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3화 (13/273)

특별한 무인도 (3)

보통 게임 같은 곳에서 ‘메인 시나리오’라 하면 해당 게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요 스토리 라인을 의미한다.

‘그럼 이 메인 시나리오라는 것에 접근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앙의 발생 원인을 알게 된다는 뜻 아닐까? 어쩌면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판단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무려 ‘메인 시나리오’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걸, 왜 무인도에 숨겨 놓은 거야?”

시스템은 이게 한반도에 배정된 메인 시나리오 20조각 중 11번째 조각이라 알려줬다.

그럼 앞으로 19개의 조각을 더 찾으면 메인 시나리오가 완성된다는 의미일 텐데···.

조각들이 숨겨져 있는 상태가 이딴 식이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

여기만 해도 무인도에 위치한 은밀한 던전이고, 주변을 잘 살피지 않으면 찾을 수 없게 숨겨져 있지 않은가.

다른 조각들의 습득 난이도도 이와 같다면 그냥 찾지 말란 뜻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욕도 안 나온다.

“아, 퀘스트.”

메인 시나리오에 정신이 팔려 ‘파생 퀘스트를 진행하겠냐’는 메시지를 방치하고 말았다.

나는 길게 고민할 것 없이 퀘스트 진행을 선택했다.

‘정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치던가 진행을 포기해야지.’

곧이어 파생 퀘스트의 내용이 공개되었다.

[외모지상주의 / 퀘스트 등급: 상]

-내용: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공부를 잘하고, 누군가는 운동을 잘하고, 누군가는 예술을 잘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재능이란 것은 실존하며 수많은 사람을 절망시키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재능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외형적 재능.

외모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평균 이하’인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달성 조건: 여성 NPC 2명과 호감도 100 달성.

퀘스트 내용을 본 나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게 뭔 개소리야?”

어쩐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르다.

메인 시나리오의 파생 퀘스트라고 해서 엄청 거창한 것일 줄 알았는데,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서큐버스 던전과 어울린다면 어울린다고 볼 수 있는 퀘스트지만, 이건 시비 거는 거 아닌가?

“그리고 누구보고 평균 이하란 거야, 나 정도면 상급은 아니어도 중상급은 되지.”

이 퀘스트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퀘스트는 수행자에 따라 내용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것.

멋대로 외모 평가를 받아 기분이 나쁘지만, 그로 인해 퀘스트가 수행자의 상황을 참고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응?”

하지만 기분 나쁜 것도 잠깐.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한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완료 보상: 특수 등급 장비 선택권 1장, 상급 스킬 선택권 1장.

농담 같은 내용치고 보상은 무척 후했기 때문이다.

‘장비와 스킬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더구나 높은 등급의 것을?’

덕분에 불쾌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진지하게 퀘스트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월광도에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NPC가 단 한 명뿐이란 건데.”

퀘스트 달성에 제한시간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선 섬을 빠져나가는 게 필수 조건 같으니까.

퀘스트 창을 닫은 나는 텐트를 나섰다.

그러자 어느새 리스폰이 된 건지 서큐버스 하나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모델워킹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메인 시나리오에 정신이 팔려서 그렇지, 던전에 진입하고 얻은 이익이 상당하다.

그리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그게 끝이 아니다.

‘여기서 서큐버스를 한 마리씩 처치하기만 해도 꽤나 경험치가 짭짤할 것 같단 말이지?’

실루엣 고글로 인해 서큐버스와 편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고, 던전의 최초 발견 보너스로 하루 동안 경험치와 아이템의 습득률이 두 배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순발력이 1 증가했습니다.]

방금 레벨이 오르면서 얻은 능력치 포인트를 순발력에 투자한 뒤, 나는 실루엣 고글을 쓴 채 안전텐트의 보호구역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좋아. 유혹 방어되네.’

그리고 실루엣 고글이 서큐버스의 유혹을 막아준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검을 빼 들었다.

아깐 마력탄을 쏟아부어 잡았기 때문에 서큐버스의 전투력이 어는 수준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하지 않게 충분히 조심하는 선에서 직접 부딪혀 보기로 했다.

-낄낄.

서큐버스는 내게 유혹이 통하지 않자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육탄 공격을 가해왔다.

-챙!

서큐버스의 무기는 손톱.

검과 서큐버스의 손이 부딪쳤는데,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작은 불꽃이 튀었다.

“큭!”

한 번의 충돌로 녀석의 근력과 순발력이 나보다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큐버스의 움직임은 민첩하고 유연한 데다가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크윽! 아크락샤!

“뭔 말이야!?”

그래도 그랑 다이어 울프를 처음 상대할 때보단 할 만했다.

-핏!

서큐버스는 검을 쳐내는 손을 제외하곤 신체의 방어력이 그리 높지 않았고, 그랑 다이어 울프와 달리 고만고만한 질량을 가진 인간형 몬스터였기에 상대하기가 조금 더 수월했다.

-챙! 챙!

결국, 서큐버스는 나의 검에 생채기를 더해가다가 움직임이 둔해졌고, 끝내 목이 꿰뚫리며 최후를 맞이했다.

-컥···.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서큐버스는 인간과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격변 이후 계속 몬스터와 싸워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게임 시스템이 사냥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고 있는 건지, 특별히 부정적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승리로 인해 상쾌한 기분이 든달까?

[하급 서큐버스를 토벌하여 경험치 400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서큐버스 토벌 보상이 지급됩니다.]

-72코인을 획득했습니다.

-하급 서큐버스의 머리카락 2묶음을 획득했습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 보너스가 더해져서 서큐버스가 주는 경험치는 그랑 다이어 울프의 4배, 코인은 5배네.”

그랑 다이어 울프와 서큐버스를 계속 비교하는 이유는 보상 차이가 4배 이상인 반면, 전투 능력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혹 스킬이 차단되니, 서큐버스는 최고의 사냥 효율을 자랑하는 몬스터가 되었다.

“너무 좋은데?”

아직 서큐버스의 패턴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여기저기 베여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

그러나 만족스레 올라간 입꼬리는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이게 모두 행운의 탈리스만 덕일까?’

확신할 수 없지만, 좋은 일이 생기니 ‘행운의 탈리스만’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벤토리 첫 번째 칸을 차지하고 있는 그 아이템에게 아까 쓸모없어 보인다고 했던 말을 취소하며 사과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일단 던전의 최초 발견 보너스가 적용되는 오늘 하루 동안은 계속 사냥으로 레벨을 올려야겠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최초 발견 보너스가 없어지면 던전을 탐색해 볼 예정이다.

마침 던전의 지도도 손에 넣었고,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 강해져 있을 테니까.

*

[이 자식아!]

자정이 다가오는 2일 차의 깊은 밤.

던전을 벗어나자마자 울리는 스마트폰 벨소리에 전화를 받았더니, 아버지가 내게 호통을 치셨다.

[전화를 안 받아서 걱정했잖아.]

“죄송해요.”

던전에선 전화가 터지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몽마의 던전 이용시간은 5시간.

한번 들어가면 5시간이 지나야 나올 수 있다.

나는 그 몽마의 던전을 두 타임이나 뛰고 왔다.

즉, 10시간 동안 던전에 처박혀 있었단 거다.

처음 다섯 시간은 우연치 않게 던전에 빠진 거지만, 그 뒤 다섯 시간은 내 발로 직접 재입장했다.

당연히 던전에 재입장을 하기 전에 아버지에게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을 것 같단 문자를 남겼지만, 그 문자 하나만 덜렁 믿고 있기엔 지금의 세상이 너무 흉흉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던전에 다녀와서 그렇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랩을 하듯 거하게 욕을 쏟아내셨다.

[던전 위험하니까 조심하랬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하단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3분여가 지나서야 아버진 진정하셨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식량을 구하다가 재수 없이 던전에 빠졌고요.”

“생각보다 던전의 난이도가 만만해서 들어간 김에 몬스터 사냥하고 레벨 올렸어요.”

“그런데 벌리는 경험치가 많다 보니, 타임아웃으로 던전에서 쫓겨난 다음, 제 발로 다시 들어가서 2차전을 벌였죠.”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그토록 걱정하던 던전의 존재가 생각보다 위협적이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시면서도, 너무 수월하게 사냥을 이어가는 내 상황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너 지금 레벨이 몇인데?]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레벨: 22

-칭호: 없음

-능력치

근력: 근력: 12(+1) 순발력: 14 마력: 10(+2)

잔여 능력치 포인트:

-보유 코인: 6,562

“22요.”

[뭐?]

그리고 전해 들은 내 레벨에 어제와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시는 아버지.

사실 이것도 많이 못 올린 느낌이다.

레벨 20이 되고 나서부터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급속도로 불어났으니까.

[너 혹시···. 회귀자나 뭐 그런 거야?]

“예?”

[그 섬에 들어간 것도 무슨 기연을 얻기 위해 갔다던가.]

아무래도 아버지가 소설을 너무 많이 보신 모양이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 너만 게임하는 느낌이야.]

“아무래도 월광도가 저랑 맞나 봐요.”

[이쯤 되니, 나도 그 섬이 궁금해지네.]

솔직히 나는 운과 타이밍이 여러모로 잘 맞았다.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고 해서 나와 같은 이득을 볼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무슨 일 있어요?”

아버지에게 계속 전화를 건 이유를 물었다.

그에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셨다가.

씁쓸한 목소리로 답하셨다.

[미안하다.]

나도 아까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사과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거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아직 인터넷 안 봤지?]

“네.”

나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볼까 싶었지만, 어차피 아버지가 알려 주실 거란 생각에 가만히 기다렸다.

[오늘 오후 3시쯤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어.]

비행 몬스터?

잠깐···. 그 말은 설마?

[항공기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허.”

섬을 빠져나갈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버지가 알아보던 하늘길, 다른 하나는 바닷길이다.

그중 한 가지가 막혔으니, 이제 남은 건 바닷길뿐인데···.

문제는 헬기를 타면 바로 계룡대 안까지 배송될 수 있지만, 바닷길을 이용하면 육지에 도착하더라도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계룡대까지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거다.

“지금 군대 투입해서 몬스터들 토벌하고 있죠?”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군대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럼 여깄는 게 오히려 안전한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니라고 말 못했다.

“통신망 유지되는 게 용할 정도네요.”

[그것도 언제 끊길지 몰라.]

통신망이 끊기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이거 정말 섬에서 윌리아와 단둘이 오순도순 살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버지와 나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호야.]

그러다가 아버지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아빠가 제안할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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