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94화 (894/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94)

109. 책임 (4)

주수혁의 햇살 같은 이능파가 서린 불꽃과 염준열의 홍룡이 뿌린 화염이 주도권을 두고 뒤얽혔다.

둘은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상대의 불꽃을 삼키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게 그러니까, 이능 삼키기라고?”

“어, 같은 속성의 자연계 이능끼리 할 수 있는 거야.”

“수혁이 쟤는 모든 속성을 상대로 저게 가능하겠네…… 와…….”

“홍룡 선배가 유리한 거 아니야? 주수혁은 작년에 광림을 각성했고, 홍룡 선배는 태어날 때부터 불을 다뤘잖아.”

주수혁의 능력과 기지에 모두가 놀랐으나 다들 염준열의 승리를 점쳤다.

저녁을 걸고 내기를 한 학생들 중 주수혁에게 건 이들이 하나둘 탄식했다.

흥미진진해하며 대결을 지켜보던 황지호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염준열 쪽이 승리하는 게 당연하겠군. 게다가 염준열에게는 좋은 스승이 있으니 말이다.”

황지호가 ‘좋은 스승’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내 쪽을 바라봤다.

착한 제자가 나를 꼬박꼬박 스승이라고 불러 주긴 하지만, 염준열의 진짜 스승은 염방열과 촉룡이다.

홍룡을 부리고, 화염을 다루고, 체술을 쓰는 건 전부 그 두 스승에게 배운 결과물이다.

‘내가 염준열에게 가르친 건 별로 없어.’

그나마 가르친 것들은 게임 속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것들이다.

이능 삼키기를 가르친 것 또한 그러했다.

특정 시나리오에서, 어느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저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염준열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해 가르쳤을 따름이다.

옆에서 은호와 황지호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용족은 후예를 아주 귀하게 여기죠. 성년이 되지 않은 귀한 후예에게 이능 삼키기를 가르쳤을 것 같진 않아요.”

“그런 것치곤 경험이 없어 보이진 않다만. 흠, 어느 스승이 가르쳐 줬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만약 제가 생각하는 분께 이능 삼키기를 배웠다면 용족의 후예가 이기는 건 어려울 거예요.”

“너는 그 스승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더냐.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군.”

저 둘은 내가 염준열에게 이능 삼키기를 가르쳤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말하는 걸 보니 은호는 내가 플마고에서 무엇을 보고 염준열에게 이능 삼키기를 가르쳤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야 플마고를 했다면 알 수밖에 없긴 했다.

“의신이 형도 제 말에 동감하실 것 같아요.”

은호의 시선이 주수혁에게 닿았다.

은호가 짐작한 대로였다.

내가 염준열에게 이능 삼키기를 가르친 건, 주수혁의 플레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플마고 속 주수혁은 무결한 날갯짓과 이능 삼키기를 사용해 힘의 주도권을 빼앗아 중요한 시나리오에서 대활약하곤 했다.

내가 염준열에게 가르친 이능 삼키기의 요령은 전부 주수혁에게서 배운 것들이니, 나한테 배운 것을 활용해 주수혁에게 이기긴 어려울 거다.

‘주수혁은 광림을 습득한 첫해부터 이능 삼키기에 성공했어. 주수혁이 은광고의 수많은 천재들을 제치고 안다인과 나란히 ‘불세출의 천재’라고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지.’

불세출(不世出), 불세지재(不世之才)란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고작 학교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해서 쓰기에는 무거운 표현이다.

만약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선배 중에 주수혁만 한 천재성을 가진 이가 있다면, 저런 수식어는 붙지 않았을 거다.

주수혁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선배 중에는 내 유능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잔뜩 있다.

도원우, 유상희, 천동하, 염준열, 차석원…… 전원 우수하고, 뛰어난 이능을 타고났으며 천재라고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고, 게임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도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플마고를 망겜이라고 까는 이들도 주수혁과 안다인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주수혁과 안다인은 플마고 같은 세계관 속에서도 희망을 주고, 살아남을 만한 힘과 재능을 지닌 주인공이었다.

와아아아!

주수혁의 햇살 같은 불꽃이 홍룡이 부른 화염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이윽고 주수혁의 불꽃이 지상에 퍼져 있던 모든 불길을 삼키고 하늘 높이 떠 있던 홍룡에 닿았다.

마치 태양의 빛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광경이었다.

“아직 어리다고 하나 상대는 후예이거늘. 굉장하군.”

황지호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임연화나 함근형 선생님처럼 진족이나 후예보다 뛰어난 인간은 드물지만 존재한다.

황지호는 이를 살면서 몇 번이나 봤겠지만, 주수혁의 저 힘은 놀랄 만할 거다.

지금 염준열이 다룰 수 있는 건 홍룡과 그 주변의 불꽃뿐이었다.

이대로라면 화염의 주도권이 완전히 주수혁에게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염준열이 이대로 포기할 리가 없어. 아직 한 수가 남아 있을 거야.’

염준열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직 염준열은 포기하지 않았다.

주수혁의 불꽃이 홍룡을 삼키려 한 순간, 염준열이 눈을 한 번 감았다가 크게 떴다.

염준열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동공이 세로로 열려 있었다.

염준열이 용족의 후예로서의 힘을 사용한다는 전조였다.

파아앗!

염준열의 머리카락이 홍염에 가까운 색으로 변하자 홍룡의 출력이 급격히 올라갔다.

홍룡이 불을 토할 때마다 마치 포효하는 것 같은 거친 폭발음이 들렸다.

홍룡이 토한 새로운 불꽃이 주수혁이 삼킨 힘을 덧씌워 갔다.

눈을 한 번 깜빡일 때마다 화염의 색이 크게 변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후예로서의 힘을 개방하는 순간의 출력을 이용해 역전하려 한 거야. 싸움이 다시 길어지면 불리하겠지만, 지금 기세를 몰아서 끝을 내면 돼.’

결계 너머로 전해지는 열기와 힘에 환호성이 커졌다.

염준열, 주수혁 둘 다 팬이 많았고 내기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비명에 가까운 응원의 메시지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주수혁이 불기둥에 휩싸였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불길 사이로 염준열을 향해 빛줄기가 쏘아졌다.

불을 가르는 기세로 쏘아진 무언가는 빛처럼 보였지만, 아니었다.

주수혁의 검이었다.

주수혁은 불기둥에 삼켜져 염준열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게 된 순간, 염준열을 향해 검을 날린 것이다.

염준열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시야가 막힌 상황일 텐데도 두빛나래는 염준열을 정확히 노리고 쏘아졌다.

“이능 삼키기를 하면서 하늘에 떠 있는 염준열을 검으로 맞추었다고? 어느 한쪽도 쉽지 않았을 텐데.”

“주인공답네요.”

호랑이들의 찬사와 관중의 경악이 뒤섞인 가운데, 허공에 떠 있던 용제건이 급히 움직였다.

비행술을 써 가며 혼자 특등석에서 관전하던 용제건이 웃음을 지우고 눈에 이능파를 실어 결계 너머를 보고 염준열의 안전을 확인했다.

용제건이 불꽃과 연기로 자욱한 결계 너머를 응시하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

‘용제건이 결계를 넘어가지 않았고, 학생회 고문도 제지하지 않고 있어. 염준열은 무사해.’

다행히 염준열은 무사했기에 용제건이 난입할 일은 없어졌다.

연기가 조금 가라앉자 지상에 있는 관중의 눈에도 염준열이 보였다.

염준열의 교복 소매가 완전히 찢겨져 있었으나 그 밑으로 용의 비늘이 보였다.

공격이 닿기 직전, 방어를 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주수혁의 완벽한 기습을 막아 내는 데에 성공했어. 하지만…….’

방어를 하기 위해 염준열은 이능 삼키기를 멈춰야 했고, 주수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상에 퍼져 있는 불꽃은 다시 주수혁의 것이 되었다.

화르르륵!

주수혁이 파생 스킬 쌍검일신(雙劍一身)을 사용해 다시 두빛나래를 손에 쥐고 하늘을 향해 달렸다.

불의 기운을 머금은 쌍검을 쥐고 제 것이 된 불꽃을 밟고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화염으로 된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막 일격을 막아 낸 염준열이 다시 태세를 갖추었을 때에는 이미 모든 화염의 주도권을 빼앗겼고, 주수혁은 홍룡에 올라타 있었다.

화염을 빼앗겼는데도 염준열이 아직 패배하지 않은 건, 오로지 용왕신의 가호 ‘나의 불이 너를 태우는 일은 없으리라’ 덕분이었다.

주수혁이 부리는 화염이 염준열 주변에 일렁였지만, 무엇 하나 태우지 못했다.

“준열이 형, 기권할래요?”

주수혁이 염준열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염준열이 주수혁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이었다.

염준열은 웃으며 답했다.

“하하, 뭐라고 대답할지 알잖아.”

“네, 알면서도 물어봤어요.”

짧은 대화를 끝으로 주수혁이 염준열을 향해 달려들었다.

염준열은 화염술 대신 체술로 이에 대응했다.

용족은 화염술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대비하여 체술도 가르쳤다.

이는 주로 촉룡이 맡았는데, 용의 비늘을 활용해 싸우는 체술이 그러했다.

카아앙!

몸을 붉은 비늘로 덮은 염준열과 주수혁의 두빛나래가 격돌했다.

다시 시작된 싸움을 두고 이번엔 다들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운동장 전체에 비늘과 검날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언뜻 팽팽하게 보이는 싸움이었지만, 이미 승패는 나 있었다.

‘염준열의 체술은 나쁘지 않아. 체술만 써도 어지간한 이계는 공략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는 주수혁의 쌍검을 이길 수 없어.’

절흑풍림 장문인의 수제자, 우리 반의 검객 진정묵도 주수혁에게 검으로 졌다.

염준열은 홍룡을 다루는 화염술로 이름나 있는데, 주수혁의 쌍검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균형이 잠시나마 유지된 건 염준열이 홍룡을 부려 주수혁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협공한 덕이었다.

하지만 주수혁은 곧 홍룡의 움직임에도 적응하여 대응하고, 빠르게 염준열을 제압했다.

카아앙!

주수혁의 쌍검이 비늘로 덮인 염준열의 팔꿈치를 밀어내고 목 앞에 멈추었다.

목에도 비늘이 덮여 있었으나 관중도, 심판을 맡은 학생회 고문도 승패가 확정되었다고 판단했다.

학생회 고문이 외쳤다.

“그만!”

염준열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직 더 싸울 수 있다’라는 말을 삼키는 게 보였다.

염준열이 둘 수가 남아 있지 않으니 시간 낭비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주수혁 승!”

주수혁의 승리가 떨어진 후에도 잠시 주변이 조용했다.

나와 호랑이들을 시작으로 박수를 치자 둘의 대결에 압도되어 있던 이들이 뒤늦게 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염준열이 홍룡의 소환을 해제하고, 주수혁이 두빛나래를 거둔 후에도 박수가 이어졌다.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염준열의 패배를 두고 아쉬워하는 소리보다 주수혁의 힘에 놀라워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혁이가 광림 써서 싸우는 거 처음 봤는데, 진짜 세다…….”

“저 주수혁을 이기는 안다인은 대체 뭐냐.”

“다인이가 수혁이를 이겼다고? 광림도 썼대?”

“아, 그거 나도 들음. 다인이 코치? 부모님? 있는 자리에서 광림 써서 대련한 적 있대.”

지금 그 말대로, 주수혁과 나란히 불세지재로 꼽히는 안다인은 현재 연승을 이어 가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주수혁과 안다인의 이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염준열도 그 이름을 들은 건지, 표정이 잠시 흐려졌으나 이내 웃으며 응원해 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용제건은 염준열이 인사를 마친 걸 확인한 후에 곁으로 다가가 몸 상태를 체크했다.

염준열과 함께 운동장으로 빠져나가던 용제건이 내 쪽을 보았다.

용제건은 아침에 보았던 것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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