들이 꽤 많은 편인 것 같긴 하다.
은광고 주변에서 수많은 사건이 터지고, 한중일 교류전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두고도 화제성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문부 중에서도 그 갓겜의 팬이 있어 꾸준히 기사가 나오는 중이다.
한편, 교우회관 선배놈들 외에도 번거롭게 구는 인물이 있었다.
‘이번 기사 주제가 구교사 귀신으로 정해진 걸 안 우기환이 시끄럽게 굴었지.’
일단 우기환도 졸업한 0반 선배라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우기환은 그 인터뷰에서 수작을 부리려고 한 듯하다.
요즘 대결에 자주 응하지 않는 강한 담임 임연화를 규탄하는 기사를 써 달라 로비하려 한 게 그러했다.
‘대결에 자주 응하지 않는다니…… 스승의 날에 한판 하지 않았나? 매번 지는 주제에 더 자주 싸우고 싶은 건가.’
최근 임연화는 위성 관리팀의 팀장, 임지화의 요청으로 협회의 어느 프로젝트를 돕느라 바쁘다.
여전히 연구부장의 자리에 있긴 하지만, 바쁜 나머지 0반의 담임 자리가 공청훤에게 갈 정도였다.
임연화는 강력한 전력이긴 하나 딱히 힘쓰는 일이 있는 것 같진 않았는데, 협회가 무슨 일로 강한 담임에게 협력을 요청한 건지 의문이었다.
‘임연화는 진족 관련 수업을 담당하는 진족 전문가야. 진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임연화는 지나치게 강해 진족 의혹이 자주 걸린다.
그렇다 보니 진족에 관해 연구하고 공부해 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리고 협회의 위성은 진족의 이능과 현대의 기술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 점을 고려하면 협회의 위성팀이 협력을 요청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토족의 수장 옥토연이 위성팀에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 믿음직스럽지는 않으니 진족 전문가를 따로 초빙해도 납득이 갔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은호가 나를 불렀다.
“의신이 형, 오늘 취재한 내용은 전부 정리하셨나요?”
“응.”
지금 나는 호랑이 저택의 별채에 와 있었다.
아직 황지호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상태였다.
기억을 전부 본 황지호는 멀미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말을 아꼈다.
황지호는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호랑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할 생각인 거겠지.’
그렇게 되어 나도 호랑이 저택에 오게 되었다.
일찍 기숙사에 가고 싶으니 지금 나한테 말하거나 나중에 따로 말해 달라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적호 님과 백호 형님이 오셨군요. 이제 황호 님께 이야기를 들으러 가죠.”
천은하가 아닌 본모습을 한 은호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는 막 이곳에 도착한 듯한 적호와 백호군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는 줄곧 홀로 기다리고 있던 황지호가 있었다.
적호가 말했다.
“취재는 잘 마치셨습니까? 황호의 얼굴을 보니 뭐가 없던 건 아니군요. 빨리 말씀하십시오. 별거 없다면 저는 운사나 보러 가겠습니다.”
“…….”
“보십시오, 백호가 말은 안 하지만 독촉하고 있습니다.”
적호는 조용히 있는 백호군을 끌어들였다.
백호군이 말없이 적호를 볼 따름이었다.
“백호, 반박하고 싶으면 말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말이 없으면 제 맘대로 해석하겠습니다.”
“독촉하지 않았다.”
“퍽이나요.”
반박을 해도 안 받아 줄 거면 저런 말은 왜 했지?
적호는 날이 갈수록 옛날의 말버릇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았다.
황지호가 말했다.
“은광고의 졸업생들의 기억을 통해 구교사를 확인했다. 졸업생들이 운사가 보낸 구조 요청을 목격했더군.”
“정말 구조 요청을 보낸 겁니까? 하필 잘 사용하지 않는 구교사 쪽으로 가다니, 운이 없군요. 은휘관 한복판에 도착했으면 놀고 있는 황호도 봤을 텐데 말입니다.”
“운사의 구조 요청은 지맥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니 구교사에 도달한 거겠지.”
적호의 신랄한 말에 황지호는 담담하게 사실만을 말했다.
적호는 그 대답을 듣고 황지호의 태도가 평소와 다른 걸 알아챈 것 같았다.
황지호는 평소처럼 차를 내주었는데, 자신은 한 입도 마시지 않고 있었다.
조용해진 가운데 황지호가 말했다.
“운사는 수십 번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라고 할 수도 없는 것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전하고자 시도를 한 건 분명하다.”
황지호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전부 구교사였지만, 시간대는 다른 목격담들이었다.
운사는 불타고 있거나 잿더미가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움직일 수 있는 입이 있을 때에는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고, 입이 없을 때에는 손가락을 사용했고,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때에는 몸으로 바닥에 무언가를 그리려 했다.
그 모습은 지나치게 공포스러웠기에 평범한 인류는 아니라고 하나 아직 10대에 불과했던 0반 선배놈들이 받아들여 해석하긴 어려웠다.
파아아아…….
황지호가 허공에 황금색의 이능파를 뿌렸다.
이능파는 황지호가 기억 속에서 본 운사의 형태로 바뀌었다.
황지호의 이능파 덕에 황금의 조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본 기억 속에선 불과 재로 이루어진 귀신으로 보였을 거다.
“운사가 장소를 말할 때도 있었고, 배신자에 관해 경고할 때도 있었다. 그자의 계획에 관해서도 뭔가 말하려 한 것 같다만, 해석하긴 어렵더군. 운사에 관해 사전에 알고 있지 않았다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려웠을 거다.”
“운사가 이런 모습으로…….”
적호는 황금빛 이능파가 실제 어떤 형태였을지 상상한 건지 인상을 썼다.
황지호는 이어서 홀로그램을 띄웠다.
구교사의 지도였다.
지도 위에는 수많은 점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고, 그 위에는 시간과 짧은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그 메모는 운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는지에 관해 기록되어 있었다.
황지호는 저 점의 수만큼 타들어 가는 운사를 본 듯했다.
“목격된 장소와 시간대를 전부 정리했다. 이 몸이 구교사에 직접 가서 운사가 남긴 기운을 확인해 정확한 메시지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상이다.”
황지호는 아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브리핑을 마쳤다.
이어서 황지호가 지도를 공유하도록 권했는데, 호랑이들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황지호를 볼 뿐이었다.
저 모습을 보니 황지호가 홀로 기억을 보도록 한 게 잘한 일일까 의문이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을 리가 없는데.’
황지호가 기억 속에서 운사를 봤을 때, 한 번이라도 구교사를 갔어야 했다며 혼잣말을 한 게 떠올랐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처웃던 늙은 호랑이가 저러고 있으니 위화감이 컸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운사의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한 건 네 책임이 아니야.”
황지호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이쪽을 보았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황지호의 얼굴에 다소 표정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