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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911화 (9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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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포스트모템 (11)

아직 시험이 남아 있었지만, 용궁으로 향했다.

호랑이들이 용궁에 갈 때는 미리 말하라고 틈만 나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말했기에 일단 말했다.

말은 해 두되 혼자 갈 생각이었으나 마치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황지호와 적호가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럼 가지. 자진해서 치료를 일찍 받겠다고 마음을 먹는 건 좋은 일이다만, 용궁에 가는 게 썩 내키지는 않는군.”

“동감입니다. 그런데 시험 기간인데 괜찮습니까?”

“괜한 걱정이다. 조의신이 실수를 해서 원하지 않는 성적을 받는 걸 한번 보고 싶을 정도다.”

이동하는 동안 호랑이들이 과장된 소리를 해 댔다.

조금 이르게 용궁행을 결정한 건 이번 기말고사에서 위협적이던 두 위기를 넘긴 덕이었다.

첫 번째 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맹효돈의 수학 시험이었다.

맹효돈은 수학 시험을 마치자마자 내게 달려와 가채점을 부탁했다.

‘가채점 결과는 40점이 넘었어. 몇 개는 찍긴 했지만…… 문제를 많이 푼 덕에 찍기 실력이 는 거겠지.’

문제를 많이 풀고, 오답 노트를 성실히 작성하다 보면 찍는 실력도 늘어난다.

객관식의 경우, 정답을 알지 못하더라도 무엇이 확실한 오답인지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수학의 경우, 특정값 이상이나 이하는 답이 될 수 없다고 파악하고 이를 제외한 후 남은 선택지 중 찍을 수 있게 된다.

맹효돈의 문제지를 보면 다섯 개의 선택지 중 세 개를 지워 두고 남은 두 개 중 하나를 찍어서 답을 찾은 경우가 꽤 있었다.

‘낙제는 면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야. 다음 학기에도 수학을 들을 예정이라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선행 학습을 하는 게 좋겠어.’

수학 시험에서 살아남았다고 기뻐하던 맹효돈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름방학 동안 맹효돈의 특훈 항목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번 기말고사의 첫 번째 위기를 넘겼고, 두 번째 위기인 공청훤의 시험도 무사히 통과했다.

‘한이는 좀 자신 없어 하던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같이 답을 맞춰 볼 걸 그랬나.’

대학에 다닐 때 지나치게 열정적이던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공청훤의 수업은 이를 연상시켰다.

평소에 공부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시험 범위와 최신 학술 정보가 포함된 바람에 의미가 사라지는 족보, 수업의 내용이 좋아서 차마 도망가지 못하는 학생들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분들은 수업에 열의가 넘치는 만큼 좋은 학생을 아꼈다.

‘성헌이한테 입학 비리, 성적 청탁 의혹이 걸렸을 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이 그 교수님들이었지.’

천성헌은 내가 들었던 과목을 듣거나 같은 수업을 수강하곤 했다.

그래서 같은 분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많았다.

대학 내 정치, 사건 등에 목소리를 내지 않던 교수님들이 그렇게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그렇게 나설 만큼 천성헌은 성실하고 뛰어난 제자였다.

낙하산 건으로 내가 취직처를 잃었을 때도 계속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다른 자리를 찾아 주던 교수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부족한 제자였던 나는 예의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자꾸 연락드리면 간접적으로 도움을 청하려는 것처럼 보일까 봐 인사도 못 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엔 연락하는 게 좋았을까.’

지금 함근형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렇고 나는 스승 복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묘한 선생님도 있었다.

바로 우리 반 부담임이었다.

“의신아, 안녕? 오늘 공청훤 선생님의 시험이 끝났지? 예상한 시간대에 딱 맞춰서 왔네.”

용궁의 앞, 용제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황룡과 윤여랑에게 방문 의사를 밝히긴 했으나 용제건이 하는 말을 들으니 누구한테서 소식을 듣고 온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온 것 같았다.

“용제건, 조의신이 올 걸 알고 기다렸나.”

“응, 의신이도 예상했을걸?”

“예상이라…… 함근형에게 보고를 들었다만, 네놈이 시뮬레이터에 친 장난질이 이번 건의 포석인가 보군.”

실기 시험이 끝난 후, 함근형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내 내가 친 시험에 문제가 있음을 밝혔다.

사전에 설정한 것보다 수면 상승 속도나 비행 에너미의 수가 많았고, 에너미의 희귀도도 높았다는 게 그 문제의 내용이었다.

감점할 요소가 없었으므로 만점을 주긴 했지만, 재시험을 치르고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하시기에 정중히 거절했다.

내가 가산점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시고 한 제안 같았다.

함근형 선생님은 성실하게도 이 과정을 위에도 보고한 듯했다.

“황호 씨도 내 의도를 알고 그냥 방치한 거 아냐?”

“그렇긴 하다. 함근형이 걱정하는 걸 알면 조의신이 서두를 거라고 예상했지.”

“용제건이 호족의 은인이 피해를 입을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하하, 경우에 따라선 다소 피해가 갈 수도 있는데. 의신이가 이계 시뮬레이터에서 좀 고생했잖아.”

“……용제건이 호족의 은인이 큰 피해를 입을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대화를 듣다 보니 호랑이나 용이나 그게 그거로 보였다.

사실상 호랑이와 용이 한통속이었던 게 아닌가?

툭.

용제건이 말을 고쳐 하는 적호를 보며 실실 웃자 어디선가 구름 조각이 날아왔다.

운룡도 용제건이 좀 꼴보기 싫었나 보다.

용궁의 문틈 사이로 황룡의 권속, 운룡이 몰려와 있었다.

그 뒤로 황룡이 보였다.

“몸이 편치 않은 은인과 귀한 손님이 찾아 왔는데 문 앞에 이리도 오래 세워 두다니. 용제건, 어서 안으로 모셔라.”

“응, 그럴게.”

“어서오렴. 이르게 찾아 줘서 몹시 기쁘단다.”

안대를 쓴 채로 웃는 황룡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조금 과하게 환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았으나 저렇게 환영해 주니 뭐라 할 수 없었다.

바쁠 텐데도 황룡은 싫은 티 하나 안 내고 나와 호랑이를 반기고, 운룡들은 손짓 발짓을 하며 용궁의 소식을 전하려 애썼다.

“의신이 오빠, 어서오세요!”

“응, 시험 기간에 불러내서 미안해.”

“아뇨, 진짜 괜찮아요. 저 이제 레포트 하나 남았는데요, 제출만 하면 끝이에요. 오빠는 시험 몇 개 남았어요?”

유황색의 무녀 옷을 입은 윤여랑이 밝게 맞아 주었다.

용궁에서 후배와 학교 시험 얘기를 하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무녀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윤여랑을 제외하면 전원 학업을 마친 상태라 그런지 아이 취급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이 세계에서의 나이를 따지면 내가 연하라서 뭐라 항변할 수도 없고 아주 답답했다.

황지호와 용제건은 웃음을 참지 않으며 어색해하는 나를 관찰했다.

치료를 마친 후, 윤여랑이 말했다.

“이제 좀 있으면 녹의 무녀님이 돌아오신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눈을 다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한 번만 더 치료받으면 완치되나 보다.

용궁에 출입할 일이 줄어들고, 녹의 무녀가 새로 뽑히기 전에 두어야 할 수가 있었다.

나는 황룡 쪽을 보았다.

미리 나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황룡이 말했다.

“내가 전해도 된단다. 차기 녹의 무녀에게도 내가 말해 두었다.”

“괜찮아요, 제가 직접 말할게요.”

무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항일지도 모르는데, 황룡에게 떠넘기기는 좀 그랬다.

운룡들은 그냥 황룡에게 시키고 나는 쉬었으면 하는 건지 구름 의자를 만들어 놓고 탁탁 치면서 나와 황룡을 번갈아 보았다.

애써 운룡의 제안을 무시하고 무녀들에게 말을 걸었다.

“무녀님들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네? 뭔데요?”

“정식으로 녹의 무녀를 선발하기 전에 잠시 다른 분을 임시 무녀로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존댓말로 말을 거는 게 어색한 건지, 내용이 이해가 안 가는 건지 윤여랑이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무녀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가운데 전 막내 무녀, 현 홍의 무녀만이 평소와 다름없이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홍의 무녀가 물었다.

“용왕신께서 허락하셨으면 상관없긴 한데, 왜?”

“한반도에 사해 용왕과 계약한 가문이 있어요. 그 계약을 방치하면 용족에게 부담이 가고, 그 가문의 후손은 계속 단명할 거예요.”

“아…… 수정궁 때문이구나.”

“용궁이랑 같이 이사한 그 궁이랑 관계가 있나 보네요!”

이중 가장 오랜 기간 황룡의 곁을 지켰던 홍의 무녀가 바로 내 말을 이해하고, 윤여랑도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닌데 홍의 무녀는 내 의도를 빠르게 이해하고 답했다.

“그 가문의 후손을 임시로 녹의 무녀로 삼고 계약을 정리하려는 거지?”

“네, 그 후손이 용왕신과 사해 용왕을 직접 만날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겠네. 나는 상관없어. 황룡 님의 부담이 줄어드는 일인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저도요!”

홍의 무녀에 이어서 윤여랑이, 이어서 다른 무녀들도 동의를 표했다.

이제 오씨 집안의 불운을 끊어 낼 수가 거의 완성되었다.

오혜지가 여름방학에 일정을 잡지 않도록 주수겸을 통해 미리 전해 둔 상태이므로 기말고사가 끝나는 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거다.

수많은 오씨들이 단명한 후에야 밝혀진 죽음의 비밀을 완전히 끝낼 때가 되었다.

“치료가 끝났고, 중요한 이야기도 마친 듯하니 이만 가지.”

“그럽시다. 조의신, 어서 가죠.”

“벌써? 조금 더 머물러도 좋으련만…….”

“황룡, 조의신은 현재 시험을 치르는 중이다. 잊었나?”

황룡이 몹시 서운해하지만 잡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용은 달랐다.

“시험공부는 여기에서 하면 되잖아.”

“굳이 그래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황지호가 딱 잘라 말했으나 용제건은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제건의 수작질은 이계 시뮬레이터에 손댄 것에서 끝나지 않은 듯하다.

“의신이의 선배가 용궁에서 공부하고 있어.”

“뭐?”

“의신이가 치료를 마치면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하려고 기다리고 있었거든.”

황지호가 뭐라고 더 하기 전에 기척이 느껴졌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운룡의 안내를 받으며 누군가가 이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었다.

하교하자마자 와서 공부하고 있었는지, 교복 차림을 하고 있는 염준열이었다.

“의신아, 괜찮다면 같이 공부하다 갈래? 청룡궁에 새로 지은 전각이 경치도 좋고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아.”

선배 겸 제자가 선의가 넘치는 제안을 해 주었으나 갑자기 찾아와서 치료를 받은 것도 그런데, 더 버티고 있기가 좀 그랬다.

게다가 호랑이들이 시끄럽게 굴 것 같아서 머물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망설이고 있을 때, 염준열이 눈썹을 조금 내리며 이어서 말했다.

“상담하고 싶은 것도 있고, 여태까지 의신이랑 시험공부를 한 적도 없는데 나는 곧 졸업하니까…… 안 될까?”

저렇게까지 말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오늘 하루, 용궁에서 시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적호는 일이 있어 돌아가게 되었으나 황지호는 부득불 남겠다고 했다.

어차피 40점 맞을 거 공부할 필요도 없을 텐데 왜 남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청룡궁의 새 전각에 진족, 후예, 인간 셋이 모였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상담 내용부터 듣는 게 좋겠군. 신경 쓰이는 걸 남기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겠나.”

“하하…… 그럼 지호의 조언도 구해 볼까.”

염준열이 아주 어색하게 웃으며 수천 년 연상의 후배의 말에 답했다.

“첫 번째는 이능파 링크에 관해서야. 원래 찬솔이들이 쓰던 문자를 그대로 이용했잖아? 황룡 형이 새로 제안한 게 있어.”

“그건 나도 김신록을 통해 들어서 확인했다. 같이 보는 게 좋겠군. 두 번째 상담 주제는 뭐지?”

염준열이 상담 대상으로 청한 건 난데 황지호가 척척 말을 진행시켰다.

착한 염준열은 늙은 호랑이가 원하는 대로 후배 대하듯이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청소년 교류전 대표 합숙 일정에 관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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