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1화 (11/273)

특별한 무인도 (1)

‘신전이 있는 곳엔 던전이 있다?’

드론으로 섬을 정찰할 때 던전 같은 걸 본 기억이 없다.

혹시 드론으로 탐색하지 못한 구역에 숨겨져 있는 걸까?

그렇다면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적어도 섬의 전면부라 할 수 있는 선착장 라인은 모두 탐색했고, 수풀이 우거져서 탐색하지 못한 곳은 모두 섬의 후면부에 위치해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던전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고, 이후 내 활동 구역과 겹친다면···.’

아버지는 던전을 ‘사람을 잡아가는 위험한 던전’이라 표현하셨다.

즉, 나도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던전에서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와 사람을 잡아가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 특정 지역에 들어서면 온갖 괴물이 득실대는 던전에 강제로 보내지는 방식이야. 마치 공간이동처럼.]

악랄하다.

이건 함정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이다.

아버지는 우려 섞인 말투로 설명을 이어갔다.

[던전은 일부 생존자들에 의해 존재가 알려졌어. 하지만 문제는 생환율이 처참하단 거야. 부산에선 53사단의 보병대대 일부가 던전에 빨려 들어갔는데,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실종자 230명 중 겨우 4명만 복귀했어.]

“······.”

아버지는 경고를 위해 겁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꽤나 효과적인 작전이라 할 수 있다.

던전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들리기 시작했으니까.

‘엉뚱한 곳 갔다가 던전으로 전송되면 안 되니, 다녔던 길로만 움직여야겠어.’

섬은 넓어졌지만, 던전의 위협으로 인해 활동영역은 대폭 줄어들었다.

[당연히 조심해야겠지만, 그래도 혹시 던전에 빠지면 괜히 이리저리 움직이지 말고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 있어. 그나마 이게 생존율이 높은 거 같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겁만 주는 게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한 행동 요령도 알려 주셨다.

“무슨 뜻이에요?”

[던전엔 ‘시간제한’이라는 게 있다더구나.]

“그 시간만 버티면 탈출할 수 있단 건가요?”

[그래. 아니면 던전의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괜히 출구를 찾다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도 있잖아. 차라리 안전한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게 나아.]

“음···.”

잠깐.

그 말은 안전텐트를 갖고 있을 경우, 생존이 수월하단 의미 아닌가?

덕분에 아주 약간이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당연히 그 약간의 호기심을 위해 목숨을 도박하듯 걸 생각은 전혀 없지만.

[걱정이구나. 하필이면 왜 무인도에 신전까지 있어서···.]

나는 아버지의 깊은 한숨에 멈칫했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과 자조가 배어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나를 구해주지 못하는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던전이란 위협이 등장하면서 평정심을 잃은 모양새다.

“저, 아버지···.”

그에 미안함을 느낀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실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그래, 뭐냐?]

“아버지가 제게 괴물들과 싸우지 말고 마주치더라도 도망 다니라 하셨잖아요.”

[그랬지.]

결국, 내 상황을 밝히기로 했다.

지금 레벨이 13이고.

모든 능력치가 보통 사람의 2배인 상태이며.

안전텐트와 회복의 반지, 포션 등 생존을 위한 아이템을 보유 한데다가.

제대로 된 무기와 스킬을 손에 넣어서 오크나 그랑 다이어 울프 정돈 아무렇지 않게 썰고 다니고 있다고.

[······.]

“······.”

이야기가 끝나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상황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안전한 곳에 잘 숨어 있다고 말했다.

굳이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봤자 걱정만 커질 테니까.

하지만 던전의 등장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오히려 지금은 내 상황을 알려 주는 편이 조금이나마 안심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실을 밝힌 거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황당함을 담아 되물어 오셨다.

[진짜?]

“네.”

[으으음···.]

뭔가 굉장히 많은 감정이 담긴 감상.

이어서 아버진 헛웃음을 삼키며 입을 뗐다.

[실은 국방부와 각 군에서 특수부대원들로 레벨을 올려 보기로 했거든. 강화병사 프로젝트라나 뭐라나···.]

군대에서 생각할 법한 계획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시나 싶어서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데 계획을 짰으면 실용성을 파악해야 하잖아. 그래서 레벨을 올린 사람들을 찾아봤지. 가족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겠다는 미끼로. 그렇게 모은 사람 중 가장 높은 레벨이 몇이었을 것 같냐?]

뜬금없이 퀴즈가 이어졌다.

나는 대충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숫자를 댔다.

“10정도요?”

나도 내가 비정상적인 성장을 했다는 것 정돈 안다.

그래서 나만큼 높긴 힘들 거라 생각해서 10을 불렀다.

[레벨 5였어.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유명 격투기 선수가. 넌 그 사람보다 3배에 달하는 레벨을 올린 거야.]

“그래요?”

[레벨 1에서 2가 되려면 경험치 100이 필요해.]

“경험치 100이면 그랑 다이어 울프 1마리 또는 오크 2마리네요.”

역시 초반이라 그런지 필요 경험치가 낮다.

몬스터 1마리 내지, 2마리를 잡으면 레벨업이니까.

[레벨 1이 그랑 다이어 울프나 오크에게 덤비면 그냥 바로 황천길이지! 보통은 경험치 5의 슬라임이나 경험치 10의 고블린을 잡아서 경험치를 쌓기 때문에 그렇게 바로 레벨을 올리지 못해.]

경험치 5짜리 몬스터면 20마리, 10짜리면 10마리를 잡아야 최초 레벨업을 한다는 소리다.

그렇게 따지니 레벨업이 쉬운 느낌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레벨을 올려서 능력치를 높이고 조금씩 전투에 익숙해지면, 경험치 20의 코볼트, 경험치 30의 놀을 잡고, 경험치 50인 오크에 도전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라 판단하고 있어.]

“전 처음 본 몬스터가 그랑 다이어 울프고 그 다음으로 본 게 오크라서···.”

슬라임과 고블린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했다.

하지만 그 몬스터들이 오크나 그랑 다이어 울프보다 약하긴 해도 이렇게까지 격차가 클 줄은 몰랐다.

‘하긴,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랑 다이어 울프를 인간 분쇄기라 부르는 건가?’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뭐가 뭔지 모를 상황에서 그랑 다이어 울프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겐 재앙이고, 골로 가는 게 당연한 상황일 테니까.

아버지 말에 의하면 내가 살아남아 이렇게 성장한 것 자체가 기적이란 의미였다.

[새삼 네가 멀쩡히 살아있어서 다행이고, 그만큼 성장했다는 게 놀랍다. 내 아들이지만 정말 대단하네.]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쓴소리 없이 순순히 감탄하셨다.

다만 목소리엔 황당함과 당혹스러움이 깃들어 있어서 많이 놀란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네가 무얼 가지고 있다고 했지?]

나는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 드리기 위해 내 상황을 상세하게 알려 드렸다.

이야기를 다 들으니, 커졌던 걱정이 조금이나 줄었을까?

아버지가 작게 안도하는 게 느껴졌다.

[안전텐트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물건이구나.]

특히 몬스터의 접근 자체를 막아 주는 안전텐트의 존재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렇다고 너무 스스로를 맹신하진 말고. 무리하다가 골로 가는 수 있다는 거 명심해.]

“네, 알겠습니다.”

나는 신중한 성격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엔 여러모로 모험을 한 듯한 모양새가 되었으나, 그 안에도 분명 안전을 도모하는 시스템을 하나둘 정돈 깔아뒀다.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흘려 듣지 않았다.

“이왕이면 어머니에겐 던전이나 레벨업 등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가뜩이나 몸도 안 좋으신데, 걱정하실 테니까요.”

[그래야지.]

우린 이후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각자 바쁘게 사느라 가족들끼리 터놓고 대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재앙이 닥치고 나서야 이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상황이 참 아이러니했다.

[헬기는 안면 있는 사단장님들께 부탁해서 알아보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무리하지 마세요.”

어쩌면 내 레벨이나 스킬 등의 정보를 상부에 제공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편이 쉬울지도 모른다.

분명 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복귀 후 이리저리 이용 당하는 신세가 된다.

차마 이 계획을 꺼내 들 수 없는지, 아버지는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구출하고자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응원했다.

“쉬세요.”

[그래, 고생 많았다. 항상 조심하고.]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장장 1시간에 걸친 통화가 끝이 났다.

“힘든 하루였다.”

날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 있을까?

오늘 하루가 마치 한 달 같았다.

나는 늘어지라 하품을 하며 안전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노곤함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

나는 제법 편하게 쉬었다.

남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공격 걱정 없이 안전텐트에서 꿀잠을 즐겼고, 소변이 마려워서 눈을 떠 보니 어느덧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그렇게 생존 2일차가 밝았다.

“아, 시팔···. 무슨 플래그 회수도 아니고.”

원래라면 오늘의 일과도 어제와 다르지 않아야 정상이다.

식사 거리를 채집하여 먹고.

근처에서 그랑 다이어 울프나 잡으면서 경험치를 벌고.

시간 되면 안전구역 가서 윌리아와 대화 좀 나누고.

“재수도 없지.”

구조가 올 때까지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며 일과를 반복하면 되는 건데···.

또 다시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고고고고.

사방이 회색인 공간.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형성된 동굴.

그 한복판에 선 나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던전에 있다.

-띵!

[몽마의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등급: 일반

-시간제한: 5시간

-클리어 조건: 제한 시간 이내 보스 토벌

원해서 들어온 게 아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이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말 재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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