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895화 (895/925)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895)

109. 책임 (5)

운동장을 빠져나간 후, 염준열은 본선에 참가한 선수 전용 대기실로 지정된 건물로 향했다.

용제건이 옆을 걷다가 염준열과 주수혁이 교류전 선발 멤버로 확정되었다는 공지가 떴다며 알려 주었으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주수혁과의 일전이 끝난 후 누구보다 빠르고, 열심히 박수를 치던 조의신을 떠올리다 낙담했다.

‘……스승님 앞에서 또 졌어.’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염준열은 졌다.

염준열은 수치심을 느꼈다.

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아니다.

이능파 링크로 새 힘을 얻고 홍룡화라는 가능성을 두고 들떠 있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직 이능파 링크도 잘 다루지 못하고, 홍룡화에도 실패했어. 그런데 나는 큰 힘이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굴었지.’

염준열의 주변에는 그를 지나치게 아끼는 이들이 많았다.

가족과 스스로를 위해서 염준열은 항상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썼다.

염준열은 자신이 축복받은 환경에서 자랐으며 좋은 자질을 타고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염준열을 이겨 보려고 매일같이 달려드는 마진승 같은 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최고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한 학년 위에는 도원우가 있고 같은 학년에는 천동하가 있었으며 후배로는 주수혁, 안다인 그리고 조의신이 있었다.

그 사실을 오늘 다시 실감했을 뿐인데, 쉽게 떨치고 일어나기 어려웠다.

‘이능파 링크…… 홍룡화…… 둘을 좀 더 잘 다루면 달라질까?’

이능파 링크는 아무나 다룰 수 없는 강력한 힘이고, 염준열은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염준열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만약 조의신이 같이 싸워야 할 누군가를 고른다면 염준열 대신 주수혁이나 안다인을 택할 것 같았다.

그 둘은 염준열보다 강하고, 용살이나 근원으로 이어진 진족 같은 치명적인 약점도 없다.

염준열의 초조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준열아.”

용제건의 목소리에 염준열이 생각을 멈췄다.

시합 전보다 훨씬 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용제건을 보고 학생들이 도망간 바람에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염준열은 속으로 용제건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밝게 말하려 애썼다.

“네? 아, 이제 대기실을 비워야죠. 금방 준비할게요.”

“천천히 해. 빨리 가자고 독촉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와서 부른 거야.”

손님이라니.

경기가 끝난 타이밍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신문부일 가능성이 컸다.

혹시 조의신이 온 게 아닌가 싶어서 염준열이 바짝 긴장했다.

스승을 볼 면목이 없었다.

용제건이 염준열의 반응을 관찰하며 뜸을 들이다 말했다.

“수혁아, 들어와.”

염준열을 찾아온 인물은 주수혁이었다.

주수혁은 그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멀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간을 고려해 봤을 때, 환복하자마자 바로 염준열을 찾아온 듯했다.

“안녕하세요, 용제건 선생님도 계셨네요.”

“응, 경기 잘 봤어. 강하더라.”

“감사합니다.”

염준열에게 막 패배를 안겨 준 후배를 만나는 건 다소 껄끄러웠으나 조의신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준열은 누구를 보는 게 낫네 마네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아연실색했다.

속으로 복잡한 사고를 하고 있는 염준열을 두고 용제건과 주수혁이 대화를 나눴다.

“준열이랑 할 말이 있나 봐. 자리 비워 줄까? 그런데 같이 듣고 싶은데, 옆에 있어도 돼?”

“물론이에요. 용제건 선생님도 알고 계실 것 같으니까요.”

용제건은 내심 주수혁이 난색을 표하거나 다음 기회에 말을 꺼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주수혁은 용제건이 있어도 상관없는 듯했다.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였다.

용제건이 물었다.

“내가 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의신이에 대해서요.”

“응, 내가 2년째 부담임을 맡고 있는 애니까 많이 알긴 하지.”

“맞아요. 의신이는 용제건 선생님이 갑자기 0반 부담임을 맡게 된 것과 관계가 있죠.”

주수혁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시합 전, 조의신이 나타났을 때 어렴풋이 느꼈던 감각이 구체화되었다.

주수혁도 조의신에게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이는 염준열의 착각이 아닌 듯했다.

‘수혁이는 스승의 날에 싸웠다고 했지. 우연히 말려든 게 아니라면…….’

그 사건에는 맹효돈을 노리는 이가 있었다.

그러니 친구인 주수혁이 우연히 휘말렸다고 해도 그럭저럭 설명이 되었다.

둘은 작년에도 같이 은사를 방문했다고 하니,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주수혁이 우연을 가장해 조의신을 도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주수혁이 이어서 말했다.

“여태까지 용제건 선생님이 담임이나 부담임을 맡겠다고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실제로 맡은 적도 없죠.”

“내 기록을 다 살펴봤구나.”

“네, 의신이와 관계된 사항 중에서 전례가 없었던 일은 전부 살폈어요. 용족은 의신이를 가족처럼 대하니 관련 기록을 더 꼼꼼하게 봤죠.”

주수혁은 몇 달 전에 아주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안다인이 황호, 조의신과 가족처럼 지내며 같은 저택에 머문다고 밝혀졌을 때, 주수혁은 잠시 넋이 나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어서 알게 된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다.

가족 혹은 가족에 준하는 이들과 치르는 염준열의 생일 파티에 조의신이 초대되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조의신의 비밀에 관해 알게 된 주수혁은 뒤늦게 그걸 떠올렸다.

이를 계기로 주수혁은 용족과 조의신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준열이 형 반의 부담임을 맡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에요. 그만큼 의신이가 흥미로웠던 거겠죠.”

“내가 부담임을 맡은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 원인이 의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어?”

“용족이 의신이를 가족처럼 대하는 걸 보면 그렇죠. 그리고 단서는 더 있어요.”

주수혁이 용제건으로부터 시선을 떼고 염준열 쪽을 보며 말했다.

“작년 어린이날, 원래 시구자는 다른 분이 맡을 예정이었다고 들었어요. 준열이 형이 의신이의 부탁을 받아 시구하신 거죠?”

주수혁은 조의신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중 용족과 연관된 것들에 주목했다.

그중에는 적벽괴도가 염준열의 모습을 빌렸던 환몽 경매는 물론, 어린이날 잠실 야구장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수혁은 주오 드래곤즈의 단장을 통해 시구자가 선정된 과정을 재확인했다.

확인 결과, 염준열이 희망하여 시구자가 변경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플레이리스트 사건도 있었죠.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의신이가 반 아이들을 두고 용제건 선생님과 함께 일찍 자리를 비웠다는 말을 듣고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붉은 사자와 용족들이 정예를 이끌고 은광고에 온 것도 어쩌면…….”

주수혁은 용족과 조의신의 협력 관계를 거의 다 꿰뚫어 본 듯했다.

주수혁의 설명을 듣는 동안 용제건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용제건은 리플레이 속에서 주수혁의 이런 면모가 마음에 들어 관심을 가졌다.

몰아치는 사건과 위기 속에서 주수혁의 통찰력과 재능, 선한 성품이 지금처럼 빛을 발했었다.

조의신의 헌신 덕에 비교적 평화롭게 지냈을 뿐, 주수혁의 힘이 바랜 건 아니었다.

“용제건 선생님, 준열이 형. 저도 의신이와 같이 싸울 거예요. 그걸 말씀드리러 왔어요.”

주수혁이 결연하게 말했다.

용제건과 염준열은 저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방금 치른 일전에서 싸울 능력이 차고 넘친다는 걸 보여 준 후라서 주수혁의 말에 힘이 넘쳤다.

염준열은 저 당당한 모습에 부러움과 동시에 자신도 더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의신이는 학생은 잘 안 끼워 주려 하더라고. 자기도 학생이면서 말이야.”

“네, 알아요. 그러니까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거예요.”

“의신이는 그걸로 부족하대?”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지금 제가 부족하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용제건이 놀리는 듯이 한 말에 주수혁이 성실하게 답했다.

“증명할 기회가 더 있으니까요.”

주수혁은 한중일 교류전에서 자신의 힘을 더 보여 줄 마음인 듯했다.

큰 힘을 보여 주고도 더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모습에 염준열은 가슴에 불꽃이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햇살을 받아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염준열은 처져 있던 기분을 밀어내고 밝게 답했다.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이 염준열에게 힘을 줬다.

“그래, 나도 증명할게.”

염준열의 대답을 들은 용제건이 실눈이 될 정도로 밝게 웃었다.

용제건은 오늘 이 자리에서 제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가 자신임을 확신했다.

*    *    *

다음 날.

은광고 전체가 주수혁과 염준열의 일전에 관한 이야기로 들끓었다.

학생뿐만 아니라 둘의 대결을 참관한 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수준이 다른 싸움을 본 스카우터들이 안달복달하여 둘에게 조기 프로 플레이어 팀 가입을 권했으나 그 둘의 가족이 정중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한다.

‘뒤에 주오 그룹과 붉은 사자 팀이 있으니 강권할 수도 없겠지.’

스카우터들뿐만 아니었다.

타국에서 온 교류전 관계자들 반응도 상당했다.

누구는 바로 귀국하여 전략을 새로 짰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저 둘이 실제로 교류전 참가 자격을 충족한 학생인지, 결격 사유는 없는지 검증하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이기기 위해 새로 전략을 구상하고, 저 둘을 이기기 힘드니 철저하게 검증하고 여차하면 배제하기 위해 움직이려 한 것이다.

‘저 둘에게 결격 사유가 있을 리가 없지. 후예는 참가 자격을 갖추었으니 괜찮을 거야.’

후예는 보통 인간보다 강하긴 하지만 주수혁처럼 후예보다 강한 인간도 있다.

또, 세계 각국에서는 인간의 법을 따르는 후예를 상대로 함부로 차별하지 않으므로 교류전 참가 자격은 충분하다.

사실 규정상 진족도 참가할 수도 있긴 하지만, 나이에 걸린다.

황지호처럼 늙었으나 어린 나이로 위장해 참가하는 건 불가능하다.

청소년 교류전이므로 참가가 가능한 건 실제 청소년뿐이다.

‘막 탄생한 지 20년이 안 된 진족은 참가가 가능하긴 하지만, 없겠지.’

진족은 안 나오니 그렇다 쳐도, 재학 중인 후예가 없는 학교 측에선 후예를 내보내는 건 불공평하다고 우길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적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꼬우면 후예를 입학시키면 된다.

“얍, 수상한 부반장 님아. 기사는 다 썼음?”

“응, 1차 원고 작성은 끝났어.”

“봐도 됨?”

등굣길에서 마주친 문새론이 말을 걸었다.

내가 작성한 기사는 주수혁과 염준열의 일전을 해설한 내용이다.

강한 학생들끼리 맞붙는 경우, 그들의 합에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신문부 쪽에 해설을 요청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런 요청을 받아 내가 기사를 작성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도 내가 맡게 되었다.

“아니, 나도 직관하고 기록 기기로 돌려보기까지 했는데 왜 이걸 몰랐지, 이 부분 설명해 줄 수 있음?”

“이때는 홍룡이 주수혁을 속이기 위해 움직였어. 그 바람에 관중의 시선에서도 벗어나서…….”

내가 문새론에게 해설하는 사이, 디바이스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매일 아침 보는 발신자 이름인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염준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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