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913화 (9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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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합숙 (2)

시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용궁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저녁 식사까지 얻어먹은 덕일까.

나는 남은 시험도 무사히 잘 치렀다.

황지호는 용궁에 다녀온 후로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으나 안타깝게도 평소대로 40점을 받았다.

성적 정정 기간이라 아직 점수가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변화는 없을 것 같다.

현시점 우리 반에서 40점을 넘지 못해 재시험이 확정된 건 자느라 시험을 못 본 등교 거부자 세 명뿐이었다.

“수면을 취하느라 시험에 응하지 못하다니, 수련이 부족하군. 안타까운 일이오.”

“그럼 우리 반에서 재시험 치르는 애들은 셋이구나.”

“이번 일을 계기로 등교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셋이 시험에서 낙제점을 면할 능력이 없어서 재시험을 치는 게 아니기에 딱히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기말고사는 끝나고, 방학을 앞둔 시점 특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잡담을 나누었다.

대화 주제는 금방 시험에서 벗어나 방학 계획으로 바뀌었다.

여름방학 중 가장 큰 이벤트는 한중일 청소년 교류전이지만, 우리 반에서 교류전에 직접 참가하는 건 독고미로, 맹효돈, 나 셋뿐이라 교류전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계획에 관해서도 언급되었다.

“야구도 보러 다니고 게임도 해야 하고 최편득 사냥 파티 활동도 하고…… 이번 방학에는 할 게 많네요.”

“공부는 계획에 없냐. 기말고사 때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서 학생이……”

“대석이도 공부 안 할 거잖아.”

“……그냥 물어본 거야.”

송대석이 사월세음에게 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가 민그린의 말을 듣고 꼬리를 내렸다.

송대석은 최근 눈치가 생기고 평범하게 대화에 섞이게 되었으나 말을 하면 열 번 중 한 번 정도는 저렇게 아쉬움이 남는 소릴 해 댔다.

물론, 송대석의 저런 태도에 익숙해진 우리 반 아이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 공부는 안 할 거예요! 2학기가 시작하면 열심히 할게요.”

“나도 공부 안 할 거긴 해.”

“하하하! 이 몸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사월세음에 이어서 독고미로와 황지호가 대놓고 여름방학 때에는 공부에서 손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반 애들 중에선 김유리, 권레나, 한이를 빼면 방학에 공부할 것 같은 학생이 없긴 했다.

하지만 반드시 공부를 시켜야 할 인물이 있었다.

“나도 방학 중에 공부는…….”

“수학 선택할 거면 공부하자.”

“……어?”

“이번에 찍은 문제를 반 이상 맞추지 못했다면 재시험을 쳐야 했겠지. 이제 선행 학습 없이는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거야.”

마침 잘됐다 싶어서 맹효돈에게 여름방학 선행 학습 계획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맹효돈이 돌을 삼키는 것 처럼 목이 꽉 막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합숙 중에도 쉬는 시간을 활용해 공부시킬 계획이라고 하니 죽상을 지었으나 수학을 포기하겠다는 말은 끝까지 안 했다.

복숭아 스무디를 죽엽차 마시듯이 신중하게 마시던 진정묵이 말했다.

“시험을 치르는 동안 학우의 학습 계획을 작성하면서 어찌 그 많은 일정을 소화했단 말이오. 시험 준비를 하고, 학우와 후배의 공부를 돕고, 영상을 만들기까지 하다니. 학관의 풍문대로 부반장은 대단하군.”

“혹시 정묵이도 의신이가 만들었다는 그 게임 영상 봤어?”

“그렇소.”

권레나의 질문에 진정묵이 두말 않고 긍정했다.

저 둘이 말하는 영상이란 건 아마 유상훈의 채널에 올린 PlayerZ 영상을 말하는 걸 거다.

채널을 연 지 얼마 안 됐고, 적극적으로 주변에 홍보한 것도 아닌데 내가 유상훈의 영상 편집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교내에 금방 퍼졌다.

소문의 출처는 은광고 종합게시판이었다.

PlayerZ 유저들이 만든 신규 소모임인 은광Z에서 홍보를 종합게시판에 할 때, 유상훈의 동영상에 내 이명을 같이 올려 버렸다.

‘유상훈이 가입한 소모임이니까 방패병의 동영상을 홍보에 쓰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런데 굳이 편집자의 이름까지 올릴 필요가 있나. 내 이름을 팔지 않아도 소모임에 가입할 사람은 많을 텐데.’

인터넷 방송인의 팬이 되어 채널 내 동영상을 전부 정주행해도 편집자의 이름을 알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은광Z에선 굳이 ‘무명의 초신성이 편집한’ 이라는 수식어를 동영상에 붙였다.

그 사실은 PlayerZ 커뮤니티에도 금방 퍼졌고, 입학 실기 시험 사건에서 살아남은 13조가 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그 바람에 댓글로 우리가 게임했던 것도 영상으로 올려 달라는 건의가 쏟아졌다.

잘하는 플레이어들에 비해 진도가 매우 느리고, 게임 초보가 섞여 있어서 재미가 없고 답답하기에 짝이 없을 거란 답변을 적절히 포장해서 했는데도 ‘기대가 커졌다’, ‘제발’, ‘빨리’ 라는 댓글만이 달렸다.

우리 반 아이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의신이가 만들었다는 영상 잘 봤어! 게임 모르는 데도 재밌게 봤어. 폰트 종류랑 크기, 배치도 좋았고, 편집도 깔끔하고, 웃긴 포인트도 있고…….”

“……뭐, 잘 만들긴 했더라.”

“그거 나도 봤어. 쟤가 안 나오는 게 아쉽더라.”

“저도 미로랑 동감이에요. 다음 영상은 기대하고 있을게요!”

유상훈의 채널 구독자는 대부분 방패병의 팬일 텐데 조연이 괜히 영상을 망치는 거 아닌가.

그럼 지인들에게 보여 줄 용으로 영상을 따로 편집해 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황지호가 불쑥 끼어들었다.

“조의신이 게임 내에서 음유시인을 한다는 걸 알고 있나? 주무기는 무려 켈틱 하프다.”

황지호에게 한 번도 게임 내 직업에 관해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은서호와 은이호가 PlayerZ에 관심을 보여서 설명을 해 줄 때 내 캐릭터가 찍혀 있는 스크린샷을 보내 주었는데, 그걸 황지호도 본 건가.

“초보라면서 켈틱 하프가 무기라니. 이능 악기가 보급화된 세계인가 보군요. 흥미가 생겼습니다.”

“진짜요? 의신아, 정말 괜찮은 거죠?”

“직업이 많던데 하필 음유시인…….”

“하하하! 유상훈에게 이야기를 들어 봤는데, 조의신의 게임 속 캐릭터는 다행히 주인보다 악기를 잘 다룬다더군.”

반 아이들이 걱정하는 가운데, 나는 말없이 황지호를 바라보았다.

황지호는 무언의 시선을 받고도 처웃기만 했다.

공통 과목 이론 40점을 맞은 놈이 전교에 딱 두 명 있는데, 하나는 우리 반 돌아이고 다른 하나는 유상훈이었다.

유상훈은 황지호처럼 전과목 40점은 아니지만, 둘 사이에 뭔가 동지 의식이 싹튼 건지 제법 친해졌다.

유상훈은 늙은 호랑이의 정체를 알면서도 처음부터 그냥 0반의 40점 맞는 돌아이 취급을 했고, 황지호는 그걸 마음에 들어 하긴 했다.

“학생회 회의 때 의신이가 만들었다는 일정표도 올라왔는데…… 잠은 자고 다니는 거지? 2/4분기 학생 대표 회의 자료는 내가 다 만들걸 그랬다.”

김유리가 아이스박스에서 오렌지 스무디를 하나 더 꺼내 권하면서 말을 걸었다.

이번 학생 대표 회의 자료는 김유리의 제안으로 반씩 만들었다.

성실한 능력자인 김유리가 교류전 스태프로서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지 아는데,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김유리가 강경한 태도로 제안하지 않았다면 그냥 내가 다 만들었을 거다.

“늘 고마워, 의신아.”

나야말로 김유리에게 항상 고마웠다.

* * *

이른 아침.

성국언으로부터 디바이스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국언] 잘 잤나?

[성국언] 시험 준비 기간 동안 건강이 상했을까 봐 걱정이다.

[성국언] 한 번 얼굴을 보고 밥도 사고 싶은데, 여름방학 중에는 바쁘지? 적어도 교류전 대비 합숙이 시작되기 전에는 봤으면 좋겠구나.

성국언은 센터 건을 수습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틈틈이 내 걱정을 하며 연락했다.

나는 아직도 안대를 쓰고 다니는 성국언이 더 걱정되었다.

나야 주로 학교에서 지낸다고 하지만, 성국언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공약대로 이계 공략도 하고 있었다.

안대를 쓴 성국언이 뉴스에 등장할 때마다 괜히 내 왼눈이 저린 기분이 들 정도로 걱정했다.

[나] 저야 언제든 괜찮지만, 선배님이 무리해서 시간을 내실까 봐 걱정돼요.

[성국언]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후배야.

성국언이 괜히 시간을 낼 필요가 없다고 돌려서 말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결국 전무영을 통해 약속을 잡기로 했다.

고작 식사 약속을 잡는 것도 수석 비서인 전무영이 나서서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만큼 바쁘다는 뜻인데, 선배의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적어도 성국언이 안대를 벗어서 피로를 덜어 주려고 말을 덧붙였다.

[나] 치료가 곧 끝날 거라고 들었어요. 그러니 이르게 안대를 벗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성국언] 그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구나. 그럼 나중에 보자.

저 메시지는 내가 완치될 때까지 안대를 벗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메시지를 더 보내서 설득할까 고민했지만, 성국언이 저렇게 딱 잘라 말했는데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괜한 말을 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다는 말을 끝으로 홀로그램 창을 닫았다.

‘이젠 이른 아침도 덥네. 기분 탓인지 몰라도 학교 밖은 더 더운 것 같아.’

오늘은 등교일이지만, 현재 나는 학교 밖에 있었다.

나는 아침에 기숙사를 나선 후, 2학년 구역으로 향하는 대신 학교 밖으로 향했다.

은광고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가끔 보이는 가운데, 나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니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도 아침 일찍 MITRON에 들를 때가 있어 바로 교실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나 내 목적지는 빵집이 아니었다.

학생으로서 불성실해 보이는 모습이긴 했으나 현재 나는 2학년 0반의 부반장으로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목적지가 은광구 안이라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더 시간이 걸렸겠지.’

목적지는 김유리의 집과는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주택가로, 은광구 외곽에 위치한 단독 주택이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었으나 주소를 확실히 알고 있는 덕에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집 주소는 확실히 알고 있는데, 외관을 보니 내가 제대로 온 건지 확신이 안 섰다.

안에 있을 자들의 정신 상태에 비해 지극히 평범해 보였던 탓이었다.

‘이 주변에 딱히 눈에 띄는 건물도 없으니까 잘못 온 건 아닌 것 같아. 위장한 거겠지?’

나는 한 번 더 주소를 확인한 뒤에 초인종을 눌렀다.

호출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설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인가?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한 번 더 초인종을 눌러 보았으나 여전히 답이 없었다.

나는 이능파를 손끝에 싣고, 그대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 똑.

집 전체로 내 이능파가 퍼지고, 안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 안에 있는 자들이 내 이능파를 감지한 듯했다.

안에 목소리가 잘 퍼지되, 이웃에게 폐를 주지 않도록 목소리에 실린 이능파가 건물 안쪽으로 향하게 주의하며 말을 걸었다.

“일어나, 시험 봐야지.”

오늘은 재시험을 치르는 날이고, 이곳은 자느라 시험을 치르지 못했던 관종들의 아지트다.

나는 부반장으로서 우리 반에 낙제자의 발생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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